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2)
“뭐가 그렇지야, 뭐가!”
쥴이 불만스럽게 으르렁거렸다.
미친 드라고니아니 어쩌니 하는 부분부터 납득하지 못했다는 듯.
투란으로서는 당혹스럽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훤히 보이는 거였냐!’라고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탈키오가 턱 아래에서 가슴으로 길게 늘어진 수염을 흔들면서 쥴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투란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이야기를 잇는다.
“쥴, 키린이 드라고니아의 광분을 마무리 지은 이야기를 알잖나? 그 마지막 부분을 잘 모르나?”
“응? 마지막…… 그야, 쳐 죽이고 드라코눔과의 관계를 어떻게 되살리려나 고민했다는 이야기? 몬스터 로드로서 기량을 처음 드러냈던 사건이었다는 것? 아니야? 그럼, 뭐? 영감! 사람 약 올리는 그 눈웃음 치우고 말로 해, 말로!”
쥴은 이것저것 짚다가 한층 더 짙어지는 탈키오의 웃음에 포기했다는 듯이 징징거렸다.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모습에도 그 웃음과 노회한 표정이 또렷해서 투란에게는 한없이 신기해 보이는 탈키오가 느긋하게 그런 쥴을 향해 말한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사냥했잖아. 그럼 그 마무리를 어떻게 하나? 쥴, 아무래도 자네는 오래 살면서 드라코눔의 일족에 대해 아는 탓에 이 산맥의 상식적인 생각은 못 한 모양이군.”
곧 쥴이 낯을 굳히면서 나직하게 되뇌는 소리로 되묻는다.
“삼켰다고? 키린이 드라코눔의 아칸을? 카엘 룬 벨카인이 그런 꼴을 지켜보며 냅뒀다고? 그런 위험한 짓을 그 꼬맹이 왕자가 진짜 저질렀다고?”
하이로드가 경악하는 듯한 모습은 투란을 놀라게 했다.
‘야, 너 그렇게 위험한 녀석이었냐?’
―몬스터가 되었다 해도 삼켜진 다음에 이성을 회복하게 된다면, 그건 엄청나게 위험한 상태이니까 하는 말이다. 드라코눔의 일족이 몬스터의 정수를 남겼다고 해도, 그 안에 지성과 이성의 결정 또한 담겨 있을 테니까. 키린이 저지른 짓은 그렇게 위험한 일이었다.
씁쓸하게, 투란의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이 당연한 듯한 말은 투란을 배 속부터 불끈하게 할 뿐이었다.
‘얀마, 그럼 나는! 키린은 대체 내게 뭔 짓을……!’
탈키오가 고요하게 한쪽 눈가를 치켜뜨면서 투란의 소리 없는 속삭임, 황당함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한다.
“키린은 투란을 만남으로써 그 위험을 막아 낼 수 있었다고 하더군. 자신이 광분의 원인이었고 살해자였기에 녀석을 품고 있어도 다독여 줄 방법이 없었지만, 투란 자네를 만나서 다시 말을 하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아칸의 본성을 깨워 줄 수 있었다고 말이야. 그렇기에, 자네에게 파랗게 빛나는 돌 몬스터를 받기도 했기에 보답으로 넘겨줬다더군. 드라고니아, 드라코눔의 아칸조차 자네의 관대하고 넓은 마음가짐으로 기꺼이 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든가? 흐음? 키린의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가?”
투란은 뭐라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키린에게 질렸다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입만 벙긋거리며 소리도 못 내고 말았다.
파란빛 돌이라니…… 이제는 거의 잊고 있었는데!
그 보답으로 우렁찬 ‘젠장’을 외치던 녀석을 품게 되었는데…… 사실 한참 지나서 꽤 많은 도움이 되었고 혼자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게 해 주는 동반자가 되기는 했지만, 키린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에 드라고니아에 대한 느낀 바라면…… 이 순간 여기서 노년의 드라고니아 탈키오가 말하는 바랑 전혀 다르다!
쥴이 곁에서 살짝 더하듯 중얼거리다.
“헤? 그 싹둑싹둑 파란빛이 투란이 준 몬스터였구나. 호오…… 그거 구하기 꽤나 힘든데…… 그걸 위험한 짐 덩어리랑 바꾼 거야?”
투란은 쥴을 보며 억울한 눈빛과 함께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보였다.
금방 쥴이 그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웃어젖혔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는데, 어째서인가 입 모양으로 ‘사기당한 거냐?’라고 할 뿐 놀리는 말을 소리 내는 것은 생략해 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심각했던 낯빛은 싹 지운 채로!
그르렁, 탈키오가 돌연 헛기침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드레이번 칼릭 같은 목 울림 소리를 냈다. 그리고 민망한 듯한 낌새와 함께 투란에게 말한다.
