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5)
부우웅, 치잉챙…… 파삭, 콰직.
몸 가누고 발 디딜 자리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흉악한 칼날을 네 자루씩 쥔 채로 가끔 가랑이 사이로 꼬챙이도 들이미는 꼬맹이 떼거리를 상대하는 일은 난이도가 갑작스럽게 높이 치솟는 것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여전히 발 디딜 자리를 고르고 몸을 가누는 쪽에 더 주의할 수 있었다. 샤벨투스의 발톱, 손가락 발가락에 맺힌 몬스터의 위력은 칼날과 날개, 꼬챙이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쪼개고 부숴 버리므로!
쏟아져나온 벌레 무리 몬스터는 모래를 들락거리며 질주하는 발판 괴수처럼 강력한 방어능력이 전혀 없었다. 단지 빠르고 날카롭게 투란의 움직임을 훼방 놓기 위한 궤도로 날아들 뿐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이 단계의 목적을 어렴풋이 추측했고, 나름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반격의 수단과 능력을 점검한다는 것…… 몬스터 로드로서 지닌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는가를 시험하는 셈이었다.
반격을 못 한다면 날아드는 벌레 무리에 치여 넘어져 뒹굴다가 가시에 찔려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거나 젤리와 슬러시의 파편을 몸에 묻히고 자글자글 끓여 녹이거나…… 아니면 그대로 벌레 무리가 휘둘러 대는 낫에 썰리거나!
단순히 피할 자리만 찾아 재빨리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넘길 수 없는 시련이었다.
난도를 올리고 훨씬 엄격하게 높은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란에게는 오히려 이번 단계가 꽤 편안하고 쉬웠다.
거의 갓 삼켰다고 할 수 있는 샤벨투스, 그보다 하루…… 고작해야 이틀 더 오래된 바헬키마의 형상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거뜬히 넘길 수 있는데, 그 전에 기본적으로 몸에 심어 둔 몇 가지가 더해진다면 너무 여유로운 전투…… 유희에 가까운 상황일 뿐이었다.
‘이건 키린에게 감사를 몇 배로 해야겠지?’
한가함 속에서 투란은 자신이 이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살짝 즐기는 처지가 누구 덕분인가도 되새길 수 있었다. 매우 가혹하게 몸에 새겨진 오러 윌더의 비전, 그것이 몬스터의 형상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발휘되고 있으니…….
이러한 여유 때문에 투란은 원뿔에 가시 줄기가 닿는 순간을 분명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은 원뿔과 괴수의 거리가 몇십 미터로 좁혀들었을 때였다. 뻗어 나간 가시가 원뿔의 맨 아래쪽, 가장 뾰족해 보이는 부분을 긁었고 얇게 덧씌워 있는 듯했던 돌 장막의 파편이 흩어지며 계단이 드러나고 있었다. 계단은 원뿔의 안쪽으로 스며들며 가려진 채였지만 위를 향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맨 아래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부들거리며 바닥의 모래 소용돌이로 툭툭 떨궈지는 중이기도 했다. 흡사 씌워 놓았던 얇은 돌 장막이 사라지며 더 이상 원뿔의 구조물로서 버틸 힘이 없어졌다는 듯한 추락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금방 알아차렸다.
다음 거쳐야 하는 길은 저 계단이고 곧바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
이런 투란의 판단, 예측을 증명하듯이 괴수가 더욱 세차게 몸통을 회전시키며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가속했고 온몸의 비늘이 한꺼번에 거뭇한 아지랑이를 꿈틀거리며 가시 줄기를 뿜어낼 낌새를 드러냈다.
덤으로 높은 천장의 구멍에서 몰려 내려오는 벌레 무리의 수도 단번에 서너 배로 늘어나는 듯했으니…….
쿠웅, 팡!
