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4)
가장 처음 투란의 뇌리에 스쳐 간 괴수는 사막의 대형 모래벌레였다.
저렇게 모래로 이뤄진 호수를 죽죽 가르며, 등짝의 일부분을 요동치듯이 보이며 모래 속을 헤엄치듯 움직이는 모습은 거의 모래벌레나 마찬가지.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드레이번 칼릭에게서 봤던 비늘, 그 비늘 가죽이 모래를 밀어 올리고 몸통을 움직이는 녀석의 껍질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으니…….
‘칼릭과 마찬가지인 가공 생명체?’
몬스터인가 그저 마수인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상황을 되짚어 보면 모래벌레를 꼭 닮은 저것이 드라코눔의 대원로가 개입해서 여기에 풀어놓은 마수일 가능성은 꽤 크잖은가? 칼로드의 요청에 따라 돕기 위해 남아 있다고 했으니까.
투란은 추측하면서도 단정 짓지는 않았다.
칼릭의 비늘 가죽과 닮기는 했지만 모래를 들락거리는 그 몸통은 이제 세 토막이 나란히 길게 늘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서 어딘가 거대한 뱀…… 머리는 모래벌레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뱀일 가능성도 슬슬 엿보이는 중이었기에 섯부른 판단은 뒤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왠지 간간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저 비늘 무늬, 떼어 내면 모래벌레랑 꼭 닮은 바위나 돌 같은 껍질이 나오지 않으려나 싶은 비늘 무늬의 안쪽에서 거뭇한 지렁이 같은 것이 아지랑이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콰아아아…… 촤아앗!
투란이 이것저것 가늠하고 엿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이, 모래벌레를 닮은 녀석이 나선의 궤도를 따라 절반쯤 모래 호수를 건넜다. 그다음에 투란의 조그마한 의혹에 답하듯, 비늘 속의 지렁이가 뭉치며 비늘 밖으로 볼록 튀어나오더니 가늘고 긴 가시를 뿜어냈다. 가시는 다발로 튀어나왔고, 한없이 길어질 것처럼 쭉쭉 뻗어 나오며 엮인 채로 높은 천장과 넓은 공동의 테두리 벽을 후려치듯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둥글고 긴 몸통이 전진과 함께 좌우로 빙글거리며 한 바퀴 혹은 반 바퀴를 뒤척이며 꿈틀거린 탓에 줄기는 천장에도 벽에도 닿지 못한 채로 모래를 가르며 파고들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얼핏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나선의 궤도를 타고 중심에서 벗어나면 벽 쪽에 가까워질 것이고, 녀석의 움직임에 맞추듯이 커다랗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이 공동의 테두리 벽을 향해 밀려 올라오는 모래의 흐름을 타고 저 가시 줄기가 닿을 터였다.
‘왜?’
때문에 투란은 단순하게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칼로드는 대체 무슨 시련을 남겨 놨는가?
무슨 시험을 하기 위해서 저런 괴상하고 정체가 뭔지 의아한 괴물 혹은 마수가 이 모래 호수를 빙빙 처돌고 있는가?
잠시 후, 가속을 거듭하는 괴수가 뻗어 내는 가시 줄기는 결국 천장과 벽에 닿았다.
벽이 긁히고 천장에 흠이 파이면서 젤리와 슬러시가 좀 더 굵게 망울지며 분출되는 광경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투란은 더 많은 비늘 무늬에서 더 굵직하게 꼬이는 채로 뻗어 나오는 가시 줄기가 자신이 버티고 있는 벼랑을 무너뜨릴 예정인 것을 깨달았다.
즉, 투란에게는 이대로 멀뚱거리며 구경하다가 모래 호수에 빠지든가, 젤리와 슬러시가 여기저기 맺힌 벽을 타고 움직이든가, 단숨에 저 원뿔 쪽으로 날아가 들러붙어서 또 무슨 일이 생기려나 지켜보든가 하는 몇 가지 선택이 곧바로 제안된 셈이었다.
