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5)
‘야! 너도 열심히 듣고 있었잖아!’
문장의 풍경을 향해 간신히 반격하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투란의 입에서 쥴과 탈키오를 향해 나오는 말은 드라고니아가 짚은 바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어, 그런데…… 얘기가 길어지는데, 툴로쉬 쪽은……?”
순간, 쥴이 키득거리며 투란을 향해 눈웃음과 함께 말투만 진지하게 꾸며 소리 냈다.
“현실도피부터 하지 마, 투란. 크흣, 으하하핫.”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으로도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이에 투란보다 먼저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슨 현실도피야! 당장 중요한 일은 그쪽이잖나! 지금 옛날 몬스터 로드의 비전을 탐구할 때인가!”
어째 몇 마디 덧붙이면서 탓하는 쪽이 옮겨온 듯하잖나?
‘야, 내 탓 하는 거였냐?’
투란이 바로 입술을 실룩이며 소리 내지 못한 채로 살짝 불만을 토해 냈다.
그 표정을 읽은 듯이 탈키오가 껄껄거리는 듯한 입매로, 역시 소리는 참는 듯한 묘한 태도로 말한다.
“호오? 탐구심이 그토록 대단했던가? 그래, 어떠했는가? 칼로드의 비전은 제대로 계승받은 것인가? 그림존 없이 저런…….”
살짝 밝은 햇살 아래에 휑하니 뚫린 절벽의 붕괴 지점, 거의 절벽 안의 분지를 향해 열린 거대한 문처럼 덩그러니 뚫린 구멍을 꼬리 끝으로 가리키는 채로 물음이 이어졌다.
“엄청난 일을 해낼 자신감이 생기는가? 이 늙은 몸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몹시 궁금하구먼.”
“영감, 진짜…….”
쥴이 바로 어이없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투란이 흘깃 보니 쥴 또한 슬그머니 호기심이 치솟는 눈빛으로 눈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잖나! 이 분위기는 정말로 툴로쉬 쪽의 일은 잠시 옆으로 치워 놓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투란도 이미 다크랜턴에 대해 들어 버린 탓에 그 호기심을 쉽게 억누를 수도 없었으니…….
“잠시만요.”
―야, 야!
소리 내지 않고 만류하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을 마음 한구석으로 치우면서 투란은 슬그머니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가슴에 올려놓고 칼로드의 문장, 뿔수리에 집중했다.
* * *
속칭 다크랜턴, 상아탑의 대백과에 수록된 공칭은 위스프 오 다크니스.
몬스터를 쫓는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더욱 간단하게 ‘어둔가닥’이라고도 불리는 몬스터는 매우 기묘한 존재였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의 가닥을 만들고 꽃송이처럼 자리 잡거나 타버린 넝쿨 잔해처럼 들러붙는 특성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명백하게 이 세계의 섭리에서 어긋난 혼돈의 영향을 머금은 몬스터.
식물이라고 해야 할지 동물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그냥 미세한 잔벌레라고 해야 할지조차 애매모호한 그 형태부터 이상했지만 들러붙은 자리를 훅 불기만 해도 금방 흩어져 사라지고, 흔적조차 금세 지워지니 딱히 격렬하게 힘을 써서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그럼에도 마법사들은 그 희미한 다크랜턴이 어둠과 빛의 경계를 자유롭게 떠돌며 이치에 어긋난 존재란 것을 밝혀냈다. 더불어 굳이 힘을 써서 없앨 필요는 없지만 보이는 대로 흩어 버리기는 해야 할 듯하다는 어정쩡한 의견도 덧붙였다.
짐승조차도 만나면 그냥 꼬리를 흔들고 하품을 해서 날려 버리는 정도였으니, 토벌 대상으로 지정된 적은 아예 없다는 해괴한 기록만이 특이한 몬스터.
차라리 괴생명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한 이 미미한 존재가 몬스터라는 것을 칼로드는 우연히 알고 말았다.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파편을 안전한 곳까지 가져와 불을 훤히 밝히고 찬찬히 살핀 다음에 삼키는 과정에서 다크랜턴이 섞여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세히 보기 위해 조명(照明)을 집중하고 차분히 몬스터의 정수를 삼키기 시작한 순간에 끼어들었다가 휩쓸린 탓!
치밀한 성격의 칼로드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하찮은 녀석이 느닷없이 문장 속으로 스며들어 와서 느닷없이 자신의 거처를 요구하듯이 맹렬한 본능을 발휘할 때는 맞은 날벼락이 열 배는 더 아프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지경이었다.
어찌 본다 해도 상상도 못 한 위기를 맞이한 셈이었다.
