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5)
“어떻게 한 것인가!”
자리 잡고 앉자마자 에스탄이 고요한 말투로 물었다.
투란은 이전에 기억하던 시알라의 부엌, 그 아래가 넓은 식탁을 중심으로 꾸며진 한 층의 방이 된 것을 둘러보다가 어리둥절해서 짧게 되묻는다.
“네! 뭘 어떻게 해요!”
혀를 차야 할 듯한 상황이지만 익숙하다는 듯, 에스탄이 다시 묻는다.
“저주는 여전할 텐데, 어떻게 그리 깔끔하게 막았냐고.”
홀짝, 놓인 잔에 담긴 음료가 뭔가 가볍게 맛을 보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짚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투란은 지금 에스탄이 아주 중요한 부분을 확인하고자 한다는 것을 느꼈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이 할배가 꽤 집요하게 들러붙어 질문을 반복할 듯한 낌새…….
―자주 그랬지, 언더섀도우에서 프릿을 다그칠 때 모습이야. 뭐, 너도 많이 다그치고는 했다만.
키득거리는 낌새를 담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막연하다 싶은 예감을 보증해 주고 있다!
후드득.
“아, 과일차! 이제 맹물 대신에 이걸 막 내놓을 수도 있나 보네! 아, 저주요!”
슬쩍 튕기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을 지어 에스탄의 재촉하는 말을 살짝 늦추고 나서 숨을 고르는 흉내를 내며 바로 말을 잇는다.
“막은 것 아니에요. 저주는 계속 쳐들어오는 중이고, 라카샤의 몸에 계속 파고드는 중이죠. 단지 숨 쉬듯이 그 저주를 잡아먹고 바로 흔적을 지워 버리니까…… 라카샤가 느끼기도 전에 그러니까 있는 줄 모르는 상태로 보이는 것뿐이에요.”
에스탄은 이 말을 잠시 음미하는 듯하다가 벌컥 잔을 비운 다음에 다시 묻는다.
“헬비스트를 그 소녀의 몸에 계속 형성해 놓고 있다는 말인가! 몬스터 로드도 아닌 소녀가 몬스터의 형상을 지닌 채라고! 자네가 형성한 몬스터의 형상을,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의 몸에 부여했다고!”
침착하고 신중하면서도 어딘가 경외(敬畏)를 품은 목소리였다.
투란은 잠깐 뒷머리를 긁적이듯이 뒤로 몸을 젖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셈이네요! 음, 몬스터 중에서는 자기 몸을 조금씩 분리할 줄 아는 경우가 있거든요. 나도 그런 몬스터를 삼킨 적이 있으니까…… 그런 특성을 이용한 거니까, 나름대로 비전이라면 비전이겠네요. 이상한가요!”
“아니, 전혀. 그저…… 좀 놀랐어. 자네의 놀라운 능력에 여러 번 놀라서 이제 더 놀라지는 않겠거니 했거든. 흠, 프릿이 알았다면 헬비스트를 남겨 주기 전에는 못 간다고 매달렸겠어. 푸후훗.”
말끝에 에스탄의 입가에 매달린 웃음은 짓궂고 어딘가 사나웠다.
투란이 보기에는 자신이 잘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원한이 이로써 조금 풀렸다고 에스탄이 기뻐하는 것인지 애매했다.
어쨌든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프릿이랑 에스탄 사이가 나빴냐!’
―프릿이 일방적으로 에스탄을 많이 괴롭히는 쪽! 뭐, 에스탄도 기회 날 때마다 반격을 하고는 했다만.
쓴웃음을 섞어 투란의 조그마한 의문에 답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으로서는 뭔가 묘한 염려가 가슴을 간지럽히게 하는 말이었다.
‘저주를 먹는 입이 언더섀도우에, 프릿에게 많이 필요했어!’
―없는 것보다야 낫기는 하지. 하지만 없다고 프릿이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아티팩트도 발굴해서 건네주기도 했으니까.
‘응! 아티팩트! 저주를 막는 것!’
―투란, 당장 기억하고 싶으냐!
‘어! 어…… 나중에 중요한 때가 되면, 필요한 때가 되면 알려 줘.’
돌연 심각하고 무거워져 버린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본능적으로 치솟는 대답을 하며 다시 생각해야 했다. 대체 왜 자신은 이런저런 일을 모두 기억 깊은 곳에 파묻고 덮어 버린 것인가!
조금 혼란스럽고 살짝 염려가 깃든 탓에 투란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에스탄은 금방 간파한 듯했다.
“투란, 헬비스트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은 이제 없어. 언더섀도우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헬비스트의 저주를 먹는 입이 있으면 쉽고 편한 일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귀찮은 것이 되었을 뿐이야. 후후훗, 프릿에게는 그 정도 귀찮은 일은 꼭 필요하기도 하지! 푸흐흣!”
달래는 말의 끝자락이 왠지 남을 골탕 먹여 좋아라 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노인의 웃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이없어 투란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렇게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과일즙을 짜낸 차를 홀짝이는 사이, 시알라와 키유나가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응! 과일이라도 꺼내 먹고 있으라니까.”
