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8)
달그락, 사각.
시알라와 키유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이.
투란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밝게 손을 들며 외친 것은 그런 모습을 슬그머니 확인한 다음이었다.
“우와, 오늘 아침에는 무슨 요리야!”
마치 어제도 오늘처럼 물었다는 듯이 태연한 목소리였다.
그런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가 속삭이고 있었다.
―너무 바보스럽구먼! 설마 하루를 훌렁 넘기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중이냐! 아, 칼 날아오네.
시알라가 부엌칼을 내던지며 격하게 반응해 주고 있었다.
“미쳤냐! 하루 동안 어딜 갔던 건지 설명부터 해야잖아!”
“우앗! 맞을 뻔했잖아!”
이마에 적중하려는 부엌칼 자루를 재빨리 낚아채면서 투란이 놀란 시늉을 했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듯 시알라도 ‘어라!’ 하면서 잠깐 투란을 보다가 방긋 웃고 말한다.
“아, 멜란드 때문에 버릇이 돼 버렸네!”
투란이 진심으로 어이없어 시알라를 맹하니 바라보는데, 키유나가 그릇을 옮기고 바쁜 채로 덧붙여 말한다.
“시알라, 전부 멜란드에게 덮어씌우면 나중에 멜란드가 듣고 굉장히 억울할 거잖아요. 투란, 반쯤은 멜란드 때문이지만 반쯤은 여기 드나드는 손님들이 꽤 고약하고 거친 분들이 많아서 그래요.”
“어…… 그래, 그렇구나.”
담담하고 친절한 설명이었기에 투란은 한층 더 어정쩡하니 납득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을 향해 시알라가 조금 더 윽박지르고 꾸짖는 태도로 또박또박 말한다.
“투란, 하루 이틀 말없이 어디 갔다 온다고 네 걱정을 하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은 너만 보고 먼 곳에서 험한 꼴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손님이 있잖아, 손님! 그 손님을 돌보는 일은 당장 너 말고 다른 사람이 못 하고! 최소한 그 손님에게는 뭐라 말을 해 둬야지! 지금 자기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처지인데…….”
“라카샤! 무슨 일 있었어! 난 아무것도 못 느꼈…….”
“무슨 일이 생기게 냅뒀겠냐! 그런 문제가 아니고, 낯선 곳에서 가냘프고 어린 소녀가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꼴이란 말이야! 아오, 이 감성 모자란 쇳덩이 녀석들은 왜 이리 한결같냐고!”
자신의 말에 툭 끼어드는 투란의 말을 팍 자르면서 시알라가 눈꼬리까지 치켜뜨고 으르렁거렸다.
적잖게 투란이 당황하는데, 드라고니아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속삭인다.
―이거, 완전히 멜란드가 욕먹는 상황인데! 벌까지 주려 할지도 모르겠어!
키득거리는 낌새가 듬뿍 담긴 말이었지만 그 경고 아닌 경고에 투란은 재빨리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알았어, 라카샤랑 얘기 좀 해 볼게. 아, 시알라 이 녀석 좀 맡길게, 지금 완전히 젖먹이 새끼인데…….”
말과 함께 투란은 주섬주섬 윗주머니 안쪽에서 살짝 볼록거리는 채로 담겨 있던 털 뭉치처럼 보이는 것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시알라가 보니 점박이 고양이인데, 겨우 손바닥 위를 채울 정도로 조그맣고 눈도 제대로 못 뜬 새끼였다.
“이건 뭔……!”
의아해하는 시알라를 향해 쓰윽 머리를 기울이면서 투란이 속삭인다.
“이래 봬도 이거 몬스터야. 지금은 짐승이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라카샤부터 볼게.”
“얘한테 뭘 먹이자고!”
시알라는 몬스터란 한마디에 눈살을 찌푸리는 채로 ‘피라도 핥게 해야 하냐!’란 웅얼거림을 섞은 채로 되묻고 있었다.
헛웃음과 함께 투란이 바로 대답한다.
“아니, 그냥 젖먹이에게 적당히 먹일 수 있는 거면 돼. 없으면 그냥 접시에 물만 담아 줘도 될 거야.”
“흐음.”
시알라가 애매하다는 듯이 갸웃거릴 때, 옆에서 기웃하던 키유나가 냉큼 큰 접시를 새끼 고양이 몸 곁에 내려놓고 하얀 액체를 부었다. 그 찰랑거리는 접시 위를 보며 투란이 ‘이건!’이라고 묻는 시늉을 하자 키유나를 대신하듯 시알라가 대답한다.
“양유(羊乳), 요새 알드바인에서 수확이 많은 양젖이야. 산양도 키우고, 면양도 키우고 양이 넘쳐나거든. 뭐, 양보다는 소가 더 좋다고 소젖 찾는 녀석들도 많기는 하지만…… 어라! 잘 먹네!”
