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68)
“그런데…… 왜 그렇게 변장을 하고 있는 거죠?”
달칵, 분홍색 음료가 담긴 유리잔이 놓이자마자 투란이 물었다.
툴로쉬가 쓴웃음부터 짓는데, 쥴이 킬킬거리는 채로 대답을 한다.
“현상범이잖아, 현상범. 이래저래 에테온부터 바로크까지, 사고를 좀 쳐 놓고 다녔거든. 잊힐 때가 되었나 했는데 새로 또 사고를 쳤지! 으하하핫, 그래도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닐걸? 그렇지?”
“그만 좀 하세요. 따지고 보면 당신이 저지른 일에 휘말린 것이잖습니까!”
툴로쉬는 슬슬 짜증 난다는 듯이 쥴을 흘겨보며 말했다.
둘이 툭탁거리려는 듯한 분위기를 깨듯이 투란이 다시 묻는다.
“마법으로 변장한 건가요?”
이는 툴로쉬를 빙긋 웃게 했고, 쥴이 살짝 입꼬리를 뒤틀게 했다.
투란이 툴로쉬가 무슨 일에 엮였는가에는 전혀 관심 없고 도대체 무슨 재주로 저런 변장을 했는가만이 궁금하다고 외친 셈이니까.
“마법의 도움을 받은 만큼 이런저런 잔재주랑 독특한 도구도 섞여 있지. 덕분에 그냥은 풀리지 않아. 나중에 알려 줄게, 투란이라면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거야. 자,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얼마나 듣고 왔지?”
툴로쉬가 웃음 지은 그대로 즐거움을 담아 얘기하고 물었다.
흥미를 담아 귀를 기울이던 투란이 냉큼 대답한다.
“가서 들어 보라던데요?”
“그렇군.”
조금 쓴웃음을 띠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툴로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쥴이 피식거리는 웃음으로 표정을 바꾸면서 말한다.
“마법사답구만, 그런 말만으로 저 멀리서 여기까지 쏘아 보내다니…… 대단해!”
“알드바인의 마법사들이 설득을 참 잘하기는 하죠. 하이로드 쥴도 그 설득에 여기 있는 건가요?”
투란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열심히 지으면서 물었다.
―그딴 표정으로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다만?
투란의 속셈을 엿보던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쥴은 바로 가운뎃손가락만을 세운 손을 내밀면서 투란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잔망스러운 말은 나에게 안 통해! 엘더 헌터 툴로쉬의 간곡한 청탁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거지! 그 점 분명히 해 두자고!”
“옛날에 사고 친 것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따로 해 주시는 겁니까? 그건 참 고맙습니다만?”
툴로쉬가 냉랭하고 정중하게 쥴의 말을 맞받아치고 있었다.
순간 쥴이 살짝 큰 헛기침을 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투로 툴로쉬는 외면한 채로 투란만 보인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덧붙인다.
“기분상 굉장히 간곡한 청탁이었어. 내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간곡한 청탁이고, 나랑 툴로쉬 사이가 좀 깊어서 오게 된 거야.”
“아, 네. 그렇군요.”
적당히 대꾸한 투란은 가만히 유리잔을 올려 혀를 할짝이는 채로 맛을 보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날름거리고 메롱 하는 듯해서 툴로쉬가 웃었고, 쥴은 혀를 차며 고개를 까닥거리는 불량한 태도로 되돌아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이번에 쳐들어온 그놈한테 나도 갚아야 할 빚이 좀 있기도 하지. 문제는 내가 직접 그 빚을 갚을 수가 없거든. 쉽게 생각하면 잡아 쳐 죽이면 되는 일이기는 해, 그런데 이미 몇 번 잡아 쳐 죽인 놈이거든. 몇 번을 잡아 쳐 죽였지만 그때마다 더 튼튼해지고 교활해져서 온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마 이번에 못 잡으면 혼자서 대범람을 일으킬 수도 있는, 그 등급이 뭐였더라? 어, 그래 티탄 클래스! 로드 오브 몬스터의 특성을 지닌 놈이 티탄 클래스로 완성될 가능성이 생겨나 버린 거야. 그래서 확실하게, 대강 쫓아 보내지 않고 이 세상에서 깔끔하고 분명하게 지워 버리기 위해 강력한 몬스터 로드를 섭외하자고 한 거지. 음, 그러다 찾아낸 몬스터 로드가 너야, 투란. 툴로쉬가 몇 년 동안 알드바인의 묘한 분위기를 보고 널 지목했으니까, 억울하거나 따질 일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자리 잡고 얘기해 봐. 으흐흐흣.”
어쩐지 말꼬리가 시비 걸고 싸워 보라 북돋는 듯한 낌새로 가득 차 있었다.
투란은 그 낌새를 싹 무시한 채로 음료를 홀짝이다가 툴로쉬만을 보며 묻는다.
“격퇴를 할 수 있는데, 없앨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막강하다고 소문난 하이로드의 단점 탓이지.”
툴로쉬는 머뭇거림 없이 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어리둥절한 말이었다.
