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7)
“끝난 건가요?”
투란이 맑고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쥴이 바로 그 뒤통수를 갈길 자세를 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묻는다.
“투란, 진심으로 저것 하나 잡았으니 이제 상황 끝났다고 우길 참이야?”
투란은 슬그머니 한발 뒤로 빼면서 ‘아니겠죠? 역시.’라고 웅얼거렸다.
툴로쉬가 한숨을 쉬더니 몽둥이와 쇠뇌를 마법으로 수납하고는 칼릭 곁에 붙어 그 큰 머리 한구석을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이제 가도 돼. 가능하면 저쪽의 반대편으로, 최대한 멀리 돌아서 가렴. 그랑카에게 안부 전해 주고.”
거센 목젖 울음이 괴수답게 두어 번 칼릭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바로 칼릭이 숨을 들이쉬어 앞가슴의 촉수를 모으니, 돌풍이 모여들면서 그 몸을 허공에 높이 띄워 올렸다. 가벼운 날갯짓과 함께 칼릭은 다시 높이 치솟았고, 굉음과 함께 쏘아지듯 날았다. 정확하게 툴로쉬가 지정한 곳, 몬스터가 날아왔던 반대 방향을 향해서.
그사이 투란은 살짝 칼릭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슬금슬금 머리통이 날아가 떨궈진 몬스터 쪽으로 다가가려 하는데, 툴로쉬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품속을 뒤척이는 시늉을 하다가 느닷없이 작은 망치를 꺼내 휘둘렀다. 그냥 조그마한 망치가 손에 쥐어졌기에 잠깐 그러려니 하던 투란이었다.
“으헷?”
곧바로 비명 닮은 소리를 내며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망치 머리가 순식간에 거대해졌고, 자루가 쭈욱 늘어나며 대뜸 떨궈진 몬스터를 후려치고 있었으니 가까이 붙었다가는 함께 찍힐 참이었으므로!
―이십여 미터까지 다가온 다음에 쇠뇌를 쏜 까닭이 저거였나. 자루 길이가 늘어날 거리를 잰 모양이야.
드라고니아가 흥미를 느낀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 말에 투란도 퍼뜩 느낄 수 있었다.
“툴로쉬, 일부러 천둥이랑 번개를 뚫고 오도록 유도한 거였어요? 그 망치로 후려 패려…… 어?”
묻는 말은 툴로쉬가 망치를 거둬들이면서 몬스터의 잔해가 깨끗하게 사라지는 광경과 함께 멈춰 버리고 말았다.
키득거리는 쥴의 목소리가 투란을 놀리듯이 울려 온다.
“격납 망치야. 사냥감을 단숨에 해체하고 보관해 주는 마법의 망치! 룬디아크 공방이라고 알아, 투란? 거기 생기자마자 쫓아가서 엘더 헌터 녀석들이 받아낸 황당한 마도구라고. 푸후아하핫, 너도 갖고 싶지? 그런데 안 준다. 룬디아크 공방에서 엘더 헌터 말고는 아무에게도 안 만들어 주더라. 쳇…….”
웃음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슬그머니 불만을 토하는 쪽으로 변질하고 있었다.
투란이 눈을 깜박이며 툴로쉬를 바라보니, 툴로쉬가 나오다가 멈춘 물음에 대해 답을 한다.
“반쯤 유도한 셈이 되었지만, 원래 뚫고 들어올 능력이 있어. 여기 머물면서 몇 마리 잡다 보니 알 수밖에 없었지. 얼른 들어가 숨어야 해. 정찰병인 녀석이었으니까, 귀환하지 않으면 서너 마리가 바로 몰려와. 쥴, 지금 싸울 때 아니니까 일단 들어가자고요.”
새로 온다는 말에 쥴이 주먹 마디를 꺾으면서 ‘똑같은 놈?’이라고 중얼거렸고 툴로쉬는 고개부터 젓고는 앞장섰다.
칼릭을 타고 내려올 때 얼핏 봤던 구멍, 그 구멍은 어두운 그림자가 입을 연 듯했고 안으로 이어진 계단을 품고 있었다. 그 안으로 툴로쉬가 앞장서서 들어가고 투란은 쥴이 툴툴거리는 사이에 냉큼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어, 이거 혹시?”
계단 아래 서면서 투란이 갸웃하는 소리를 냈다.
“음? 아, 낯익을 수도 있겠군. 알드바인의 대마법사님이 제작하신 사냥용 쉼터야. 최근에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마도구 형태로 완성해서 판매를 시작했어. 꽤 비싸지만, 아주 쓸모 있잖아.”
툴로쉬가 ‘비싸’다는 부분에 한숨을 섞으면서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 아하…….”
투란도 살짝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몰튼노트의 촌락, 무쇠뿔 오우거의 숲, 쟈카라의 산림에서 환경에 알맞게 홀시딘이 꾸몄던 쉘터…… 그것을 독립적인 마도구로 완성했다니 어딘가 낯익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까지 마도구로 만들어 팔다니, 금전에 대체 얼마만큼 미친 거냐?
드라고니아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뒤따라 들어온 쥴은 ‘역시!’라면서 부러운 듯이 말한다.
