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0)
“일단, 이야기는 몰래 듣는 쪽으로 하자.”
홀시딘이 슬쩍 부엌으로 올라가는 나선계단을, 위층으로 뚫린 구멍을 흘깃하며 손짓하는 채로 말했다. 손짓과 함께 마력이 흘렀고, 은빛의 안개가 사방을 채우고 천장까지 채색하듯이 퍼졌다. 탁자를 중심으로 흡사 은색의 안개 벽으로 위아래 사방이 모두 막힌 상자가 만들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이 신기해하는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린다.
―그냥 차단막이다. 로열클래스의 경계를 연구해서 나름대로 응용해서 쓰게 된 모양이군. 대마법사란 이름에 걸맞은 수준에 올라섰다는 자랑질 같기도 하다만…….
‘뭘 차단하는데!’
―외부와 이 자리를 차단해서 엿듣고 엿보지 못하게 하는 거지. 시도하면 바로 역추적도 가능하니까, 이래저래 비밀을 떠들기에는 좋은 영역을 꾸민 셈이지.
‘흐음.’
슬그머니 눈알을 굴리며 납득하는 투란이었다.
홀시딘이 그 호기심 넘치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부숴 볼 생각 말고, 앉아서 이야기해. 시알라, 간단한 다과라도 내줄 수 없나! 길지 짧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지쳐서…….”
시알라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라카샤에게 손짓부터 했다.
“앉아요, 라카샤. 아직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앉아 봐요.”
말을 하는 채로 시알라는 은색 안개로 덮인 벽감을 열었고, 몇 가지 간식과 큰 물병, 잔을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냉큼 한구석에 앉은 투란이 무슨 간식인가를 초롱초롱하니 바라보고, 라카샤는 주춤거리면서도 마법사와 몬스터 로드, 여관 주인의 권유하는 분위기에 이끌린 듯이 얌전히 한구석에 앉았다.
홀시딘이 두리번거림을 멈추지 않는 투란에게 다시 재촉한다.
“샤벨투스, 어제 하루 종일 아우터 타운을 돌면서 저지른 일이 그 때문이었다고 하는 거지! 이야기해 봐. 대체 어떤 샤벨투스였기에 그 소란을 떨었던 거냐!”
“음, 도감에는…… 좀 희한하고 신기한 도감이 있어요. 상아탑의 대도감이랑 많이 겹쳐지기는 하는데, 가끔 다른 부분이 있죠. 이를테면 샤발투스의 상위종, 최상위 샤벨투스라고 상아탑의 대도감에 적힌 것을 그 신기한 도감에서는 샤벨투스의 왕족이라고 불러요. 알드바인에서 성벽 밖의 이어진 여러 마을까지, 자유롭게 싸돌아다니던 녀석이 바로 그런 왕족이었어요. 어, 그러니까…….”
“데릭 상점의 도감이군. 알아, 우리가 편찬하는 대도감의 내용도 거기 몽땅 실려 들어가지. 그래도 분류는 해 놓은 모양이네! 흠, 그래서 그 최상위 샤벨투스를 그 소란을 떨고 추격했는데, 놓쳤냐! 아니면 시체는 다른 곳에 숨겨 뒀어!”
투란의 두서없이 길어지려는 말을 자르겠다는 듯이 홀시딘이 끊고 물었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한 다음에 고개를 저었다.
“하루나 쫓았는데 놓쳤을 리가요. 시체는 없어요. 사로잡았거든요. 아, 들어올 때 바에 얹어 놓은 녀석 못 봤어요! 양젖 접시 위에 올려놓은…….”
“새끼 고양이! 스쳐서 봤다만…… 설마 그게 샤벨투스라고!”
눈살을 찌푸린 채 대꾸하다가 홀시딘이 두 눈을 부릅떴다.
투란이 빙긋 웃었다.