단점이라 하면 보통은 약점을 말할 수도 있는데, 지금 툴로쉬 입에서 나온 단점은 명백하게 약점과는 거리가 먼 의미로 들리잖는가.
“야, 야! 그렇게 말하면 치명적인 단점으로 너무 취약해서 꼼짝 못 한다는 말로 착각할 수도 있잖아! 거참, 그런 것 아니고…… 음, 뭐라 말해야 하지? 툴로쉬, 흘겨보지 말고 뭐라 말해 봐. 단점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말고.”
툴툴거리는 쥴은 인상을 구기면서 끙끙거리는데 좋은 말로 잘 이야기 못 하는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듯하다.
―흐음, 어쩐지 너랑 닮았네?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맹하니 쥴을 구경만 할 수밖에! 어째 이야기하다가 꼬여서 어리바리해지는 모습이 어쨌든 투란 자신이랑 닮았으니까.
툴로쉬가 어이없는 듯 잠깐 쥴을 노려보는 시늉을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몬스터 로드가 궁극에 이르렀고 해도 좋은 몬스터 하이로드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말이야. 몬스터를 살육, 파괴하고 그 잔유물로 남아 버린 정수를 삼키질 못하거든. 그래, 삼키고 지워 없애질 못하는 거야. 강력한 힘으로 파괴하고 살육하는 것만으로 끝장나는 몬스터에게야 별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점이지만, 어떤 형태의 살육이나 파괴로도 주렁주렁 뒤끝을 남기는 몬스터에게는 상당히 큰 문제가 되는 단점이지.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툴로쉬, 잠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끝장 못 낸 것 같잖아! 내가 시작한 잘못이 아니라고! 이거 순전히 카엘 그놈이 마무리가 어설퍼서 시작된 일이거든? 난 너 해 달라는 대로 해 줬어!”
막상 대신 이야기하라 해 놓고서 듣던 쥴이 불만을 드러냈다.
투란은 그 불만 속에 담긴 이름에 갸웃하며 되뇌어 본다.
“카엘? 대마도사 카엘이요?”
“응? 아냐! 하이로드 카엘! 카엘 룬 벨카인이라고, 그 이름은 없었냐?”
도감에 있던 하이로드 셋의 이름 중 하나였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있었을걸요?”
“그래, 그놈이 로드 오브 몬스터가 지닌 특성 따위 무시하고 다 불 질러 재를 만들었으니 끝났다고 배 짼 탓이라고! 그 뒤로 아주 신중해진 로드 오브 몬스터가 온갖 잔꾀를 다 써서 후계자를 감추고 방어적이 돼 버렸거든!”
쥴이 하소연하듯이 툴툴거렸다.
투란은 툴로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쥴의 이야기는 뭔 뜻인가 잘 모르겠으니 제발 대신해 달라는 듯한 간절한 눈빛이 투란의 눈동자 속에서 한껏 반짝였고, 툴로쉬는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린 듯이 하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짧게 요약하자면, 하이로드 카엘 님은 도감에 기록된 대로 인페르노의 힘을 지녔고 아낌없이 그 힘을 써서 바로크 왕국을 쳐들어왔던 로드 오브 몬스터를 무찔렀지. 하지만 로드 오브 몬스터의 계승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어. 이게 쥴 님이 말하려는 이야기고…… 투란, 지금 끝장내야 하는 로드 오브 몬스터는 하이로드를 몇 번이나 상대하고도 살아남은 영악한 놈이야. 다시 하이로드가 나선다면 녀석은 그에 대한 대처뿐 아니라 또 한번 패배할 준비까지 갖췄다고 봐야 하지.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은 여기 쥴 님이 제안한 방법뿐이고.”
“어떤……?”
투란이 갸웃하며 쥴을 흘깃하는 채로 흐릿하게 되물었다.
툴로쉬는 이 또한 짧게 요약하듯 대답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의 자취, 흔적을 끝까지 추적해서 진정한 최후를 확인하고 그 정수를 깨끗하게 지워 없애는 것이지.”
“아, 네. 그래서 어떻게요?”
살그머니 한쪽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투란이 다시 물었다.
지금 툴로쉬가 한 말은 ‘잘하면 돼!’라는 소리랑 똑같으니까!
툴로쉬도 문득 깨달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지만, 하던 말을 잇고 있었다.
“그게 가능한 힘을 획득하는 것이 첫걸음이지. 하이로드가 몇 번을 나서서 못 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힘, 과거 최강의 몬스터 로드라 불렸던 칼로드의 유산을 얻는 것부터 말이야.”
“최강……?”
투란의 되뇜에는 어이없다는 의미와 함께 ‘그게 누구?’ ‘왜 최강?’이라는 낌새가 잔뜩 담겨 있었다.
쥴이 그 말투와 의미를 느낀 듯 낄낄거리며 말한다.
“으하하핫, 역시 칼로드가 누군지 모르잖아! 그것 봐, 황금매가 잊힌 시대야. 상아탑의 고집쟁이들 말고는 황금매를 제대로 알지도 못해. 그러니 황금매를 끝장내 버린 몬스터 로드, 최상급의 몬스터 로드가 어떤 수준인가를 세상에 각인해 준 최강의 몬스터 로드로 불리던 칼라드이지만, 지금 누가 아냐고! 으하하핫!”
