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59)
“이 미친놈아! 대체 하루 동안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나한테 불만 있어! 알드바인에 불만 있어! 도대체 뭣 때문에 아우터 타운을 순례하면서 깨부수고 쪼개고 구멍 내고 망가뜨린 건데! 너 없는 사이에 생긴 아웃포스트 마을이라 마음에 안 들었냐! 그래서 어디는 벽을 뚫고 어디는 벽을 뭉개고 어디는 집 한 채를, 어디는 서너 채를 못 쓰게 펑펑 뚫고 다녔냐! 그런 짓을 해 놓고 대뜸 나한테 얼버무려 달라고!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의논을 하란 말 몰라! 왜 일을 저질러 놓고 나한테 다 덤터기를 씌우냔 말이야! 내가 한가해 보였어! 나, 지금 무지하게 바빠! 오호라, 설마 돌아오자마자 너한테 시킨 일이 불만이었던 거냐! 그랬어! 그래서 나도 미안하니까 며칠 푹 쉬라고 했잖아! 얌전히 이 그루터기 쉼터에 들러붙어서 이불 담요 뒤집어쓰고 뒹굴고 있는 짓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아앙! 왜 말을 못 해! 얼른 뭐라고 말을 해 봐! 내가 너 때문에에에!”
“으아악! 말 좀 하게 입 좀 다물라고요! 나도 말 좀 하자고요오!”
둥실거리며 좌충우돌하는 몸짓으로 포효하는 홀시딘의 두 다리를 붙잡으면서 투란이 꽤엑 소리를 질렀다. 잠깐 튕겨 나갔다가 엉거주춤 일어나는 사이에 쏟아져 나온 말을 어리벙벙하니 듣던 투란이 반항하는 셈이었다.
다리를 잡힌 홀시딘이 푸웃 하고 겨우 막혔던 숨을 다시 틔우는 시늉을 했다. 말을 한꺼번에 막 쏟아 내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않았던 것을 겨우 몸으로 느낀 것처럼…… 그 꼴에 투란이 어이없어하면서 손을 풀어 다시 홀시딘이 둥실거리며 바로 서게 놔줬다.
그리고 그렇게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지긋이 서로의 할 말을 겨냥하는 듯한 묘한 눈빛을 띨 때, 하아 하고 살짝 놀란 숨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홀시딘이 ‘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눈길을 돌렸고 라카샤를 봤다.
투란은 ‘어!’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는 시늉으로 홀시딘을 핀잔한다.
“상아탑의 마스터란 부분이 때와 장소를 좀 가려서 소리를 치셔야죠.”
“닥쳐! 그딴 소리는……!”
“샤벨투스의 왕족, 상아탑의 대도감에는 최상위의 샤벨투스라고 적혀 있는 녀석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몰랐어요!”
“자세히 이야기해 봐.”
으르렁거리려다가 재빨리 끊고 들어오는 투란의 말에 홀시딘이 멈칫하면서 숨을 고른 다음에 침착한 태도로 돌아서며 말했다.
싱긋 웃음과 함께 투란이 슬쩍 턱을 치켜올리더니 꽤 도도한 말투를 꾸며 목청까지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척했다.
“잠깐만요, 라카샤의 일부터 정리해야죠! 갑자기 옆차기 맞고 뒹구는 바람에 제대로 말을 못 했다고요!”
홀시딘이 한쪽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꾸미려는 찰나, 그 어깨 너머에서 시알라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래,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어. 잿빛 바위가 어쩌고 했지, 투란! 라카샤가 몬스터 로드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게 대체 뭔 이야기였어!”
조금 사나운 말투가 투란을 찔끔하게 했고 라카샤를 흠칫하게 했다.
그리고 홀시딘 또한 ‘어라!’ 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라카샤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투란은 재빨리 헛기침을 하면서 하던 이야기를 잇는다.
