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4)
“영감, 전언을 받을 수 있는 칼릭이면 툴로쉬의 이동을 따라잡을 수도 있는 거지? 가는 길에 기왕이면 올 때랑 다르게 좀 편히 쉬면서 가고 싶은데, 그런 마법의 비술 아는 것 많잖아? 응? 어때?”
말투에서 반쯤 갈취하는 강도의 태도가 무럭무럭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탈키오가 큰 뿔을 더 높이 치켜올리면서, 살짝 칼릭의 턱 아래를 긁어 주는 고갯짓과 함께 말한다.
“춤추는 산맥에서 마법의 비술을 바란다고? 드라코눔의 비술을 이쪽에서 지속하려면…… 으흠? 투란이 함께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
투란이 움찔했다.
어째 어렵다, 안 된다고 나오려는 듯했던 말이 저리 바뀌는가?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콕 짚고 눈길도 주면서 하는 말이라니!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란 듯이 투란은 쥴을 바라봤다.
쥴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바로 보내 줄 수 있어? 툴로쉬가 헛소리를 했다 해도 바로 가서 때려 주고 싶어서 말이지.”
탈키오가 투란을 향해 눈길을 돌렸는데, 그 눈동자는 투란의 어깨 언저리에서 둥실거리는 마름모 광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물음.
“마력을 유지해 줄 수 있느냐? 투란에게 허용받은 재량으로 얼마 동안 지속해 줄 수 있는가 말이다.”
투란이 이에 뭐라 답하기 전에 마름모 광체가 울리며 대답이 나왔다.
“필요한 시간부터 확인해 줘야지, 망할 영감! 상황에 따라 이쪽 대처는 완전히 다르다고!”
퉁명스러운 말투부터 곱게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의지가 풀풀 넘쳐나고 있잖은가!
‘야, 너 왜 이렇게 까칠해?’
어이없어 소리 없는 묻지 않을 수가 없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층 더 세찬 반발이 소리 없이 투란의 뇌리에 꽂혀 든다!
―정신 차려! 함부로 알려 줄 일이 아니잖아! 너의 의지를 통해 생성된 마력을 내가 어느 정도까지 관리하는가,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 돼! 저 망할 영감이 얼마나 심술궂고 지독한지…… 며칠 보지도 않고 단정 짓지 마라!
‘어, 그래.’
적대감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오래 쌓여 온 감정에 따른 편견이 가득하다는 낌새가 무럭무럭 배어 나온 으르렁거림에 투란은 적당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쥴이 말한 것처럼 드라코눔의 대원로 탈키오를 막무가내로 믿는 것도 어쩐지 순수한 바보 같기도 하니까. 무조건 의심하는 것도 멍청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신뢰하는 것 또한 얼빠진 짓거리가 분명했다.
어쨌든 까칠한 대응에 탈키오가 혀를 차고 굴리는 소리부터 내면서 투란의 드라고니아를 향해 말을 잇고 있었다.
“네 상황에 맞춰 보려고 묻는 말이었잖나.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나 역시 함부로 마력을 소모할 수 없는 처지이니 말이다. 여기 사는 일이 그렇게 쉽고 편한 것이 아니잖느냐. 그나마 칼로드의 유물이 남아 있을 때는 조금 편할 수 있었다만, 이제는 그 또한 없고 말이다.”
가만히 듣던 쥴이 이때 불쑥 끼어들었다.
“응? 뭐야, 영감은 칼로드의 계승자가 나타나면 그냥 여기 뜨는 것 아니었어? 이제 더 지켜 줄 것도 없는데 여기 남으려고?”
탈키오는 고개를 젓는 채로 답한다.
“수십 년 머문 것이 아니잖은가. 적게 잡아도 이백 년…… 단지 칼로드의 유물에만 기대면서 이곳에 머물 수는 없었지. 나름대로 이것저것 쌓아 뒀기에 함부로 떠날 수도 없는 처지라네. 이제는 칼로드의 유물도 없으니 조금 더 내 멋대로 꾸며도 되고, 좀 더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할 일도 늘었고…….”
여기까지 얌전히 듣던 투란은 문득 솟구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불쑥 묻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계승자가 시련을 통과하면 잡아 뒀던 몬스터만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존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거였어요?”
“응? 그림존?”
쥴이 바로 어리둥절해서 되뇌었다.
“흐음? 그림존이라니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
탈키오 역시 갸웃하면서 투란에게 되묻고 있었다.
이런 둘의 태도는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무슨 이야기라니요? 칼로드가 그림존으로 이런 시련이랑 몬스터랑 준비해 둔 것 아니었나요? 죽고 난 다음에도 그림존이 유지된 일이 엄청나기는 한데…… 뭐, 죽고 나서 계승자에게 몬스터 에센스를 덜렁 넘겨줄 수 있었으니까…… 아니, 왜들 그러시는데요?”
중얼중얼하다가 결국 쥴과 탈키오가 어딘가 어이없어하는 듯한 모습은 살짝 삐진 말투로 되묻는 소리까지 내게 하고 말았다.