계단대 위에 올려졌을 때는 눈도 못 뜬 채인 듯했던 새끼 고양이가 털 뭉치처럼 꾸물거리면서 자신을 위해 준비된 접시에 머리를 걸치고 온 힘을 다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넉넉하게 채워진 양젖이었기에 그런 접시의 가장자리에 닿고 있었는데, 거기에 어떻게든 닿으려고 애쓰면서 몇 방울씩 핥는 모습은 굉장히 애처롭고 가련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났다.
투란이 그 꼴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냉큼 손가락 끝으로 밀어 올려 접시 안으로 빠뜨려 버렸다. 작아서 털 뭉치를 굴려 넣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황은 술집에 기웃거리는 주정뱅이 엉덩이를 걷어차서 굴려 넣는 듯한 낌새가 한가득했다.
폴랑, 찰랑…… 양젖 위를 뒹굴면서 허옇게 변해 버린 새끼 고양이는 눈가를 문지르고 앞발을 혀로 핥는데, 그 모습이 엉거주춤하니 주저앉은 인형처럼 보였다.
키유나와 시알라가 어이없어하다가 그런 새끼 고양이의 어리고 무구(無垢)한 태도에 웃고 말았다. 투란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다른 방향에서였고,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속삭여 묻는 중이었다.
‘이거 정말 고양이 새끼 수준이 돼 버렸나!’
―이빨과 발톱을 모조리 잃은 샤벨투스의 왕족은 그 외형과 일치하는 행태를 보이냐고 하잖았나. 도감의 정보 그대로구먼. 저 상태로 서서히 몬스터의 정수, 코어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왕족이 지닌 권능이라 했으니까…… 뭐, 당분간 냅둬도 되잖아! 이미 거미줄하고 목이랑 발목 네 쪽, 허리까지 감아 뒀으니 네가 원할 때는 언제라도 토막 낼 수도 있고.
‘음, 그럼 일단 냅둬 보자.’
투란은 결정을 내린 척하면서 슬그머니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어찌 보면 새끼 고양이가 제법 귀엽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몸을 빠뜨린 접시에 앉은 새끼 고양이…… 영락(零落)한 몰골인 샤벨투스의 왕족은 파르르 떨며 투란을 휙 돌아보는 채로 털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느껴 오한(惡寒)이 돋는 듯!
“라카샤는!”
슬그머니 투란이 말을 돌렸다.
시알라가 가볍게 부엌 안의 기둥 같은 나선계단을 고갯짓하며 대답한다.
“아래층, 방 안에서 못 나오고 있어. 낯설고 무서우니까.”
“음, 무서운 일은 없게 해 놨는데…….”
“낯, 설, 고, 처, 음, 온, 도, 시, 이, 니, 까!”
으르렁거리는 듯한 시알라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투란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조금 미묘한 한숨을 섞어 웅얼거리면서 투란은 계산대를 돌아 부엌으로, 떠난 사이에 조금 모양이 바뀐 나선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엌 아래층의 아담하고 정결한 방은 식탁을 중심으로 두고 한구석으로 문과 통로가 걸친 듯한 공간을 열어 둔 채였다.
그 문턱을 넘고 통로에 한 걸음 발 디디니 바로 새로운 문이 살짝 열린 채로 투란을 맞이했다. 그 열린 틈새로 투란은 자신이 남겨 놓은 몬스터의 파편을 느낄 수 있었고, 거칠게 흐느끼는 듯한 라카샤의 숨결도 들을 수 있었다.
“라카샤!”
가만히 들어간다는 신호처럼 속삭이고 투란은 문을 살짝 밀며 문턱을 넘었다.
침상 위에서 웅크린 채로 무릎을 두 팔로 감싼 자세로 얼굴까지 파묻고 있던 라카샤가 고개를 들었다. 시알라의 말처럼 무서워했던 듯, 눈가에 눈물 자국이 또렷했다.
‘아니, 왜!’
왠지 억울한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는 채로 살짝 침상에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묻는다.
“시알라가 험한 일이라도 시켰어요! 아직 몸이 불편한데 하기 어려운 일을 해 보라고 막 윽박지르고 그랬어요! 시알라가 가끔 그러는데…….”
“투란! 안 떠났어요!”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속삭임이 라카샤에게서 돌아왔다.
어리둥절해진 투란은 갸웃하며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떠나요! 아니, 이제 막…… 아니, 어제 막 돌아왔는데! 당장 어디 갈 일도 없는데 왜…….”
―바보냐! 너 안 보여서 당황했다는 말이잖아. 쯧!
드라고니아가 말투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주면서 투란을 타박했다.
‘나! 시알라도 있고 키유나도 있는데!’
왠지 투덜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라카샤의 표정이 장난으로 여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을 보고 있었기에 더욱 차분하게 말을 이어야 했다.
“라카샤, 이제 위험하지 않아요. 겁내지 않아도 돼요.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저주가 라카샤를 다시 아프게 하지 못해요.”
