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6)
Chapter 216. 전설
피잉, 콰앙!
칭찬하는 소리의 끝자락은 단숨에 도약한 다음에 내리찍는 바헬키마의 발 구르기가 내는 굉음으로 장식되었다.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 사이에 주변을 확인하는 채로 곧장 몸을 날린 것이다.
어미 괴물은 투란의 말소리에 주춤하다가 느닷없이 머리통부터 등껍질까지 짓밟히며 찌그러졌고, 쇠를 긁는 괴성과 함께 버티던 앞발을 꺾으며 머리까지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천장이 뜯겨 내려왔다.
버둥거리는 어미 괴물의 몸통 아래를 휘감는 기묘한 끈이 허공을 채우듯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여러 가닥의 끈이 천장에 닿아 단단히 박혀 있었다. 때문에 어미 괴물이 바닥에 깊이 파고드는 상황으로 인해 팽팽했던 끈이 천장을 통째로 뜯어내는 셈이었다.
투란은 갑자기 무너진 천장의 파편을 팔뚝으로 쳐 날리다가 그 너머에 새로 생긴 구멍을 봤고, 구멍 너머의 한층 위 천장에 붉게 칠해진 뿔수리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어미 괴물이 파묻혔던 바닥이 금이 가며 갈라지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탈출구를 찾아냈으니 어미 괴물과 벌레 무리가 있는 층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듯, 하지만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이라면 같이 저 아래로 추락해 버리란 듯이!
그 의미는 투란의 눈가에 핏대가 치솟게 했다.
‘애초에 뚫고 올라오라고 말을 하라고, 말을!’
소리 없이, 대답하지 않는 자를 향해 으르렁거림이 저절로 뿜어 나갔다.
쿠르릉, 한층 더 심한 울림과 함께 사방 벽이 찢기기 시작했다.
그 범위로 봐서는 아예 원뿔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모양이었다.
뿔수리의 표식이 있는 층으로 어서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파앙!
아까보다 가볍게, 최대한 몸을 솟구치는 발 구르기로 어미 괴물을 한번 더 밟아 주고 투란은 쏜살같이 천장의 구멍으로 튕겨 올라갔다. 제법 세찬 도약이었는지라 바로 투란이 내민 손이 뿔수리가 그려진 천장을 짚었다.
짧지만 날카로운 손톱이 곧장 다섯 손가락 끝을 장식하며 천장을 살짝 파고들었고, 투란은 금방 대롱거리며 매달리는 몸을 축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텅 빈 층이었고 벌레 무리도 어미 괴물도 없었다.
드르륵, 묘한 소리와 함께 투란의 시야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응?”
붙어 있던 천장, 뿔수리의 무늬가 새겨진 부분이 빙빙 돌며 아래로 내려오며 나는 소리였다. 그 내려오는 둥그런 범위를 보니, 무슨 마개처럼 투란이 방금 지나온 구멍을 막겠다는 의도가 확실했다.
“아놔, 진짜!”
듣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짜증을 소리로 뱉어 내면서 투란은 바로 허공을 박차는 동작으로 옆으로 몸을 튕겼다.
드륵, 쿠드득.
다시 한번 투란이 텅 빈 층을 확인하며 올라선 곳이 은근히 좁아 보인다는 생각을 할 때, 바닥이 꽉 맞물리며 봉쇄되었다.
한쪽 벽이 둔탁하게 밀려 나오며 좌우로 여닫이문처럼 갈라진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고, 투란은 그 너머를 보자마자 투덜거림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넓은 바위가 달랑 하나뿐인 계단처럼 놓여 있었고, 그 바위를 소파 삼았다는 듯이 누군가 앉아 있었다. 바위 너머로 벽까지 폭이 제법 있는 탓에 등을 기댄 모습은 아니었지만 단정히 앉아서 투란을 바라보는 눈길은…….
‘잔다? 죽었다?’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탓도 있었지만 숨소리도 심장의 맥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탓이 더 컸다.
사실 어지간하면 그냥 죽었네 하고 중얼거릴 만도 한 상황.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아닌 몬스터 헌터 중에서도 특이한 약물로 죽은 척할 줄 아는 이들이 한가득하잖은가. 그렇게 낌새를 죽이고 사냥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과연 최강의 몬스터 로드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저런 몰골로 살아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린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잠이란 말처럼 죽은 채로 저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을 꾸며 놔둔 것일까?
확인하기 위해서, 천장의 미묘한 틈새로 흐릿하지만 어둑한 풍경을 꿰뚫어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주변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피기 위해 투란이 한 걸음 옮겼다. 그 순간 투란은 앉은 자의 가슴에 박힌 붉은 반점이 어떤 형태인가를 알아차렸다.