그 선택 중에서 투란이 가장 먼저 치워 버린 것은 날아간다는 쪽이었다.
몬스터 로드의 기량, 솜씨를 평가하는 짓을 하겠다며 비행능력을 지닌 몬스터를 삼켰는가를 따지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평가, 시련이라 했으니 어떤 몬스터를 삼켰는가를 따지면 엉터리 아닌가!
그다음으로 투란은 모래 속에 뛰어들어 움직이는 선택을 치워 버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이 모래 안팎에 몸을 반씩 나눈 꼴로 봐서는 어떻게 하든 시편을 겪고 평가를 받겠지 싶기는 했지만, 서서히 시작되어 이에 맹렬해지고 있는 모래의 소용돌이가 심상치 않았다.
저런 속도로 꾸물거리며 소용돌이친다면, 모래벌레조차도 휘말려 담가 버릴 정도…… 유사(流砂), 흐르는 모래의 밑바닥은 그냥 무덤일 뿐이다. 만약 거기가 칼로드의 영원한 잠자리라 해도, 투란은 다른 곳 다 둘러본 다음에 마지막에 뒤질 참이었다.
‘그러면…… 역시 저 녀석이겠지?’
촤아앙, 콰르릉!
이런저런 선택을 둘러보던 투란의 눈길이 가까이 다가온 모래 속 괴수에게 꽂혔을 때, 여러 비늘로부터 치솟아 엮이고 펼쳐진 가시 줄기가 벼랑을 아래부터 긁으며 투란이 선 자리까지 베고 올라와 부숴 버렸다.
다른 곳을 찌르고 긁을 때랑 다르게 뭉쳤다 펼쳐진 채로 적당한 폭을 지닌 가시 줄기 묶음인지라 상당한 파괴력을 곧바로 드러낸 듯했지만, 투란이 보기에는 어서 뛰어내려 밟아 달라고 보채는 손짓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에 따라 투란은 곧장 뛰어내렸고, 가볍게 줄기 묶음을 밟으며 괴수의 몸통으로 뛰었다.
‘역시……!’
줄기 묶음을 밟는 순간, 발바닥을 자극하는 느낌은 묶음이 흩어지며 줄기가 후려쳐 오는 듯했지만 거기에 순응해서 뛰고 나니 떨어질 곳은 당연하다는 듯이 괴수가 모래 위로 드러낸 몸통의 한 곳이었다.
투란이 망설이고 있었다면 발판을 무너뜨리면서 곧장 등짝으로 몰아넣었을 움직임이었고, 투란이 호응하자 가볍게 보태 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 몰아붙이는 괴수의 움직임에 투란을 보호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밀어붙이는 것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후려치고 모래 속으로 처박으며, 견디지 못하면 그냥 죽어도 상관없다는 사나움이 넘쳐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움은 멈추지 않았다.
발을 디딘 자리의 비늘이 뭉클거리는 광채와 함께 품고 있던 거뭇한 아지랑이를 확실하게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꾸며 밀어냈고, 그 지렁이가 뭉친 검은 반점이 비늘 표면에 드러나는 곳에서 가시가 치솟고 단숨에 수 미터를 뻗어 나오며 바늘 굵기의 창이 뭔가를 과시하는 듯했다. 이는 하나뿐인 가시가 아니라 비늘 하나당 십 수 가닥은 될 듯했다.
가만히 맞고 꿰뚫릴 수는 없기에 일단 피해 내기는 했지만 동시에 투란은 손발에 샤벨투스의 발톱을 형성해 나름대로 소소한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발끝으로 비늘의 윤곽을 찌르고 베어 벗겨 내려는 것, 손톱이 된 샤벨투스의 발톱은 단도처럼 키워 곧바로 뻗어 나온 가시 줄기를 다발째로 걷어 내며 베어 내려 한 것이 그 시도였다.
