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1)
Chapter 215. 전설의 계승?
“꽤나 시끄럽군. 매번 이렇게 소란 피워야겠나, 쥴?”
고요한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깊은 동굴이 목청 노릇을 하는 것처럼 굵고 넓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쥴이 낄낄거리며 투란에게 ‘어떻게 맛본 거야? 응? 얼른 얘기 좀 해 봐! 이 군납품 맛본 녀석들은 하나같이 다른 상황이라니까! 넌 대체 어떤 경우였어? 아, 궁금해 죽겠네!’라고 퍼붓던 목소리를 단숨에 찍어 누르기도 하는 깊은 울림이었다.
투란은 일단 쥴의 목소리를 눌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칼릭의 등에서 내려서며 주변을 살피는 와중에 굴의 한쪽 그늘이 통째로 움직인 것처럼 느릿하게 울림의 주인이 나서고 있다는 조금 기이한 상황이 신기해서 재빨리 그쪽에 관심을 집중해야 했다. 외면이라도 하면 그나마 쥴이 조금 조용해질까 하는 기대도 하는 채인데…… 이 기대는 바로 외면받았다.
“아, 영감! 글쎄 말이야, 내가 군납 포션, 응, 그 포션 있잖아. 군납품으로 군단병들에게 보급되는 효과 좋은 만큼 고통도 절륜(絶倫)하다는 그거! 그걸 살짝 얘한테 뿌려 보려고 했거든! 근데 말이지…….”
쥴이 신나게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투란이 겨우 그 실체를 파악하며 황당해서 입만 벙긋거리는 상대를 향해 요란스럽게 떠들다가 멈췄다. 그야말로 목이 단숨에 잘린 듯이 고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느릿하니 그늘진 형상을 지워 버리듯이 동굴을 밝히는 마법의 횃불 아래로 나선 이…… 둥글게 휘말린 뿔과 길게 내민 입, 아래턱 쪽에 허연 줄기처럼 굵은 수염이 무성히 드리워진 모습, 눈가와 볼, 드러난 살갗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비늘 진 가죽이며 오래된 세월이 한없이 드리워진 듯한…… 어딘가 투란이 삼켜 품고 있는 드라고와 닮았으면서도 지성(智性)이 맴도는 눈동자가 그런 몬스터와는 전혀 다르다고 경고하는 듯한 모습의 존재가 말문을 열고 있었다.
“쥴, 꽤나 특이한 소년을 모시고 왔군? 흐음…… 설마 덤벙거리는 쥴이 자네를 찾아올 줄은 몰랐어. 이건 정말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로군. 만나서 반갑네, 투란.”
“네?”
이름이 불렸기에, 그리고 그 부름 속에 자신에 대해서…… 같은 이름을 지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알고’ 있다는 의미를 뼛속까지 파고드는 소름과 함께 느끼면서 투란은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벙긋거리는 시늉은 하지만 전혀 목소리를 못 내는 꼴이 된 쥴이 곁에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간신히 다시 새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만해, 영감! 나 숨 막혀! 이건 사일런스 주문도 아니잖아! 날 질식시켜 죽일 참이야!”
“엄살 그만 부리게. 큐라드, 오랜만이라고 너무 장난이 심하구나. 그만 쥴을 놔주렴.”
오래된 뿔을 살짝 저으면서, 혀를 굴려 차는 듯한 말이 나왔다.
그 말에 호응해서 쥴의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굵직한 바람결이 뭉클거리며 흘러나와 퍼졌다. 마치 조금 전까지 쥴을 휘감고 있던 것이 바람의 밧줄이고 담장이었다는 듯한 낌새였다.
투란의 입술 사이로 그 바람의 정체가 새어 나온다.
“정령수……?”
“스피릿 아티팩트, 바람의 성질을 지닌 아이 큐라드라네. 자네 아이, 아니 아이들인가? 그래, 그 아이들의 이름은 뭔가?”
