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7)
퀭한 눈길로 투란은 침대 위의 도감을 노려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다리도 꼬고 앉은 채로 도감을 내려다보는 사이에 밤이 지났으니, 이를 대체 누구 탓을 해야 하나 고민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은 꿈틀거리며 구겨질까 말까 고르지 못해 난감한 몰골.
‘뭐가 이리 많냐고…….’
지친 표정 그대로 투란은 조금 질린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투란이 나름대로 안다고 여긴 샤벨투스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소박했나를 알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 도감의 정보가 방대한 탓이었다.
켈 데릭이 도감과 더불어 상아탑의 대도감에서도…….
어쩐지 희귀한 품종이 아니기에 많은 이야기이겠거니 납득한다 치더라도 좀 과하게 많고 낯선 이야기…….
그것이 투란을 밤을 새우게 한 원인이었다.
드라고니아도 생각보다 많은 그 이야기, 정보의 분량에 어이없는 듯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서 슬그머니 침묵하는 중이었다.
딱히 더 보탤 것이 없기도 했지만, 그 정보를 기반으로 프로브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드바인의 곳곳에서 새로운 상황을 엿보고 흔적을 좇는 채로.
‘다 제치고, 늑대나 곰의 모양은 뭐냐고…….’
한숨을 쉬며 투란은 자신이 봤던 가장 엉뚱한 대목을 다시 짚고 더듬었다.
투란이 들었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샤벨투스의 가장 큰 이질적인 모습은 사자였다. 보통은 표범, 범이거나 산사자처럼 갈기가 없는 놈의 형상인데 가끔 갈기가 넘실거리는 사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데 도감에서는 늑대나 곰의 몸집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 또한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샤벨투스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간단했다.
그 이빨과 발톱, 어디 내놔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가장 특징적인 이빨과 발톱이야말로 샤벨투스의 정수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뼈나 가죽, 피와 살은 샤벨투스의 정수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말 또한 확실하게 덧붙여진 설명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그 정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빨이나 발톱 중 한 가지…… 피 묻은 그 뿌리까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채로!
‘정말 이런 놈이었어!’
밤새 살폈지만 역시 도감의 방대한 이야기가 너무 엉뚱했기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굳이 묻고 있었다.
―음! 흠…… 나도 처음 접하는 부분이 많은 이야기였다. 특히나 신분제도를 모방한 등급으로 분류까지 한다니, 상아탑의 대도감에도 없는 이야기였잖냐.
‘그래, 그 이상한 상점의 이상한…… 바로 이 도감만의 독자적인 기록이라고 따박따박 강조까지 해 놨지. 하지만 어쨌든 간에 등급을 매겨 놔야 할 이유도 명확하잖아.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사실이겠지, 이제까지 도감을 통해 얻어 낸 정보에는 거짓은 없었다. 불확실한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명기해 놓기도 하잖아.
‘음…… 그럼, 알드바인에서 오락가락하는 녀석은 역시 최소한 귀족급이겠지!’
투란은 한숨을 쉬면서 퀭한 눈을 비비적거리는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물음을 흘렸다.
도감에서 이야기하는 샤벨투스는 그 능력에 따라 대강 세 갈래의 큰 등급으로 분류했다. 신분제도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처럼, 왕족과 귀족이 있고 그 아래 최하 등급으로 공민층이 있었다.
샤벨투스의 정수가 명확하고 그 특징도 갖추면 일단 최소한의 등급인 공민층이라도 샤벨투스는 샤벨투스였다. 이 공민층이야말로 투란이 듣고 알던 샤벨투스의 이야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역이었다.
그보다 한 계층 위 등급인 샤벨투스의 귀족, 여기에 속하는 샤벨투스는 자신의 체구를 코끼리 크기에서 사냥개 수준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크기 변화에 따라 산중의 작은 살쾡이에서, 덩치 큰 산사자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몬스터…… 체구의 크기를 바꾸지 못하는 공민 계층의 샤벨투스와는 격이 다르다 할 정도로 신속할 뿐 아니라 기초적인 근력조차 몇 배 차이가 나며 이빨과 발톱의 수준 또한 다르다 했다.
그 능력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하지만 귀족 계층에서도 상위에 꼽히는 샤벨투스라면 작은 고양이 정도까지 체구를 줄이는 변신이 가능하다 했으니, 알드바인의 성벽에 난 작은 구멍도 그럭저럭 설명이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경우를 꼽았을 뿐이었다.
사람의 손바닥에서 팔뚝 수준의 작은 체구의 고양이로 변신해서 인간의 도시를 거니는 샤벨투스는 보통 왕족…… 널리 알려진 샤벨투스와는 전혀 다른 몬스터라 보는 편이 차라리 정확하다는 것이 도감의 소견!
샤벨투스의 왕족이 지닌 가장 위험한 점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지능을 지녔고, 나약하고 작은 고양이 모양을 한 채로 가끔 인간의 일에 끼어들어 신전의 수호수가 신의 계시를 받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는 것.
