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2)
‘그런 거지?’
불쑥, 뜬금없이 투란이 가만히 던진 물음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이미 읽어 알고 있을 테니 세세한 부분은 모조리 빼고 요점만 담은 물음이기도 했다. 굳이 어디가 어떻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어떻게 추측을 했는가를 담을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압축한 물음인 셈인데…….
―그래, 내 실수로군. 기억을 덮은 너와 다르게 나는 멀쩡하니까. 자꾸 네가 언더섀도우에서 성장하고 단련된 모습을 떠올리면서 기억을 날려 버린 멍청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는군. 역시 그 괴리감은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
슬슬 흘러나오는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이게 다 네놈이 한 짓 때문이잖아!’라고 투덜거리는 말투로 가득 차 있잖나!
‘야.’
투란도 조금 삐딱하니 으르렁거렸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묻는가 알면서 뭔 딴소리냐고 따지는 의지, 감정이 가득 서린 한마디의 으르렁거림에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대꾸를 한다.
―넌 언더섀도우에서 도감을 잘 활용했다. 그래, 도감에 나오는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고 있었어. 그 설명을 보고 삼킨 몬스터의 정수는 곧바로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랬는데…… 다시 이런 얼간이라니! 보는 내가 착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왜 내가 기억을 덮었어? 알드바인을 낯설게 여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는 접어 두고,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던 거지? 설명 빼고, 그렇다 아니다로 짧게 대답해.’
투란은 묵혀 둔 물음을 쏘아 냈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했다, 그러나 곧바로 칭찬으로 말문을 연다.
―제법이군, 기억은 덮었다 해도 감은 아직 남았나 보네? 뭐, 짧게 대답하자면 그렇다, 일 수밖에 없지. 그리고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일시적인 봉인이다, 투란. 너는…… 특별한 조건, 흔한 조건으로는 시간이겠지만 아무튼 특정한 상황에서는 기억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자신을 대비해 놨어. 일부러 노력해서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이미 너 스스로 막아 놨으니까 하지 말라고, 네가 너 자신에게 전한 말도 있군.
‘알았어.’
한숨처럼, 하지만 단호하게 투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고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알았다고! 정말로? 그럼 기억을 되찾으려는 시도는 이제 안 한다고? 진짜?
‘너…… 내가 바보라고 단정 짓고 있었냐? 어차피 넌 도울 생각이 아니라 방해할 작정이었잖아! 내가 그런 눈치도 없겠냐고…… 아무튼 때가 되면 알아서 해제된다는 것만 알았으면 됐어. 남이 한 짓도 아니고 내가 한 짓이라면 괜히 서두르고 억지 부려 봐야 기분 나쁜 결말만 나올 테니까. 아, 정말 내가 내 기억 덮은 것 맞지? 저주 뒤집어쓰고 어떻게 된 것 분명히 아니지?’
―아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바로 무슨 일이 있었나 읊어 줄 테니까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돼.
뚜득, 투드득.
투란의 손가락뼈가 엄지부터 하나씩 분리되었다가 결합되었다. 그사이에 뼈마디가 빠진 손은 힘줄과 핏줄이 불끈거리며 꼬였다 풀리기도 했다. 흡사 뼛조각이 박힌 살 주머니를 쥐어짰다가 펼쳐 낸 듯한 괴기한 광경이었다.
‘이거, 라카샤에게 좀 심어 둘까?’
힘줄과 핏줄의 질기고 부드러운 상태를 확인하며 투란은 화제를 돌려 보자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쥐어짜 낸 주머니 꼴을 보면 졸도는 안 하겠다 싶어서?
드라고니아가 조금 질렸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어? 아니, 그게 아니고…… 핏줄과 힘줄이 뼈가 부서져도 버텨 줄 테니까. 그냥 마디가 분리된 상태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고 복구하니까. 금이 가거나 부러지면 붕대 감긴 것처럼 버텨 줄 거라고. 샤벨투스 녀석도 몇 곳 부러져도 끄덕 없다는 것처럼 버텼잖아.’
투란이 본격적으로 시도할 낌새를 띤 채로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는 살짝 신중하게 말을 받는 것처럼 대꾸한다.
―뱀파이어의 피가 남겨진 채니까 뼈에 금이 가거나 부서져도 금방 복구되고 아물 거야. 그렇다면 굳이 샤벨투스의 근맥을 심어 줄 필요가 없잖아? 너처럼 피를 싹 지운 채로 새로운 형상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리저리 너무 섞는 것은 몬스터 로드도 아닌 아가씨에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겠냐?
