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3)
후우, 가볍게 한숨을 끝낸 듯이 숨을 고른 다음에 케이라가 바로 말을 이어 나가는데 그 표정 때문에 홀시딘이 살그머니 찔끔한 듯이 말리지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먼저 분명히 밝혀 두도록 하지요. 투란, 당신에게는 이 요청을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거부하고 싶다면 전혀 관여하지 않아도 돼요. 엘더 헌터의 강력한 요청이든 뭐든, 로열클래스로서 당신을 구속할 수 있는 의무 따위는 전혀 없어요.”
“케, 케이라!”
휘청하는 몸짓과 함께 홀시딘이 울상을 지었다.
투란은 어이없어 상아탑의 대마법사를 흘깃하고 살짝 쏘아보는데, 그 제자인 케이라는 매우 냉철하고 담담하게 스승이 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말을 이을 뿐이었다.
“바헬키마, 우리는 그런 이름은커녕 그 특성조차 제대로 분석을 마치지 못한 몬스터를 단번에 제압했고 어찌 대처해야 할까 전혀 가늠도 못 하던 수룡의 재림도 그대로 잠재웠잖아요. 투란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염치와 양심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애나 할 짓이지요. 하물며 사정설명 따위는 내다 버린 채로 억지로 엘더 헌터의 요구에 등 떠밀 수는 없는 겁니다.”
막 나가는 이야기였지만 너무 냉철해서 끼어들 수가 없는 듯한 홀시딘은 전전긍긍하며 앓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제자를 바라보며 입술만 핥고 깨물며 당황하고 있다는 표현을 거듭할 뿐이었다.
그 과장된 몸짓으로 인해 떴다 내려앉았다를 반복하는 탓에 투란은 어쩔 수 없이 홀시딘을 대신해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마스터 홀시딘은 아닐걸요? 다른 대책이 없다 싶으면 억지를 부리고도 남는 분이기는 해도.”
주절주절 살짝 원망이 덧붙여진 변명 아닌 변명을 하다 보니 투란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목덜미부터 긁적이며 머리 꼭대기를 쥐어뜯듯이 치솟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억지 부리는 마법사를 옹호하려고 하냐.
자기 말에 자기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투란이 보기 안쓰러웠던가,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릴 지경이었다.
케이라도 어렴풋이 혹은 확실하게 이런 투란의 묘한 태도를 알아차린 듯했다.
“감사드립니다. 어리광부리는 스승님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군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런 스승님의 어리광이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다는 것을 이제부터 말해 드려야 하는 것을 미리 사과드리겠어요. 물론 투란은 이 요청을 듣지 않고 바로 거부할 수도 있고, 듣고 검토한 후에 거절할 수도 있어요. 상아탑이 막대한 공적을 쌓아 올린 로열클래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입니다, 명심해 주세요.”
“네.”
투란은 슬그머니 엄격해지는 케이라에게 얌전히 대답해야 했다.
―홀시딘도 절반 정도는 네가 어설프게 대처하기 때문에 화내는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케이라의 엄한 자세를 평가하듯 말했다.
그 소리 없는 말투가 어쩐지 사뭇 즐겁고 기특하다고 칭찬하는 낌새로 투란의 눈가는 파들거리며 떨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나까지 야단맞고 혼나는 거냐고!’
마법사랑 친하게 지내면 스쳐 가던 벼락도 방향을 바꿔 정통으로 내리꽂힌다는 오래된 속담까지 떠오를 지경 아닌가!
홀시딘을 흘겨보며 ‘책임져요!’라고 눈빛을 번뜩이는 투란에게 케이라의 담담한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아 훨씬 더 냉철한 힘을 지니고 울려 닿았다. 덕분에 또 다른 불평불만을 생각할 겨를도 없어진 투란이 잔뜩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가 길어요, 일단 앉죠.”
홀시딘이 부유하는 것조차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투였고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탁자와 의자, 푹신한 소파 따위의 가구가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밖을 향해 훤히 열렸던 벽이 창문처럼 닫히고 메워지기도 했다. 동시에 천장에서 마법의 등불이 빛을 뿜어내며 밀폐된 방이 완성된 것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찌 봐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한 안전 구역을 만들어 낸 셈이었다.
케이라의 손짓에 따라 홀시딘이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한쪽 소파에 내려앉았고 투란도 슬그머니 가까운 자리에 붙어 앉았다. 케이라가 더 야단을 치더라도 슬쩍 홀시딘에게 기대면 그래도 덜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채로.
―야, 스승이고 뭐고 수틀리면 그냥 욕을 퍼부을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속셈을 단숨에 놀리며 비웃고 있었다.
‘그래도…… 둘을 함께 보면 어느 쪽을 욕하더라도 조금은 자제할걸?’
투란은 가느다란 지푸라기 잡는다는 듯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라는 소파의 양쪽 끝에 앉아 중간을 비워 둔 홀시딘과 투란을 보며 미묘한 한숨을 흘리고는 바로 이야기를 꺼낸다.
