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6)
Chapter 212. 괴담, 샤벨투스!
휘잉, 시이이…….
높은 하늘의 바람이 내려와 성벽을 스치며 맛보고 지나간 듯한 소리가 아늑하게 울려 퍼졌다. 아침 햇살이 호수를 물들이며 해자 거리를 넘보듯이 방벽 위로 넘실거렸다. 해자 거리 위로 가느다란 뼈처럼 보이는 구름다리가 여럿 걸쳐 있었고, 구름다리 위로는 공중에 띄운 듯한 부두를 닮은 구조물이 기괴한 자태를 과시하는 중이었다.
‘저게 제일 신기하단 말이지.’
투란에게 알드바인의 건물들이 다들 한 층, 두 층씩 높아진 듯한 광경도 낯설고 낯익었지만 해자 거리의 상공을 차지한 저 구름다리와 하늘에 걸린 듯한 부둣가의 풍경은 그저 괴이와 신기함이 가득할 뿐이었다.
―시알라의 머리통 요리가 맛있었고, 인기 있다는 것보다 더!
드라고니아가 그루터기의 최정상, 멜란드의 매달아 놓은 움막 상자 같은 집 위에 올라앉은 채로 구경 중인 투란의 감상에 딴지 걸듯이 중얼거렸다.
‘어! 아니, 뭐…….’
쓴웃음이 투란의 입꼬리를 뒤틀게 했다.
핏빛 양념이 그럴듯하게 발린 사슴 머리는 뿔까지 진짜였지만, 분명히 요리된 것이 맞았다. 눈알부터 혓바닥까지 전부 요리된 상태란 것이 조금 황당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제대로 간을 맞추고 조리해 낸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누가 그딴 모양의 요리를 먹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알드바인의 헌터들은 자신들이 씹어 먹고 싶은 몬스터나 짐승의 모양으로 종종 주문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반드시 사냥하기 위해 미리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투란에게도 어딘가 그럴듯하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히 좀 고약하다는 기분은 떨쳐 낼 수 없었지만…….
―뭐, 너 떠나고 나서 알드바인의 시간은 고작해야 삼 년여 정도 흘렀다만 그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잖냐. 홀시딘이 대마법사로서 기량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전에 알드바인과 가까이 있던 만만치 않은 재앙이라 불리던 것들이 정리된 탓에 이리저리 크게 열린 길도 한몫했다니까 그건 투란 네가 남긴 영향력 때문이라 해도 되겠지.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래도 몇 년은 더 걸릴 일이었잖아. 역시 엘더 헌터가 눌어붙어서 이것저것 손대고 있는 탓이 더 클걸.’
투란은 더 길어지려는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를 끊듯이 말했다.
괴상한 사슴 머리의 요리를 즐기는 사이에 시알라가 그동안의 일을 이것저것 말해 주면서 얼핏 흘린 이름 중에 엘더 헌터가 끼어 있었다. 하클 영감을 찾아왔던 그 엘더 헌터가 결국은 알드바인에 눌러앉아서 아주 천천히 그 영향을 짙게 드리운 것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성벽 너머에 아웃포스트라니…… 갈기산맥에서 짐승이 내려오는 정도가 아니라 몬스터가 언제 밀고 올라올지 모르는 평원을 끼고 그딴 것을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무리 커다란 재앙 덩어리가 두엇 정리되었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자면 보통 미쳤다고 한다고.’
투란이 가만히 눈을 감으며 높이 띄운 프로브의 시각으로 알드바인의 길고 긴 성벽 너머를 다시 확인했다. 산맥을 따라 옹기종기 목책 혹은 석벽을 쌓아 둔 징검다리 같은 모양의 작은 마을이 대여섯 이어져 있었다.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알드바인으로 도망칠 땅굴까지 파 놓은 마을들이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알드바인을 공력해 오는 몬스터의 뒤를 칠 수도 있는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도 그 마을들의 상황에는 쓴웃음이 난다는 듯이 말한다.
―뭐, 알드바인에 거처하는 엘더 헌터가 장인 노릇을 하는 크라쉬니까. 어쩌면 데쓰메이지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일 수도 있고…… 그런데 투란, 한밤중에 달빛을 감상하면서 지난 시간 동안의 변화를 구경하려고 올라온 것은 아니잖아!
‘그야 뭐…… 자려고 누웠지만 이상한 것 한 가지는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 몇 년 전에 뿌려 둔 거미줄이 토막 난 것이 이상하다는 말을 하는 네가 이상하기는 하다만.
‘야, 왕의 거미줄이었다고! 그리고 그냥 토막 난 것이 아니잖아. 건물이 높아지고 성벽이 보수되고 그런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런 보수도, 변화도 없는 곳에 주먹만 한 쥐구멍처럼 멀쩡한 그물을 뚫어 놨잖아.’