일부러 세차게 발을 구르고 그 반발을 이용해서 투란은 무너져 내리는 계단을 향해 튕겨 날았다. 가시 줄기가 엮이면서 곧바로 투란의 발바닥부터 찌르려 했고, 비늘마다 이어진 가시의 방출은 화살이나 창이 비처럼 쏟아지며 투란을 너덜너덜하게 구멍 난 파편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이어졌다.
그 맹렬함이 투란을 새삼 깨우쳤다.
‘이젠 죽어도 괜찮다는 거야!’
오러 윌더의 심사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기는 하다고 키린이 이야기를 남겨 두기는 했다. 그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겁을 먹고 오그라들 것인가, 용맹하게 맞서며 향상된 기량을 드러낼 것인가. 지닌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엿보기 위한 단계라고 했다.
칼로드의 시련은 그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고, 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투란 자신……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마냥 그다음에 어찌 되었냐고 귀만 쫑긋거릴 때가 아니었다!
퍽, 퍽, 푹!
계단이 열어 놓은 통로의 외벽을 가시 줄기가 찔러 구멍을 냈다.
가시 줄기는 계단을 가로지르며 잠깐 앞을 막는 것처럼 통로의 안쪽 깊은 내벽까지 쑤시다가 빠져나갔다. 그렇게 찔린 내벽은 외벽처럼 얄팍하지 않은지 몇 가닥이 엮인 가시 줄기에 조그마한 흠이 파일 뿐이고 무너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잠깐 선 채로 머뭇거리는 사이에 계단이 흔들거리다가 떨어져 나갔다.
구멍부터 금이 가며 크게 허물어진 외벽의 틈새로는 벌레 무리가 불쑥불쑥 쳐들어왔다.
챙, 썩둑.
벌레 무리를 베고 밀쳐 넘기면서 무너지는 계단을 뒤로하고 투란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꽤 급박하게 몰아붙이는 셈이었지만 투란은 압도적인 모습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이런 시련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외치는 것처럼…….
상황이 변한 것은 외벽이 더 이상 뚫리지 않고 금이 가는 정도로 둔탁한 소리만 울릴 때부터였다.
엉덩이를 찌르려고 붕붕거리며 날아드는 벌레를 뒷발질로 걷어찬 다음에 투란은 계단이 덜컹거리면서도 더 이상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는 날파리처럼 날아드는 벌레가 아니면, 괴수의 가시 줄기 창이라든가 모래 소용돌이를 향해 추락하는 계단의 위협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원뿔의 외벽을 타고 안쪽으로 꽤 휘감아 올라온 듯한데, 계단과 통로의 폭이 제법 넓어진 까닭을 설명하듯이 벌레 괴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날 뿐이었다.
날갯짓하던 녀석들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고 길게 빠진 뾰족한 엉덩이를 머리통 위까지 끌어 올린 꼴은 전갈과 닮았다. 그런 새로운 형태와 함께 네 자루의 낫처럼 생긴 앞발…… 이제는 네 줄기 팔이라고 불러야 맞는 듯한 사나운 몰골을 들이대며 굽어지고 굵은 두 다리로 버틴 채로 덤벼드는데, 이 성장한 듯한 벌레가 나타나면서 날벌레 같은 녀석들이 바로 사라지기도 했다.
사각사각, 움직일 때마다 관절 사이를 울리는 묘한 소리를 내며 네 자루 칼날을 휘둘러 대는 듯한 선두를 고스란히 복제한 듯한 녀석들이 그 어깨 너머로 즐비하게 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장검 수준으로 확장한 샤벨투스의 발톱을 휘둘렀다.
카캉, 치이잉.
벌레의 칼날이 파이고 깨져 나가면서도 단숨에 잘려 나가지는 않았다.
“귀찮다고오오!”
투란은 포효와 함께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손가락 끝에 솟아난 손톱이 된 발톱뿐 아니라 손아귀 사이에 감춰 둔 샤벨투스의 이빨, 오래 사용해 온 제작된 칼날 또한 함께 휘둘러졌다.