그 탓에 대평원의 몇몇 나라에서는 아예 샤벨투스를 신수(神獸)로 부르며 신전에서 원치도 않는데 그 석상을 만들어 헌납까지 할 지경이라 했다.
이 대목에서 투란은 ‘처음 들어!’라고 버럭 외칠 뻔했고, 드라고니아는 ‘그냥 공예품으로 헌상한 것 아니고!’라며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인간의 일에 끼어든 샤벨투스가 남겨 놓은 몇몇 이야기는 투란이나 드라고니아에게 ‘신수 맞네!’란 말을 저절로 내뱉게 했다. 누군가의 복수를, 누군가의 억울함을 위해 징벌을 내리는 맹수라니…… 신전에서 퍼뜨리는 동화 속 신수랑 딱히 다를 바가 없잖은가!
얼핏 들으면 그냥 그런 경우도 있구나 하면서 참 특이한 몬스터라고 넘길 만도 한 부분인데…… 문제는 도감에서 그런 경우를 언급하며 경고하고 있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착한 듯이 보이는 짓을 샤벨투스가 하는 까닭은 자신의 신변을 지킬 방패를 만들기 위한 수작이라고!
인간의 도시를 나돌아다니는 샤벨투스는 가급 인간을 사냥하지는 않는데, 그 까닭이 자신이 남긴 살육의 흔적으로 인해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이 나서는 것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라 했다.
지능이 뛰어나기에 인간의 일을 파악하고 그리 행동한다는 것.
그렇기에 도시를 벗어나서 충분히 자취를 숨길 곳에 닿으면, 사람 수백 명을 그 자리에서 토막 내 죽이고 그 피 웅덩이에서 목욕할 수도 있다 했다. 심지어 하루 전에 사람을 돕고 칭송받은 샤벨투스라 할지라도!
‘왕족이면 좀 귀찮아지는데…….’
투란은 무엇보다 자신이 처음 접하는 샤벨투스의 왕족 계층일 경우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영리한 몬스터는 늘 귀찮고 위험하지.
드라고니아는 매우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혀를 날름하면서 투란은 기분 전환을 바라는 듯, 아예 소리 내서 말한다.
“이빨이나 발톱만 뽑아내도 된다는 거지, 흐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대꾸한다.
―그렇다잖아. 굳이 도망가는 놈 잡아 죽일 것도 없이 발 하나 잘라 내든가, 볼을 쳐서 이빨 하나만 피 묻은 채로 빼낼 수 있으면 몬스터의 정수가 듬뿍 담긴 전리품이라니…… 네가 가진 그 이빨도 그렇게 뽑아낸 것일 수도 있지.
‘음…… 샤오 할배가 보수로 받아 챙겼을 테니까. 하지만 정수라고는 흔적도 안 남은 채로 제조해 낸 몬스터 소재 칼날일 뿐이지. 둘도 못 되는 괴상한 저주 같은 것이나 걸어 놓은!’
―그래서 탐내는 거냐! 마음껏 열 손가락 열 발가락으로 뿜어낼 수 있는 칼날을! 이미 그런 흉내는 낼 수 있는데도!
‘야, 봐 봐!’
투란은 투명하게 피어오른 도감의 환영, 그 페이지를 넘기고 확대하며 한 구절을 짚으며 읽는 시늉을 시작했다.
‘샤벨투스의 이빨, 발톱을 가공해서 만들어진 도검은 특별하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그 정수를 삼켜 얻는 힘은 몬스터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다. 샤벨투스의 근원을 삼킴으로써 체력이 증대하고 몸의 반응속도가 격을 달리한다! 근육만으로 칼날을 고정할 수도 있는 샤벨투스의 강인하고 기괴한 유연성, 그것이 몸에 깃든다!’
―너한테 별 필요도 없는 것이 맞구먼!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단언했다.
굳이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윌 라이트의 마력만으로도, 이미 터득한 오러 윌더로서의 기량만으로도 투란은 충분히 기괴하고 강인하잖은가!
거기에 뭘 위해서 굳이 샤벨투스를 덧붙인다 말인가!
심지어 몬스터 로드였고, 이미 강인함 신속함을 부여할 몬스터의 정수는 챙길 만큼 챙긴 투란!
이러니 과욕을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드라고니아의 입장.
하지만 투란은 아주 짧게 말할 뿐이었다.
‘어차피 잡아야 하는데!’
―찾은 것 같다만.
허탈한 듯한 말투와 다르게 드라고니아는 투란이란 사냥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말투와 말이 너무 거리가 있는 탓에 투란은 잠깐 그 괴리감을 어쩌지 못해 뭔 말을 들었나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어, 뭐!’
―찾았다고, 점박이 흰 고양이…… 갓난쟁이 새끼처럼 보일 지경이다만 틀림없이 샤벨투스의 자취를 품고 있다. 음, 성벽 너머의 아웃포스트 쪽이다. 작은 해자 거리 같은 풍경 속에서 용케 햇살 내리쬐는 곳을 찾아 늘어져 있군.
