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4)
“자, 그럼…….”
시알라가 투란을 향해 앞으로의 일을 말하려고 막 입을 열었다.
투란이 귀를 기울이며 시알라를 마주 보았다.
“투란, 시알라!”
열린 문 너머 방에서 키유나가 외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시알라가 먼저, 투란이 바로 뒤이어 다시 방 안으로 돌아갔다.
키유나가 침대 한구석에서 라카샤의 머리를 손으로 받쳐 돌리는 채로 고갯짓하고 있었다. 와서 보라는 그 모습에 둘이 얼른 침대 곁으로 갔다.
“응! 뭐야, 벌써!”
시알라가 먼저 짜증 섞인 중얼거림을 토해 냈다.
투란은 살짝 재미있다는 듯이 그 말을 받았다.
“대단한데! 뭘 어떻게 꾸민 저주인데 이렇게 빠르게 돌아와!”
라카샤의 볼과 목으로 새로운 검은 얼룩이 보글거리며 피어나고 있었다. 그 번지는 속도는 느릿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빨랐다. 그냥 두면 한두 시간 후에는 투란이 먹어 치웠던 만큼 저주가 다시 퍼질 듯했다.
시알라와 키유나가 투란을 흘깃하며 다시 바로 손을 쓰겠냐고 묻는 눈길을 보냈다. 거기에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에스탄의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린다.
“성장하는 저주라…… 게다가 침식한 정도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경우로군. 근원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되풀이될 거야. 멀리서 왔다고 했으니 당장 어찌할 수는 없겠군. 투란, 어찌할 텐가!”
“조금 거칠게 다뤄야겠죠.”
잠깐 고개를 기웃기웃하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이 대답했다.
시알라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키유나는 미묘하게 한숨을 쉬었다.
에스탄은 조용히 한구석으로 물러선 채였다.
투란은 침대 위로 무릎을 얹으면서 라카샤를 가만히 받쳐 올렸다.
얼굴과 목, 손발의 드러난 부분의 살결에서 불끈거리며 투란이 남겨 놓은 ‘악마의 심장’ 줄기가 반응했다.
라카샤의 온몸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회복의 과정이 편안할 리가 없기에 어느 정도 마비시키고 재워 놓았고, 완전 회복까지 라카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여유를 뒀던 투란…… 저주가 곧바로 다시 침습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사나흘, 길어 봐야 대엿새 정도의 시간 동안 고통 없이 깨끗하게 회복이 끝낼 생각이었다.
‘이 저주, 아주 지독한 것 맞지! 언더섀도우에서도 보기 힘든…….’
조금 어이없다는 기분에 투란은 슬쩍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엄격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없어. 대부분 피에 얽힌 저주였다만, 뱀파이어의 특성이 명확한 탓에 막아 내고 약화하는 방법도 꽤 많이 알려져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근원이 어딘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거리도 상당히 먼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하물며 고신목의 안쪽까지 치고 들어오는 침습력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굉장한 저주가 맞아. 단지…… 정말 의아한 부분은 죽음을 유도하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는 미묘한 점이겠지. 이렇게까지 고통을 주기 위한 저주는 그리 많지도 않을 텐데, 난 드라코눔의 기록에서도 본 적이 없어.
‘근원이라…….’
투란은 조금 두서없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 한마디를 짚어 냈다.
알드바인으로 상아탑이 옮겨 주기 전에 라카샤는 노벡스, 알드바인에서 꽤 먼 칠왕국의 한쪽에 있었다고 했다. 저주의 근원도 분명히 그쪽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거리를 무시하고 이런 위력을 보여 준다…… 투란에게 별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반복적으로 몸을 회복시키는 것은 분명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차라리 몬스터에 의한 독으로 이 지경이 된 것이라면 아주 명쾌한 해결책이 있기는 한데…….
―이 저주는 몬스터랑 상관없어. 뭐, 몬스터 로드가 된다면 고유 마력으로 스스로 저항 정도는 하겠지. 하지만 몸이 이미 한번 망가졌던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채 너에게 의지하는 중이다. 몬스터 로드가 된다고 해도 당장 버티기 어렵지.
‘내가 그렇게 미친놈이냐! 온전한 정신도 아닌데 몬스터 로드가 돼야 살 수 있다고 꼬드길 정도로!’
드라고니아가 생각을 엿보고 진지하게 쏟아 내는 말에 투란은 투덜거렸다.
그저 잠깐 스쳐 간 생각이었을 뿐인데 너무 진지하게 뭐라 하는 것 아닌가!
한데 드라고니아가 슬쩍 다시 이어 하는 말은…….
―근원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 말고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만.
‘엥!’
