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0)
“여엇! 그랑카! 오랜만이야앗!”
쥴이 대뜸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 외침에 호응하듯 누군가 괴수의 턱 아래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곧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쥴, 꽤 일찍 오셨군요. 아, 이쪽 준비도 지금 얼추 끝난 참이에요. 바로 출발하실 수 있을 겁니다만…….”
그릉, 크르릉.
괴수가 머리를 치켜올리면서 쥴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으하하핫, 칼릭! 날 알아보는구나? 그래, 그래! 착한 녀석! 아, 그랑카. 머뭇거릴 시간 없어. 반나절이라도 놀다 갔다가는 툴로쉬가 내 머리통을 깨 버릴 거야. 수정은?”
졸졸 따르는 투란이 뭔가 알아볼 여유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칼릭이라 불린 괴수가 한층 더 괴이하고 복잡한 형태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앞발을 대신해서 앞발이 돋아날 자리에 발톱처럼 돋아난 여러 가닥의 기묘한 촉수가 살랑이고 날카로운 두 눈의 사이, 눈썹처럼 돋아난 뿔의 한복판을 덮은 각질이 길쭉한 타원처럼 돋아나 있고 세로로 감은 눈처럼도 느껴진다는 기묘한 모양…… 단순히 드레이크와 와이번만이 섞인 형태로 여길 수가 없었다.
어딜 봐도 묘한 이 괴수를 돌보는 듯했던 사내, 그랑카가 쥴의 말에 바로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투명한 수정을 꺼내 건넸고, 쥴은 그걸 받자마자 투란에게 고갯짓하며 말하고 있었다.
“얼른 타. 본 시티 구경할 여유 없다니까.”
“아, 네…….”
웅얼거리는 꼴로 대꾸하며 투란은 쥴이 들어가는 새장 속으로, 드레번이라 불리는 괴수의 형상을 흘깃하며 따라 들어가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랑카가 툭툭 드레번의 사납게 보이는 볼을 두드리고 말한다.
“잘 다녀와라, 칼릭.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여차하면…… 다 떨궈 버리고 와도 돼.”
말 끝자락의 괴이한 몇 마디는 투란이 귀를 쫑끗하게 했고, 쥴이 바로 새장 문턱으로 고개를 내밀며 으르렁거리게 했다.
“이 자식! 내가 칼릭을 너한테 데려다줬잖아! 잊었냐! 착한 녀석한테 괴상한 배신 따위는 가르치지 말란 말이야!”
“위험한 일에 착한 칼릭을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말하시는 게 먼저 아닙니까? 딱 봐도 험한 곳에 가는구먼……. 얘라도 안전하게 돌아와야죠.”
그랑카는 고개를 치켜올리는 뻣뻣하고 뻔뻔한 태도로 당당하게 대꾸하고 있다!
지켜보는 것이 어이없어진 투란이었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가도 모르는 채로 끼어드는 것도 애매하잖나? 그래서 투란은 화제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툭 하니 짚어 묻기로 했다.
“이런 괴수를 칼릭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그니까 칼릭이란 품종의 괴수가 또 있는 건가요?”
―얀마!
“뭐? 아냐!”
드라고니아의 소리 없는 외침에 어울리듯 그랑카가 강하게 부정했다.
쥴도 투란에게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고쳐 주는 말을 한다.
“얘 이름이 칼릭이고, 품종은 드레이번이라고 되어 있을걸? 미친 마도사였지만 마도학계에는 제대로 품명 보고를 해 놨다고 들었거든.”
“마도학계? 품명 보고?”
뭔가 낯선 낱말이란 듯이 투란이 갸웃했다.
그랑카가 곧바로 몇 마디를 더 보탠다.
“미친 마도사가 왜 나옵니까! 그런 소리 하고 다니니 이 착한 녀석을 몬스터로 착각하는 멍청이들이 늘어나잖아요! 얘는 당당하게 사육 가능하다고 인증된 마수잖아요!”