‘음…… 그러니까 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부러진 순간에 경직되지 않고 버티고 재빨리 반응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하자는 말이지. 뱀파이어의 피가 활용되는 것은 그보다는 조금 길게 봐야 하니까. 다치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순간이 지난 다음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거잖아.’
―분명히 샤벨투스가 그렇게 반응하기는 했지.
문득 투란이 떠올린 심상, 기억을 공유한 듯 드라고니아도 살짝 납득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루를 쫓는 동안에 샤벨투스는 투란에게 맞아 등뼈까지 부러지기도 했다. 그 전에 네 다리가 하나씩 부러지고 머리뼈도 제대로 함몰되기도 했지만, 샤벨투스는 뇌까지 근육이란 것처럼, 네 다리와 몸통의 핏줄과 힘줄이 꼬이고 부풀며 몸속의 버팀목과 붕대 노릇을 하듯이 머리뼈도 부푼 뇌로 다시 짜 맞출 정도의 괴이(怪異)를 드러냈다. 그러니 등뼈가 부서지고 마디가 어긋나고 벗어난 정도로 제압한다는 일은 기대도 못 했다. 그저 잠깐 주춤하는 틈을 얻어내고 목과 몸, 네 다리에 거미줄을 걸었을 뿐…….
―한데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불쑥 드라고니아가 던지는 물음이었다.
‘응? 제대로?’
―몬스터의 형상이야, 근맥과 혈관이니 감춰지기는 하겠지. 그냥 불끈불끈한 정도로 겉으로야 멀쩡하겠다만, 그렇게 형성된 몬스터의 형상을…… 그 능력을 라카샤가 제대로 쓸 수 있겠냐고. 너도 지금 이렇게 앉아서 가늠해 보는 중인 능력을 말이다.
‘흐흠…….’
투란은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지닌 몬스터 로드도 몬스터의 정수를 얻어 그 형상을 이뤄 낸 시점부터 그 능력을 제대로 쓰기 위해 단련이 필요하다. 과연 투란이 부여한 형상을, 은밀하게 형성해 준 것이라 해도 라카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쓸 수 있을까?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럴 수 있을까?
‘연습하라고 해야겠지?’
―그런 것 필요 없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만? 저주를 막는 부분이야 그렇다 쳐도 몬스터의 괴력이나 이상한 능력까지 굳이 받아들여야겠냐고 거부할 수 있잖아? 대부분의 몬스터 헌터가 몬스터 로드가 굳이 필요하냐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짓궂게 파고드는 말투가 또렷했다.
투란은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뭐가 또 대부분이야, 대부분은…….’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것이 몬스터 헌터가 지닌 기본적인 자세.
하지만 그렇게 사냥한 몬스터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자는 갈망 또한 몬스터 헌터에게서 쉽게 엿볼 수 있었다. 그 잔유물, 사냥의 부산물을 이용해서 또 다른 몬스터를 더 쉽게 사냥하려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것에 기대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몬스터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성향…….
몬스터 로드는 그 점에 있어서 최종적인 대책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몬스터의 형체를 뒤집어쓰고 그 능력을 발휘하지만, 죽음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깔끔하게 지워 버리니까.
미쳐 날뛰는 일만 어떻게든 봉쇄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대책도 없잖은가?
그러므로 몬스터 헌터는 몬스터 로드가 지닌 최종적인 유효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것…….
치익, 치이익.
“응?”
한참 드라고니아와 함께 툴툴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는 투란의 귓가에 기묘한 소리가 찾아왔다.
―메시지……? 아니, 홀시딘의 메신저인가 본데?
드라고니아가 마법의 냄새가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투란도 금방 홀시딘의 목소리를, 눈앞의 풍경을 일그러뜨리고 겹쳐지는 홀시딘의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었다.
“투란! 어디냐!”
“여기 있는데요?”
조금 맹한 투란의 대답이었다.
홀시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는 듯하다가 결국 투란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격하게 투란의 귓가에 다시 그 목소리가 꽂혀 든다.
“쉼터 성벽이구먼! 어디 안 갔어! 다행이야!”
“네?”
매우 맹한 투란의 대꾸가 자연스럽게, 당연히 어리둥절해진 표정과 함께 흘러나왔다.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마법사의 말이 왜 불길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가?
풍경을 일그러뜨리며 허공에 그려진 홀시딘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움직이며 투란의 표정을 읽어 낸 모양이었다.
“라카샤의 일은 빠르게 처리될 거야. 라카샤가 걸린 저주가 수십 년에 한 번씩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이래저래 말썽을 피운 적이 있다더군. 뭐, 그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라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가 하는 경우라니까 나에겐 낯선 이야기였다만…… 아, 어쨌든 라카샤의 저주를 네가 봉쇄해 놓았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신분을 감추고 적당히 꾸며서 보호하는 일은 우리가 맡아 둔다고. 어, 그리고…… 투란 너랑 연계되어 있으니 금전 소모를 적게 해서도 어떻게든 로열클래스의 한 귀퉁이에 포함해 관련자로 보호할 수도 있는 것 같더군. 음,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말이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바로 이리로 올래?”