“시작이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듯하지만, 이제는 꽤 괜찮지 않은가? 허허헛, 아무튼 오랜만에 온 손님이 떠나온 고향 느낌이 풍겨서 조금 흥분했던 모양이군. 어쨌든…… 투란, 쥴이 저 모양이니 자네에게 물어야 할 듯하군. 정말로 칼로드의 시련을 받겠나? 아, 칼로드는 쥴이나 내가 고른 후계자일지라도 자신이 남긴 시련을 통해 한번 더 검증하고자 했다네. 역시 그 얘기는 못 들었나? 뭐, 몬스터 로드로서의 기량을 시험해 보는 정도라고 하긴 했는데……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이 말에 바로 쥴이 조금 진지해진 말투로 보탠다.
“최강의 몬스터 로드였으니까, 죽일 생각은 없어도 죽을 것처럼 힘들고 어렵기는 할걸? 하지만 괜찮아! 투란, 너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고 툴로쉬가 추천했고, 나도 너라면 거뜬할 거라고 예상해! 그럼, 괜찮을 거야. 정말로,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니까!”
어느 틈엔가 입꼬리를 실룩이며 슬슬 흥미가 돋아 새는 웃음이 낯짝에 걸리고 있었기에 투란은 쥴을 한껏 미친놈인가 싶은 눈길로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런 시험인지 시련인지가 있는 줄 몰랐다고 돌아서는 것도 내키는 일은 아니잖나.
“그게…… 무슨 시험, 시련인지는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정중하게, 신중하게 묻는 투란이었다.
쥴은 간단하게 고개를 저었고 탈키오 역시 느릿하니 뿔을 흔들며 부정의 의미를 담아 젓고 있었다. 역시 무엇이다 말하는 대신에 괜찮다는 말로 때운 까닭이 있는 듯한 태도!
그리고 탈키오는 한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무딘 손톱이 굵직하니 허공을 긁자, 곧바로 한구석에서 굵고 긴 지팡이…… 투란이나 쥴 같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대형장대라 여길 만한 것이 날아왔다. 꽤 긴 지팡이는 느릿하니 일어선 탈키오의 뿔보다 높았다. 탈키오가 지팡이에 몸을 기대듯이 한 걸음 떼는 채로 말한다.
“칼로드는 어떤 시련인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네. 다만 시련을 각오한 자가 살려 달라고 빌면 멈춘다는 말은 했지. 그리고 그렇게 멈춘 자는…….”
미묘하게 이야기가 멈칫하는가 싶을 때, 쥴이 곧바로 이어 채우듯이 말한다.
“기억을 잃고 다시는 도전할 수 없게 된다고 했어.”
“에? 어떻게……?”
투란이 흠칫 놀라서, 엉겁결에 일어나려던 자세를 엉거주춤하니 멈추면서 되물었다. 몬스터 로드가 무슨 마법을 준비해 놨기에 기억을 지운단 말인가?
쥴이 긴 소파에서 발딱 일어나며 탈키오를 바라보며 이어 말한다.
“약속이었을걸? 시련에 도전하는 자가 스스로 하는 약속. 그걸 강제로 지키게 하는 것은…… 뭐였나 나도 잊었어. 그러고 보니 키린은 시련에 아예 도전을 하지 않았던가요?”
탈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린은 이모저모로 살펴봤고, 우리랑 다르게 뭔가를 알아낸 듯했어. 하지만 말은 안 해 주더군. 마치 시련 대신에 살펴봤기에 침묵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말이야.”
듣고 있던 투란은 슬슬 등골이 으스스해지는 느낌이었다.
“저기, 잠시만요. 음, 그러니까…… 옛날 옛날 살았던 몬스터 로드가…… 어, 요즘 찾아오는 사람이랑 무슨 약속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얘기잖아요? 그러면…… 아직 살아 있는 건가요? 칼로드가?”
뭔가 유령 나오는 괴담을 하는 중이냐고 묻는 셈이었다.
쥴이 투란의 조금 파리해진 낯을 흘깃하며 히죽거리며 말한다.
“살아 있으면 안 되냐?”
“그럼 굳이 후계니 뭐니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칼로드가 나서서…….”
투란이 살짝 으르렁거리는 듯하다가 잦아드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칼로드는 죽었다네, 오래전에.”
탈키오가 느릿느릿 큰 걸음을 옮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는 곧바로 투란의 낯을 조금 더 파리한 색조를 띠게 했는데, 쥴이 이를 알아차리고는 어이없어 웃음부터 흘리고 말았다.
“뭐야, 너 설마 죽은 사람이랑 약속이니 뭐니 하니까 무슨 망령이라도 나올까 봐 그러는 거야? 몬스터 로드가 망령 따위를 무서워…… 하는 녀석들이 있었네? 기가둠이랑 로그람이던가? 아, 솔로얀에도 살짝 그런 분위기가 돌았던가? 그쪽 살던 녀석들이 이상하게 망령이니 유령이니 하면 바싹 긴장하던데, 너도 그런 거야?”
“긴장하면 안 되나요?”
입술을 삐죽이면서, 앞장서서 걷는 탈키오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르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쥴이 한층 더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성큼성큼 걸으면서, 꽤 오랫동안 떨떠름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말한다.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러냐고! 사람 팍팍 찢어 버리는 몬스터 앞에서도 고개 빳빳하게 세우고 입가에 피칠한 채로 쳐웃는 놈들이 뭔 망령, 유령 이야기만 나오면 질린 표정으로 낯빛이 퍼래지냐고! 차라리 몸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괴물한테 소름 끼친다고 겁먹으면 이해나 하지, 그런 건 또 덤비라고 큰소리 팡팡 쳐 대고…… 대체 왜 그러는 거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오래 살았으면서, 왜 만난지 하루도 안 된 나한테 물어요? 여태 물어본 적 없어요?”