“우선 요점부터 짚자면, 엘더 헌터가 요청하는 일은 바로크 왕국을 공격해 오는 로드 오브 몬스터가 이끄는 몬스터의 대군세를 막아 내고 끝장내는 데 도와 달라는 것이에요. 그런 요청을 하게 된 까닭은 투란이 한 일을 어느 정도 알아내고 가늠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투란이 누군지, 어떻게 했는지를 아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알드바인에 이삼 년 머물고 있는 엘더 헌터가 착실하고 차분하게 주변 상황을 조사하고 취합해서 내린 추정에 근거해서 요청한 것이지요. 몰튼노트 기간트부터 거미 군단, 무쇠뿔 오우거의 영토까지 깔끔하게 해결해 낸 능력…… 그 능력자를 섭외해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원래는 바헬키마라든가 수룡의 징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전혀 응할 수가 없는 요청이었는데…… 갑자기 거부하기 힘든 요청이 돼 버리고 말았지요. 스승님이 투란에게 무모하고 무례한 억지를 부리기 전에 나름대로 거부하려 노력은 하셨어요.”
“아, 네…….”
가만히 눈을 마주치며 하는 말에 투란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홀시딘은 입술을 내밀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은 지었지만, 그저 표정만으로 끝내고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뭐라 하면 제자에게 더 혼나고 야단맞을 듯해서 못 하는 모습이었다.
―로드 오브 몬스터?
케이라가 이끄는 분위기에 투란이 끄덕이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놀란 듯이 그 뇌리에 외쳤다. 방금 한 말을 흘려듣지 말라고 되새겨 주는 것처럼.
‘응? 어라?’
투란도 뒤늦게 깨달았다.
“저, 그런데…… 로드 오브 몬스터라고……?”
케이라가 바로 끄덕이는 채로 답한다.
“네, 로드 오브 몬스터. 로열클래스의 기록에 따르면 투란은 엘데인에서 홀로 상대했다지요? 그때 물리쳤던 개체와는 다른 개체가 바로크 왕국을 공격하는 대군을 이끌고 있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그러니까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이었나요?”
맹하니 투란이 다시 물었다.
홀시딘이 바로 소파 한구석에서 코웃음을 섞어 투란에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냐! 바로크 왕국 쪽에 나타난 놈은…….”
“잡지 못한 경우입니다.”
케이라가 냉정하게 스승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더불어 노려보는 제자의 눈길에 스승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애초에 이런 설명 없이 대충 보내려 했던 것이 홀시딘의 수작!
케이라는 요점부터 간단히, 하지만 넓고 깊게 정보를 주며 투란에게 선택할 권한을 명백하게 알려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란은 일단 호기심을 따라 묻기로 했다.
“잡지 못했다는 말은……?”
“대략 이백 년 전에 나타났던 개체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군세를 모을 때마다 바로크 왕국을, 에테온의 국경을 얼쩡거리며 밀고 나오려고 버둥거리는 괴물의 군주인 겁니다.”
또르륵, 케이라가 탁자 위로 손짓해서 가볍게 잔을 나타나게 했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피어나는 차를 채워 넣었다. 부드럽게 미끄러진 잔이 투란과 홀시딘 앞으로 밀려와 멈췄다.
손짓에 담긴 그 기묘한 마법이 흥미로웠지만 투란은 그보다 잡지 못했던 로드 오브 몬스터의 이야기에 대해 더욱 궁금했다. 그래서 홀시딘에게 눈짓하고 케이라에게 눈을 깜박거리며 표정과 태도로 재촉하니, 바로 홀시딘의 달싹거리는 입술을 케이라가 엄한 눈길로 찍어 누르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답니다. 바로크 왕국의 군단 하나가 출정해서 충분히 토벌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그 토벌에서 로드 오브 몬스터의 흔적만 파악하고 잡지를 못했던 것이 이백여 년을 끌어오면서 큰 문제가 돼 버린 것이지요. 특히나 이번에는 과연 막아 낼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지경이라니까요.”
투란은 더 이상 홀시딘을 보지 않았고 케이라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투란의 마음은 바로크 왕국에 대해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었던 바로크의 몬스터 로드들…… 속칭 바로크의 병신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남긴 강렬한 자취를 담긴 이야기에서 키린과 만나 알게 된 보이드의 비전에 이르기까지 단숨에 더듬었다.
―몬스터 로드로 이뤄진 군단까지 갖춰 놓았지. 여러 가지 비전을 간간이 세상에 풀어놔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고. 강력한 몬스터가 자주 튀어나온다는 바로크와 에테온의 상황은 종종 듣기는 했다만 거기에 로드 오브 몬스터가 백 년 넘게 엮였다는 이야기는 처음인걸?
드라고니아는 뜻밖의 이야기란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도 문득 그 부분에 담긴 의미를 느끼고 바로 입을 연다.
“그 녀석이 로드 오브 몬스터라고 확신한 것은 대체 언제쯤이지요?”
