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6)
Chapter 218. 재앙 사냥 I
“잘 가게나,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또 놀러 오게나!”
무딘 단도 같은 손톱이 매달린 커다란 손을 흔들면서 탈키오가 외쳤다.
이미 칼릭의 등짝에 바싹 들러붙은 꼴이 된 투란은 그냥 미미하게 고개만 끄덕이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쥴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낑낑거리는 몸짓으로 탈키오를 향해 손목을 흔들어 손짓하는 시늉을 하면서 목청을 돋워 대꾸하는 중이었다.
“영감, 죽지 말고 기다려! 일 끝나면 난 바로 와 볼 테니까! 투란이 해 준 것, 너무 망가뜨리지 말라고!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고!”
“끄읏!”
투란도 뭐라 하려 했지만 잔뜩 조여진 허파를 거쳐 입가에서 나온 소리는 도저히 말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칼릭이 바로 날개를 펼치며 장대한 바람결을 끌어안는 순간, 맑고 높은 창공의 한복판이었고 드라코눔의 대원로는 저 까마득한 지상의 작은 화분처럼 보이는 분지의 점보다도 작게 흐릿해지고 말았다.
그럭저럭 기울어 가는 햇살 때문인가, 높은 하늘의 한 귀퉁이가 살짝 붉어지려 하는 중이었고 칼릭은 마음껏 펼친 날개를 접으며 꼬리를 휘젓고 머리를 흔들면서 방향을 잡아갔다.
그 과정에서 투란은 몸을 덮고 감싸는 마법의 장막이 더욱 강력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끼면서, 당장 걷어치우지 못하기에 견뎌야 하는 상황에 대해 불평했다.
‘아윽, 너무 조여! 꼭 이렇게 조여야 하냐?’
―온몸으로 숨 쉴 수 있으니 마음껏 조여도 된다고 헛소리한 것은 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이이.’
―칼릭의 가속은 인간의 몸을 마찰로 갈아 버리고 태울 정도로 지독하다고 경고했을 텐데? 쥴도 얌전히 묶인 꼴을 보면 모르겠냐? 아니면 몬스터 형태로 버텨 내야 한다고 저 망할 영감이 친절하게 설명도 해 줬잖아! 그만 닥쳐!
툴툴거리는 투란을 향한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격렬했다.
투란도 칼릭이 날개를 조이면서 한 방향을 향해 폭발적인 가속을 시작하려는 낌새를 느끼면서 투덜거림을 멈췄다.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이 드레이번이라는 품종이 비행하려는가, 매우 궁금했으니까.
쥴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듯했다.
“투란, 간다! 즐겨!”
짧게 외치더니 곧바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칼릭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칼릭이 크흥 하는 코웃음과 함께 대뜸 그 웃음에 박자를 맞추듯이 거세게 날개를 펴고 접기를 두어 번 하더니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멀리 보이는 산자락, 지형이 주욱 밀려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귀로 들리지도 않는 강렬한 굉음을 몸으로 느끼면서 투란은 어리둥절하다가 곁에서 마법의 장막 안을 맴도는 쥴의 웃음에 덩달아 실실 웃고 말았다. 쥴이 어린아이처럼 웃고 즐기는 모습이 어째서인가 투란의 가슴을 간지럽히며 웃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미쳤냐?
매우 메마른 핀잔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난다는 상황에 대해서 딱히 투란이 이렇게 재미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을 짚는 핀잔이었다. 이미 다양한 날개로 여러 가지 형태의 비행을 제멋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시각화한 심상 속에 비춰 주기까지 하면서.
‘심술쟁이냐? 그건 그렇고 탈키오 영감은 이제 괜찮은 것 맞지? 다크랜턴을, 아니 이터널 다크니스의 가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걸로 대강 영감님 보금자리를 다시 휘감아 뒀잖아.’
―바보냐? 그 망할 영감이 굳이 네 도움이 필요했다고 믿고 있었어? 쥴이 괜한 소리를 했나 했는데, 너 정말 속이기 쉬운 녀석이었더냐?
‘뭐? 그게 뭔 말이야?’
―대원로 노릇을 하던 시절에 드라코눔에서 저 망할 영감이 얼마나 악명을 휘날렸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만, 저 영감이 백 년 넘게 틀어박혀서 파헤쳐 내지 못할 수수께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라. 카엘 정도 되는 대마도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드라코눔을 통틀어서…… 아니, 이 세상에서 저 영감 수준의 마도를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는 다섯이 넘지 못할 테니까.
‘엥? 그럼…… 내가 하는 짓 보고 오오, 우와, 놀랍군, 하던 소리가 전부 빈말이었어? 그냥 나 놀리려고 한 소리야?’
―완전히 빈말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내 추측으로는 분명히 칼로드에게 시련의 관리를 부탁받을 때 한번 봤을 테니까 절반 정도는 그냥 너 하는 짓이 재롱처럼 보여서 일부러 감탄해 줬을걸?
‘칫…….’
투란은 곁에서 여전히 웃고 있는 쥴에게서 고개를 돌려 먼 풍경을 둘러봤다.