“이런 애를 교배해 내는 마도사가 제정신이냐? 얘가 착해서 다행이지! 야, 시끄러워! 너랑 떠들 시간이 없다! 문 닫는다, 투란!”
쥴이 그랑카에게 으르렁거리다가 냉큼 새장의 문을 닫아 버렸다.
구경하려다가 찔끔하며 투란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리고 새장의 창살 틈새가 곧바로 얇은 막에 덮이며 사방이 가려지는 광경은 투란을 살짝 놀라게 했다.
“응? 뭐예요, 왜 가려요?”
“왜 가리긴, 보지 말라고 가리는 거지.”
상황을 보면 당당하면서도 당연하지만 그 때문에 한층 더 수상한 대답이 바로 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이 투란의 눈길이 의심으로 번뜩이며 가늘어지니, 쥴이 쯧 하면서 다시 몇 마디를 더한다.
“알려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자의 거처니까. 풍경 기억했다가 떠들면 그 몇 마디에 찾아보려는 작자가 생길 수도 있고. 뭐, 이번에 네가 목적을 달성해 낸다면 굳이 더 비밀로 놔줄 필요도 없어지긴 할 거야. 그러니까 투란 네가 잘해야 해.”
말과 함께 쥴은 가림막과 함께 생겨난 선반 같은 좌석에 올라앉고 있었다. 둥글게 처진 선반인지라 어디 고를 곳이 없기는 했지만 투란은 일단 쥴을 마주 보는 쪽으로 올라앉았다.
쥴이 수정을 떨군 것은 투란이 그렇게 앉자마자였다.
투란이 뭘 하나 어리둥절할 때, 수정이 바닥에 부딪혀 바스러지는 듯한 순간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을 터뜨렸다.
―이런 젠장! 왜 저게 여기 있는 거야!
‘야, 아까 그 그랑카란 아저씨가 줬잖아.’
―그 인간이 왜 저런 걸 갖고 있냔 말이다!
‘몰라, 조용히 좀 해…… 근데 저 수정이 대체 뭔데?’
눈가가 절로 떨리는 것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떨군 수정이 새장의 바닥, 어찌 보면 칼릭의 등껍질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한 바닥에 흩어지는 꼴을 봤다. 그야말로 일회용이었다는 듯한 그 기묘한 파괴와 함께 묘한 마력이 곧바로 칼릭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어라? 야, 이 마력 설마…….’
―그래, 윌 라이트의 마력이다. 저 수정은…… 활성화하면 윌 라이트의 마력을 방출해서 지정된 주문을 행사한다. 원 스택의 마도구라고, 드라코눔에서 쓰는…… 깨지기 전에는 마력이 활성화되지 않아. 탐지도 알고 해야 하고!
‘춤추는 산맥의 이상한 도시에 사는 괴상한 아저씨 손에서 나올 물건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
우렁찬 대답을 마음 한구석으로 치우면서 투란은 쥴에게 묻는다.
“뭘 한 거예요?”
“칼릭에게 목적지를 알려 준 거야. 이크, 움직이는군.”
쥴이 대답하는 사이, 돌연 엉덩이를 밀어 올리는 감각이 번져 왔다.
드레이번이란 공식적인 품종명을 지녔다는 괴수 칼릭이 상승한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사방이 막혀 보이지 않았지만 선명한 부양감이었고, 곧 새장이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칼릭의 날갯짓을 알게 해 줬다. 그리고 묘하게 체온이 상승이라도 한 듯이 바닥으로 보이는 등껍질 틈새로 불끈불끈 핏줄이라도 돋는 듯한 광경까지 보인다!
―설마 진짜 피오름의 눈알을 박아 넣은 거였나!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응? 피오름? 그건 뭔 눈알인데?’