이런 투란의 낯빛을 보던 쥴이 먼저 웃었다.
“으하하핫,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으하하핫!”
탈키오는 뿔 사이를 굵은 손톱으로 긁적이면서 점잖고 담담하게 한층 더 어리둥절하고 멍해 있는 투란에게 말한다.
“투란, 칼로드는 그림존을 사용하지 않았다네. 정확히 말하자면, 칼로드는 문장으로부터 그림폴을 발출(拔出)할 수가 없었다네.”
“넹?”
맹한 낯짝으로 맹한 소리를 내는 투란.
쥴이 그런 모습에 한층 더 낄낄거리는 웃음과 낯짝으로 말했다.
“푸읏! 으하하핫, 투란 네 얼굴…… 크흣, 으하하핫! 구엔이 벤담에게 사기당했다고 분통 터뜨릴 때랑 똑같아 보여! 푸흣, 크흐흣, 으하하핫! 너도 그림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다니…… 푸크큭, 으하하핫.”
나름대로 참으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 속에 마구 섞어 넣고 있었다.
슬슬 그 웃음이 투란의 눈꼬리를 실룩이게 하고 ‘이게 뭔 소리야!’라고 분노의 외침을 터뜨릴 듯한 낌새마저 띠는데…… 다독이는 목소리로 탈키오가 드라코눔의 대원로다운 위엄을 담아 무겁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네, 투란. 자네만이 아니고 많은 몬스터 로드가 오해를 하는 일이니까. 언젠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아니겠거니 하는 능력이 그림폴이라 알려져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이야.”
“그림폴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서 문득 자각하면 바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투란이 더듬거리는 말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런 것 맞을 텐데?
비록 마름모 광체는 침묵했지만, 투란의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 역시 어이없는 상황이란 듯이 중얼거렸다.
그림존의 신기한 이야기만큼이나 그림폴도 널려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장막 깊은 곳에 가려진 이야기였다. 둘이 전혀 상관없다는 이야기조차 가끔 있을 정도로 모호한 소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떤 소문이든 결국 몬스터 로드가 상급에 이르고, 어떤 계기로 정신적인 자각을 하면 바로 그림존을 형성할 수 있다는 부분은 대부분 공통된 이야기였는데…….
쥴이 여전히 키득거리는 채로, 그래도 아까보다는 웃음을 꽤 자제한 채로 헐떡거리는 숨결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투란을 향해 다시 말문을 연다.
“으흐흣, 으핫! 투란, 그런 것 아니야. 아, 물론 네가 그렇게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솔직히 그림존을 만들어 내는 녀석들도 어떻게 그림폴을 자기가 뽑아냈는가를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니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되던걸, 이라고 경험담이랍시고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니까. 푸흣, 크크큭…… 투란, 대마도사가 몇백 년 연구를 통해 알아낸 진실을 알려 줄게! 크크큭, 그림폴은 말이지, 푸흐흣, 그거 순전히 특별한 재능을 통해 구성되고 발출되는, 크으하하핫, 이물질(異物質)야, 이, 물, 질! 푸읏, 으하하핫.”
“탈키오, 쥴이 뭐라는 거예요?”
결국 웃어 젖히는 꼴을 외면하면서 투란이 드라코눔의 대원로를 향해 매우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드극, 드득.
묘한 소리가 탈키오의 손톱과 뿔의 만남에서 울려 나왔다.
덕분에 쥴은 헐떡이면서 다시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는 시늉을 하며 소리를 죽이는 듯한데, 그렇게 찾아온 잠시동안의 고요를 이용하듯이 탈키오가 투란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 역시 모르던 일이었다네, 투란. 드라코눔에서도 여전히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딱히 자책할 일이 아니라네. 음,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그래, 쥴이 알아들었다는 간단한 설명이 좋겠군. 투란, 그림폴을 형성하려면 몬스터 로드에게 특별한 재능, 자질이 필요하다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법사로서의 재능, 자질이라고 해야겠지만…… 마법의 재능이 깨어난 이들은 몬스터 엠블럼에 대해 본능적으로 방어하기 마련이라 몬스터 로드가 되지 못한다네. 하지만 그 재능이 결코 마법사가 될 수 없는 미미한, 너무 희미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은 몬스터 로드가 될 수 있지.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재능이기에 몬스터 로드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주 엄청난 계기…… 재능 없는 이가 마법사가 될 정도의 계기 정도가 없이는 무의미한 경우,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이들이 몬스터 로드가 되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 그림폴이라더군. 결코 깨어날 리가 없는 재능이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통해 그림폴이라는 형태로 발출된다는 이야기야. 음, 그러니까 지금 자네가 그림폴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은…… 투란, 자네 마법에 대한 소질이 전혀 없다는 뜻이지. 앞으로 그림폴을 뽑아낼 일은 없을 것이란…… 투란?”