시알라는 에스탄과 투란이 과일차 한 병만 달랑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있는 광경에 혀를 차며 말했다. 키유나는 한구석의 벽장을 바로 열고서 과일 바구니를 하나 꺼내 내려놓고 있었다.
투란과 에스탄은 홀짝임을 멈추고 먹을 것을 챙기는 둘보다 한 걸음 늦게 조용히 계단을 올라서는 라카샤를 바라봤다.
라카샤는 조금 시무룩하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인 채였다.
하지만 라카샤가 입고 있는 차림새는 당장 사냥 나갈 준비를 시작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장 직전, 날붙이라든가 숨길 무기, 조금 더 견고한 장갑이나 갑주를 붙이기 전의 몬스터 헌터가 보일 차림새…….
“시알라 옷이네! 으흠, 시알라가 조금 키가 큰데…… 그래도 헐렁거리지 않고 몸에 잘 맞……잖아!”
중얼거리던 투란은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눈길을 보내는 시알라를 향해 어리둥절한 채로 항의하듯 말을 맺어야 했다.
키유나가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는 채로 라카샤에게 손짓한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과일차도 내줄 테니까. 일단 한 잔 마시고 천천히 부드러운 과일부터 먹는 편이 좋을 거예요. 투란, 빵과 고기도 먹을 거지! 시알라, 요리할 거예요! 아니면 내가!”
“아, 내가 할 거야! 흐흥, 투란! 너 없는 사이에 내 솜씨가 얼마나 늘었나 맛을 보여 주마!”
시알라는 라카샤에게 의자부터 내주면서 여전히 성난 눈길로 투란을 쏘아보며 으스대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몇 마디 말은 투란에게 문득 이전의 기억, 찬란하다 싶을 정도로 망가뜨렸던 요리 재료를 떠올리게 했다.
“어! 어…… 시알라, 정말 솜씨 좋아진 것 맞지! 여기 나 말고 손님도 있으시잖아! 먹을 수 있는 요리 하는 거지!”
“아앙! 투란, 너 떠난 시간이 몇 년이거든! 기다려! 내가 아주 맛있는 걸 먹여 줄 테니까!”
시알라가 턱을 당기고 꼿꼿한 태도로 외쳤다.
거의 가슴까지 두드리며 큰소리치는 듯한 모습에 투란이 웃을까 말까 하는 해괴한 표정을 짓는데, 키유나가 통통 탁자를 치며 엄격하게 시알라에게 속삭인다.
“새 레시피 실험하지 말고 하던 것 해요. 아직 회복 중인…… 환자도 있으니까 되도록 부드러운 쪽으로요.”
“알아!”
움찔하면서도 시알라는 슬쩍 키유나의 눈길을 외면하는 채로 대꾸했다.
투란은 그 묘한 광경을 보며 안도하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시알라가 작은 소란을 끝내고 위층 부엌으로 올라가자마자 에스탄이 살짝 낮은 목소리로 투란에게 묻는다.
“요리 잘 못하는 아가씨, 자네가 말했던 맏누이라는 그 아가씨가 맞지!”
“시알라 얘기를 했어요! 어, 뭐 일단 맞는데 이젠 잘한다니까…… 키유나, 시알라 요리 요새 어때요!”
엉거주춤하니 중얼거리던 투란은 결국 키유나를 향해 묻고 말았다.
픽, 웃음과 함께 앉은 키유나가 탁자에 턱을 괴며 대답했다.
“새로운 레시피는 늘 엉망. 그래도 열흘 정도 연습한 레시피는 제법 먹을 만해져요. 음, 한 달 넘기면 꽤 맛있다는 말도 나오니까. 아, 라카샤! 몸이 회복되려면 일단 먹어야 해요. 우선 한 잔 모두 마셔요.”
편안해진 분위기를 둘러보듯 말하던 키유나가 앉은 채로 머뭇거리는 라카샤를 향해 과일차가 담긴 잔을 밀어 주었다.
상냥한 키유나의 태도였지만 라카샤는 움찔 놀라고는 겨우 잔을 손으로 잡으며 입 모양만으로 ‘고마워요.’라고 소리 없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라카샤를 보다가 문득 느꼈다.
‘아, 반짝거리네! 와아, 줄기 속까지 반짝임이 번지고 있잖아!’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이에 대꾸한다.
―너 말고 아무도 모르는 것 같으니까, 가능하다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마라. 본인에게도 묻지 마! 어떻게 봐도 그냥 너 혼자 미친놈 같다고!
투란은 입꼬리를 살짝 삐죽였지만 금방 과일 바구니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유쾌하게 외치듯, 목소리는 조금 낮춰서 말한다.
“싱싱하네! 부드럽기도 하고. 라카샤, 먹어 봐요. 지금 배 속이 텅텅 비었으니 얼른 채워야 빨리 회복돼요. 힘은 지금도 세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만큼 더 많이 먹어야 하니까.”
라카샤는 머뭇거리면서 손에 잡은 잔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키유나가 얼른 손을 내밀어 라카샤의 손을 덮듯이 잡아 주며 말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는 안전해요. 하고 싶은 말 해도 돼요. 마음껏 먹고 마셔도 되니까…….”