비늘을 벗겨 내면 가시를 쏘아 낼 것이 없어질 터이고 돋아나는 가시를 걷어내며 베어 낸다면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선 채로 버텨 낼 수 있을 터이니, 몇 수 앞을 내다본 반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반격은 곧바로 막히고 말았다.
가죽을 찌르고 베어 찢으려 한 발가락의 발톱은 비늘 가죽으로부터 퍼져 나온 기묘한 파동과 만나면서 찌릿찌릿한 느낌과 함께 움츠러들면서 절단력을 잃었다. 가시 줄기를 베어 내려 한 손톱은 한 가닥을 자르고 두 번째 가닥을 반쯤 파고들었을 때 그 절단력을 잃었다.
비늘도, 가시의 줄기 가닥도 샤벨투스의 발톱이 지닌 절단력의 비밀을 안다는 것처럼 기묘한 파동을 되돌려 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투란은 생각하지 않고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룡이 정점에 이른, 드레이크나 카프리곤을 비롯해 투란이 문장 속에 품고 있는 몇몇 몬스터가 제법 그 위력을 발휘하는 생체 파동…… 이 괴수는 모래를 들락거리는 채로 생체 파동의 기교를 발휘해서 샤벨투스의 발톱 속에 담긴 피의 격류, 맥동을 무효화했다.
그야말로 절단력의 근원을 막아 버린 셈이었다.
살짝 당혹스러웠지만 투란은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란 점은 금방 깨닫고 있었다. 칼로드가 이 괴수의 몸 위에 몰아붙여 놓고 무엇을 원하는가, 그 부분이 오히려 분명해진 셈이었다.
‘왜!’
조금 울컥했지만 투란은 칼로드가 원하던 대로 잠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 위험을 제거하고 이 괴수를 제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몸통을…… 모래 위로 돌출된 등짝을 껑충거리며 뛰어다니면서 피하는 꼴은 제대로 보여야 한다!
어떤 비늘이 가시를 쏘아 낼 것인가를 재빨리 간파하고 안전한 비늘 쪽으로 몸을 옮기는 일이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가라앉은 몸통 부분을 피해서 저편에 새로 솟구쳐 나오는 몸통 언저리로 옮겨가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지켜보고 적당히 신속하게 반응만 할 수 있으면 되는 일.
‘어라?’
서너 차례 강요된 상황 속에서 발걸음을 딛다가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칼로드가 도전자를 이 괴수 몸 위에 얹어 놓고 뭘 시험하려 하는가, 이것이 어떤 목적의 시련인가.
‘오러 윌더의 심사(審査) 같잖아?’
기억 깊은 곳에서 키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키린이 투란을 살짝 불신해서 강제로 학습시켜 준 것들이 투란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오러 윌더는 대부분 기사. 그 기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전투의 소양과 기술. 그 기초가 되고 기반을 이루기 위해 신체 단련을 하지. 쉽게 말하자면, 기사의 수준은 얼마나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가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할 수 있는가를 척도로 삼아 평가하는 거야. 그러니까…….”
화살을 퍼붓는 와중에 지면에 높이 박아 놓은 통나무 무더기 위를 달려 지나가게 한다든가, 단검 한 쌍만 들고 날아드는 화살을 모조리 쳐내도록 시킨다든가, 두 손을 뒤로 묶은 다음에 작은 원 안에 서게 한 채로 칼질과 창질을 피하게 한다든가…….
투란은 자신이 지금 이 괴수 위에서 겪는 것이 그러한 과정을 뭉뚱그려 모아 놓은 경우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심사가 이제 겨우 시작이란 것도 바로 추측할 수 있었는데…….
“하아, 젠장.”
예상을 하는 순간에 이미 심화된 심사 과정, 오러 윌더가 겪는다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시험에 해당하는 일이 투란에게 닥쳐오고 있었다.