투란이 핏줄의 불끈거리는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왠지 불길하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쥴을 흘깃거리는 채로 소리 없이 되물었다.
―그건…….
“피를 가속시키고 팽창시키는 중이야. 칼릭의 이마빡, 눈알 사이에 타원형 껍질을 봤지? 그게 몬스터의 잔유물을 이식해서 키운 것이거든, 피오름의 눈알이라고…… 이 녀석 몸에 융합시켜서 더 이상은 몬스터의 체 조직은 아니게 됐어.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아, 피오름의 눈알이 뭔지 모르냐? 혈압을 상승시키고 감각을 흩어서 광란에 빠지게 하는 눈알인데, 나름대로 유명한데?”
쥴이 다독이듯, 하지만 투란이 불안해하는 것이 재미있어 보인다는 듯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투란은 흠칫하며 속삭임을 뱉어 내고 말았다.
“핏빛 광란의 마안……?”
“음? 들어 봤구나. 뭐,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하게 소문난 이름도 있기는 하지. 그치만 공식 지정된 이름은 피오름의 눈알이 맞아. 효과는 사람이나 짐승, 가끔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몬스터까지 미쳐 날뛰게 하지. 아, 어쩌면 핏빛 광란이란 쪽이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겠는데? 음하하핫.”
쥴은 떠들다 웃었지만 투란은 살짝 낯빛이 파리해진 채로 새장 바닥에 드러난 칼릭의 등껍질, 단단한 각질의 비늘을 다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미쳤나? 마수에게 그딴 것을 왜 이식해!’
―가공 제작한 마수이니까. 혈류의 속도를 제어하고 몸 곳곳에 제때에 피를 순환시키기 위해 선택한 모양이다. 기생 문어의 체 조직도 그래서 붙여 놓은 모양이고. 내가 아는 드레번에게는 없던 부분들이지. 말하자면 이놈은 개량형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생각에 잠긴 드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한 가지만을 확실히 쥴에게, 드라고니아에게 동시에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걸 붙여 놓고도 이 녀석이 몬스터가 아닌 마수라고요?”
“그런 걸 붙여 놔서 이 녀석이 몬스터가 안 된 마수인 거지.”
고스란히 투란의 말을 되뇌는 듯한 대답과 함께 쥴이 킬킬거렸다.
“그게 무슨…… 으헛!”
“그런 일이러러러부르커으!”
다시 캐물으려던 투란이 흠칫해서 바로 몸을 낮추며 앉아 있던 선반에 엎어졌다. 쥴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로 버티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투란이 살짝 놀란 소리를 내는 사이에 쥴은 입안으로 몰아닥치는 바람결에 잇몸이 훤히 드러나듯이 입이 훌렁 까진 꼴로 활짝 연 채로 볼을 부풀리며 하던 말을 망가뜨리고 있는 몰골이 되고 말았다.
느닷없이 새장이 가림막부터 으스러지면서 튼튼해 보였던 창살이 응축되는 듯한 모양으로 사그라들어 버린 탓이었다. 갑작스럽게 사방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드레이번 칼릭이 날개를 반쯤 접은 채로 엄청난 가속을 시작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가속에 방해되는 등짝의 설치물, 새장은 마법을 발휘한 듯이 커다란 쟁반이나 접시처럼…… 배낭처럼 칼릭의 등에 들러붙은 장신구가 되어 있는 채였다.
―허어? 촉수가 풍압의 배출구라고? 이런 식으로 급가속하는 기능을 추가했다니…… 이 정도면 촉수의 풍압만으로 땅에서 치솟을 수도 있겠는데?
드라고니아는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상황을 주절거리는 중이었다.
덕분에 투란도 금방 알 수는 있었다.
