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4)
―답을 정해 놓고 뭘 고민하는 시늉이냐?
느닷없는 비아냥거림이 드라고니아의 한숨처럼 들려왔다.
‘뭔 답을 정해 놔?’
투란이 삐죽거리는 마음을 담아 되물었다.
드라고니아 또한 삐죽대는 말투로 바로 되받는다.
―샤벨투스의 흔적을 찾자마자 냅다 하루를 쫓아 잡은 놈이 누구냐? 백 년 이상을 들이닥쳤다는 로드 오브 몬스터가 뭔가 벌써 호기심을 잔뜩 부풀리고 있잖아! 가서 구경하고 싶어서 앞뒤 잴 생각도 없으면서!
‘그건 고민하는 중인 거잖아.’
뚱하니 스스로를 향하듯 속삭이는 채로 투란은 가만히 케이라를 보다가 홀시딘을 흘깃거렸다. 마치 이럴 때는 뭐라 해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정쩡한 태도를 꾸미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와서 이리저리 할 일도 많다는 것처럼.
홀시딘이 조금 머뭇거리는 시늉을 하는 투란을 향해 눈길을 가늘게 하다가 한숨부터 쉬면서 말한다.
“나는 네가 꼭, 반드시 가 줬으면 한다. 엘더 헌터가 들이대는 꼴이 장난이 아니거든. 지금까지와는 경우가 다른 위협이라고 여기고 거리가 꽤 있고 오가기도 쉽지 않은 우리 쪽에까지 요청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니까. 네가 가면 어떻게든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벌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적어도 네가 가지 않을 경우보다는 훨씬 희생도 줄일 수 있고…….”
“스승님, 마스터 홀시딘. 그만하세요.”
주절주절 말이 더 길어질 듯한 낌새를 끊어 내듯이 케이라가 엄격하게 말했다.
제자로서 스승에게,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상급자에게 엄정(嚴正)하게 요구하는 듯한 말투가 어딘가 소름 끼칠 지경!
때문에 움찔하는 투란에게 케이라가 다시 담담하니 말한다.
“투란, 가 주면 큰 힘이 되겠다는 말을 강조하신 것뿐입니다. 당신은 이미 어떤 요청을 거부해도 당연하다 할 정도로 많은 위업을 이뤄 냈어요. 거부하고 싶다면 거부해도 됩니다. 엘더 헌터 쪽에서 요청한 것도 투란을 부르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스승님만 나서도 도움은 충분히 제공한다 여길 겁니다.”
“엥? 케이라……!”
홀시딘이 화들짝 놀란 듯이 케이라를 향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나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부정하지 못하는 홀시딘이기도 했다.
스승과 제자, 마법사들의 묘한 다툼 아닌 듯한 다툼의 광경을 느끼면서 투란은 재미있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말한 것처럼 투란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이기도 했으니, 막상 홀시딘이 대신 간다는 상황을 떠올리자 불쑥 ‘안 돼, 그건 아니야!’라고 외칠 뻔한 것이다.
‘젠장…….’
잠깐 목을 조였다가 풀면서 투란은 홀시딘을 외면하는 시늉과 함께 케이라에게 한숨이 섞인 말을 꺼내 놓는다.
“마스터 케이라, 스승님인 마스터 홀시딘이 못된 성질로 가득한 마법 할배 영감님이라서 나를 보내려고 온갖 꾀를 내고 계시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끔 무모하고 못된 마법사처럼 보일 때가 없지는 않지만…… 도시를 위협하고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재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기 목숨부터 내걸고 도박하는 분이라는 것, 알고 계시잖아요?”
“네.”
케이라는 조용한 태도로 간단히 답했다.
홀시딘은 숨소리를 낮추려 했지만 씩씩거리면서 입술을 깨물고 투란을 노려보며 눈가를 치켜올리는 중이었다. 도대체 지금 한 말이 욕인가 칭찬인가, 말뜻은 분명한데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당혹스럽다는 듯!
슬그머니 몸을 돌리면서 투란은 더욱 홀시딘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자세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이번에도 본인이 가서 불 질러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미 떠날 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굳이 날 보내려 하신다는 것은…… 상아탑의 불덩이 마법사보다는 내가 더 쓸모가 있다는 냉혹한 결단을 내리셨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아쉽고 억울한 기분은 들지만, 그 결단이 틀릴 리는 없을 거예요. 음, 그러니까 가기는 가야겠는데…… 어제오늘 황금매…… 금빛매의 쉼터에 제가 저질러 놓은 일이 좀 있거든요. 무엇보다 라카샤…… 저주받은 아가씨의 경우에는 심어 놓은 몬스터의 파편에 대해서 조금 더 알려 줘야 할 일도 있고…… 잡아다 놓은 샤벨투스도 완전히 새끼 고양이인 채로 뒤탈이 없나 조금 주의해야 한다고 시알라에게 말해 둘 일도 있고…… 음, 아무튼 약간 처리해 둘 일이…… 대강 그래요. 아시겠지요?”