“그놈, 커졌을 때는 어깨높이만 삼 미터이고 몸길이는 칠팔 미터를…… 꼬리 빼고도 그 정도로 커다란 놈이라고요! 그런 놈이 주먹만큼 오그라든 채로 멋대로 도시와 마을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니까요!”
“잠깐, 투란. 희생자는! 그 샤벨투스가 뭘 사냥하고 있었지!”
“에! 그냥…… 나돌아다니면서 여관이라든가 주점이라든가, 음식점 주변을 맴돌고 있었어요. 아니면 막 식사를 하는 집을 엿보거나…… 어, 딱히 내가 보는 동안에 인간을 사냥하거나 짐승을 잡아먹지는 않았는데요! 실종된 것처럼 사라진 사람들이라도 있었던 거예요!”
“아니, 알드바인 도시 내에도 도시 밖에도, 아우터 타운은 물론이고 이어진 길목에서도 샤벨투스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몬스터나 짐승도 우리 눈에서 벗어난 채로 주변을 얼쩡대지 못했지. 한창 예민해진 시기라서 감시와 경계를 한층 더 심하게 돌리기도 했고. 음, 그러니까 희생자는 없는 셈인데…… 너, 대체 그놈을 어떻게 찾아낸 거냐!”
이것저것 검토하며 말하던 홀시딘이 어딘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투란에게 물었다.
투란은 살짝 움찔했지만 표정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로 당당하게 대답한다.
“감이에요, 몬스터 로드의 독특한 감이었죠!”
“한 대 때려 줄까!”
발끈하려다가 숨을 고르면서 홀시딘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둘이 그러는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는 라카샤가 마법사의 윽박지름에 흠칫 놀라는데, 시알라가 그 손에 따듯한 차가 담긴 잔을 붙여 주면서 말한다.
“뭔 이야기인가 너무 관심 두지 않아도 돼. 마법사랑 몬스터 로드가 만났으니 보통 듣기 힘든 몬스터 이야기가 나온다고 치고, 좀 마시고 먹어. 어제 투란이 없어지는 바람에 놀라서 방 안에만 있었잖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어서 먹어둬.”
낮고 상냥한 말은 라카샤를 납득시켰다.
그래서 라카샤가 가볍게 차를 마시고 간식거리를 입에 담는 사이, 투란과 홀시딘은 좀 더 가까이 붙어 머리를 맞댄 듯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홀시딘이 먼저 울화를 한옆으로 치워 놓고 다시 묻는다.
“왜 죽여서 잡아 오지 않은 거냐! 변신했다고 해도 몬스터를 그냥 살려 두다니, 왜!”
“도감에 적혀 있더라고요. 이빨과 발톱을 모조리 뽑아내면 샤벨투스는 그 외형 그대로의 짐승에 불과하다고. 마지막 이빨을 뽑은 것이 새끼 고양이 몰골이 되었을 때라서 말이죠. 그 꼴로 할딱할딱하는 바람에 죽일 틈을 놓쳤다고나 할까요! 뭐, 그렇게 된 셈이에요. 걱정 마세요. 내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투란은 으쓱대면서 자랑하듯이 떠들고 있었다.
홀시딘은 뭔가 납득하기 힘들다는 듯이 투란을 바라봤다. 그리고 가늘게 뜬 눈길을 흘리면서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던진다.
“도대체 왜 산 채로 이빨이랑 발톱을 뽑은 거냐! 죽인다고 그게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힘을 약하게 하려면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고 해서 하나씩 뽑다 보니까, 몬스터의 정수를 완전히 잃은 짐승만 남아 버렸어요.”
투란의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왔다.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드라고니아의 핀잔은 투란의 말이 여운조차 이루기 전이었다.
하지만 홀시딘을 대하며 말하는 투란은 그런 핀잔을 들었다는 낌새 따위는 전혀 흘리지 않았다. 홀시딘도 딱히 더 뭐라고 캐묻지 않고 이야기를 넘기고 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다 뽑다 보니 새끼 고양이였다! 뭐, 그렇다 치고…… 그래서 상아탑에 전부 팔겠다는 거냐! 왕족이라고까지 불리는 최상위 샤벨투스의 정수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짚어 본다는 듯이 건네는 말이었다.