칼릭이 날개의 앞쪽을 목에 붙이고, 끝이 부풀어서 구멍 난 대롱처럼 변한 촉수 가닥을 몸에 붙여 강렬한 바람을 터뜨리고 쏘아 냄으로써 가속하고 있는 상황! 간혹 입을 크게 열고 숨을 들이켜는데, 내쉴 때는 입을 꼭 다물고 촉수를 통해 맹렬하게 폭발하는 바람을 뿜어내는 셈이었다.
그런 가속 와중에도 칼릭은 꼬리와 날개를 이용해서 방향을 정확하게 잡으면서 비스듬히 내리꽂히는 중이었다, 저편에 우람하게 치솟은 절벽을 향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몸을 납작하게 칼릭의 등 쪽으로 붙인 투란은 몇 가지 기묘함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보호막? 절벽? 구멍?’
쥴이 꼿꼿한 채로 입이 슬슬 찢어질 정도로 받고 있는 가속의 풍압이 투란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새장이 응축된 쟁반으로부터 일정한 높이까지는 그 풍압이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비스듬히 가속을 유지하며 내리꽂히는 칼릭이 향하는 절벽에는 굴이 뚫려 있었다. 얼핏 꽉 막힌 담장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절벽 안을 향해 깊이 열린 구멍이었다.
―이 미친 하이로드는 지금 자해하는 중이고, 탑승자를 보호하는 마력 장벽은 영역 지정이라서 자세를 낮추고 바싹 붙어야 적용받는 것이 맞아. 저 절벽의 굴은 착시를 유도하도록 가공된 거야. 드라코눔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만.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투란의 의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 주는 사이, 칼릭은 구멍 안으로…… 절벽의 굴속으로 파고들며 비행을 이어 가고 있었다. 뛰어들기 전과 다른 그 비행 방식은 투란을 새삼스럽게 놀라게 했다.
“우워어! 줄타기야, 뱀 헤엄이야!”
어이없어 놀란 소리도 내게 할 지경이었다.
바람을 압축해 토해 내던 촉수가 그 끝을 날카롭게 한 채로 굴 안에 돋아난 바위를 휘감아 당기며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고 꼬리의 흔들거림은 격렬한 가속과 감속의 교차 속에서 칼릭의 자세를 정교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 촉수의 움직임은 줄을 건너뛰고 타는 듯했고, 꼬리로부터 몸으로 이어지는 율동은 그야말로 물 위를 건너는 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 것!
쥴이 입꼬리가 찢어진 채로 엎어지면서 낄낄거리는 말투로 떠들었다.
“캬하! 내가 이래서 이 녀석을 좋아한다니까! 칼릭, 멋지다! 으하하핫, 여기에 이 포션을 더하면! 끼아앗! 그래, 바로 이 느낌이지! 으하하핫, 응? 투란, 너도 어디 상처 났니? 포션 좀 줄까?”
찢어진 부분이 입가뿐 아니었다.
쥴의 눈꼬리도 찢어졌고 눈알도 반쯤 짓이겨진 채였다.
얼굴은 바람결이 아니라 칼날에 긁힌 듯했고, 목과 어깨 언저리도 날카롭게 베인 흔적이 남은 꼴!
그런 몰골로 떠들면서 팔뚝에서 꺼낸 작은 주머니를 그대로 터뜨리며 포션을 뿌리며 팔딱대며 말하는 쥴…….
투란은 쥴을 단호하게 걷어차고 한 대 칠 준비를 갖추면서 외쳐야 했다.
“이 미친 아저씨야! 어디다 군납 포션을 들이대려고! 당장 절로 안 치워! 확 차 버린다!”
“음? 으하하핫, 뭐야 너 이거 맛본 적이 있구나? 크하하핫! 대체 언제 어떻게? 응, 말해 봐, 일부러 맛본 거야? 아니면 누가 뿌렸나?”
그릉, 크르릉!
드레이번 칼릭이 강렬한 콧김과 함께 세차게 몸을 흔들며 벽에 붙어 비행을 멈추고 올라가는 사이, 투란은 쥴의 보채는 소리를 외면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