주섬주섬 하나씩 늘어놓다가 투란은 결국 역시 자신은 이야기꾼의 재주가 없다고 포기한 표정을 지으면서 케이라가 마법사답게 정리해 주기를 바란다는 눈길과 함께 말을 멈췄다.
케이라는 그런 투란에게 아주 담담하고 신중하게 바로 대답을 했다.
“알 것 같군요. 그러면…… 일단 쉼터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더 나눠야겠군요. 라카샤와 샤벨투스의 변이체란 고양이까지, 투란이 남길 말을 그대로 들려주는 편이 좋겠지요. 그리고…… 스승님, 투란이 가겠다고 했으니 바람의 길을 준비해 주시고 저편에도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제대로 투란이 힘을 쓸 수 있는 대비를 해 주도록 말입니다. 여기서의 정리는 제가 돕도록 할 테니까!”
말 끝자락은 어이없어하며 어떻게든 투란과 눈을 마주치겠노라고 슬슬 소파에서 몸을 띄워 올리는 스승 홀시딘을 향해 다그치는 소리였다.
어쩐지 스승과 제자의 입장이 뒤집힌 듯한 그 광경을 감상하던 투란이 히죽거리며 솟는 웃음을 기침하는 시늉으로 지우다가 불쑥 묻는 말을 꺼낸다.
“어, 그런데…… 갑자기 생각난 건데요. 홀시딘, 시크릿 키퍼가 둘이 될 수 있는 거였나요? 음…… 마법에 대해서 잘 몰라서…….”
“뭐? 이 녀석이 진짜……!”
홀시딘은 바로 울컥하며 으르렁거리려 했다.
하지만 흠 하는 세찬 숨소리와 함께 케이라가 살짝 목소리를 높이니, 홀시딘이 곧바로 흠칫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원래는 한 명이어야 해요. 하지만…… 때로는 비밀이 비밀을 낳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영역이 커지게 되면 보조를 둘 수 있어요. 특히나 거대한 비밀이 또 다른 거대한 비밀과 연계되면 아무리 상위 마법을 홀로 다룰 대마법사의 수준이라도 도움이 필요하게 되지요. 투란, 저는 스승님의 제자로서 원래는 비상시만을 대비하는 보조로 지정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란이 대마녀랄 수밖에 없는 키유나를 보냈기에 어쩔 수 없이 로열클래스의 비밀을 지키는 자로서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그 부분은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스승님과 제가 부족한 부분이니 양해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투란은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부분에서 갸웃했다.
“대마녀……?”
―적당히 해라.
드라고니아가 질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케이라는 홀시딘이 투란을 노려보는 눈길 따위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담담하고 신중하게 투란에게 설명한다.
“네, 투란에게는 조금 느끼기 힘든 일일 수도 있겠지만 키유나는 수백 년에 한 번 있다는 대마녀가 맞아요. 키유나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사룡을 잠재우고 몇백 년이라도 더 봉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망상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그런 키유나를 알드바인의 한적한 쉼터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지내게 한다는 것은…… 마녀의 비전, 비술을 덮는 부분에다가 투란과 남매들과 엮인 일까지 더해서 스승님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심지어 제가 나선 것조차도 힘이 모자랐답니다. 그래서 한명의 보조를 더 둬야 했는데…… 마력만 보조하는 입장이라 이런 일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투란은 눈만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홀시딘이 혀를 차며 나직하게 투덜거린다.
“어디서 사람을 보내도 꼭…….”
드라고니아도 혀를 차는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꽂아 넣는다.
―이미 간략하게 들은 이야기잖아! 굳이 그걸 또 스승에 이어 제자의 입으로도 들어야겠냐! 사냥 준비나 하라고! 그쪽 정보를 얻어듣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상황이잖아! 라카샤는 또 어쩔 건데!
‘아니, 뭐…… 그게 이런 이야기인가 아닌가 알 리가 없었잖아?’
투란은 그냥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케이라를 향해 다시 눈만 깜박거릴 뿐이었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밉다는 듯이 노려봤고, 케이라는 이제 적당히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이 바로 말한다.
“그럼, 갈까요?”
“어, 네…….”
투란이 대꾸하는 순간이었다.
투웅, 소파가 살짝 몸을 띄운 홀시딘을 아래에서 들이받아 튕겨 올렸다!
“으헉! 제자야아앗!”
뭐라 비명이 터지는 듯한 순간, 투란은 자신과 케이라가 마주 보는 중심을 축으로 삼아 소파와 탁자, 방바닥이 통째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흡사 주변이 치솟는 것처럼, 홀시딘과 마찬가지로 튕겨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케이라와 투란이 자리 잡고 앉은 탁자, 의자가 사람을 담은 그대로 쏜살같이 강하하고 있었다.
‘우와, 이거 꼭…….’