이 물음은 투란에게 확실하게 결론짓게 했다.
드라고니아, 투란의 문장 속에 담긴 드라고니아와 같은 일족.
눈앞에 선 이형(異形)의 지성체는 분명히 드라코눔의 일족이었다!
“어떻게……?”
살짝 혼란스러워서 깊이 파고들려던 생각을 멈추며 투란이 한껏 의아함을 담아 한마디로 묻고 말았다. 그러자마자 쥴이 고개를 쓰윽 투란 눈앞으로 들이밀면서 히죽이 웃는 채로 말한다.
“뭐가 어떻게야? 이 영감이 드라고니아라는 것이 놀라워? 아니면 드라고니아이면서도 멀쩡하게 떠들면서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어이없어? 아니면 나의 웅장한 목소리를 단숨에 봉쇄한 바람의 정령이 신기해? 아, 그건 아닌가? 그런데 너도 아이가 있다면…… 설마 너도 정령수가 있냐? 정령과 계약도 아니고 정령수를 키우고 있어? 정말로? 너야말로 어떻게? 군납 포션은 언제 맛본 거야?”
“쥴, 그만 좀 닥쳐 주게나. 정신 사납게 굴고 있네, 자네.”
영감이라 불리는 것이 아주 잘 어울리는 노년(老年)의 드라고니아가 한숨과 함께 긴 혀를 차면서 쥴에게 핀잔했다. 그 말투, 그 묘한 몸짓 속에서 문득 투란은 친근함을 느끼며 깨달았다. 자신이 품고 있는 드라고니아가 동족을 만났음에도 뭐라 떠들기는커녕 윌 라이트의 마력조차 감춰 숨고 있었다. 문장의 깊은 곳에 숨어들어 가 이 세상과 떨어져 있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야, 너 왜 닥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닥쳐! 눈치챈다고, 저 망할 영감은!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눈알조차 굴지 말라는 듯, 윌 라이트의 마법으로 뇌리를 울리는 대신에 문장 속에서 버럭 외치는 찰나였다.
“앙헬…….”
노년의 드라고니아가 주름진 입가를 움직여 어떤 이름을 토해 내려 했다. 이 시도는 갑작스럽게 투란의 가슴팍에서 쩌렁쩌렁 울려 나온 목소리가 바로 파묻어 버렸다.
“닥쳐! 이 망할 영감! 뒈졌다면서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살아 있는 거냐고!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엉, 왜 살아 있는 거냐고! 드라코눔의 대원로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쥴이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투란은 입술이라도 벙긋거리는 시늉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물었다.
너무 한꺼번에 몰아닥친 이야기가, 그렇게 말을 터뜨린 존재가 투란과 쥴을 당혹스럽게 하는데 노년의 드라고니아…… 드라코눔의 대원로라 불린 이는 전혀 흔들림 없이 혀를 차며 대꾸하고 있었다.
“편안한 은퇴를 위해 죽음을 가장하기는 했다만, 그게 너에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잖느냐? 어차피 네가 성년이 되기도 전의 일이었고 말이지. 흐음, 그나저나 키린에게서 들었을 때는 과연 가능한가 의아했는데, 정말로 그 지경이 되어서도 이성을 찾았구나? 대단하구나, 투란. 저 성질머리가 고스란히 나올 정도라니, 키린이 기대한 이상이야.”
“키린?”
“그놈이 다녀갔나!”
투란이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중얼거리고 가슴팍에서는 울퉁불퉁하게 성난 소리가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곁에서 쥴이 외치기도 했다.
“영감! 얘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키린? 그 애가 뭘 어쨌어? 난 왜 모르는 거지? 우와! 투란, 너 대체 뭐냐?”
고작 셋이 마주한 상황은 점입가경(漸入佳境), 난장판이었다.