“다시 봐도 대단해! 상아탑의 마법사 주제에 이런 것을 꾸미다니. 옛날 카티야도 이런 발상은 못 했는데 말이야.”
“마스터 홀시딘이 좀 대단하긴 하죠.”
슬쩍 한숨을 쉬듯이 투란이 중얼거렸다.
짝짝, 툴로쉬가 넓은 거실처럼 꾸며진 쪽에서 손뼉을 치며 구경꾼이 된 쥴과 투란을 불렀다.
“마도구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일단 지금 상황부터 간략하게 설명할 테니 와서 들어 봐요!”
쥴이 입술을 삐죽였지만, 투란은 냉큼 툴로쉬가 선 커다란 탁자 앞으로 갔다.
탁자 위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작은 모형들이 여기저기 가득 꽂혀 있었다. 모형은 그저 네모, 세모, 고리 모양이었기에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크기가 다른 꼴이나 겹쳐진 상황으로 봐서 제각각 범위를 장악한 몬스터를, 그 무리를 의미하는가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쥴이 갸웃거리는 투란 곁으로 서면서 묻는다.
“로드 오브 몬스터, 그 말썽꾸러기의 위치는 포착했어?”
“찾기야 찾았죠.”
툴로쉬의 대답에는 씁쓸한 한숨이 한가득 어려 있었다.
투란이 흘깃하니 쥴이 눈가를 찌푸리면서 다시 묻는다.
“호위가 많아?”
“호위가 아니라 성을 꾸렸더라고요.”
“성?”
쥴이 흠칫했다.
투란도 ‘웬 성?’이라고 어리둥절했다.
몬스터 중에서 자신의 둥지를 꾸미는 녀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성이라니, 무슨 뜻인가?
툴로쉬가 머뭇거림 없이 커다란 고리, 실로 만들어서 확실하게 일정한 영역을 지도상에 장악하고 있는 삐뚤거리는 동그라미에 손짓하면서 말한다.
“일단 이동 속도를 늦춰 놨어요. 그랬더니 무리를 가까이 불러 모아 호위병을 꾸미더군요. 그리고 그 덩치를 변형시켜서 무슨 옥좌처럼 꾸미고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요.”
투란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제대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쥴은 이 모호함 속에서 뭔가 툴로쉬가 실수한 부분을 알아챘다는 듯이 묻는다.
“너, 뭘 어떻게 한 거냐?”
한숨과 함께 툴로쉬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한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무리를 이동시키려 하더군요. 주변에 장애물 따위는 그대로 밀어붙일 정도로 무리가 불어났다고 여기는 낌새가 보이기도 했고요. 어설프게 화염 장벽을 세우거나 암석 덫을 깔아 봐야 의미가 없었어요. 그냥 무리를 갈아 넣고 밀어붙일 꼴이었으니까…… 그 머리를 한번 위협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음, 천벌(天伐)의 창(窓)을 열어서 한 방 갈겨 줬죠.”
“틈이 보였구나? 명중시켰으면 그걸로 끝장낼 수도 있어 보였나?”
쥴이 툭 끼어들며 물었다.
투란도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툴로쉬를 바라봤다.
계획은 합류할 때까지 감시, 탐색이었겠지만 몬스터를 박살 낼 기회가 왔는데 그냥 넘기는 것은 헌터의 방식이 아니었다. 엘더 헌터인 툴로쉬가 그런 기회를 얻었다면 더욱 맹렬하고 강력하게 사냥을 시도했을 터였다. 과연 ‘천벌의 창’이란 무엇이기에 로드 오브 몬스터를 격멸할 기회에 사용되었는가, 어째서 엘더 헌터가 노린 그 기회가 실패로 끝났는가.
툴로쉬가 느릿하게 그 상황을 되짚듯이 이야기를 잇는다.
“명중시켰다면, 확실히 로드 오브 몬스터만큼은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고 보였지요. 명중시키지 못할 조건은 보이질 않기도 했습니다. 천벌의 창을 여는 조건조차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여겨졌지요, 그런데…… 은폐 능력을 지닌 대형 장갑 괴수는 전혀 예측을 못 했어요.”
“그런 괴수 한 마리 정도는 천벌의 창이 그냥 무시할 텐데? 얼마나 컸다는 거냐?”
쥴이 어이없어하면서 한층 더 찌푸린 눈살로 묻고 있었다.
툴로쉬는 고개를 저었다.
“큰 놈이 아니라, 많았죠.”
“많아? 아니, 그런 놈이 많을 리가…… 뭐였는데?”
“기본 형태는 버그베어였어요. 그걸 젤리에 담가서 부풀리고 증식시켜 한가득 만들어 내고 주변에 은폐한 채로 대기시켜 놨더군요. 아무래도 옛날에 잠복했다가 기습해서 쳐 죽일 뻔했던, 그놈 입장에서 완전히 뒈질 뻔했던 일을 기억하는 모양이었어요. 설마 천벌의 창을 막아 낼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듣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툴로쉬 네가 그냥 헛소리하는 것 같잖아. 헛소리 아니겠지? 썩을…….”