“그러니까! 어제도…… 어흠! 아니, 그저께도 말했잖아. 라카샤에게 몬스터의 파편을 심…… 붙여 놨다고 말이야. 그게 저주를 야금야금 잡아먹잖아! 그런데 기왕 붙여 놓은 김에 적당히 다른 몬스터의 형체도 꾸며서 라카샤를 보호할 수도 있잖겠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몬스터 로드도 아닌, 그냥 저주받고 있을 뿐인 평범한 소녀에게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형태 변이…… 변신의 능력을 부여했다는 말이냐, 투란!”
가만히 듣다가 못 참겠다는 듯, 홀시딘이 나직하면서도 무겁고 사납게 묻고 있었다. 그 낯빛이 드러내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서 라카샤가 살짝 파리한 표정을 지을 지경이었고 시알라는 골 아프다는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아예 문을 닫아걸고 보태 묻고 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해! 일단 파편을 떼어 놓을 수 있는 비전이라고 쳐도, 변신에는 기본적으로 마력이 소모되잖아. 몬스터 로드의 마력은 그 생명을 원천으로 하는 것인데. 설마 라카샤의 생명을 소모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무슨 사악한 로그메이지 같은 말을 해! 라카샤에게는 충분히 양분이 되어 줄 저주가 있잖아!”
투란이 시알라에게, 홀시딘에게 자신을 못되게 여기지 말라는 항의를 하듯이 외쳤다.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홀시딘이나 시알라는 ‘그런가.’ ‘그렇지!’라는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의문은 거기서 납득되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먼저 홀시딘이 묻는다.
“저주를 양분 삼는다는 말이냐! 그걸로 저 소녀의 몸에 깃든 너의 몬스터 파편이 새로운 형태로 변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바로 시알라가 물음을 덧붙이기도 한다.
“저주를 먹어 치워서 마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거야! 나눠 준 파편이 그런 몬스터였어!”
대답보다 물음이 연잇는 상황에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라카샤를 돌아보며 상냥한 표정을 꾸며 말한다.
“어제…… 아니, 그저께! 많이 먹고 푹 쉬었어요! 라카샤에게 남겨 놓은 몬스터의 파편은 일단 라카샤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완전히 힘을 써요. 마력은 저주를 삼키고 적당히 축적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라카샤의 몸이 확실하게 버텨 줘야 하니까. 아, 오해하지 말아요! 라카샤의 몸에서 생명력을 뺏거나 마력을 쪽쪽 뽑아내거나 해서 해를 끼친다는 말이 절대, 결코 아니니까! 그 반대예요, 반대!”
라카샤는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한마디 나올 때마다 표정이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입술을 달싹달싹하며 뭔 말을 쏘아 낼 듯한 홀시딘과 시알라를 향해 투란은 ‘오해 말라고’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둘에게 질렸다는 시늉을 하는 채로 라카샤에게 다시 부드럽게 말한다.
“라카샤, 저주가 지독하고 강하게 느껴져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죠!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저주가 강한 만큼, 지독한 만큼 이제 라카샤도 강해지니까 오히려 기뻐해도 돼요. 그러니까…… 음, 잠깐 손 좀 내 봐요.”
불쑥 손을 내미는 투란에게 라카샤가 어리둥절하다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라카샤가 놀랄 틈도 없이, 시알라나 홀시딘은 ‘야!’ ‘잠깐!’을 외치며 당황하는 사이에 투란이 허리춤에서 뽑아낸 단검의 끝이 라카샤의 손목과 팔뚝을 그었다. 멍하니 손을 내밀었다가 갑자기 맨살을 그어 대는 칼끝을 본 라카샤가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상황이었다.
“어!”
조금 놀란 소리만 그 입술 사이에서 툭 불거져 나올 뿐이었다.
칼날이 긁고 간 손바닥 쪽은 잿빛이 투박하게 떠오르며 상처가 없었다.
살색이 완연한 팔뚝, 손목 언저리는 붉은 핏방울이 샘솟는 금이 쫙쫙 그어졌지만, 그 핏방울은 핏줄기가 되어 터져 나오는 대신에 볼록하며 잠깐 맺히다가 갈라진 살결의 틈을 조이며 가라앉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려 고개를 내밀었다가 도로 들어가면서 문도 닫아건다는 듯이!
