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78)
눈구멍의 뼈대 속에서 금색의 조각이 서로를 향해 길게 줄기를 뻗는 듯했다. 보랏빛 허공을 가로질러, 해골의 형체 안이 비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머리에 돌출된 뿔 사이, 미간을 좁히고 구긴 주름처럼 뭉친 가닥 깊은 곳에서 금색의 고리가 눈동자처럼 피어났다. 뼈로 이뤄진 형체가 텅 비었다는 것처럼 치솟는 기묘한 고리는 눈동자처럼 흔들흔들, 두리번거리는 듯이 움직였다.
그 눈동자는 잠시 후, 마침내 찾았다는 것처럼 정면을 똑바로 향하며 괴암산을 응시했다.
티잉, 콰아아아아!
우물거리는 굴이 강철 기둥의 파편을 토해 냈고, 배 속을 게워 내는 짐승이 산처럼 거대하면 이런 소리를 낸다는 듯한 울림을 뿜어냈다. 절벽이 허물어지고 으깨지며 앞발 혹은 손을 뻗어 내는 듯이 지체(肢體) 한 가닥이 튀어나왔고 가로막는 잔해를 짓밟고 치워 내듯이 땅을 찍었다.
쿠웅.
투란이 우뚝 선 흙 기둥과 괴암산 사이, 그 중심에 거대한 암벽이 세워진 듯했다.
콰득, 콰릉!
암벽이 거세게 응축되며 파편을 흘렸고, 수백 미터로 늘어진 절벽 곳곳이 파괴되는 와중에 투란 앞에는 백여 미터의 체구를 뒤틀며 감금된 절벽 틈새를 빠져나오려는 거대한 형체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금빛 금이 투란의 미간 사이에서 뻗어 나갔다.
괴암산의 거대한 형체 속으로, 오그라드는 그 윤곽 속으로 금빛의 선 한 가닥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었다.
괴암산이 우물거리던 굴을 크게 열며 한층 더 둔탁하고 굵은 굉음을 흘렸다.
그 굴속에서 괴수가 몸의 한 끝자락을 내밀면서 튀어나오려 했지만, 다시 좁혀 드는 굴에 물린 꼴로 멈춰지고 말았다.
궈어어어!
쿠르릉…….
‘이거 부작용이 있었나?’
투란은 자신이 쏘아 낸 눈빛, 묘하게 이마 언저리에서 엉기고 맺혀 뻗어 나갔던 금빛 가닥의 결과를 관측하고 생각하다가 갸웃했다.
뿔의 탐지 능력, 기괴한 두 눈의 시각과 뿔에 담긴 능력으로 괴암산 안쪽에서 맴도는 어미 괴물과 벌레 무리를 싹 지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이 이제는 괴암산 내부에만 남겨진 벌레 형태의 특이한 품종이라는 ‘앎’이 있었지만 투란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
딱히 괴물의 멸종을 아쉬워할 까닭이 없잖나?
마음에 꺼려지던 것이 사라지는 광경 속에서 의아함이 생겨난 까닭은 그런 결과를 만든 눈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뿔의 탐지 능력이 지금 투란에게 보랏빛 허무를 조여드는 초록 거죽이 생겨나는 중이며 금색의 파편을 휘감는 붉은 채광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변화를 알려 오는 것이다.
마치 이제껏 유지하던 힘이 사라졌기에 눈알이 또 다른 형태로, 전혀 다른 성질로 바뀌는 듯했다. 단지 한 번 쓰는 것만으로 잘 묶어 뒀던 매듭이 풀렸다는 듯, 지켜 오던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듯도 한…….
‘이러면 곤란하지!’
투란은 ‘작은 공방’의 심상 속에서 다시 도해를 훑어봤고 보랏빛 허무의 눈이 완전히 그 힘을 모두 소모하지 않았을 경우에 되살리는 방법을 더듬어 봤다. 칼로드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가, 투란의 마음속에는 두 눈의 힘을 소모하고 난 다음에 한쪽 눈이라도 보존하는 방법이 비춰 들고 있었다. 즉, 칼로드 역시 이런 식으로 눈의 힘을 방출한 다음에는 겨우 한쪽 눈만을 보랏빛 허무의 상태로 간신히 유지했다는 것.