쥴도 툴로쉬만큼이나 썩은 표정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이쯤에서 제대로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저어, 그 천벌의 창이 뭐죠?”
―응? 아, 모르겠군.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다가 투란의 무지(無知)를 납득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얀마, 알면 빨리 얘기를 하라고!’
소리 없이 투덜거렸지만 투란은 매우 순수한 눈망울을 깜박이는 채로 쥴과 툴로쉬를 둘러보면서 ‘나 지금 아주 궁금해!’란 의지를 표현했다.
쥴은 그런 투란을 살짝 가느다란 눈길로 바라보며 ‘이 녀석, 지금 사기 치는 거냐?’라는 의혹을 노골적으로 보였지만, 툴로쉬는 그냥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상아탑에서 가장 비싼 열 가지 마도구 중의 하나. 고대 왕국의 궁정마도사들이 비장의 술식으로 상시 대기시켜 놓는 광역 마법이기도 하지. 하늘 높이 커다란 창을 여는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번개와 벼락의 비를 뿜어내서 아래쪽의 목표를 파괴하는 마법이야. 그럭저럭 이해가 되지?”
“아주 잘 알겠어요.”
가격부터 구체적인 마법의 발현 방식까지, 투란으로서도 못 알아듣는다고 할 부분이 없었다. 딱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로서 알아야 할 부분만 짚어서 설명해 줬으니까.
쥴은 투란을 잠깐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마치 ‘정말 몰랐다니!’라며 놀라는 듯한 표정도 살짝 짓다가 쥴이 다시 툴로쉬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그놈들은 번개와 벼락에 목욕을 하고 멀쩡했나? 적어도 그 은폐한 호위를 쓸어 내기는 한 거지?”
“몰라요, 그 부분은 전혀 확신을 못 하겠더군요.”
툴로쉬의 대답은 한숨과 짜증이 꽤 깊이 서린 채였다.
쥴도 이를 어느 정도 예상한 듯, 그 한숨과 짜증에 동조하고 불만스러움을 더하듯이 중얼거린다.
“역시 그 망할 젤리가…….”
“그 젤리가 대체 뭔데요?”
투란이 냉큼 말을 자르듯이 물었다.
툴로쉬가 ‘응?’ 하며 쥴을 바라봤고, 쥴은 당당하게 그 의아함에 답한다.
“전혀 얘기 안 해 줬지. 애초에 돌아와서 자세히 얘기하기로 했잖아? 정신 사납게 해 줄 까닭도 없었고, 저쪽 일에 집중할 필요가 더 컸잖아.”
“그렇군요, 그러면…… 투란, 로드 오브 몬스터 말고는 다른 상황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는 것이지?”
툴로쉬의 물음에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 딱히 보고 들은 바라고는 이 쉘터, 쉼터에 들어오기 직전의 대단한 망치와 몽둥이, 쇠뇌의 과격한 효과뿐이었으니…… 그 또한 이것저것 물을 부분이 한가득했지만, 지금은 일단 젤리부터 알아야 했다.
쥴이 어디부터 이야기할까 고민하며 정리하는 툴로쉬를 보고는 혀를 차면서 슬쩍 먼저 몇 마디 한다.
“로열젤리, 일단은 그렇게 이름 붙여 놨어. 벌꿀 중에서도 최상급이고, 보통 일벌이 그걸 먹고 자라면 여왕이 된다는 특상품이랑 같은 이름이지. 우리가 아는 몬스터가 처먹거나 몸에 덧칠하는 꼴이 되면 그 형태와 능력이 압도적으로 강화되는 이상한 젤리니까, 그런 효과를 지닌 해괴한 젤리니까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 몬스터 젤리가 로드 오브 몬스터의 휘하라고요?”
투란이 듣는 것만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되묻고 말았다.
쥴은 어깨를 으쓱했고, 툴로쉬가 그다음을 잇는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그런 젤리를 생산하는 놈이 로드 오브 몬스터의 성채가 되어 있어. 일단 생김새랑 움직임이 민달팽이랑 닮아서 로열젤리 슬러그라고, 어…… 임시로 붙인 이름이야, 임시로!”
어느 순간에 조금 급한 변명으로 맺는 말이 돼 버렸다.
투란의 눈길이 슬그머니 가늘어지면서 ‘정말 생긴 그대로 불러 젖히고 있는 겁니까?’라고 ‘마법사들이 몬스터 헌터 무식하다고 짜증 내는 이유가 있어!’라는 의미까지 담은 듯한 눈빛이 희번덕거리는 표정을 지은 탓이었다.
물론 이 순간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림이 꽂혀 들고 있었다.
―너랑 똑같잖아!
쥴이 바로 투덜거렸다.
“생긴 대로 부르는 것이 제일 좋지. 뭘 이것저것 파고들어서 본질적인 이름을 붙인다고 난리를 치느냐고. 아무튼 전례가 없는 해괴한 놈이니까 발견한 우리가 보는 그대로 이름 붙여도 돼! 로열젤리 슬러그! 그놈이 바로 우리가 만난 골치 아프게 하는 장애물이다!”
매우 당당한 외침으로 맺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