붉은 뿔수리의 무늬…… 딱 몬스터 엠블럼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은 것.
‘붉은색 문장이 있었나? 아니, 그 전에 죽은 사람의 몸에 문장이 그대로 남겨져 있을 수가 없잖아!’
어리둥절하다가 자신의 아둔함에 투란이 한숨을 쉬려 하는데…….
꿈틀, 꿈틀!
조그마한 뿔수리의 부리가 살짝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저 가슴팍 한복판에 그려진 무늬가 아니었다는 듯, 사실은 시체 속에 살아 있는 채로 숨어 있었다는 것처럼 뿔수리의 머리가 큼직하게 작은 반점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에, 헐!”
황당함이 투란의 입에서 새어 나왔고 자연스럽게 방어 태세가 이뤄졌다.
아직 반쯤 남아 있던 바헬키마의 형상, 그 근육 속으로 샤벨투스의 날렵한 힘줄과 핏줄이 자리 잡으며 ‘악마의 심장’이 맹렬하게 여린 뱀파이어의 피를 맥동시켜 흘려 내는데…… 그 모든 것이 다음 순간에 오그라들었다.
투란은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허리춤을 조이던 띠까지 툭 떨궈지면서 거의 벌거숭이의 몰골이 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어떻게 저질러진 것인가, 따질 겨를이 없었다.
투란의 눈동자는 분명히 영원한 잠을 자는 것인가 싶었던 자…… 아마도 칼로드의 시체일 것이라 여긴 자의 훤히 뜬 눈알에 고정되어 있었다. 보랏빛 허공 속에 금색의 둥근 조각이 깊이 박혀 있는 듯한 형태가 도저히 멀쩡한 눈알이라 여겨지지 않는데, 그 금색 조각에서 느껴지는 눈길에 투란은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쉬이잉, 뿔수리의 날갯짓이 뒤늦게 투란의 귓가에 박혀 들었고 기괴한 눈동자에 고정된 탓에 시야의 한구석이 돼 버린 시체 가슴팍에서 뿔수리가 온전히 그 형태를 드러낸 것이 겨우 보였다.
투란의 생각은 이쯤에서야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고 아주 느릿하게 상황을 더듬고 있었는데…….
그리 오래 검토할 일은 아니었다.
딱히 어렵게 판단할 일도 없었다.
그저 몬스터 엠블럼이, 투란의 ‘천칭’이 봉쇄당했을 뿐이었다.
마치 늑대의 문장, 펜릴이 가슴에 스며들 때처럼.
선명하게 ‘천칭’이 검은 무늬의 손톱만 한 형태로 투란의 가슴에 드러났고, 그 때문에 몬스터의 형상이 모두 해체되었을 뿐이었다.
저런 눈알에 돌발적인 호기심을 느꼈을 아르고누스조차 해체된 탓에 최소한의 가죽조차 제대로 남겨 몸을 가리지 못한 벌거숭이가 된 것뿐이었다. 그나마 원래 입고 있던 바지가 다 찢어진 와중에 엉덩이에 살짝 걸쳐 있기는 했는데, 그것도 지금 발목까지 너덜거리는 조각이 되어 내려가 있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쓸 수 없도록 봉쇄당했다고 문장이 아무 능력도 없이 무능할까?”
키린의 목소리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투란의 뇌리를 느릿하게 스쳐 갔다.
저런 당연한 듯한 이야기와 함께 키린은 투란을 유혹했다.
이른바 상급 몬스터 로드라면 다들 알게 모르게 자각하고 있는 것, 문장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는 힘!
‘오러!’
투란은 자신을 향해 여전히 느리지만 포악하게 외쳤다.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당한 ‘천칭’도 포악하게 포효하듯이 오러의 위력으로 투란을 휘감았다.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오러 가드가 날갯짓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채로 투란을 부리로 쪼려는 시뻘건 뿔수리에 대항하려 한다!
쿨럭.
허파를 조이는 힘 때문에 투란은 기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숨을 몰아쉬며 잔뜩 펼쳐 냈던 오러 가드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뿔수리의 부리가, 발톱이, 날개깃이 파고들었다.
오러 위로 덧씌워지는 뿔수리…… 그 형체 속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었고, 몬스터 로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쓴다는 오러가 실려 있었다.
물론 투란을 조이는 그 마력과 오러는 투란의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기묘한 눈동자로 투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 이제는 저것이 시체인가 아닌가를 따질 여유도, 이유도 없이 칼로드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자가 일으키는 기괴(奇怪)한 이적(異蹟)이었다.
죽은 채로 생명을 기반으로 한다는 오러를 휘두르고, 죽어 버린 몬스터 로드에게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문장의 고유 마력을 버젓이 뿜어내는 괴이(怪異).