한참 길게 말을 잇는 듯하다가 불쑥 손을 내미는 홀시딘이었다.
드라고니아가 허공에서 풍경을 구기고 덧칠해진 채로 내밀어지는 마법사의 손을 보며 감탄했다.
―호오? 이것까지 성취했나? 투란, 이걸 잡으면…….
덥석.
투란은 마법의 기묘한 낌새를 느끼다가 냉큼 홀시딘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놀란 소리를 질렀다.
“우앗! 잡히잖아! 홀시딘, 이게 어떻…….”
쉬이잇.
투란은 홀시딘의 주변이 환해지는 광경을 봤다.
그리고 자신이 바람이 열어 놓은 구멍 속에 덜렁 빠져든다는 것도 느꼈다.
알드바인의 풍경이 발아래 놓인 것처럼 주변을 스쳐 갔고, 다음 순간 투란은 상아탑의 훤히 열린 높은 방에서 홀시딘의 손을 쥔 채로 자신이 덜렁 떨궈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한 박자 늦게 드라고니아의 중얼거림이 투란의 귓가에 꽂혀 들고 있었다.
“마법이다.”
그리고 홀시딘의 단호한 설명…… 그야말로 투란의 성향에 딱 맞춘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이 투란에게 들려왔다.
“아, 네…….”
딱히 더 캐묻고 따질 까닭도 없기에 투란은 어영부영 대꾸하며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알드바인의 남쪽 성벽 첨탑 위에서 단숨에 상아탑의 높은 방, 한쪽 벽이 훤히 열려 알드바인이란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로 왜 자신이 이동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가 없잖나!
“그런데 왜?”
물음 자체는 매우 간략했다.
하지만 투란의 입에서 이렇게 일단 묻는 말이 나오자마자 홀시딘이 둥실거리며 뜬 몸을 살짝 낮추며 투란과 눈과 눈이 마주칠 듯한 자리를 잡았고 무겁고 위엄이 어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투란, 알다시피 로열클래스는 막대한 금전이 소모되어 겨우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다. 하지만 금전만으로 완전한 로열클래스가 될 수 없다! 그 또한 이미 알고 있지? 거기에 추가로 관련자를 더해 보호한다는 것은 로열클래스로서 새로운 시련…… 아니, 공적을 이뤄 내야 할 필요가 있단다. 물론 너는 이미 수룡이 일으키려는 범람을 막아 냈고, 루바인을 공격해 오던 강력한 몬스터의 세력을 꺾어 주기도 했지! 하지만 그건 몇 년 동안 자리를 비운 네가 귀환을 증명하는 일이었고…… 라카샤를 로열클래스인 너의 보호 아래 두려면 새로운 업적이…….”
듣고 있던 투란의 눈이 점차 가늘어졌고 눈꼬리가 살살 치켜올라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실룩이면서 홀시딘의 장황한 이야기가 도달하려는 목적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표정을 띠면서 막 큰 소리도 목청에서 터져 나가려는 순간.
“헛소리 그만하세요, 스승님. 옆에서 보는 제자가 창피해서 죽을 것 같거든요?”
어둑한 벽의 그림자 속에서 한숨과 함께 차가운 음성이 또박또박 울려 나오면서 홀시딘의 말을 끊어 버렸다.
투란은 흠칫하면서도 갸웃하며 벽을 바라봤다.
―케이라 맞다.
드라고니아는 간단하게 아직 그림자처럼 거뭇하게만 보이는 사람의 정체를 말하고 있었다.
홀시딘이 어둑한 벽 그림자를 향해 볼멘소리를 내서 투란의 짐작과 드라고니아의 말을 증명했다.
“케이라, 대체 내가 무슨 헛소리를 했다고 그리 심한 말을…….”
“그만하세요! 투란, 스승님도 꽤 난처한 처지라서 억지 부리려 한 것이니까 너무 화내지 말아 줘요. 가뜩이나 알드바인 주변이 뒤숭숭한데 뜬금없이 엘더 헌터 쪽에서 반드시 들어주지 않으면 앙갚음이라도 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와서 그러신 거예요.”
케이라가 그림자에서 벗어나면서 차분히, 냉정한 얼굴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을 가득 띤 채로 말했다. 그 덕분에 투란도 머리 한구석이 식으면서 분명하게 되물을 수 있었다.
“엘더 헌터……?”
두서없는 한마디에 불과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