‘짝이 안 맞는 눈이라니!’
투란은 울컥했다.
애초에 괴암산을 통째로 날려 버릴 ‘힘’이었다.
그 ‘힘’의 일부를, 괴암산이 품고 있는 아주 작은 파편 무더기나 다름없는 녀석들을 솎아 내고 지워 버리는 데 썼을 뿐인데 두 눈이 다 못 쓰게 될 위기인 데다가 한쪽이라도 온전하게 남겨 두면 다행이라니!
칼로드는 이 눈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던가?
‘작은 공방’의 심상을, 그로부터 제련된 형상을 지금 몸으로 삼은 투란으로서는 살짝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작은 공방’에서 설마 이 눈을 제련하고 단련할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아…… 쳇!’
의혹에 대한 답을 투란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칼로드는 이 눈을 연구했지만, 제련과 단련을 거듭할 수가 없었다.
그 위력을 함부로 몇 번이고 휘둘러 댄다는 것이 세계를 찢어발기는 짓이 될 수 있기에!
그래도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써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칼로드는 열심히 추측을 거듭해서 ‘작은 공방’의 ‘기억’ 속에 남겨 줬다. 뒤를 잇는 자가 두 번째로, 혹은 세 번째로 눈을 활용하게 되었을 때의 경험이 겹쳐지면 제련과 단련의 실마리를 새로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러므로 투란은 ‘기억’을 더듬었고 거기에 조금 전 자신이 사용했던 과정을 더하면서 아르고누스의 몬스터 로드로서 쌓아 올린 경험을 되새겼다. 그 결과를 투란은 곧바로 적용하는데…….
한쪽 눈구멍이 닫혔다.
뼈로 이뤄진 눈꺼풀이 덮개처럼 밀려 나와 가린 형태였다.
아직 열린 한쪽 눈구멍 속에서 보랏빛 허무가 금빛 조각을 머금은 채로 서서히 변해 가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뿔 사이 미간에 맺혔던 빛의 잔재가 열린 눈구멍 쪽으로 몰려 내려갔다.
눈의 변화가 멈췄다.
보랏빛 허무의 경계가 선명하게 확장되었고 금빛 조각은 그 중심에서 찬란함을 과시했다.
뿔의 탐지로 이를 확실하게 확인한 투란은 닫혔던 다른 눈구멍을 실 가닥 같은 틈새를 띄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열어 나갔다. 선명해진 한쪽의 영향이 서서히 그 틈새를 채우면서 반 이상이 변해 있던 눈구멍 쪽도 다시 본래의 형태를 빠르게 되찾아 갔다. 온전한 쪽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의지를 품고 밀어붙이는 것에 저항없이 본래의 형태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눈을 다시 온전하게 갖춘 투란을 향해 괴암산이 거대한 앞발 둘을 들어 올리며 허물어지는 절벽처럼, 기둥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광경을 자아내며 내리치고 있었다.
콰아아아, 쾅!
“하아아…….”
허공에서 흙 기둥이 뭉개지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투란은 짙은 숨을 내쉬었다.
입술 없이 뼈가 드러난 아래턱이 뾰족한 이빨을 가지런히 달그락거리면서 숨결 사이로 뭔가 흉악한 것이 섞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짙어졌다. 때문에 투란의 입은 재빨리 닫혔다.
‘젠장, 사고 가속……! 조금 느리다고!’
투덜거림을 속으로 삼키면서 투란은 조금 더 높이 치솟았다.
투란은 내려다보는 눈길로 괴암산이 절벽에서 한껏 응축된 몸을 빼내는 광경을 포착하며, 그 거대한 규모를 대충 가늠해 보았다.