먼저 괴수가 몸통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직진하는 와중에 그 몸을 비비 꼬며 좌우로 회전시키니, 발 딛고 있는 부분이 잠깐 사이에 모래 안으로 담그고 모래 안에 있던 부분이 위로 자리바꿈을 한다…… 그 와중에도 찔러 나오는 가시 줄기는 수가 더 늘어났고 뻗는 길이도 더 길어지는 채, 꼬인 다발이 아예 천장에 닿을 정도가 아닌가!
빠드득, 쿠드득.
천장에 갈라진 틈이 새겨졌지만 뚫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에 그 틈새를 비집고 메우듯이 젤리와 슬러시가 터져 나올 뿐이었다.
젤리는 쪼개지고 슬러시는 겉과 속이 뒤집힌 채로 콸콸 흐르며 터지는 듯한데, 그 광경을 눈가 한구석으로 보는 순간에 투란은 납득하기 어려운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모래잖아, 모래! 쇠가 아니라고! 바위도 아니고…….’
그렇게 자신의 예상을 부정하려는 투란을 놀리듯이 젤리와 슬러시의 파편이 닿은 모래가 증발했다. 방울진 파편도 훅 지워지는 듯했지만, 그 부피에 어울리는 만큼의 모래가 확실하게 허옇고 누렇게 휘날리며 증발한다!
하지만 젤리와 슬러시의 파편을 천장에서 후벼 파낸 가시 줄기는 멀쩡했다.
그 끝자락에 휘말려 비늘 위로 당겨진 채 철벅거리며 떨궈진 젤리, 슬러시의 파편은 모래를 증발시키는 강렬한 부식성(腐蝕性) 용해(鎔解) 능력의 체액을 피처럼 뿜어낼 뿐!
비늘 가죽과 가시가 일으키는 생체 파동이 그 철렁철렁한 이질적인 체액을 뭉치고 끓이는 꼴을 보니 어째 더욱 강력한 부식성을 갖춘 용해액이 된 듯하잖나!
얼핏 봐도 발 디딜 자리를 줄이고 더욱 빠르게, 더욱 정확하게 움직이라고 강요하는 듯한 광경이었고 투란은 굳이 내 발과 몸뚱이는 그따위 젤리, 슬러시의 피에 녹지 않는다고 들이댈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고!’
칼로드를 향해 외치듯이 마음을 다지며 투란은 모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괴수의 표면을 껑충거리며 뛰어 움직였다. 아직은 모든 비늘이 한꺼번에 가시를 뿜어내지 않았고, 젤리와 슬러시가 잠깐 머물렀던 자리는 회전과 더불어 금방 모래 속에 파묻히며 새롭게 발을 디딜 곳이 생겨나는 중이니까. 물론 그 자리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모래 속에 파묻혔던 젤리와 슬러시는 다시 그 표면이 드러날 때에도 그 자리에 달라붙은 채로 자글자글 끓고 있는 몰골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투란을 얹은 괴수는 모래 호수를 맴돌며 다시 원뿔을 향해 다가갔고…….
시련의 다음 단계는 원뿔의 뿌리가 되는 천장의 한구석이 찢기면서 드러났다.
괴수가 다가가면서 그 천장 몇 곳을 뻗어 낸 가시로 찌르고 긁으니, 곧장 가려졌던 장막이 찢기는 듯하면서 다채로운 크기의 구멍이 나타난 것이다.
그 구멍은 드러나자마자 붕붕, 윙윙거리는 소리부터 토해 냈고 그 소리랑 어울리는 것들이 함께 그 형체를 드러내며 튀어나왔다.
‘진짜로 그 심사를 흉내 낸 거야!’
기초적인 신체 능력의 확인, 그다음 과정은 오러 윌더로서 실전에 임할 수 있는가를 확인한다고 했다.
칼로드 역시 그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듯했다.
앞발 넷이 낫처럼 생긴 벌레 형태의 몬스터…… 벌인지 파리인지 모를 모호한 형태이지만 4, 50센티는 너끈한 그 체격이 생긴 대로 낫질만 해도 흉악해 보이는 녀석들을 떼로 풀어놓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