‘아, 그래! 그 정도까지 작다면 왕족일 수밖에 없겠네. 혹시 프로브의 마력을 감지하거나 주시받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하지는 않았어! 왕족 샤벨투스는 거의 예지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이 좋다고도 써 있었다고.’
―도망치거나 피할 낌새가 없으니, 프로브의 관측을 전혀 모른다고 해야겠지. 알면서 저런 여유라면…… 저놈이 드라코눔의 마법을 무시하는 중이거나, 보지도 못한 투란 너를 겁낼 이유를 전혀 모르는 탓이겠지. 그래서 지금 바로 쫓을 거냐! 이제 겨우 해 뜨고 아침 끼니를 챙길까 말까 하는데! 시알라랑 키유나가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다만…….
‘어! 아, 벌써 쉼터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구나. 흠…… 그럼, 뭐…… 아침 먹기 전에 다녀오면 되잖아!’
―너무 얕보는 것 같다만! 왕족은…… 귀족 계층만 해도 강한 놈은 상급 몬스터로 위험도가 꽤 높이 지정되어 있다 했잖아. 왕족은 그런 귀족 계층보다 훨씬 위험하니, 명백하게 사냥 난도가 최상급에 가까울 테고. 정말 당장 뛰어나갈 참이냐!
드라고니아가 떠드는 사이, 투란은 이미 가볍고도 튼튼한 무장을 갖추며 튀어 나갈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방, 자신만의 방이란 점을 이용해서 마도구를 거침없이 사용해서 빠르게 장비를 갖춘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투란은 호쾌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답하듯 묻는다.
‘어디야!’
―표시해 주마.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시각 위로 프로브로부터 얻어 낸 풍경을 비춰 줬다.
그것을 눈 한구석으로 보면서 바로 투란은 방을 나섰다.
옛날과 달라진 바가 없는 통로, 그 한구석의 부엌이 활짝 열린 듯이 투란에게 보였고 부엌 안에서 바쁘게 요리를 만들고 있는 시알라와 키유나가 거의 동시에 투란을 돌아봤다.
“아, 잠깐 산보 좀 하려고. 금방 돌아올 거야. 늦다 싶으면 메시지로 불러 줘.”
살짝 가늘어진 둘의 눈길에 투란이 재빨리 말했다.
키유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요리 만들기로 돌아서는 듯했지만, 시알라는 한층 더 눈을 가늘게 흘기면서 투란의 차림새부터 훑고 말한다.
“이상한 일에 끼어들지 말고, 멀리 가지도 마. 알드바인 주변에서 몬스터든 짐승이든 보인다고 잡으려고도 하지 마! 아직 새로운 분위기가 어떤지도 모르잖아. 알았지! 일단 며칠 더 쉬면서 분위기부터 익혀. 단번에 뒈질 듯한 사람이 보이더라도 그냥 사람만 빼 오는 정도만 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았어.”
뭐라 입을 벙긋하려다가 움츠린 낌새로 투란이 대답했다.
그런 투란의 눈에 키유나가 긴 손잡이가 달린 솥을 흔들면서 살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쩐지 시알라가 저리 말할 줄 알고서 키유나는 입을 다문 듯한 낌새였다. 뭔가 묘했지만 투란은 한숨처럼 다시 두어 마디 덧붙이기로 했다.
“말썽 피우지도 않을 거야. 말썽에 끼어들지도 않아. 그냥 주변 구경하는 나들이야, 금방 돌아올 거야.”
말을 하면서 투란은 빠르게 부엌 언저리를 지나쳤고, 재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금빛매의 간판 아래에 서자마자, 밖으로 내디디면서 슬쩍 안도하는 숨을 토해 내자마자 말한다.
―거짓말쟁이 노릇이라…… 이대로 성벽을 넘으면 훤히 잘 보일 텐데, 어떤 거짓말로 성벽의 탐지 마법을 피하고, 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거냐!
‘응! 으음…….’
투란은 알드바인의 성벽이 장중하게 뻗은 광경을 보며, 그 성벽 위로 이전과 다르게 꼬박꼬박 잘 돌고 있는 경비병 같은 헌터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대답해야 했다.
‘에어로! 아니면…… 드라코눔의 은신 마법! 뭐든 알려 줘 봐. 잘 따라 해 주지!’
―뻔뻔한 놈.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투란에게 바람의 정령수 에어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드라코눔의 은신 마법을, 거기에 덧붙일 수 있는 황금매의 마법 중에 한 가지를 바로 전해 줬다.
머뭇거림 없이 투란은 아침 햇살을 확인하며 슬그머니 알드바인의 성벽을 몰래 넘어갔는데…… 이 아침에는 돌아오지 못했다.
투란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에야 다시 금빛매의 쉼터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