그러나 칼로드는 이를 자신의 심상, ‘작은 공방’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감성과 이성, 그 경계를 허물며 칼날 같은 이빨을 들이대는 ‘어둔가닥’의 본능을 상대로 심상 속에서 움켜쥐고 모루 위에 올려놓은 쇳덩이를 두들기듯이 단련해 낸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가는 이글거리는 모닥불 위에 몸을 던지고 거대하고 시커먼 꽃 한 송이가 될 수 있다는 위기를 칼로드는 그렇게 극복해 냈다.
그 결과, 마치 심상을 완성한 보상으로 받아 낸 것처럼 칼로드는 깨달았다.
‘어둔가닥’, 다크랜턴…… 그 본질이 과거 어마어마한 재앙이 남긴 어둠의 파편이란 것. 나중에 위스프 오 다크니스라는 그 공식 명칭을 듣고 나서야 상아탑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크랜턴이란 속칭 속에서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못하는 희미한 흔적일 뿐이라고 파악한 다음에는 그 유래를 덮는 것만으로 처분을 끝냈다는 것을 칼로드는 겨우 알아냈다.
세상 곳곳을 헤매면서 그 잔해를 처리할 수 없기도 했지만, 그 기원에 대한 지식을 감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더불어 다른 몬스터의 파편에 달라붙다가 함께 휩쓸려 들어온 해괴한 경우가 아니라면 몬스터 로드가 다크랜턴을 삼킬 일이 아예 없다는 것 또한 칼로드는 명확하게 확인했다.
손짓만으로 날려가고 숨결만으로 흩어지는 다크랜턴, 빛 열매가 무성한 곳에서 그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겨우 번성하다가 아이들의 손짓발짓에 사라지며 떨궈져 나가는 그 하찮은 존재는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일으키는 여리디여린 파문에도 못 견디고 훌렁 날려가고 흩어질 뿐이라고!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찾아온 그 기묘함을 칼로드는 행운이라 해야 할지 불운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칫했으면 모닥불에 구워 뒈진 몬스터 로드가 될 뻔했지만, 오히려 심상을 완성하고 더욱 높은 수준에 올라서기는 했으므로…….
어쨌든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어둔가닥’을 칼로드는 연구했다.
완성된 ‘작은 공방’의 심상 속에서 한없이 두들기고 제련했다.
그렇게 해서 도달했다.
‘어둔가닥’을 낳은 진정한 기원에.
* * *
“다키스트 다크니스……?”
투란이 미간을 손끝으로 긁적이면서 중얼거렸다.
탈키오가 눈가를 살짝 꿈틀했고, 쥴은 바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냈구나. 맞아, 그거야. 영감, 놀랐어? 으하하핫, 나도 처음 듣고 뒤통수를 쇠망치로 맞고 꼬챙이에 찔리는 줄 알았어. 으하하핫.”
“전설에서조차 부정하려 드는 재앙이었잖나. 고대 아칸들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그 실존을 믿지 않았을 것이야.”
탈키오가 낄낄거리는 쥴에게 큰 뿔을 젓는 고갯짓과 함께 대꾸했다.
둘이 긴장과 여유를 오가는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 투란은 칼로드의 기억을 전해 준 뿔수리의 문장을 다시 ‘천칭’으로 교체했다. 심연을 오가는 여정 없이 간단히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투란에게 희한하면서도 기쁜데…….
‘야, 넌 왜 조용해?’
이 와중에 마름모 광체를 반짝이면서도 고요한 자신의 드라고니아가 어쩐지 수상한 느낌을 풀풀 휘날리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꾸는 강렬하고 짧게 돌아왔다.
―지랄맞은…….
문장이 교체되는 사이에도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 광체를 유지했고, 투란이 ‘어둔가닥’에 대한 기억을 나눠 줬기에 쥴이나 탈키오보다 먼저 ‘다키스트 다크니스’를 들은 셈인데도 고요했던 녀석이 뒤늦게 분노와 격앙을 토한 셈이었다.
‘왜?’
짧은 투란의 되물음에 대한 답은 조금 큰 소리로 돌아왔다.
“툴로쉬 쪽은!”
잔뜩 성질난 듯, 이를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이 마름모 광체가 현란하게 번쩍이면서 터진 외침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탈키오가 혀를 차며 말한다.
“뭘 그리 조급해하느냐? 툴로쉬가 아예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투란에게는 아직 조금 더 휴식이 필요하다 했잖느냐. 오랜만에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워서 나쁠 것은 없단다, 앙헬.”
“망할 영감이 진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릴 때, 쥴이 슬쩍 키득이면서 끼어든다.
“영감은 그냥 투란이 칼로드처럼 할 수 있는가가 궁금한 것뿐이잖아? 저 오래된 보금자리가 다시 형태를 갖출 수 있는가 말이야. 뭐, 투란의 휴식은 덤으로 챙길 수 있는 셈이지만…… 이터널 다크니스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휴식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으려나?”