홀시딘에게 잡혀서 날아왔을 때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허공을 가로지른 것이 아니라 벽 속에 스며들어서 지하를 관통하는 상황…… 그러나 그 속도는 오히려 홀시딘에게 잡혀 올 때보다 빨랐다!
도대체 이렇게 해서 상아탑의 지하로 내려가면 뭐가 나오는가?
투란이 의문을 떠올릴 때, 케이라가 담담하게 미리 답을 해 준다.
“금빛매의 쉼터, 그 지하 요새로 가는 중이에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투란.”
“네, 넷! 지하 뭐요!”
엉겁결에 대꾸하다가 투란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응? 요새? 그거 설마 작정하고 지은 요새였어?
드라고니아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야, 너 눈치챘어?’
―고블린을 막아 내려고 나름대로 구조를 변경했다 싶었을 뿐이다만…….
투란이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며 묻는 말에 드라고니아는 조금 뜻밖이었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그 위로 케이라의 담담한 대답이 덧씌워지듯이 함께 울려 나온다. 수직의 강하가 수평의 고속 이동으로 바뀐 때였다.
“고블린의 침투 경로를 이리저리 막고 방어를 위한 통로를 뚫고 하다 보니, 어느새 성벽이랑 영역이 겹치고 미리 배치해 놓은 가디언까지 재조정해야 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지하수로까지 보호하자 싶어서 그냥 요새화를 하기로 했지요. 키유나가 도착하면서 남매분들에 대해 조금 알게 된 다음에 한 조치입니다. 설계는 제가 했지만 실행은 시알라와 페란드, 두 분이 했어요.”
정중하고 담백한 이야기였지만 투란은 무슨 뜻인가 금방 알아들었다.
몬스터 무리가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침투를 계속한다면, 대부분 그렇게 침투해 오는 경로를 방해하기 위해 벽을 쌓거나 목책을 두르니까.
시알라 남매와 케이라는 이를 알드바인이란 환경에 적응시켰을 뿐이었다.
“어, 그러면 이제 지하에서 고블린 사냥은……?”
“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대신 성벽 너머로 주기적으로 정찰을 하기는 해요. 주로 제란드와 멜란드가 맡게 되는 일이 되더군요. 아, 도착했군요. 시알라가 마중 나왔네요.”
“음?”
투란은 어느새 이동이 멈췄고 주변 벽이 내려가며 풍경이 드러나는 과정이 오히려 이동한 시간보다 더 오래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드러난 풍경을 통해 보니 넓은 지하실 한복판에 이동해 온 탁자와 소파가 평범한 거실 가구처럼 자리 잡은 채란 것.
그리고 한구석의 문짝 없는 문턱과 내려오는 계단 구멍에서 시알라가 불쑥 내려서면서 투덜거리는 중이었다.
“케이라, 갑자기 오면서 뭘 그리 많이 데려오래요? 응? 투란? 함께 있었어? 뭐 하는 중이었는데?”
투란은 시알라가 앞장서 내려선 다음에 빼꼼히 키유나가 머리를 숙여 고개부터 들이미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아당기는 채로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새끼 고양이가 얹힌 접시를, 한 손에는 라카샤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는 키유나가 바로 입을 연다.
“다 모여서 뭘 해야 해요?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 그 곁에서 라카샤가 투란을 본 듯이 중얼거린다.
“투란? 여기 있었…….”
케이라가 성큼 일어섰다.
그 박력에 시알라와 키유나, 라카샤가 모두 주목했다.
새끼 고양이가 접시 위에서 야옹 하는 옹알이를 흘릴 때, 케이라의 목소리가 덧씌워지며 울린다.
“모두 와 주었군요, 요청에 바로 응해 준 배려에 감사드립…….”
“케이라,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뚝 말을 자르면서 키유나가 씁쓸하면서도 선명하게 말했다.
시알라도 피식 웃음 새는 말투로 보탠다.
“그냥 평소처럼 하라고.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탓이라 말투랑 태도가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우리가 거북하다니까.”
투란이 어리둥절해서 바로 케이라에게 속삭이듯 묻는다.
“기억이…… 왜?”
상아탑의 마법사가 기억이 오락가락이란, 그렇게 정신이 이상한 상태인데 시크릿 키퍼의 역할을 공유할 수 있는가!
“비밀을 다룰 때가 아니면 기억을 봉인해 두고 지냅니다. 알고 있다는 태도 자체가 비밀을 누설할 수 있으니까요. 그편이 제겐 더 편하거든요. 여러분의 비밀은……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아주 버거운 진실이잖아요.”
말투는 담담했지만 케이라의 대답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시알라와 키유나도 ‘버거운’이란 말의 무게에 입술만 삐죽일 뿐 더 뭐라 못 하는 듯했다.
그리고 라카샤가 이 묘해진 분위기가 버거운 듯이 작게 중얼거리듯이 묻는다.
“저어, 무슨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