이 상황을 지속할 생각이 쥴에게는 넘쳐 흐르는 듯했지만 노년의 드라고니아에게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자리를 옮길까? 칼릭도 쉬게 해 줘야 하는데, 만나자마자 너무 목소리만 높이고 있군. 아, 투란 자네에게는 내 소개부터 했어야 하는군. 저 녀석, 자기 아명도 못 꺼내게 하는 꼴이니 내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겠지? 역시 그렇군.”
뿔이 저어지면서, 구부정했던 몸을 조금 펴며 어깨를 덮었던 날개의 기척을 살짝 드러내는 채로 돌아서며 나오는 노년의 목소리였다.
쥴은 입을 다물었고 뒤늦게 칼릭의 볼을 쓰다듬으며 널찍한 한구석으로 끌어다 주었다. 그렇게 드레이번이 옮겨지고 나서야 투란은 이 자리가 동굴의 끝자락이고, 절벽에 불룩 튀어나온 채로 어딘가로 들어가는 새로운 입구란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칼릭의 등에서 엿보던 것보다 더 깊고 은밀한 곳으로 통하는…….
“들어오게나, 투란. 인간에게 그리 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키린이 나름대로 괜찮다고 칭찬해 준 곳이라네.”
앞장선 탓에 바닥을 끄는 꼬리가 선명하게 드러난 채로 노년의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냉큼 그 뒤를 따르며 투란은 자신의 문장 깊은 곳을 향해 재빨리 소리 없이 물었다.
‘야, 너 왜 그래? 소리 내지 말고 빨리 설명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곧바로 울분에 가득 찬, 그래도 이번에는 마력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멈춘 대답이 돌아온다.
―뭔 설명! 저 작자가 오래전에 뒈져 버렸다는 드라코눔의 대원로라고? 이런 곳에서 미치지도 않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수상한 상태라고? 키린을 만나서 우리 얘기를 들은 것 같다고! 젠장! 키린, 이 망할 녀석이 대체 어떻게 나도 뒈졌다고 알고 있는 드라코눔의 대원로랑 만난 거냐고! 아, 그래! 그 수정! 저 드레이번 칼릭! 그것도 저 대원로의 짓이었어! 그래, 앞뒤가 맞네! 드레-번, 드레번을 가공 제작하는 일을 책임지고 관리한 것도 바로 저 작자였잖아! 이런 망할! 대체 여기 왜 온 거냐고, 투란! 저놈의 하이로드가아!
“시끄러운가?”
투란이 뇌리 한구석이 어질어질하다고 느낄 지경일 때, 불쑥 세월을 가득 담은 드라고니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에? 아, 뭐…….”
엉겁결에 대답을 하다가 투란은 흠칫했다.
하도 쩌렁쩌렁 떠들어 대는 탓에 그 내용을 파악하느라 바빴는데, 그런 사이에 투란과 쥴은 나란히 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날개를 의자 뒤로 넘긴 채로…… 3미터 가까운 그 큰 키의 몸을 앉힐 만큼 큰 의자가 신기한데, 그런 의자를 꽉 채워 앉은 모습은 한층 더 이질적으로 보이는 드라고니아가 보였다.
과연 문장 속에서 별빛 무리로 자신을 감춘 드라고니아도 재현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새삼 투란이 궁금해할 때, 다시 드라코눔의 대원로가 말한다.
“내 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나는 한때 드라코눔의 아칸이었고, 대원로라 불릴 때까지 오래 그 의무를 지켜 왔던 자…… 이제는 하이로드 쥴에게 그저 영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드라코눔의 일족, 인간들에게는 흔히 드라고니아라 불리는 종족의 늙은이 탈키오라네, 탈키오.”
“응, 탈키오 영감. 이제 투란이랑 키린이랑 무슨 일인가 얘기 좀 해 줘!”
쥴이 냉큼 소리쳤다.
투란이 살짝 질렸다는 듯이 쥴을 눈짓했지만, 쥴은 그런 것 알 바 아니란 듯이 으스스한 눈길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노년의 드라고니아 탈키오에게 다시 보채고 있었다.