투란이 삐죽삐죽한 표정으로 쥴의 앞으로 나아가는 채로 중얼거렸다.
그 곁으로 붙으면서 다시 쥴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조금 더 빨리, 큰 걸음으로 느리지만 빨리 나아가는 탈키오의 늘어진 날개 끝자락에 바싹 붙으면서 투란은 안 들리는 척 못 듣는 척했다.
그러면서 아예 눈길도 주변을 훑어보는 척하는데, 문득 눈에 비친 풍경이 그대로 투란의 관심을 끌었다.
드레이번 칼릭이 통과해 지나온 동굴, 그 끝에 내려앉을 자리가 준비된 것처럼 동굴이 이어지는가 했는데 위를 보니 하늘이 삐죽하니 절벽 틈새 끝을 채운 모양으로 보였다. 나아가는 통로는 절벽을 양쪽 벽으로 삼아 오솔길처럼 트인 채였다. 마치 거대한 암벽을 지닌 산이 안팎으로 이리저리 갈라지고 파이면서 생긴 기묘한 지형을 이용해 꾸민 보금자리처럼…….
드라고니아의 체격으로 걷기에는 살짝 좁아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오솔길이라 불릴 정도로 널찍한 폭으로 통로가 이어졌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길 끝은 높이 치솟는 절벽이 만난 것처럼 막혀 있었고, 그 맨 아래편이 돌로 된 문짝처럼 꾸며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큰 그림을 하나 그려 놓기만으로는 심심해서 그럴듯하게 문짝처럼 주변을 쪼아 놓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막다른 곳에 그려진 그 벽화는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뿔수리?’
날개를 반쯤 펼쳤고, 그 늘어진 끝으로 발톱을 덮어 감춘 듯한 매의 모양을 했는데 선명하게 머리 한복판에 돋아난 뿔이 꽤 날카롭게 그려져 있잖은가. 온통 붉은색인 것도 조금 낯설고 이상한데…… 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인가?
“들어서기 전에 알아둬야 하겠군. 칼로드가 어떤 시련을 준비했는가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들어서기 위한 조건은 붙여 놨으니 말이야. 그리 복잡한 조건은 아니라네. 그저 몬스터 로드로서의 기량, 칼로드는 그것만을 요구했어. 즉 마법이라든가 강력한 도구에 의지하지 말고 순수하게 몬스터 로드답게, 맨몸으로…… 아, 벌거숭이란 말은 아니고, 무기도 들지 말고 시련에 도전하란 말이네. 이 조건을 지킨다고 약속을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서 약속을 깨면 바로 쫓겨난다네. 이해했나?”
“에,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투란은 갸웃했다.
조건이 단순하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죽은 사람이 혼자만 아는 시련을 준비해 놨는데, 안에 들어선 작자가 뭔 짓을 할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녕 유령이라도 되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척하고 여태껏 살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어느 쪽이든 도전하려는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걸리적거리는 이야기인데…….
쥴이 키득 하는 웃음과 함께 슬쩍 투란의 곁에 서면서 말한다.
“그 조건 때문에 이 영감이 여기서 사는 거야. 뭐, 간단히 말하면 감시자이고 관리자인 셈이지. 그리고 약속을 지키도록 마법도 걸 거야. 몬스터 로드에게 뭔 마법이냐고? 본인이 동의하면…… 그래, 아무리 추악하고 지랄맞은 마법이라도 본인이 동의하면서 참으면 몬스터 엠블럼도 가만히 있거든. 응? 아, 물론 영감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지. 내가 덤으로 끼어 있는 까닭은 그런 짓 못 하게 막을 목적이고 말이야!”
투란은 살짝 미심쩍다는 듯이 쥴을 바라봤다.
듣자하니 굉장히 좋은 마음으로 쥴이 여기 입회하고 있는 셈 아닌가?
그런데 이 하이로드, 진짜 그런 이유로 여기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야, 사람이 말을 하면 그렇군요, 하고 대충 믿어 봐! 어디서 사기만 당하다 왔냐! 아, 키린한테 사기당했던가? 야야, 난 키린 아냐! 순수한 야생의 하이로드라고! 하이로드가 설마 이런 일로 사기를 칠까! 아니라니까! 진짜로,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 여기 와서 지켜보는 거야! 최강의 몬스터 로드가 어찌 계승되나 궁금해서!”
주절주절 쥴이 떠들어 댔다.
오래 들을수록 뭔가 그 순수함이 빛바래면서 사라지는 듯한 이야기라 여기면서 투란은 가벼운 한숨을 쉬고 탈키오에게 묻는다.
“어떤 마법인데요?”
“쉽고 편한 마법. 어디 보자 그러니까 우선…….”
탈키오가 가만히 지팡이를 올리니, 지팡이를 휘감는 은은한 광채가 맺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