시알라와 홀시딘이 그 광경이 미묘한 신음을 흘리는 사이, 투란이 뽑았던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넣는 시늉을 하면서 말한다.
“손은 잿빛 바위의 살갗, 팔에는 언더섀도우에 발 딛자마자 얻었던 뱀파이어의 피가 맴돌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조금 후끈한 것이 핏줄 속을 맴돌고 있는 것, 느껴지지요! 그건 버닝 베인이라고 하는 건데, 웬만큼 이상한 독은 그냥 몸에서 없애 버리는 임프의 혈통이 새겨졌다 여기면 돼요. 맞아요, 라카샤. 이건 전부 내가 얻은 몬스터의 정수. 그게 라카샤에게 나눠 준 파편을 통해서, 라카샤를 향해 몰려온 저주를 먹어 치우고 쌓은 마력으로 형성된 능력인 거예요. 지금은 당장 내가 그 형상을 조절해 준 것이지만, 앞으로는 라카샤의 손짓과 몸짓에 따라서 형성되도록 맞춰 줄 거예요. 그러면 언제라도 몬스터 로드처럼, 몬스터 로드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그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후훗,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몬스터 로드로 오해받지 않게 해 줄 테니까요! 아무도 라카샤를 이상하게 볼 일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여기 상아탑의 대마법사님이 있으니까!”
장황한 말끝에 투란이 새로 소개한다는 듯한 손짓으로 홀시딘을 가리켰다.
순간.
“야!”
“아, 그렇구나.”
홀시딘은 화들짝 놀랐고, 시알라는 납득했다.
라카샤가 멍하니 자신의 손을, 팔뚝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홀시딘을 바라봤다. 정말 투란의 말처럼 해 줄 것이냐고 묻는 듯한, 그래도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놈 새끼…… 하여간 내 일을 늘리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는구나!”
홀시딘이 라카샤의 눈길에 길게 탄식하며 나오려는 욕을 억지로 줄인 한마디만 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며 중얼거렸다.
시알라가 그런 홀시딘을 보며 키득키득하더니, 갑자기 투란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말한다.
“금전은, 투란이 내는 거지! 당장 라카샤에게는 금화도 없지만, 투란에게는 금화 주머니가 있잖아.”
“금화 주머니!”
“켈 데릭이 갖다 줬어. 갖고 온 김에 알드바인에 아예 가게를 차리고 눌러앉기도 했는데…… 방 안 서랍 아직 안 봤구나! 아무튼 투란은 지금 금화든 금전이든 여유 있는 처지니까.”
“어, 그래…… 어흠! 홀시딘, 그러니까 해 줄 거죠!”
조금 전과 다르게 슬그머니 처진 표정으로 투란이 상아탑의 대마법사를 보며, 조금 묘한 처량함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보며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라는 듯이 눈을 치켜떴지만, 투란의 뇌리에 꽂히는 드라고니아의 빈정거림은 그 까닭을 짚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금전이 아깝더냐! 너, 지금 엄청난 몬스터 로드의 비전을 자랑질했다고! 아무리 홀시딘이나 시알라가 상대라 해도, 저 라카샤까지 알게 돼 버렸잖아! 이 중에서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라카샤가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너무 관심 두고 엉뚱한 속셈으로 다가올 녀석들도 있을 텐데! 전혀 걱정하지 않냐! 그냥 마냥 금전만, 금화만 아까워! 야, 이 미친놈아!
투란은 이 뇌리를 울리는 말을 들은 척도 못 했다.
홀시딘이 무겁게 입을 열며 하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투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밀에는 제한이 있어. 안 그래도 그 때문에 키유나의 경우에는 케이라를 끌어들여야 했다. 혼자 유지할 규모를 벗어났으니까. 거기에 이 소녀까지 추가한다면…… 케이라도 서브마스터의 한계를 벗어나야 해. 나와 함께한다 해도…… 추가되는 금괴의 수가 네 예상보다 훨씬 클 거야. 그래도 할 테냐!”