턱을 떨구고 입을 떡 벌린 채로 뒤통수를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표정을 짓는 투란을 보며 이야기가 끊어졌다. 그런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중얼거림이 대원로의 이야기랑 또 다르게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인가. 과연 그래서 상급 몬스터 로드의 수준을 넘어서고 오러까지 다루는 경지임에도 그림폴의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로군. 음, 열쇠가 되는 바탕이 있어야 나타난다니…… 몬스터 엠블럼의 신비가 그런 식으로 작용할 줄이야…… 으흠…… 투란?
‘―닥쳐!’
겹쳐지는 부름에 투란은 간신히 정신을 찾은 듯, 먼저 소리 없이 외쳐 주고 그다음에 입을 열었다.
“아, 안 된다고요? 나는…… 나는 못 한다고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아아? 자, 잠시만요! 그럼, 칼로드는…… 칼로드는 어떻게 한 거래요? 칼로드가 그림폴을, 그림존을 사용한 것이 아니면 그 시련이랑, 그 전승은…… 그림존 맞잖아요? 뭔가, 어, 뭔가 비전으로 그렇게…… 정말 아니에요?”
더듬거리며 뒤죽박죽인 물음, 이런 투란의 상태를 보며 쥴이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는 사이에 탈키오는 조금 더 자상하게 대답을 했다.
“그림폴이 아니라네. 아마…… 자네에게도 그림폴의 재능은 없는 듯 보이네. 칼로드의 계승자가 되었고 시련을 끝낸 수준임에도 여전히 안 된다면, 없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투란, 칼로드 역시 그런 상황이었지만 얻을 수 없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네. 칼로드가 어떤 방법을 썼는가는…… 계승자로서 그 지혜를 얻지 못했는가?”
말 끝자락이 물음으로 끝나고 있었다.
이는 투란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말이었다.
“칼로드의 방법!”
되뇜과 동시에 투란이 칼로드의 문장을 파고들려는데, 쥴이 어느새 웃음을 지운 채로 점잖게…… 깨물다 터진 입술을 대신해서 손등을 이빨로 깨물며 겨우 웃음을 참아낸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
“위스프 오 다크니스. 칼로드가 내게 말해 준 비전(祕傳)은 그 쪼그마한 녀석이었어.”
“위스프 오 다크니스…… 혹시 다크랜턴 말하는 거예요?”
멍하니 투란이 되뇜과 함께 물었다.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온 비전이란 말에 칼로드가 남긴 뿔수리의 문장을 더듬는 것도 잊은 채로 묻는 말이었다.
쥴은 조금 더 진지하게 투란과 눈길을 마주치며 답한다.
“그래, 그거. 빛 열매나 빛 뿌리, 그 줄기에 엉겨 붙어서 빛을 가로막는 어둠을 흘려 내고 장막을 만드는 그 하찮고 쪼그맣고, 입김만 훅 불면 사라지는 그 몬스터! 너무 형편없는 몰골인 데다가 뜬금없이 어둠을 자아내는 것 말고는 아무 해악도, 피해도 남긴 적이 없음에도 몬스터인 그 녀석이 칼로드에게 괴암산을 가두고 드라키움이란 괴수를 담아 두고 온갖 시련의 형태를 꾸미게 해 줬지! 투란, 안 된다고 실망해서 얼빠진 꼴이 되지 마라. 칼로드는 그런 재능 따위 없이 해냈고, 너는 칼로드를 계승했어.”
투란의 입꼬리가, 눈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방금 전까지 투란이 몰랐다고 마구 처웃고 낄낄거리며 더 놀리지 못해서 몸을 뒤트는 시늉까지 했던 작자가 느닷없이 격려라니!
‘와, 밉다!’
―좀 그렇군.
한숨처럼, 하지만 겉으로 티 낼 수 없다는 듯이 고요하게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심정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탈키오가 다시 무거운 목소리를 흘려 냈다.
“다크랜턴에 대한 부분은 오늘 처음 듣는군. 쥴, 여태 그걸 알고 있었는가?”
살짝 타박하는 말투가 투란에게는 왠지 반갑고 좋았다!
하지만 쥴은 더욱 뻔뻔하게, 더욱 태연하게 드라코눔의 대원로에게 곧바로 반박하듯이 말할 뿐이니!
“영감, 그거 궁금해서 백 년 넘게 탐구하고 연구하며 즐거웠잖아? 답을 알려 준다고 해서 바로 그 이치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겠지만…… 답을 모르는 채로 답을 간직한 유산을 앞에 놓고 사색하고 연구하는 일, 재미있었잖아? 그러니까 칼로드도 나한테 답을 알려 주지는 말라고 했어. 그림폴이 왜 안 되는가를 알아봐 달라는 말도 그때 했는데…… 후웃, 오늘 다 털어놓네? 하하핫.”
투란은 한층 밉다는 듯이 쥴을 바라봤지만, 대원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군…….”
그리고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갑자기 불쑥 중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옆길로 새는 것이 아주 능숙하구먼. 야, 툴로쉬한테 갈 거야, 말 거야?
‘어? 아…….’
움찔하는 투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