소파 한구석에서 홀시딘이 ‘음?’이라고 묘한 소리를 내며 투란의 질문이 예상보다 날카롭다는 것을 짚는 듯했다. 그러나 케이라는 투란의 물음이 당연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엘더 헌터 쪽에서는 대략 백 년 전에 파악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소문을 내거나 해서 널리 알리지는 않았답니다. 그저…… 몰래 재빨리 사냥해 버릴 작정을 하고 두어 번 움직였다는 모양인데, 성공하질 못했지요.”
“아, 그렇게 된 거군요.”
투란은 금방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고니아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그게 뭔 소리냐?
‘가끔 있어. 사람들이 알면 오히려 난리 나는 몬스터. 그냥 몰래 빠르게 사냥해서 그런 놈 없는데요, 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경우가 있거든.’
―흐음, 인간을 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언더섀도우에서는 그렇게 감추는 것을 굉장히 꺼리고 싫어하는 일로 취급했다만…… 흐음.
‘드라코눔에서는 무시무시한 놈 나타나면 전부 알려서 겁먹게 하냐?’
―그런 놈이 설정된 경계를 넘으면 마법으로 경보가 울리지. 단번에 아칸부터 전사단까지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재앙이란 진실은 아무리 가혹해도 거짓으로 덮고 달콤하게 치장해서는 결코 답이 아니니까. 이건 역시 상냥한 거짓말을 권한다는 인간사회의 묘한 특성 탓인가?
‘뭔 특성이야, 특성은.’
새삼스럽게 드라고니아가 드라코눔이란 기묘한 곳의 아칸임을 느끼면서 투란은 케이라가 이어 나가는 말을 되새기고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번에도 엘더 헌터는 헌터 길드의 베터랑과 자신들의 힘, 여러 방면에서 쌓아 온 인맥으로 나름대로 침공의 원흉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셈이에요.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멀리 떨어진 이곳 알드바인에까지 적극적으로 요청을 해 온 것은…… 투란이 쌓은 위업을 눈치챈 탓도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몬스터의 대군을 막아 내고 그 원흉을 제거하는 시도조차 쉽게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탓이 더 커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백여 년의 경험을 쌓아 온 로드 오브 몬스터가 수십 년 전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랑 수준이 다른 재앙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죠. 바로크에서는 에테온에도 도움을 청했고, 길드와 상아탑…… 위키드 랜드라 일컬어지는 경계 너머의 헌터들에게까지 손을 내민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확실하게 지금의 로드 오브 몬스터를 격파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춤추는 산맥의 반대 지역, 평소라면 아무리 급해도 도움이고 뭐고 요청할 곳도 아닌 알드바인에까지…… 이쪽에서도 대규모 범람이 있을지 모르는 조짐이 보이는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청을 해 온 것이죠.”
“잠깐, 이쪽에도 범람이라고요?”
투란이 흠칫해서 짚을 수밖에 없었다.
춤추는 산맥에 사는 자라면 다들 귀에 박히도록 듣는 것, 그것이 바로 몬스터의 범람이었다. 산맥 깊은 곳에서 수를 늘려 온 몬스터의 무리가 산맥 밖을 향해 떼를 지어 몰려오는 것. 평소에도 늘 있는 일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범람이라 부르며 그 지경에 이르면 왕국의 경계를 돌파당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때때로 그냥 지나가게 두자는 말까지 나온다 할 정도로 고대 육왕국의 전통을 잇는 군단조차 범람은 꺼린다잖던가.
애초에 엘데인과 루바인이 경계 도시로서 한 구역씩 담당하듯 건설된 까닭도 그런 범람의 징조를 가능한 한 빨리 읽어 내기 위해서인 것…… 춤추는 산맥 곳곳에 이러한 경계 도시가 존재하는 까닭이라 했다.
홀시딘이 혀를 차며 슬쩍 놀라는 투란에게 말한다.
“야, 여기는 확정된 것이 아니야. 그냥…… 평소보다 나쁜 조짐이 불쑥불쑥 엿보이는 것뿐이지. 벌써 삼사 년은 넘은 이야기잖아! 바로크 쪽은 지금 당장 터진 일이고.”
“아, 네…….”
투란은 적당히 대꾸하며 케이라에게 눈길을 보냈다.
과연 스승님이 보이는 여유가 절절하냐고 따져 보자는 듯한 눈길이었고, 케이라는 그 눈길에 담긴 물음에 바로 답을 한다.
“그럭저럭 막아 낼 수는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는 해요. 예상만큼 규모가 커지지만 않는다면요. 엘더 헌터 쪽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알드바인 주변과 더 깊은 곳을 탐색해 줬고…… 바로크 쪽에 비교하면 상당한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요청한 거예요. 재앙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태 달라고요. 닥쳐온 위기를 단숨에 억제하고 다시는 같은 괴물의 군주를 만날 필요 없이 제거하자고 말이죠.”
고요한 케이라의 눈빛이 반짝였고 투란은 생각해야 했다.
과연 이 요청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