“진정한 이터널 다크니스의 기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칼로드의 위업을 흉내 낼 수조차 없지. 그리고 그런 기량을 발휘한다면, 휴식은 숨 몇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끝낼 수 있지 않는가?”
탈키오가 연륜이 가득한 대원로의 깊이가 어린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은 어리둥절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다키스트 다크니스, 그 까마득한 기원은 ‘어둔가닥’의 선조(先祖)라 할 수 있지만 바로 앞세대는 아니었다. 다키스트 다크니스로부터 태어난 이터널 다크니스가 ‘어둔가닥’, 위스프 오 다크니스의 어버이였다. 그리고 그 기량이란…….
“뭘 흡수하는 거죠?”
물려받은 기억 틈새를 더듬다가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칼로드는 함부로 그 능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을 남겨 줬고, 그 대신에 ‘뭐든’이라는 묘한 한마디로 이터널 다크니스를 여분의 생명처럼 여기라 전해 준 것이다. 위스프 오 다크니스로부터 이터널 다크니스를 형성해 낼지라도, 제한적인 사용만을 권한다면서.
“깊은 어둠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지.”
탈키오가 담담하게 말했다.
뒤이어 쥴이 혀를 차면서 ‘그런 소릴 누가 알아들어!’라고 툴툴거린 다음에 더욱 자세히 이야기한다.
“살아 있든 죽었든 상관없이 몽땅! 다키스트 다크니스는 그렇게 세상을 한번 삼켰던 어둠이었어. 뭐, 그에 비하면 이터널 다크니스는 그냥 세상을 덧씌운 어둠이었지. 그 본질은 변함이 없겠지만 수준에서 차이가 나. 그리고 칼로드의 흡수 방식은…… 활력 보충이었어. 물론 정신적인 피로가 조금 남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도 푹 쉬었을 때를 백으로 놓으면 거의 팔십에서 구십 정도의 힘을 회복했지. 정신력의 소모량에 비해서 회복량이 훨씬 큰 셈이니까, 영감이 완전히 헛수작 하는 것은 아니야 투란.”
대강 고개를 끄덕이다가 투란은 문득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대체 어떻게 물리쳤던 거래요?”
최초의 상태, 다키스트 다크니스가 세계를 삼켰다면 어째서 지금 이 밝은 햇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것일까? 이터널 다크니스가 모든 광채를 가리고 세상을 덮어 버렸다면 대체 언제 해가 다시 솟고 달이 뜨며 별이 반짝이는 세상이 된 것일까?
쥴이 ‘맞아, 역시 그게 의문이지!’라며 낄낄거렸고 탈키오가 쓴웃음과 함께 점잖게 말한다.
“그림 투아란이라네, 자네 이름과 그란, 아란이란 이름을 세상에 퍼뜨렸던 드래곤 로드의 위업이지.”
투란은 입을 다물고 눈만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 투아란의 수많은 전설이 말하기는 했다, 온갖 괴물, 마물을 무찔렀다고.
그 수가 너무 많고 다양해서 세상에 그림 투아란이 잡아 보지 못한 몬스터가 있겠느냐는 우스개가 이야기꾼 입에서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중에 세계를 삼키고 덮는 어둠의 재앙에 대한 전설이 있던가?
투란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키득거리면서 쥴이 투란의 소리 없는 의문에 답한다.
“몬스터 로드의 진정한 위업은 술 취한 주정뱅이 이야기꾼이 떠드는 전설 속에 담길 수가 없지. 칼로드의 위업도 바로크 왕가와 연관된 탓에 단편적이나마 전해졌을 뿐이고, 투란 너는 들어 본 적도 없을걸. 아예 이름도 몰랐을 거야, 그렇지? 기껏해야 닮은 이름이라든가 같은 이름을 지닌 다른 사람 정도겠지. 뭐, 그게 몬스터 로드가 걷는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 아주 더러운…….”
말의 흐릿한 끝자락 속에 기묘한 분노가 맺히고 있었다.
탈키오가 그 분노를 지우듯이 투란에게 말한다.
“어떤가, 투란. 다크랜턴을 이용해서 이터널 다크니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감각을 봉쇄하고 차단함으로써 몬스터에게조차 깨어날 수 없는 환각을 부여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그 위력과 함께 정령의 활력을 훔쳐 내서 몸 상태를,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해야 하네만.”
“그래야 툴로쉬에게 바로 보내 줄 마법을 준비해 주실 것 같네요?”
투란이 조금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탈키오가 방긋, 드라코눔 일족의 괴물 같은 자태 속에서 웃음과 함께 뿔까지 오락가락하는 끄덕임을 드러냈다.
―망할 영감…….
투란의 드라고니아는 소리 없이 울화를 흘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