파직, 서걱.
벌레 괴물의 선두가 몇 토막이 나면서 튕겼다.
그 잔해를 넘어 뒤에 선 벌레 괴물의 무리가 와글거리며 밀려들었다.
두 배로 커졌다 해도 겨우 1미터를 조금 넘는 키인 체격인 탓에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칼날이 꿰인 울타리처럼 투란에게 몰려오는 채였다.
투란은 먼저 샤벨투스의 이빨만을 휘둘렀다.
단번에 울타리를 이룬 녀석들이 토막 났다.
몬스터의 형상인 샤벨투스의 발톱보다 제련된 이빨 쪽이 더 날카로운 것인지, 아니면 샤벨투스의 이빨이 원래 발톱보다 날카로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아보려고 입을 열고 이빨을 키울 마음도 투란에게는 없었다.
다른 손을 내뻗으며 뒤를 잇는 녀석들을 향해 이글거리는 광채가 맴도는 샤벨투스의 발톱, 장검 같은 다섯 가닥 손톱이 휘둘러졌다.
결과는 처음과 아주 달랐다.
제련된 이빨처럼, 이번에는 단번에 벌레 괴물 한 줄을 토막 냈다.
내밀어진 낫의 칼날은 쌍쌍이 절단 나고 튕긴 채였다.
미묘하게 깃들여진 오러, 벌레 무리의 독특한 앞발 낫에 적응한 샤벨투스의 발톱이 드러낸 위력이었다.
“응, 되네.”
듣는 이가 없었지만 스스로 만족한 웃음을 섞어 속삭이는 투란이었다.
금방 멋쩍은 표정과 함께 웃음을 지운 투란은 더욱 맹렬하게 벌레 괴물 사이로 뛰어들며 다시 계단을 돌파해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무너지지 않는 계단이 더욱 빠르고 높게 투란을 도약시켜 주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투란은 넓고 둥근 창고처럼 보이는…… 실내였지만 광장이라 해도 좋은 곳에 도달했다.
그 광장의 중심에는 제법 거대한 몬스터가 있었다.
“흐음?”
살짝 묘한 신음이 투란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사각거리는 벌레 무리가 광장을 채웠다는 것은 투란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그 무리가 계단과 통로라는 제약이 없어진 공간을 채우며 몰려든다는 것도 투란에게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았다.
문제는 광장의 중심에서 이 벌레 무리를 열심히 낳고 있는, 벌레 무리의 엄마 괴물이 그 생산을 줄일 낌새가 전혀 없다는 것!
투란은 사고를 가속하면서, 몰려오는 벌레 무리와 낳고 있는 어미 괴물의 형태를 다시 관찰했다. 탁 트인 광장 사방의 풍경도 함께…….
어미 괴물은 개미와 거미가 섞인 듯한 상체를 지녔고 거의 몸의 삼분의 이 정도는 될 듯한 하반신, 길게 누였기에 후반신이라 할 만한 부분은 그냥 통째로 살덩이로 된 주머니 형태였다. 그 주머니의 끝은 각질로 된 꼭지가 돌돌 말린 채로 주머니를 봉한 뾰족한 장식을 단 방울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한 채로 까닥거리면 주머니가 주름을 잡고 뒤틀리면서 구슬을 돌출시키다가 툭툭 떨궈 내고 있었다.
그 구슬은 바닥에 닿으면 바로 깨지면서 담고 있는 걸죽한 액체와 함께 애벌레를 토해 내는데, 애벌레는 구슬의 파편과 자신이 담겨 있던 액체를 먹고 핥으며 순식간에 성체로 변해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변한 다음에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로 무리에 합류해서 적을 향해 돌격하는 자세가 돼 버린다.