―고신목의 밀실 안까지 파고들었잖아. 시알라가 황금매의 마력으로 장벽을 쳤고, 키유나가 마녀의 비전으로 여파를 상쇄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도 너에게 잡아먹힐 때까지 그리 약화되지도 않았잖아. 당장 근원을 찾아내 어쩌지 못한다면 몬스터 엠블럼이 유일한 대책이 될 수도 있어. 상아탑에서는 근원을 찾아내서 아예 재현되지 않게 끝장내려 하겠지만…….
‘쳇.’
툴툴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투란은 라카샤의 등과 머리를 한 팔로 치켜올리면서 미묘하게 떨리고 있는 얼굴까지 차분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다시 침식하기 시작한 저주는 뺨에서 목에서, 드러난 손발의 살갗까지 검은 반점처럼 자리 잡고 보글보글하며 흉악하고 잔혹한 낌새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시알라와 키유나가 작고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에스탄은 가만히 팔짱을 낀 채로 한층 더 흥미롭다는 듯, 투란이 무엇을 하려는가 기대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투란은 그런 기대를 느끼면서 조금 깊이 생각했다.
‘답은 몬스터 로드. 하지만 억지로 문장을 심을 수는 없다. 심어 놓은 줄기는 회복에 집중해 놔서 그냥 버틸 뿐…… 좋아, 결정했어!’
―응……!
빠르게 흘러가던 투란의 생각, 그 결과는 바로 실행에 옮겨졌고 드라고니아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투둑, 투드득.
라카샤의 온몸에서 힘줄, 핏줄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이 요동쳤다.
드러난 줄기줄기가 검게 물들고 곳곳에서 입을 연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그리고 저주가 그 곳곳의 입에 핥아지고 빨려들어 갔다.
하아…….
라카샤의 입에서 편안한 숨결이 새어 나왔다.
뚜득, 투득.
묘한 소리와 함께 라카샤의 온몸이 살짝 뒤틀리면서 치솟았던 힘줄, 핏줄이 모조리 가라앉았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순식간에 라카샤의 살결이 평온하고 평범하면서 부드러운 소녀의 것으로 바뀌었다.
돌연 오러가 라카샤의 손끝 발끝부터 피어나며 온몸을 휘감았다.
“어!”
“아!”
“호오!”
시알라와 키유나, 에스탄이 동시에 놀란 소리를 냈다.
라카샤의 몸에서 피어난 오러가 라카샤의 능력이 아니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기반으로 삼은 오러, 차분히 침대에 라카샤를 눕히며 물러서는 투란의 ‘힘’이었다.
물러선 투란이 손을, 발을, 무릎을, 어깨와 고개를 움직이니 라카샤도 손발, 무릎, 어깨와 고개를 거의 똑같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다음 투란은 다리를 굳게 딛고 허리 아래를 꼼짝도 않는 채로 가만히 팔만 들어서 손가락만 꿈틀거리는 시늉을 했다. 한데 이 손의 작은 움직임이 라카샤의 온몸에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잠을 자다가 뒤척이듯이 라캬사가 몸을 살짝 돌리며 등과 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알라와 키유나가 곧바로 눈꼬리를 날카롭게 만들며 투란을 노려봤다.
덮어 놨던 담요가 저편으로 흘러가며 라카샤의 등이 맨살을 드러냈으니까.
그야말로 투란이 라카샤를 자신의 인형처럼 다루는 상황이었고, 어찌 봐도 그리 좋은 놀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에스탄조차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투란이 조금은 주의하기를 바란다는 표정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의 눈길과 염려를 눈치채지 못한 듯, 투란은 집중할 뿐이었다.
그 집중의 결과는 금방 라카샤의 몸에서 드러났다.
아련한 오러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을 타고 흐르고 퍼지며 철저한 가드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시각이 아닌 평범한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오러 가드가 새롭게 치고 들어오는 저주를 밀어내게 하려는 참인가 싶은데…….
“하나, 둘, 셋, 넷…….”
갑자기 투란이 수를 세기 시작했다.
라카샤를 감싼 오러 가드는 서서히 얇게 살갗을 저미고 들어가며 광택을 짙게 하는 중이었다. 오직 한 곳, 라카샤의 목덜미에서만 그 변화가 외면하는 듯한 것이 마치 오러 가드의 약점처럼 보였다.
저주는 곧바로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처럼 거품 한 점이 되어 나타났다.
목덜미 살결 위로 한 방울 생긴 거품이 금세 보글보글하며 그 반점을 확대하려 했다. 자꾸 실패해서 한층 더 성난 듯, 한층 더 강화되기라도 한 듯 격렬한 분위기를 머금은 채로.
투란이 세던 것을 멈추고 히죽 웃었다.
순간 라카샤의 귓불 뒤편, 두 어깨와 목에 닿는 등줄기에서 시커먼 방울이 돋아났다. 방울은 금세 가늘게 뻗어 나가며 라캬사의 살결 위를 질주하며 보글거리는 저주를 향해 모여들었다.