투란도 그럴 리야 없다는 표정을 짓는 채로 대꾸한다.
“쓸 데가 있어요, 이모저모로. 그러니까…… 이빨이랑 발톱, 하나씩만 고르게 해 드리겠습니다! 금전 열 닢! 샤벨투스 왕족의 이빨과 발톱, 어디 가서 절대로 못 구할 귀한 몬스터의 잔유물이죠! 금전 열 닢이면 엄청나게 싸게 매긴 값이에요! 자, 마스터 홀시딘 골라 보세요!”
듣던 홀시딘은 울컥해서 뭐라 으르렁거리려 했다.
하지만 투란이 말과 함께 탁자 위에, 간식과 찻잔 사이로 좌르르 쏟아 내는 작은 이빨과 발톱이 홀시딘의 입을 다물게 했다. 너무 작아서 앙증맞은 갓난아기의 새로 돋은 이빨과 손톱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형태…….
한구석에 떨어져서 구경하던 시알라조차 갸웃하며 중얼거린다.
“전부 새끼 고양이한테서 뜯어낸 모양이네!”
몇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샤벨투스와 힘겹게 싸우고 하나씩 뽑아낸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갈 곳을 잃은 듯한 전리품이었다.
투란이 귀를 쫑긋하면서 시알라를 향해 씨익 웃고는 홀시딘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본체와 호응해서 오그라든 것뿐이에요. 아시겠죠! 여기에 핏방울이 조금만 섞이면…….”
“닥치고 좀 있어 봐.”
홀시딘은 나직하지만 사납게 말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두 손을 들어 투란이 늘어놓은 이빨과 발톱 위를 간격을 둔 채로 살살 휘젓고 있는 모습이 어찌 봐도 마법사라 할 자태였다.
투란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시알라와 라카샤도 그 진지하고 신중한 마법사의 분위기를 엿보며 숨소리까지 죽이며 지켜봤다.
홀시딘의 검토는 금방 끝났다.
“진짜 엄청난 놈을 잡았구나. 이 정도면…… 절규(絶叫)하는 참쇄(斬碎)를 능가할 수 있겠어! 대단해! 과연 최상위 몬스터의 잔유물이로군!”
“절규하는…… 뭐요!”
칭찬인 줄은 알겠지만 난데없는 한마디였기에 투란이 어리둥절해서 묻고 말았다.
비슷한 이름이라면야, ‘절규하는 마물’이란 것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홀시딘이 감동한 듯한 상황에서 옛날 거미 마물을 떠올릴 까닭은 없어 보이니까.
대답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나왔다.
“옛날 상아탑에서 샤벨투스의 발톱을 가공해서 만들어 낸 무기야. 제련 기술도 그렇지만 소재도 특별했기에 그 이상의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다 했지만…… 이 정도 소재에다가 특별한 장인, 섬세한 마법사가 함께한다면 그 이상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대단해! 아주 깔끔하게 산 채로 뽑아낸 덕분이야, 투란.”
“아, 네…… 그럼, 금전 열 닢!”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이 재빨리 짧게 물었다.
홀시딘은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면서 바로 칭얼거렸다.
“금전 열 닢으로 달랑 하나씩은 너무하잖아! 발톱 둘, 이빨 넷. 발톱은 열여덟 개나 되고 이빨은 서른넷이나 되는구먼! 너의 뒷바라지랑 뒤처리를 도맡아 하는 상아탑의 처지도 좀 가엾게 여겨라! 좀 더 줘!”
“에헤잇! 쓸 곳이 많다니까요! 시알라한테도, 페란드한테도, 제란드한테도, 멜란드한테도 나눠 줘야 하고 나도 이래저래 써야 하고, 좀 비싸게 팔 생각이라고요! 마스터 홀시딘이니까 특별하게 생각해서 싸게 주는 거라니까요!”