여기저기 잔돌처럼 바위가 구르는 모양으로 괴암산의 파편이 멀리 내달릴 속셈을 간직한 것도 보였다. 그 우물거리는 입 같은 굴 안에서 괴수가 한껏 버둥거리며 비명을 올리는 꼴은 이제 더 버틸 힘이 없어 완전히 잡아먹히는 중인 상황을 알려 주고 있었다.
파앙, 날갯짓을 통해 더욱 높이 투란이 치솟았다.
단숨에 수백 미터를 상승한 다음, 투란은 몸을 웅크리고 팔다리를 한껏 모으며 날개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떨쳐 내며 한층 더 위로 튕겨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작은 공방’의 심상을 불길이 치솟는 우물 속에 집중했고, 몬스터의 형상을 단번에 해제했다. 알몸의 사람으로서 상공의 찬바람, 거센 돌풍에 기우뚱거리는 몰골로 서서히 추락하는 꼴이 되었지만 투란의 정신은 몬스터 엠블럼의 깊은 곳으로 잠겨 들었고, ‘심연’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 아래에서는 갑작스럽게 치솟아 버린 투란을 향해 괴암산이 도망칠까 바위를 던져 요격할까를 망설이는 듯,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듯이 갈팡질팡하며 지진이라도 일으킬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수십 미터를 흩날리듯, 한껏 웅크린 듯이 추락하다가 갑자기 몸을 활짝 펼쳤다. 그 가슴 한복판에는 검은 반점 같은 무늬가, 등 쪽에서 허리와 어깨 아래에 미묘한 검은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다!”
호쾌한 외침이 곧바로 투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웃음과 함께 투란의 허리와 다리를 휘감는 시커먼 잉크빛이 맴돌았고, 하반신을 감싸는 가죽 바지가 샘솟듯이 만들어졌다. 등에서는 곧바로 날렵하면서도 넓은 금빛 비늘의 날개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목을 휘감는 실은 살짝 가슴 쪽으로 늘어지다가 뭉치며 유니콘의 모양이 박힌 목걸이를 뱉어 냈다.
후우욱, 투란의 입술과 목이 금빛 비늘을 머금는가 싶은 순간 시커먼 바람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가며 아직 수백 미터 아래쪽인…… 백여 미터가 넘는 거체가 꿈틀거리는 광경을 향해 광대한 격자무늬, 성벽의 모양을 덧칠해 버렸다.
잔돌처럼 구르던 바위, 괴암산의 파편까지 모조리 그 덧칠의 범위 안에 담긴 채인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다시 두 팔을 교차하고 다리를 끌어당겼다. 드레이크의 날개 또한 몸을 감싸듯이 휘말았다.
그 몸 위로 시커먼 잉크가 번지고 시뻘건 금이 간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은 순식간이었다. 흡사 바위처럼, 점점 부풀며 거대해지는 시커먼 바위가 붉게 달아오른 핏줄을 머금은 모양을 하고 강하하기 시작했다.
괴암산과 그 파편이 퍼진 범위 전체로 시뻘겋게 금이 간 시커먼 결정질의 장막이 뒤덮였다. 미리 갈아 둔 격자무늬에서도 시커먼 잉크가 샘솟으며 결정질로 단숨에 변화하며 괴암산을 함께 억압했다.
녹아 흐르는 마그마가 성벽을 꾸미듯이 치솟아 울타리가 되었고, 괴암산과 파편 무더기는 단번에 그 울타리 안에 감금되었다. 강하한 장막이 지붕처럼 그 위를 완전히 덮어 채우고 나니, 갑작스럽게 절벽이 무너진 곳에 시커먼 마그마의 성벽…… 거대한 상자가 나타난 광경이 이뤄졌다.
마그마의 상자는 그 뜨거움을 안으로 감추듯이 크기를 줄여 나갔고…….
콰득, 콰릉, 쿠드득.
바위가 분쇄되는 음향을 한참 잇다가 한순간 찾아온 정적과 함께 사라졌다.