“키린이 여기 두 번 온 건 아니지? 그러니까 저번에 나랑 왔을 때잖아? 근데 왜 난 모르는 이야기인 거야? 응? 도대체 뭐야?”
“말을 하란 거냐, 너 떠드는 소리를 들으란 거냐?”
탈키오가 늙은이만의 특권이란 듯이 느릿하게 되묻는 시늉을 했다.
투란은 그 태도에서 바로 샤오 할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인간인 샤오 할배랑 탈키오가 같은 짓을 하려는가? 그저 늙었다는 부분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쥴도 살짝 눈치챈 모양이었다.
“에잇! 알았어, 입 다물고 들을 테니까! 빼놓고 얘기하면 안 돼! 다 들려줘!”
문득 투란은 입술을 말아먹는 시늉까지 하는 쥴을 봐야 했고, ‘인간아, 우리 여기 대체 왜 온 거냐고!’라는 버럭 외침이 터지려는 것을 꽉 눌러 참아야 했다. 한편으로는 투란 역시 도대체 탈키오가 왜 키린을 들먹였는지, 자신이 품고 있는 드라고니아가 어째서 ‘앙헬’ 어쩌는 한마디가 나오는 시늉을 하자마자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 소리를 터뜨렸는지 궁금하잖나.
탈키오는 누가 궁금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손짓했다.
넓고 튼튼한 탁자가 바닥에서 솟아났고, 저쪽에서 주전자와 쇠로 된 그릇이 쏜살같이 날아와 탁자 위에 놓였다.
“목마르면 들으면서 따라 마시게나. 어디 보자,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으려나? 흐음…… 역시 키린인가?”
슬쩍 굵은 눈꺼풀을 깜박이면서 탈키오는 누가 보챌 것이냐는 듯이 투란과 쥴을 둘러봤다. 그 꼴이 보채면 보챌수록 늙은이가 이야기를 늦출 참이라는 경고였기에 둘은 그냥 입을 다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히죽, 노년의 드라고니아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어렸고 머뭇거림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늘 투란을 데려왔던 것처럼, 쥴이 이전에 키린을 데려왔지. 참 열심이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 쥴은 약속했어. 칼로드에게, 칼로드의 몬스터를 물려받을 수 있는 몬스터 로드를 데려와 준다고 말이지. 그리고 칼로드 또한 약속했지, 쥴이 약속을 지키면 쥴의 소망 한 가지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그 말이 진실이란 것을 알기에 쥴은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었지. 그래서 괴물 왕도 한번 데려오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대신에 괴물 왕자님을 데려왔던가? 흐음, 내 기억도 참…… 아무튼 그때 키린은 칼로드의 계승자가 되는 일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거절했어. 쥴은 몹시 실망해서 먼저 떠났고, 키린은 몇 시간 더 머물다 떠났지. 그때 키린은 내가 드라코눔의 아칸이었기에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더군. 언젠가 이곳에 에테온 왕국에 큰 피해를 입었던 미친놈을 품은 몬스터 로드가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때 그 미친놈은 더 이상 미친 채가 아니라 온전한 이성을 되찾고 본래 성격도 회복한 상태일 수 있다고 말이야. 그 이름은 투란이지만, 그란이나 아란처럼 쉬이 쓰이는 이름이지만 본명이라고도 했어. 뭐, 반쯤 믿고 반쯤 웃어 버린 이야기였네. 오늘까지, 오늘 투란을 볼 때까지는 말이야. 설마 정말로 몬스터 로드가 드라코눔의 비전 마력을 몸에 붙이고 스피릿 아티팩트까지 이뤄 내고 훌륭하게 키워 올 줄은 몰랐지만, 보자마자 알 수 있었어. 이 소년이 드라코눔의 미쳐 버린 아칸을 제정신 차리게 해서 품고 있다고. 그렇잖나? 실로 놀라운 위업이지. 그렇지, 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