투란은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자려고 누웠다가 확인한 아라크녹스 왕의 거미줄, 알드바인 전체를 몰래 채우듯이 뿌려 둔 그물의 한구석이 인간의 손길이나 마법과는 무관하게 흠집 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거미줄, 어떤 영향을 받았나 기록한다면서! 그 구멍 난 부분이 뭐였나 최소한의 기록은 있잖아! 굳이 잠자리를 박차고 올라와서 찾아갈 필요가 있나!
드라고니아는 툴툴대듯이 짚고 있었다.
투란도 똑같이 툴툴거리며 대꾸한다.
‘그래, 있는 듯 없는 듯 펴 놓은 느슨한 그물인 대신에 뭔가 영향을 받으면 거미의 감각으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도록 해 놨지. 그런데 그 구멍 주변으로는 아주 깔끔하게 도려낸 것처럼 그런 흔적이 없어. 뭔가 와서 싹둑 잘라 내고 치워 버린 것처럼 말이야.’
―성벽에 다른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 구멍 난 자리가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성벽 구석이라지만, 성벽은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며!
‘야, 뭘 시침 떼는 거야! 알드바인의 성벽은 자그마한 구멍 정도는 알아서 메우는 마법의 성벽이잖아. 뭔지 모르겠지만 구멍을 내고 들락거린 자리가 너무 작아서 상아탑이 눈치채기도 전에 메워졌을걸.’
―그러니까 그 작은 것을 이 한밤중에…… 달빛도 흐릿한 깊은 밤에 꼭 찾아봐야 한다는 까닭이 뭐냐! 괜한 짓 말고 홀시딘에게 따로 확인부터 해 봐야 하는 것 아냐! 돌아오자마자 한밤의 나들이를 하지 말고 말이다.
‘한밤중이라 묻기도 뭐하지. 잠들지 않았다고 해도 다들 잘 시간에 연락하면 뭔 핑계로 화를 내도 따질 수도 없고.’
―대체 왜! 뭐가 그리 이상해서 그 구멍에 집착하는 거냐!
결국 포기했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다시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피식, 미묘한 웃음과 함께 투란이 또박또박 소리 없이 답한다.
‘느슨한 거미줄이고, 조금만 당겨져도 끊어져. 거미줄이 그물을 친 곳에 변화가 생기면 거기 묻은 얼룩처럼 주변 상황에 맞춰 가지. 하지만…… 베어 내거나 뚫어 내거나는 못 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늘어나다가 끊어지기만 한다고.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나 흔적이 남겨지지. 한데…….’
―당겨지지도 않고 싹둑 잘린 꼴처럼 끊어졌다고! 그게 대체 뭐가 이상한데! 절단되지 않는 거미줄도 아니었다면서!
‘어읏, 그러니까! 끊어졌을 때의 흔적이 남겨져서 뭐가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모르겠다고! 왕의 거미줄이 제대로 흔적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도려냈단 말이야!’
―그냥 지나가던 애들이 휘두른 작대기에 맞아 느슨하게 끊긴 것이 절대로 아니란 말이지! 네가 말하는 그 자리, 애들이 종종 놀러 다니는 뒷골목 같다만.
‘응! 애들!’
―발자국이 있잖냐. 희미하지만 자주 찍힌 발자국이 말이야.
‘언제 또 탐색했는데!’
―이러고 떠드는 사이에 탐색하고 조사했지. 그래서 그 자리에 가도 딱히 더 알아낼 수 있을 것은 없어 보인다만 갈 거냐!
뚱하니 묻는 말에 투란은 목덜미를 잡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신목의 그루터기 쉼터 위에 앉아서 침묵의 수다를 떠는 셈이었는데, 그사이에 드라고니아는 옵저버와 프로브로 투란이 이상하다 느낀 것을 휘젓듯이 탐지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이 애들이나 얼쩡거리는, 애들조차 안심하고 얼쩡댈 수 있는 알드바인의 성벽 안쪽이란 것까지 확인했고.
‘그러면 말이야…… 혹시 주먹만 한 크기로 거기 오락가락한 뭔가 있었나는 몰라! 구멍 크기가 딱 그 정도거든. 음, 뱀처럼 굵기는 작고 몸통은 긴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일단 그물에 난 구멍 크기가 그 정도니까, 거기 걸맞은 조그마한 뭔가를…….’
두서없이 오락가락하는 상상 속에서 투란은 왕의 감각으로 파악한 부분을 전하려 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투란이 말한 바에 맞춰 다시 탐색의 결과를 검토해서 말한다.
―있군. 흥미롭다고 해야 하나! 새끼 고양이! 그런 짐승의 흔적이 있다만…… 이거 고양이 맞다고 해야 하나! 무른 땅에 흔적을 남겼다만, 작은 돌에도 발톱 자국이 꽤 선명한데!
‘새끼 고양이라도 돌을 긁을 수야 있겠지. 얼마나 선명한데!’
투란이 흘러나오는 대로 답하다가 문득 묘한 예감에 다시 물었다.
―반을 갈라 놨다. 어디 부딪혀서 반쯤 깨진 꼴이다만, 분명히 발톱으로 긁어 낸 흔적이야. 일부러 그 자리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돌 하나를 네가 말한 구멍 쪽에 붙여서 남겨 놨어.