스쳐 가는 산, 강, 들…… 너무 작게 보여서 그 안에 담긴 짐승과 나무는 그저 덧씌워진 색채의 파편에 불과했지만 꽤 새롭다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춤추는 산맥을 이렇게 날면서 구경하는 일은 투란에게도 조금 낯설잖은가?
―구경하려고 날아 본 적은 없잖아.
역시 메마른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렸다.
어째 잔소리와 핀잔이 두어 배 늘어난 듯한 꼴이었기에 투란은 그냥 못 들은 척하면서 자신이 다뤘던 다크랜턴, 위스프 오 다크니스에 대해서 기억을 되새겼다. 뿔수리의 문장 속에서 배운 기억 그리고 뿔수리의 문장을 통해 발휘된 힘…….
* * *
한 가닥은 무의미하다.
두 가닥은 그저 뿌려진 티끌일 뿐이다.
세 가닥은 겨우 한 잎을 이룬다.
네 가닥이 꼬여야 간신히 한 송이 꽃이 된다.
다섯 가닥은…… 뭉쳐질 수가 없다, 서로 맞닥뜨리며 밀어내고 흩어질 뿐.
여섯 가닥은 그대로 붕괴할 뿐이다, 엮이면 너무 무거워서 떨궈지고 깨뜨려지니까.
여덟, 아홉은 넷과 다섯, 여섯의 상태가 엇갈리며 반복될 뿐이었다.
‘어둔가닥’은 그렇게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흉포하게 빛을 갈구하며 빛나는 것에 들러붙기를 갈망했다.
칼로드는 그 갈망을 두들겼고, 겨우 열 가닥을 엮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열 가닥이 엮인 ‘어둔가닥’은 사실보다 거대한 어떤 것의 파편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것.
‘어둔가닥’의 본질은 그렇게 칼로드에게 실체를 드러냈다.
어둠을 통해 어떤 감각을 덮고, 어떤 범위 내에서 허용하는가를 알아내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칼로드는 결국 이터널 다크니스의 파편으로서 ‘어둔가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어둠이 왜곡하고 부여하는 환각을 통해 몬스터를 감금하고 사육하며,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긴 세월을 넘어 그 기억을 건네받은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그 어둠의 환각이 기초라는 것을.
* * *
―야, 한 가지 궁금하다만.
불쑥 묻는 말은 칼릭이 서서히 높이를 낮추고 속도를 늦추며 킁킁거릴 때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뭔데?’
―왜 천칭에 다크랜턴을 담지 않았지? 비전은 확보했고, 그 활용 방법까지 완전히 얻어냈잖아. 다른 때라면 문장마다 나눠 담는다고 했을 녀석이 왜 다크랜턴만은…… 위스프 오 다크니스는 뿔수리만의 고유 품종인 것처럼 냅두는 거냐?
‘응? 아니, 그야 당연히…… 어라? 내가 그 부분은 너한테 안 알려 줬냐?’
―뭘 알려 줘? 그냥 영감한테 한창 자랑질만 하다가 끝났다고 대충 칼릭을 타고 가다 보면 피로가 풀릴 거라고 그냥 넘어갔잖아.
‘아…… 너랑 이야기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네. 그러고 보니…….’
―웃기는 소리 말고, 분명히 까닭이 있는 결정이었다는 것이지? 그게 뭐냐?
‘그야 칼로드의 고유 심상이 아니면 다루기 어려우니까. 작은 가닥들이 엮여서, 최소한 열 가닥이 하나로 엮여야 겨우 그 특성이 드러나거든. 블랙애쉬 때랑 비슷한 것 같은데, 다크랜턴은 또 다르더라고. 엇나가서 뭉치지 못하게 아니라, 아예 서로 뭉치려고 하질 않아. 그걸 억지로 엮고 두들기는 심상은 칼로드의 작은 공방뿐이잖아. 내 문장은 원래 저마다 제멋대로이니까, 거기에 새로 공방을 끼워 넣기도 애매했고…… 게다가 그림 투아란이 제압해서 무해하게 바꿨다고 하지만, 그림 투아란이 아니었으면 세계를 이미 삼켜 지워 버렸을 엄청난 괴물이잖아. 이리저리 흩어 놓기보다는 그냥 한 문장만으로 다루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아서. 뭐, 쥴이 좋은 반지도 줬고. 아, 다 왔나?’
칼릭이 하강을 시작하면서 투란은 이야기를 멈췄다.
스쳐 간 풍경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한쪽에 커다란 벽 같은 산자락을 앞에 둔 작은 언덕 틈새로 칼릭은 쳐들어가듯이 내려 쏘아지고 있었다. 그 틈새 사이에서 빼꼼하게 사람 머리가 튀어나와 손을 뻗어 흔든 것은 잠시 뒤였다.
쥴의 외침이 바로 옅어져 가는 마법의 장막 안을 울린다.
“마중 나왔네에! 툴로쉬, 멀쩡해 보이는데!”
쿠우웅.