그렇게 벌레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쥐어짜 내 떨궈 내는 어미 괴물, 세모꼴의 새 모양 투구라도 쓴 듯한 머리는 거미의 눈알을 잔뜩 달고 쉴 새 없이 자신의 앞에 쌓이는 잔해를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먹는 대로 살덩이 주머니가 꿀렁거리며 바로 새로운 구슬, 알을 낳을 준비가 끝나는 듯한 몰골은 괴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속의 생산, 도저히 출산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생산의 재료가 되는 먹을 것이 벌레 무리가 으깨지고 토막 난 잔해인 것을 보면 그러한 괴이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을 정도.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으깨진 잔해가 몰려와 쌓이는가는 의문을 품을 까닭이 없었다. 광장의 사방에 뚫린 구멍으로 붕붕거리는 날갯짓과 함께 잔해를 품에 안은 벌레 무리가 잔뜩 들락거리는 꼴이 훤히 보였으니까.
결국 이 광장의 풍경은 투란에게 확실하게 알려 주는 셈이었다.
벌레 무리를 열심히 처치하면, 더 많은 먹이를 먹어 치우는 어미 괴물이 더 많은 벌레를 낳아 밀어붙인다는 것. 어미 괴물을 어찌하려면 이 벌레 무리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
한데 1미터짜리 작은 녀석들도 일시적이나마 샤벨투스의 발톱에 저항하는 칼날의 낫을 앞발마다 달고 있었다. 어미 괴물은 엎어진 채로 머리가 대강 3미터 높이에 대롱거리는 중이었고, 수 미터를 뻗어 낸 앞발로 잔해를 닥닥 긁어모아 크게 벌린 입으로 쓸어 담는 폭식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앞발에 휩쓸린 벌레 잔해가 더 잘게 썰리고 토막 나는 꼴로 봐서는 역시 작은 녀석들보다 튼튼하고 날카로운 것이 분명했다.
투란은 이 상황을 힘들게 오래 끌면서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사고를 한층 더 가속했고, 빠르게 해결책을 궁리했다.
답이 떠오른 순간, 투란의 몸이 새로운 형상을 드러냈다.
보랏빛 머리카락과 새파란 살갗, 부푸는 몸집…… 등에는 날카로운 손톱자국 세 가닥이 짙은 저주의 불길한 힘을 너울거리는 형상이었다.
그 파랗고 커다란 몸을 향해 벌레 무리가 부딪히고 튕겨 나갔다.
정상적인 속도로 다시 주변을 둘러보면서 투란이 새파란 두 손을 활짝 펴고 두 팔까지 활짝 펼쳤다.
사각사각, 파팍, 툭툭.
벌레의 칼날은 바헬키마의 살갗에 긁어 낸 흔적조차 못 남겼다.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쉬는 투란의 등골이 투둑 하며 등짝 한복판에 굵게 돌출된 이형의 등뼈가 완성의 증거를 새겼다.
활짝 펼친 두 팔이 번개처럼 오므라들었고, 광장을 꽉 채운 벌레 무리와 어미 괴물을 축하해 주는 듯한 손뼉을 쳤다.
귀로 들을 수가 없는 굉음(轟音), 허공을 흔드는 격동(激動)이 손뼉 사이에서 퍼져 나오며 단숨에 광장을 휩쓸었다.
벌레 무리가 한꺼번에 으깨지며 무너져 내렸다.
단단한 각질, 날카로운 칼날의 낫이 모조리 모래처럼 부서지고 뭉개졌다.
어미 괴물의 살덩이 주머니가 출렁였고, 상체의 각질도 금이 갔다.
하지만 어미 괴물은 뭉개지고 무너지지 않았다.
그 광경을 향해 투란이 바헬키마의 입을 열고 중얼거린다.
“새끼랑 껍질 구성도 다른 거냐…… 흠, 제법인데?”
각질의 조직 구성이 같았다면 어미 괴물 역시 바헬키마의 형상 속에서 재현해 낸 더스크라이더의 격동 아래 모래 먼지가 되었을 터이기에, 그 격동을 회피한 것을 칭찬해 주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