“커, 커요! 아, 물론 그래도 하긴 할 테지만. 금전이 아니라 금괴가 소모된단 말 진짜예요!”
움찔움찔, 당황해하면서도 투란이 흘깃거리며 시알라와 라카샤의 표정을 살피는 채로 묻고 있었다.
이런 투란의 몰골에 시알라가 눈을 가늘게 떴고, 홀시딘은 살짝 기운 난다는 듯한 웃음을 입꼬리에 달고 대답한다.
“그럼! 금, 괴, 가, 소모될 수밖에 없지! 너랑 엮인 부분도 있고, 저주를 목격한 녀석들과 관련된 부분은 아주 범위가 넓기도 하고, 그 와중에 저주를 극복하고 기이한 능력을 갖췄다니, 한두 가지 덮는 정도로는 안 돼. 아예 이곳에 눌러살아도 될 정도로 정교한 신분, 아주 새로운 사람으로 꾸며야 하는걸!”
“아무튼 된다는 말이네요! 알았어요, 금괴…… 쓰도록 하자고요. 음, 그래서 말인데요…… 마스터 홀시딘, 샤벨투스 발톱이랑 이빨, 얼마나 비싸게 쳐줘요!”
추욱 처진 시늉을 하면서, 그저 포기했다는 듯한 말투로 투란이 덧붙인 물음은 홀시딘을 흠칫하게 했다. 더불어 시알라가 재빨리 묻게도 했다.
“그래, 그거! 그건 또 무슨 이야기였어! 그리고 아까 그 고양이는 또 뭐야! 키유나가 보통 고양이 새끼일 리가 없다고 하던데, 진짜 말한 그대로 몬스터인 거야, 투란!”
투란이 홀시딘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확인하면서 조금 전의 처진 모습을 휙 내던지듯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한다.
“그럼! 아까 말한 그대로지! 아, 이건 좀 나가서 탁자 놓고 이야기하자! 라카샤, 함께 들어 볼래요! 힘내서 일어나 봐요. 이야기 끝나고 맛있는 아침을 먹자고요! 홀시딘, 아직 아침 식사 전이죠! 샤벨투스 이야기 좀 하면서 같이 식사해요!”
“너…… 그래, 일단 나가자. 아가씨, 라카샤 아가씨도 나와요. 이놈이랑 엮이면 이렇게 방에 혼자 있는 걸로는 기분만 나빠질 수 있으니까. 저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말하는데 지금 아가씨 주변에는 사람을 해칠 만한 저주의 낌새는 전혀 남겨져 있지 않으니까. 그냥 아가씨 표정만큼 침울한 분위기만 가득할 뿐이니까, 이제는 얼굴 좀 펴도 되니까 웃도록 노력해 봐요.”
홀시딘이 손짓하면서, 그 손짓에 마력을 담아 라카샤를 둥실거리며 침상에서 띄워 옆으로 내려 주면서 하는 말에는 기묘한 박력이 실려 있었다. 멍하던 라카샤가 놀란 표정과 함께 내려서면서 투란을 보고 홀시딘을 보며 이대로 함께해도 되느냐고 말없이 묻는 태도가 될 정도로, 그래야 하듯 하다고 느낄 정도의 박력이었다.
시알라는 그런 홀시딘의 인도를 당연하다는 듯이 넘겼지만 투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라 바라봤다. 이제까지 열심히 부드럽고 상냥하게 이야기해도 납득 못 해 멍해 보였던 라카샤가 바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몸을 괴물로 슬쩍슬쩍 바꾸며 구해 주는 몬스터 로드보다는 역시 허공에 둥둥 뜨게 해 주는 마법사의 모습이 설득력 있기는 하지.
드라고니아가 세간의 상식을 읊듯이 중얼거렸다.
‘에잇, 시끄러워!’
투란으로서는 조금 기분이 나쁜 상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