칼릭이 내려앉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땅울림의 형태로 봐서는 칼릭이 두 발을 디딘 땅 아래쪽이 살짝 비어서 울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드라고니아가 지속시키던 마력의 공급을 멈췄고, 마법 장막이 해제되자마자 투란과 쥴은 가볍게 툴로쉬 곁으로 내려섰다.
등을 털어 내는 듯한 몸짓과 함께 칼릭의 목젖이 울리며 머리가 툴로쉬를 향해 움직였다. 툴로쉬는 바로 그 내민 코끝을 쓰다듬어 주며 큰소리로 외쳐 준다.
“잘했어, 오랜만이지? 그래, 곧 돌려보내 줄게. 잠시 기다려. 널 쫓아가겠다는 괴상한 녀석들만 처분하고 바로 보내 줄 테니까.”
쥴이 이 말에 바로 끼어들 듯이 묻는다.
“괴상한 녀석들?”
툴로쉬는 칼릭의 커다란 볼을 두들겨 주면서 한쪽으로 나서고 있었다.
투란이 그 옆으로 다가가며 보니, 저편 허공에서 뭔가 휙휙 움직이며 날아오는 것이 살짝 보였다.
‘파리? 모기? 벌?’
그 비행의 양상이 새랑 완연히 다르기에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곤충형 몬스터가 맞기는 한데…… 어딘가 낯익은데?
드라고니아는 조금 색다르게 갸웃하고 있었다.
쥴도 눈을 가늘게 하면서 툴로쉬에게 하던 말에 보태 묻는다.
“뭐냐, 저건? 사마귀? 벌? 풍뎅이?”
―너랑은 품종 선별이 아주 다르구나? 뭐라 해도 될 것처럼 생기기는 했다만.
쓴웃음처럼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지만, 결국은 누구 말이라도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다시 조금 더 자세히 날아오는 것을 노려봤다.
가까워지면서 더욱 또렷해진 그 형태는 확실히 이것저것 다양한 벌레가 섞인 듯했다. 어찌 보든 간에 낯익은 부분이 많지만, 그 여러 부분이 하나로 뭉쳐있다는 점에서 아주 낯설고 기묘한 모습…….
‘분홍색? 칼날 앞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문득 투란도 드라고니아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쥴이 꼽은 사마귀의 형태, 그 앞발이 당당하게 벌 혹은 파리, 잠자리라 칭해도 좋은 투명한 날개의 부지런한 움직임 앞으로 내밀어져 있는데 온통 분홍색이었다. 조금 더 짙고 어둡다면 핏빛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너무 선명하고 옅은 분홍색의 각질이 장갑처럼 그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부분마다 융합한 듯한 모양 탓에 앞발이 달린 어깨 언저리가 투명한 젤리로 굳혀진 듯했고, 두꺼운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부분 아래로 굵직한 허벅지가 맞물려 엉덩이 따위는 없는 듯한 몰골인 채로 벌의 머리를 닮은 투구를 눌러쓴 듯한 형태를 들이대며 날아드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툴로쉬는 쥴이나 투란처럼 따지지 않았다.
냉큼 굵직한 몽둥이를 들어 내밀고는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툴로쉬의 목소리는 마법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웹 오브 선더.”
콰, 콰앙!
몽둥이가 천둥을 토해 냈다.
섬광이 허공을 갈래 치며 채웠다.
날아들던 곤충형 몬스터는 번개의 그물 속에 단숨에 감금되었다.
쿠릉, 콰아아!
몽둥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천둥을 이어 토해 냈다.
갈래 치는 섬광의 줄기가 허공에 새로운 번개의 그물을 그려 냈다.
날갯짓과 칼날 같은 앞발…… 그 움직임이 허공에 새로운 자취를 그려 내며 번개를 찢어냈다.
부웅, 부부붕!
투란이 난데없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에 흠칫할 때, 쥴이 감탄했다.
“바람 장벽을 둘렀어? 제법인데?”
천둥과 번개, 그 격렬한 그물질 속에서 몬스터는 날갯짓과 칼날 앞발로 일으킨 풍압(風壓)을 형성해서 자신을 지키는 방벽을 쌓은 것이었다. 허공을 가득 채우며 조여 가던 천둥 번개의 위력이 결국 자신을 비켜 가도록!
그리고 곧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엥?”
“음?”
투란이 맹한 소리와 함께 감탄했던 쥴을 흘겨봤고, 쥴은 툴로쉬를 보면서 ‘그건 또 뭐냐?’란 듯한 눈빛을 흘려 냈다.
요란하게 잔뜩, 허공을 가득 메운 압도적인 짓을 하더니 끝마무리는 한 손에 가볍게 쥐고 있는 쇠뇌가 쏘아 낸 한 발의 살로 끝장내다니…….
“이거 강화 쇠뇌거든요? 바람결을 관통하고 목표를 폭쇄시킨다고요.”
투덜거리는 툴로쉬였다.
투란도 쥴도 눈을 깜박였다.
묻지 않은 물음에 툴로쉬가 짜증을 섞어 답한다.
“그냥 쏘면 피한다고요, 저 망할 것이.”
“아…….”
“으흠…….”
투란과 쥴은 겨우 납득하는 시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