‘그 돌, 자세히 좀 보여 줘.’
투란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드라고니아에게 탐지의 결과를 청했다.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찾아낸 작은 돌멩이 하나의 윤곽이 투란의 눈동자에, 뇌리에 비쳤다.
그 모양을 보는 순간 투란은 갸웃했다.
‘익숙한데……!’
―뭔 이야기냐!
‘이 흔적…… 낯설기는 하지만, 어딘가 낯익어. 음, 잠깐…….’
―비슷한 흔적을 봤단 말이냐!
‘어! 어, 그래. 비슷한…… 아!’
돌연 투란이 한 손을 쥐었다가 폈다.
블랙레온의 문신이 반짝하며 은전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곧바로 투란의 다른 손이 움직였고, 손바닥 길이 정도의 비수처럼 샤벨투스의 이빨이 쥐어진 채로 은전을 반쯤 베었다.
―음!
드라고니아가 의외란 듯, 살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명백한 그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투란은 곧바로 은전을 다시 쥐었다가 펼치는데 이번에는 갈라진 틈새로 거미줄이 올망졸망하게 그물을 친 모양이 나타났다. 다시 한번 샤벨투스의 이빨이 그 그물 귀퉁이를 찌르고 얕게 베었다.
―지금 그 거미줄이 네가 쳐 놓은 그물이랑 같은 것!
흥미롭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투란은 은전의 틈새를 채운 그물이 베이고 구멍 난 것을 보며 웃는 채로 답한다.
‘그래, 샤벨투스의 이빨…… 이 녀석이 베고 뚫은 자리였어.’
―그 말은…….
‘알드바인에 샤벨투스가 들락거려! 새끼 고양이 같은 몰골로! 성벽에 구멍을 내면서 멋대로 들락거리는 샤벨투스가 있어! 하하핫.’
―좋아할 일이냐!
소리 죽여 웃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투란의 표정이 금방 굳어지면서도 웃는, 조금 기묘한 꼴이 되었다.
그런 채로 투란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묻는다.
‘사람 사는 곳에 드나들면서 사람 잡아먹는 놈……이었나!’
픽 웃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그런 놈이었다면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 이미 추적을 시작했을걸!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이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시알라가 몇 마디 했을 테지.
‘즉, 이 샤베투스는 알드바인에 몰래 드나들며 논다!’
―혹은 너의 추측에 걸맞은 다른 짐승, 마물, 괴물이 있을 수도 있지. 꼭 샤벨투스가 아니더라도 그런 구멍을 내고 들락거리는 놈이 따로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라.
‘그건 좀…….’
시무룩하니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에게 혀를 차는 소리를 섞어 말한다.
―쯧! 샤벨투스의 이빨은 잘 만들어진 도구로 갖고 있으면서 대체 왜 몬스터의 정수를 원하는 거냐! 지금 너라면 그보다 훨씬 날카로운 도구도 순식간에 꾸며 낼 수 있잖아! 뭔 욕심이야!
‘그건 그거고, 멋대로 도시까지 들락거리는 몬스터를 그냥 두고 보는 몬스터 로드가 될 수는 없잖아! 음, 그래 일단 샤벨투스 아닐 경우도…… 생각은 해 보겠다만, 이거 샤벨투스 맞을 거야! 분명해!’
콱 은전을 다시 쥐어 지우듯이 담아 버리면서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노골적으로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그래서 어쩌려고! 이 밤중에 언제 남겨진 흔적인지도 모를 것을 단서 삼아 뒤지고 다닐 참이냐!
‘응! 내가 왜!’
투란이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뭔가 묘하게 당당한 태도로 답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그 태도에 의아해서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냥 들어가서 자는 성격은 기대가 안 된다만, 어쩌려고!
‘네가 찾아 줘야지!’
―뭐……!
‘옵저버! 프로브!’
―얀마!
‘난 샤벨투스에 대해서 도감을 좀 찾아볼게. 궁금하잖아, 새끼 고양이만 한 샤벨투스라니! 그렇게 작으니까 도시를 들락거리면서 고양이 흉내를 내는 걸까! 그런 경우가 또 있나! 너도 궁금하잖아!’
―그렇다 치고. 일단 들어가 눕기라도 하지! 이 밤에 결판이 날 일이 아니잖아. 설마 이 밤에 끝장을 내 보자고! 아직 알드바인 안에 있을지 없을지도 애매한 상황인데!
‘어! 아앗! 그, 그러네!’
투란은 뒤늦게 샤벨투스가, 새끼 고양이 형태를 한 몬스터가 알드바인에서 영영 떠난 경우를 떠올리며 당황했다.
―욕심 그만 내고, 일단 들어가라. 탐색 조건을 좀 더 세세하게 잡으려면 어쨌든 도감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좋으니까. 다른 놈일 경우도 고려해야 하고…….
핀잔하며 슬쩍 다독이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다시 잠자리를 향해, 오랜만에 누워 덮는 금전 담요를 향해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