투란의 눈길이 다시 얌전하게 툴로쉬를 겨냥했다.
그런 투란의 뇌리에는 놀란 드라고니아가 떠들고 있었다.
―황금매를 끝장내? 이게 무슨 이야기냐!
‘너 모르는 이야기를 내가 알겠냐?’
투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마냥 툴로쉬만 기대한다는 태도를 지켰다.
툴로쉬가 살짝 고집스러워 보이는 투란의 눈길에 쓴웃음을 꾸미면서 대답을 위한 말문을 연다.
“황금매의 재앙, 도감을 찾아보면 있을 거야. 그 이야기는 나중에 도감에서 직접 보도록 해.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 황금매의 재앙을 끝장냈지만 상아탑에서도 그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몬스터 로드, 이상하고 신기한 도감에도 어렴풋한 소문 정도로만 다루는 몬스터 로드의 일이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가 과거에 보인 힘의 편린은 최상급이 어떤 수준부터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아직 기억되고 있지. 아무튼 칼로드란 이름은 아는 이들에게 최강의 몬스터 로드란 의미로 전해져. 그리고 그는 기록이나 소문으로는 남겨진 바가 없지만, 자신이 정련해 낸 몬스터 에센스를 차세대 몬스터 로드에게 남겨 주기로 했어.”
“누가 칼로드가 전한 몬스터의 정수를 잇고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닌 모양이네요? 마치 오래전에 죽은 칼로드에게서 직접 전해 받는다는 말투잖아요, 툴로쉬.”
투란이 조용히, 담담하게 짚었다.
툴로쉬가 고요한 미소를 띄웠고, 쥴은 곁에서 껄껄거리는 웃음과 함께 큰 소리로 외친다.
“으하하핫, 똘똘한데? 맞아. 칼로드는 자신이 정련하고 조율하고 융화시킨 몬스터의 정수를 특별한 방법으로 남겨 뒀지. 그리고 내가 그 안내인이야. 전승자를 고르고 칼로드의 유산으로 이끄는 안내인! 맞아, 투란. 지금 짐작하고 있는 대로 칼로드가 남긴 몬스터의 능력은 하이로드도 일시적인 격퇴만 할 수 있는 로드 오브 몬스터를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린 그 조건을 맞출 수 있는 몬스터 로드를 찾고 있었던 셈이고, 너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초대한 거야.”
즐거워하는 쥴, 조금 씁쓸한 듯한 툴로쉬.
투란은 둘을 둘러보면서 가만히 몸을 뒤로 기대는 시늉을 하는 채로 이제껏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결론은 그리 어렵지 않게 금방 튀어나왔다. 하이로드의 단점, 그 때문에 칼로드의 유산이란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그 유산이라 불린 몬스터의 정수가 심상치 않기에 어지간한 몬스터 로드의 수준으로는 건드리지 못한다.
‘너무 이상한데?’
―수상하지.
하이로드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기에, 엘더 헌터의 기량에 대해서도 분명히 가늠할 수 없기에 투란으로서는 모든 것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드라고니아는 그 느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슨 수작이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듯했고.
때문에 살짝 투란이 어찌하나 고민하는 듯한 낌새를 드러내니, 바로 쥴이 키득거리며 쾌활한 웃음을 더해 말한다.
“음하하핫, 왜? 무슨 함정 같아? 덫을 두고 널 거기 처박으려는 것 같아? 으하하핫, 그렇게 느낄 수 있기는 하지만, 아니야.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한가? 음하하핫, 그래도 너라면 겁먹을 이유가 없잖아? 몰튼노트 기간틱이야 그렇다 쳐도, 신수라고까지 불리는 거미의 여왕님을 처리했잖아? 음흐흐흣, 그 여왕님의 힘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응용해서 적응할 수 있을 텐데? 으하하핫, 투란 일단 같이 가 보자고. 가서 직접 보면 의아함이 싹 사라질 테니까!”
“여기서 멀어요?”
결국 투란은 이렇게 되묻고 말았다.
―야, 호기심이 넘쳐나잖아!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분을 간파했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최강의 몬스터 로드, 주점의 주정뱅이가 취한 김에 내뱉는다면 뜬소문이 분명한 말일 텐데 엘더 헌터와 하이로드가 닥쳐온 골 아픈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택한 해답이라니…… 투란으로서는 순수한 호기심이 샘솟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과연 칼로드의 유산은 과거 격파했던 황금매의 문장을 다시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허기진 늑대, 펜릴의 문장은 예정된 먹잇감을 대신해서 칼로드의 유산을 삼켜 버릴 수 있을까? 투란만의 고유한 ‘천칭’의 압도적인 공허가 지닌 빈자리가 칼로드의 유산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몬스터를 삼키고 조율했기에 최강의 몬스터 로드인가?
온갖 궁금증이 투란의 호기심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과연 얼마나 멀리 있는가?
“거리는 좀 있다만, 오래 걸리지 않아.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
쥴이 투란의 낯을 보며 유쾌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