투란이 휘말린 것은 그런 현상이었다.
때문에 간신히 토해 나오는 숨결과 함께 억지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 하자는……?”
대답하는 말소리는 없었다.
다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몸에 동조(同調)하는 뿔수리, 그 오러와 마력.
깊이 일렁이는 보랏빛 허공 속에서 금색의 조각이 한층 더 짙은 눈길을 보낸다고 느낄 때, 투란은 온몸을 휘감은 뿔수리가 가슴으로 응축되며 파고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리에 있던 자신의 ‘천칭’을 꽉꽉 누르고 밀어붙이는 것처럼!
하지만 대체 어디로……?
‘설마…… 아니지!’
투란은 오싹함과 함께 몸에 새겨진 기억을 떠올렸다.
번쩍, 금색의 조각이 보랏빛 허공을 가득 채웠고 투란의 눈동자를 물들였다.
순식간에 해님처럼 투란의 두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어 일렁이는가 싶은 순간, 보랏빛 허공이 투란의 온몸을 휘감아 덮었다.
뿔수리의 붉은 형체가 투란을 완전히 채색했다.
그리고 투란은 오래전에 경험했던 일, 펜릴의 문장이 새겨졌던 순간을 다시 겪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연 속으로 ‘천칭’이 담기며 뿔수리가 당당하게 그 한복판을 찔러 덮었다가 활짝 펼쳐졌던 날개를 반쯤 접는 광경은 투란의 심상을 가득 채웠다.
* * *
기묘한 방이었다.
넓고 높은 원형의 방이었다.
중심에는 둥근 우물처럼 생긴 것이 놓여 있는데, 불길이 활활 치솟으며 우물이 아니라고 으스대는 중이었다. 그 불길을 내뱉는 우물의 위는 천장의 중심이었고, 한없는 허공을 향해 훤히 뚫린 채였다.
원형의 벽이 사방을 두르고 벽걸이와 벽감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뭔가를 걸고 담고 있는 풍경…….
그 안에서 손발이 없고 몸도 없는 채로 투란은 외쳤다.
“젠장, 이러지 말라고 정말! 나한테 대체 왜 이래!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사슬인가 뭔가 하는 수작인가! 왜 이러냐고!”
대답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물과 천장의 구멍을 잇고 있는, 거기 있었나 싶었던 여섯 가닥의 팽팽한 끈이 또렷하게 나타날 뿐이었다. 끈이 엮인 우물의 테두리가 빙빙 돌았고 천장에 고정된 끈은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고 나니 우물과 천장을 잇는 비스듬한 여섯 가닥의 끈 가닥이 어느 순간에 서로 만나며 교차하는 묘한 형태가 이뤄졌다.
투란은 굳이 살펴보지 않고도 육각형이거나 그와 닮은 그림자가 우물 위로, 천장 너머로 비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불꽃과 함께 드리워지는 그림자…….
반사적으로 투란의 마음이 그 그림자의 형태를 더듬었다.
지켜보고 느끼던 풍경이 사라졌다.
* * *
콰르릉, 콰아앙!
사방이 울리는 소리, 모조리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허공에 우뚝 선 채로 이를 바라보고 느끼던 투란은 문득 한 곳을 노려보며 살폈다.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 거기는 이미 폭삭 무너져 내린 듯했고 시체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추락하는 파편 틈새에 시체가 끼어 있지도 않았다. 그냥 원래 없었다는 것처럼, 시체는 뿔수리를 뱉어 내고 기괴한 짓만 하고 사라졌다!
콰릉, 콰앙!
촤아앙!
더욱 격렬하게 사방의 암석이 오그라들고 모래가 요동쳤다.
그 격변 속에서 투란은 자신이 오롯하게 허공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느꼈다’.
이렇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투란은 등 뒤에서 도도하게 펼쳐진 날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을 한껏 머금고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가볍게 하며 느릿하니 뿜어내는 기묘한 날개, 그 바탕은 가죽이었고 촘촘히 박힌 것은 깃털만이 아니라 두툼하고 강인한 각질도 함께였다.
누가 설명해 준 바는 전혀 없지만, 투란은 이 날개가 몇 가지 몬스터의 형상을 융합한 것이며 공중에서 멈춰 설 수 있게 해 주며 단숨에 머금은 바람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가속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개로 지금 어디를 돌파해 나가야 하는가를, 이마 좌우로 우람하게 솟은 뿔을 통해 투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떤 형상인가를 따지기 전에 투란은 이 자리에서 일단 벗어나야 한다는 ‘의무’를 느꼈다.
‘젠장.’
울화가 치밀었지만 투란의 등에서 이상한 날개가 움직였고, 저편에 오물거리고 있는 거대한 구멍을 향해 투란이 쏘아졌다.
파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