“푸핫!”
우득, 숨을 토해 내고 목을 돌리는 투란이었다.
뻣뻣해진 목에서 나는 소리를 느끼며 투란은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소리 없이 투덜거린다.
‘아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왜 난 자꾸 문장을 바꿔치기당하냐고! 어으, 진짜! 야? 어라? 야?’
‘천칭’은 돌아왔는데 드라고니아는 여전히 외출 중이란 듯이 대답이 없었다!
어이없어하며 투란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어느새 새벽이라도 찾아올 듯한 풍경인 것을 새삼스럽게 맨눈으로 확인하면서 한숨을 쉬고 말았다.
‘탈키오 할배, 엄청나시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 자식 전혀 모르고 있는 거잖아?’
애초에 윌 라이트의 원전(原典)이야 드라코눔의 것이고 투란 자신이 품은 드라고니아가 ‘대원로’라면서 살그머니 식겁한 낌새를 드러내기도 했던 상대이기는 했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품은 몬스터를 이토록 완벽하게 따로 떼어 내 가듯이 다룰 줄이야.
어째서인가 살짝 섭섭한 투란이었다.
그런데 이런 투란을 위로라도 해 주려는 것일까, 엄청나게 소란스럽게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밟힌 바위를 그냥 깨부수는 압도적인 발 구르기를 감추지도 않는 채로 오는 탓에 투란이 냉큼 탈키오 영감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정도였다. 멀쩡한 드라고니아 대원로가 날개 냅두고 뛰어올 리는 없으니까.
그런 예상에 부응하듯, 투란 앞에 쿠왕 하는 굉음과 함께 착지한 이는 역시 쥴이었다. 엄청나게 놀란 표정, 발 구르기의 파문이 주변을 쓸어 내는 충격파가 된 것조차 미처 느끼지 못한 듯한 번뜩이는 눈빛…….
“왜요?”
투란은 만약을 대비해서 슬쩍 방어 준비를 하는 채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쥴의 눈빛은 어딘가 살짝 미친 듯하니까!
그 미친 듯한 눈빛과 어울리는 목소리로 쥴이 바로 되묻고 있었다.
“문장, 문장! 문자앙!”
맹하니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아, 역시 미쳤나?’라는 생각과 함께 쥴을 바라봐야 했다. 도저히 뭘 묻는가 알 수 없는 한마디만 되풀이하다니!
도리도리, 쥴이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자신의 입이 왜 제대로 묻지 못하는가를 억울해하면서, 머리를 흔들면 생각이라도 잘 정리된다는 것처럼 젓는 그대로 쥴이 다시 묻는다.
“문장, 바꿨지? 뿔수리를, 다시, 네 것으로! 바꿨지! 그렇지!”
투란의 낯빛이 삐딱한 분위기로 가득 채워졌다.
지금 이 토막 난 물음 속에 담긴 의미가 참으로 명쾌하게 투란의 가슴에 와 닿는 중이었으니까.
“흐음, 그러니까 쥴…… 위대하신 하이로드 쥴 님께서는…… 칼로드의 유산이 문장째로 처박혀서, 내가 원래 지닌 내 문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채로, 나를, 이 몸을, 칼로드의 시련 앞으로, 확 밀어 넣었다, 이런 이야기인 거죠? 쥴, 그런 거죠?”
뿌득뿌득, 빠득빠득.
말 한마디마다 애써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를 담으면서 투란이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로 깨물어 살점을 뜯어낼까 고민도 한다는 듯한 사나움이 한가득 감긴 이 물음에 쥴은 고민도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한다!
“그래! 그리고 원래 문장을,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의 결정체를 아쉬워하는 너를, 내가, 이 쥴 마르테인이 걱정 없도록 위로하고, 원래 문장을 되찾는 방법을 짜자잔! 환대와 기쁨의 나팔 소리를 내면서 알려 주고 구해 주는 거였다고! 그런데, 투란 너는……!”
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