투란은 단호한 태도를 꾸미면서 고개를 팍팍 젓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시알라가 ‘엥!’ 하는 소리를 냈지만, 홀시딘과 투란은 주변을 아랑곳 않고 잠시 투덜투덜, 칭얼칭얼하는 흥정을 이어 나갔다. 금방 혀가 짧아지고 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기묘한 대화가 마법사와 몬스터 로드 사이에서 이뤄졌다.
라카샤가 그 광경에 넋 나간 표정을 지었고, 시알라는 그냥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흥정의 결말이 나왔다.
“여분이 있는 쪽은 이빨이니까, 그럼 이빨은 다섯 개로 발톱은 하나만 골라 보세요! 금전 열 닢, 라카샤의 일 처리는 되도록 빠르게!”
“좋아, 금전 열 닢을 보태서 일 처리를 빠르게 해 줄까! 아니면 열 닢 따로 받고 금괴에서 다 뽑아 쓰게 할래!”
투란의 결정된 말에 홀시딘이 재빨리 되묻고 있었다.
잠깐 투란은 주춤하다가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상황을 좀 더 정리하겠다는 듯이 말한다.
“금괴에서 뽑아 쓰고, 상아탑 인장이 박힌 금전 열 닢은 따로 줘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뭔가 들고 왔다고 티를 내기는 해야 하잖아요.”
“전표로 주면 안 될까!”
“나중에 내가 전표로 직접 바꿀 테니까! 실물로 내놔욧!”
“칫.”
홀시딘이 입꼬리를 뒤틀며 투란이 늘어놓은 작은 이빨, 발톱에서 약속된 수만큼 따로 옮겼다. 투란은 미련 따위를 버리란 듯이 남은 이빨과 발톱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조금 아쉽다는 듯이 이를 보던 홀시딘이 라카샤를 바라보며 투란에게 말한다.
“네가 부여한 파편…… 너만 제어할 수 있는 거냐! 아니면 저 아가씨가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거냐!”
“음! 그야 라카샤가 직접 다룰 수 있어야죠. 조금 낯설겠지만 익숙해질 거예요, 금방.”
“그건 네가 가르쳐 줘야 할 일이겠지!”
“어! 뭐, 그렇죠.”
“그렇다면 어느 정도나 활용할 수 있는가, 얼마나 몬스터 로드랑 닮았고 얼마나 아닌가를 봐야 적당한 핑계를 찾을 수 있겠군. 어느 정도나 파편이 변화하게 할 생각이냐!”
홀시딘이 물을 때, 라카샤가 굳은 표정으로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이 살결을 변화시킬 때도 놀랐지만 지금 오가는 말은 라카샤 스스로 뭔가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결정이 났다는 뜻이잖은가. 과연 자신이 잘해 낼 수 있을지, 과연 이렇게 해도 좋은 것인지…… 라카샤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채였고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중이었다.
시알라가 바로 곁에서 라카샤의 손에 손을 얹으면서 말한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라카샤, 몬스터 로드가 되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힘을 잠시 빌리는 것뿐이니까. 저주가 해결되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그동안 투란의 도움을, 우리가 라카샤를 돕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 돼.”
“네, 고마워요.”
다른 말을 찾지 못한 듯, 라카샤는 겨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홀시딘의 ‘어느 정도’에 대한 답을 찾은 듯, 투란이 힘차게 라카샤를 손짓하며 말한다.
“일단 이 정도라면…….”
우두둑, 뿌드득.
라카샤의 두 손이 잿빛 바위 그랑츄의 형상으로 변했다.
“……!”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라카샤가 바로 쓰러졌고 시알라가 이를 받치며 투란에게 버럭 소리친다.
“야! 이 바보야!”
홀시딘이 잠시 맹한 표정인 채로 중얼거린다.
“말을 해야지, 미리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