―야, 저주의 힘이 방 안을 맴돌고 있는데 그런 말이 통하겠냐!
드라고니아가 다시 핀잔했고 이는 투란을 잠깐 멈칫하게 했다.
듣고 보니 라카샤가 숨죽인 채로 울고 있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느라 투란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분위기가 방 안을 음울하게 맴돌고 있었다. 단순히 우는 사람이 방 안에 있으니 분위기가 우울해졌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거뭇한 안개의 자취처럼 구석구석의 틈새를 노리면서 침상의 담요를 적셔 가듯이 라카샤를 향해 몰려드는 기괴한 힘…… 저주가 곁눈질에 그 색조가 보일 정도로 부산스럽잖은가!
‘뭐야, 왜 깔끔하게 먹어 치우질 않고……!’
투란은 자신이 라카샤에게 심어 놓은 몬스터의 파편에 집중했다.
파편은 느릿하게 라카샤에게 닿는 저주를 들이쉬어 없애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방 안 곳곳에 그 힘을 흘려 내며 맴도는 저주를 먹어 치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주가 서서히 몰려와 라카샤의 주변을 감싸고 맴돌며 침투하기 위해 쌓이는 중이었다. 파편 속의 헬비스트로서는 아주 느긋한 정찬을 즐기는 셈이라서 굳이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셈이고.
“라카샤, 날 따라 해 봐요.”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높인 탓인가, 흠칫 놀란 채로 라카샤가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두 팔을 한껏 벌렸다가 오므리는 시늉을 하면서 가볍게 손뼉을 쳤다.
손뼉 소리는 여리게 방 안을 채우며 퍼져 나갔다.
그게 무슨 짓인가 어리둥절하던 라카샤는 문득 자신의 손발에서 잘게 일어난 떨림이 투란의 손뼉 소리에 대한 반응인 것을 알아차렸다.
방 안 곳곳에 퍼져 있던 음울한 분위기가 가벼워졌고 라카샤의 주변에 쌓이던 저주가 손뼉 소리의 파동에 휩쓸려 나간 것처럼 옅어졌다.
“어서요, 라카샤.”
투란이 재촉하는 말에 라카샤가 엉거주춤하다가 무릎을 감쌌던 두 손을 펼쳤다가 살짝 마주치며 손뼉 소리를 냈다.
착, 그저 손이 달라붙는 듯한 옅은 소리만 울렸다.
하지만 그 순간 라카샤는 자신의 목덜미 언저리에서 무엇인가가 후욱 하고 세게 숨을 들이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숨결에 휩쓸려 거뭇한 자취가 주변에서 휭하니 사라진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란!”
라카샤가 눈을 깜박이면서 소리 냈다, 지금 간신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이름뿐이라는 것처럼.
투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면서 짐짓 차분하게 말한다.
“라카샤, 이제 저주를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저주 말고 칼날이나 화살도 무서워할 필요도 없어요!”
“……!”
라카샤는 이해하지 못해서 투란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드라고니아도 의아해서 묻는다.
―칼날! 화살! 그건 대체 뭔 이야기냐!
빙긋, 라카샤를 향해 안심하란 듯이 웃음부터 짓는 투란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으쓱대는 대꾸를 한다.
‘내가 부여한 몬스터의 파편이 고작 헬비스트 하나만 형성하겠냐! 자, 보라고.’
동시에 투란은 라카샤에게 두 손을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잿빛 바위 그랑츄의 살갗은 칼날이나 화살 따위는 가볍게 튕겨 내거든요. 아, 걱정 말아요. 울퉁불퉁 굵어지는 꼴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라카샤는 멍하니 투란이 까닥대는 손짓에 따라 두 손을 내밀며 듣다가 화들짝 놀라야 했다. 자신이 내미는 두 손의 살결이 잿빛으로, 투란의 말처럼 잿빛 바위를 두들기고 파내서 조각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놀란 라카샤가 손을 오므린 순간, 바위 조각과 다르게 손은 멀쩡하니 쥐어질 뿐이었다. 조금 뽀드득거리는 세찬 소리를 내서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상태란 것도 분명히 드러냈고!
―이 미친놈이……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곧 투란이 한 짓을 파악하면서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라카샤를 향해 다시 넉넉한 웃음을 보태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라카샤, 내가 보이지 않아도 같은 곳에 있지 않아도 저주를 먹어 치우는 몬스터 파편은 라카샤와 함께해요. 그리고 그 파편은 내가 삼킨 몬스터의 일부를 형성할 수도 있어요. 잿빛 바위 그랑츄, 그 살갗처럼. 그러니까 라카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할 것 없어요. 저주이든 칼날이든 화살이든…….”
“투란…….”
라카샤가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리는 순간.
“투우우우라아아안!”
퍼억! 꽤엑, 우당탕.
두 발 차기 자세로 날아든 홀시딘이 투란의 옆구리부터 걷어차며 라카샤의 시야 밖으로 튕겨 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라카샤는 아무 생각도 못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