혼탁한 색채의 보글거리는 거품을 시커먼 물감 방울이 휘감아 포위했다.
그 저주 거품을 향해 시커먼 물감이 조이며 채색했고, 그 중심에서 입을 열었다.
크기로 보면 고작해야 손가락 두어 마디를 겹친 정도였지만 시커먼 소용돌이는 목덜미를 끓이며 손바닥 절반 정도로 번져 있던 저주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푸훗, 작은 입김…… 어찌 보면 트림이라도 하는 듯한 새는 소리가 소용돌이를 일으킨 입에서 작게 터졌다.
투드드드, 두득.
라카샤의 온몸에서 힘줄이 뼈마디를 분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두드러졌다가 바로 가라앉았다. 지켜보는 시알라와 키유나, 에스탄이 모두 흠칫하며 투란을 보니 투란은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뭔가 한참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표정!
어찌 보면 실에 매단 인형 놀이에 한참 빠진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그 인형이 된 라카샤가 갑작스럽게 허공으로 기우뚱하듯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덮어 놨던 담요가 라카샤의 윗몸에서 완전히 벗겨져 내렸다. 이를 보자마자 바로 키유나가 손을 뻗어 담요를 잡고 다시 라카샤의 어깨 위로 걸쳐 주려 하는데, 라카샤의 고개가 갸웃하며 졸린 듯이 뜬 눈으로 키유나를 바라봤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키유나는 당황했다.
지금 라카샤의 눈동자는 인형처럼 반짝였지만 그 눈길에 담긴 의지는 인형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 깨어난 것인가 아닌가 알 수 없었다.
시알라도 곁에서 이를 보고 ‘어라!’ 하며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투란을 보았다.
“여어! 라카샤, 깨어났어요! 금빛매의 쉼터에 잘 왔어요! 여기 알드바인이란 것 기억나요! 아, 나는…… 전에도 말했듯이 전혀 수상한 사람이 아닌 투란! 진짜 이름이 투란이고 여기 사는 수상하지 않은 사람이죠!”
좌충우돌하고 앞뒤 없는 해괴한 소리를 낭랑하게 쏟아 내고 있잖은가!
시알라가 정신 줄 나간 듯한 표정으로 투란을 보다가 문득 그 곁에서 한숨 쉬는 에스탄을 느끼고 겨우 입을 열었다.
“야, 너 지금…….”
키유나도 어이없어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눈을 깜박이는 라카샤에게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키유나가 막 입술을 달싹이려 하는 순간, 라카샤가 먼저 입술을 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투란……!”
자신에게 쏟아진 목소리를 향해 라카샤가 몸을 돌리려 했고, 기우뚱거리며 아직 힘들어하는 그 몸짓에 키유나가 얼른 받쳐 주며 담요를 걸치는 채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제 얼굴을 마주 보게 된 투란은 경쾌하고 유쾌하게 다시 나불거렸다.
“기억나요! 수상하지 않은 투란! 정말 찾아오다니, 깜짝 놀랐잖아요! 하하핫!”
뭔가 생각 없이 초대한 사람이 찾아와서 재미있다고 낄낄거리는 듯했다.
너무 생각 없이 히히거리는 듯한 그 태도에 시알라가 아예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고, 키유나는 헛웃음이 떠오르는 표정으로 라카샤를 보며 어찌 달래고 대신 변명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했다.
무엇보다 라카샤가 지금까지의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얼마나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저주로 인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투란이 저리 신나는 웃음부터 터뜨리고 괴상한 말을 하는 것!
하지만 주변의 이런 염려를 라카샤는 단번에 뭉개는 말을 꺼냈다.
“투란…… 미안해요…… 투란, 나 갈 곳이 없어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알드바인이랑…… 황금매랑 투란만 생각나서…….”
어떻게 들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선택을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이야기.
시알라와 키유나가 조금 표정을 굳히는데, 에스탄은 싱긋 웃으며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라카샤에게 다가서며, 그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어 헝클이며 여전히 유쾌한 표정이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배고프죠! 힘은 세졌지만 배가 많이 고플 거예요. 라카샤, 일단 먹고 쉬고 차분히 이야기해요. 서두를 것 없어요. 시알라, 먹을 것 준비해 줘. 아, 나랑 에스탄 할배 것도! 우리도 배고플 만큼 끼니를 걸렀거든! 마스터 홀시딘이 막 몰아붙이는 바람에 먹질 못했어!”
돌연 자신을 향한 말에 시알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시알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투란의 청에 응하는 것이었다.
“알았어, 일단 이 아가씨 좀 입히고!”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의 판단이 괜찮다고 인정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