상냥하고 부드러운 이 목소리에 도움을 받은 듯, 라카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투란, 미안해요. 저주를 몰고 와서…… 투란을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갈 곳이 없어서…….”
“쉿!”
주섬주섬 울먹이면서 나오는 말에 투란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시늉을 하며 세찬 소리를 냈다. 움찔하며 라카샤의 말이 멈췄고, 투란은 빙긋 웃으면서 라카샤를 똑바로 보는 채로 말한다.
“잘 찾아왔으니까, 저주도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괜찮아요. 라카샤, 이야기는 몸이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 천천히 들을 테니까, 지금은 먹어요. 먹고 마시고 푹 쉬고, 울지 않게 되었을 때 이야기해요. 키유나, 그래도 되는 거죠!”
자신을 흉내 내는 듯한 투란의 말투에 키유나가 잠깐 눈을 가늘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확인해 주라는 듯한 투란의 말에 키유나가 조금 가늘고 날카롭게 대꾸하듯 말한다.
“그럼, 되지. 투란의 말처럼 해요, 라카샤. 투란, 너도 그만 떠들고 먹어. 시알라의 요리가 수상하잖아! 그 전에 반쯤 배를 채우라고.”
“에! 역시 수상했구나! 젠장, 엉겁결에 당할 뻔했네!”
투란이 재빨리 과일을 두 손으로 쥐면서 와그작거리며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반쯤 배를 채울 생각은 없고, 그야말로 가득 채우겠다는 듯한 태도!
그 꼴을 보고 에스탄이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라카샤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맹하니 그런 투란을 바라봤다.
키유나는 자신의 말에 매우 격하게 반응하는 투란을 황당하게 잠깐 바라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키득거리는 채로, 조금 더 부드럽고 상냥하며 친숙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투란, 잘 돌아왔어. 오래 기다렸잖아, 바보야.”
“응!”
우걱, 와작, 꿀꺽.
입안 가득 채운 과일을 삼키고 나서 투란이 입술을 삐죽하고 대꾸한다.
“나 바보 아냐! 뭐,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을 맺고 나자마자 투란은 다시 과일을 두 손으로 쥐면서 입안에 구겨 넣듯이 깨물어 대고 있었다. 다른 누가 과일 하나를 다 먹기 전에 몽땅 먹어 치울 듯이 사나운 모습이었다.
키유나가 그런 투란을 보고 웃는 듯하다가 아예 과일 몇 개를 따로 빼서 라카샤 앞에 옮겨 놨다.
“먹어요, 어서.”
라카샤는 흠칫하다가 키유나를 보고 다시 투란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쥐고 있던 잔을 입가에 대고 마셨고, 키유나가 놓아둔 과일을 집어 입으로 옮겼다.
에스탄은 두 아가씨를 흘깃하면서 자신의 빈 잔을 채웠다. 과일보다는 시알라가 내올 요리에 관심이 있다는 듯, 에스탄은 그렇게 과일차만 홀짝였다.
그리고 얼마 후, 시알라가 마침내 첫 요리를 담은 큰 쟁반을 들고 내려왔는데…….
“으아앗! 시알라, 이게 뭐야!”
투란은 우렁차게 외치며 손가락질할 수 있었다.
에스탄도 그 쟁반을 조금 맹하니 보면서 허허거리니, 말하고 싶어도 말이 잘 안 나온다는 표정이 또렷했다. 이런 노인의 표정에 라카샤 또한 동참하듯이 살짝 얼빠진 눈길로 그 쟁반 위에 얹힌 요리를 바라보았다.
“뭐긴 뭐야! 요새 제일 잘나가는 요리인데! 키유나, 맞잖아!”
시알라는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다.
투란이 뭔 농담이냐고 키유나를 쳐다보니, 키유나가 목덜미 잡고 싶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말한다.
“시알라 말이 맞긴 맞아. 응, 투란 저거 진짜로 요새 몬스터 헌터들이 즐겨 찾는 요리이기는 해…… 그렇긴 한데…… 시알라, 알드바인에 처음 와서 우리 쉼터를 찾은 손님에게 사슴 머리 통구이는 아니잖아요!”
뿔이 고스란히 달린 우람한 사슴 머리가 담긴 쟁반은 식탁 위에 당당하게 놓이는 중이었다. 왠지 살아 있는 것처럼 멀쩡해 보이는 그 눈알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채로.
―몬스터도 뜯어먹던 놈이 뭘 놀라는 거냐, 대체…….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과장된 반응에 한숨을 쉬는 중이었다.
물론 투란도 할 말이 있었다, 아주 많이.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게다가 요리라니, 거의 살아 있는 것처럼…… 털만 뽑아서 내놓은 것처럼 핏기가 그대로 남겨져 있는 것 안 보이냐! 이것도 나만의 시각이야! 아니잖아! 에스탄 할배 낯빛 보라고!’
―피 아니다, 투란. 그냥 붉은 양념이야.
그래도 드라고니아는 사실을 짚고 있었다.
그렇게 투란은 알드바인으로 돌아와 시알라가 내민 첫 요리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