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8)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성채를 꾸밀 정도로 크단 말이죠?”
투란이 차분한 낯을 꾸미며 물었다.
쥴이 ‘그렇지?’라고 갸웃하면서 정확한 크기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에 툴로쉬는 자기 이마를 툭툭 두드리다가 한숨을 쉬고 말한다.
“쥴 님, 잠시 조용히 해 주세요. 이제부터 이야기하는데 끼어드시면 투란에게 제대로 설명을 못 하게 되니 말이죠.”
“응? 그냥 하면 되잖아! 왜 시작하기도 전에 내 탓을!”
금방 불퉁한 낯짝을 들이대면서 쥴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조금 더 쏘아보는 툴로쉬의 눈길에 투덜거림을 웅얼거림으로 바꾸면서 ‘목마르네.’라는 소리를 남기고 한구석으로 가서 물통을 찾는 시늉을 하고 마는 쥴이었다. 아무래도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부분을 느낄 때마다 끼어들어 묻는 짓을 안 한다고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듯했다. 그러니 차라리 툴로쉬의 상황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기를 쉬며 기다리겠다는 듯한 태도인 셈.
그런 쥴에게서 눈길을 돌린 툴로쉬는 숨을 고르는 시늉부터 하고 투란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라 투란이 툴로쉬가 짚어 주는 자리로 옮겨 섰다. 서고 보니 드리운 팽팽한 장막 앞이었다. 투란과 툴로쉬 사이에는 흙으로 채운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그 흙의 중심에 덩그러니 주먹만 한 구슬이 하나 놓여 있었다.
곧 툴로쉬의 손길이 구슬을 더듬었고, 구슬은 팽팽한 장막 위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은 곧바로 환영(幻影)을 장막 위에 그려 냈다.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환영 속의 풍경이 투란을 살짝 놀라게 했다.
“아…….”
‘이거 네가 보여 주는 것이랑 닮았네?’
입으로는 있는 그대로 놀란 소리를 내면서, 마음속으로는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묻는 투란이었다.
―기본적으로 같은 것 맞다. 투영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지. 너의 시각 속에 직접 투영하느냐, 저렇게 누구나 볼 수 있는 장막 위로 투영하느냐. 그 차이일 뿐이야. 저 형태로 봐서는 아마 룬디아크 공방의 제조품일걸.
‘거기 꼭 한번 가 봐야겠네.’
조금 더 환영이 드리워진 장막으로 다가서며 투란은 소리 없이 다짐했다.
너무 장막에 가까워져서 그림자가 크게 드리워질 지경일 때, 툴로쉬가 나직하니 말한다.
“너무 가까이 가면 빛이 네 몸에 비춰 버려. 조금 떨어져도 잘 보이잖아?”
“어, 네…… 저게 그 로열젤리 슬러그인가요?”
슬쩍 두어 걸음 물러서서 빛의 진로를 다시 틔운 다음에 투란이 물었다.
절벽을 배경 삼아 투명하게 퍼져 있는 기괴하고 거대한 괴물…… 그 주변을 개미처럼 기어 다니고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가득했다. 달리 보면 절벽에 무채색의 거품이 들러붙어 한껏 부풀고 그 주변을 조그마한 벌레떼가 와글거리며 채워 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다채로운 품종이라 무슨 벌레인가를 따지기도 애매하고 귀찮을 지경인 풍경…….
그 풍경 속에서도 특이한 부분은 거품의 안쪽에 좀더 응축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황금의 애벌레, 민달랭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형태의 벌레가 거품 한구석을 허물면서 속살을 살짝 드러낸 것처럼, 머리를 내민 것처럼 묘한 왕관 방울 모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왕관 방울이 확대되었고, 그 중심에 허리 아래를 걸쭉한 황금 속에 박아 넣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갑각 곤충의 해괴한 모양이 또렷해졌다.
“개미가 거미 머리를 투구처럼 썼네요? 등짝에 저건 뼈만 남은 날개라고 해야 하나? 아, 개미가 아니었나? 저건 대체 무슨 품종이죠? 저것도 로열젤리 슬러그의 한 부분? 아니면 반쯤 젤리에 파먹혔다가 소화가 안 되고 꽂힌 건가?”
멍하니 투란이 중얼거렸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몸이 토막 난 개미, 하지만 그 머리에는 한 겹 더 투구처럼 거미의 머리를 뒤집어쓴 듯했고 네 가닥의 앞발은 명확하게 팔처럼 보였다. 그리고 등짝에 불쑥 치솟아 나온 뼈대는 더듬이가 등에 몇 쌍으로 달린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차라리 날개가 있다가 뜯겨 나가고 뼈만 남았다 우기면 좋은 듯한 모양…… 이런 특징적인 부분과 별개로 장막 위에 세세하게 비치는 갑각의 묘한 무늬, 돌기, 그 복잡한 형태는 하나같이 이미 알고 있는 무엇과도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그렇다면 저건 대체 어디서 뭘 하던 괴물인가?
툴로쉬가 투란의 의아함에 대해 한숨부터 쉬고 대답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 바로 저게 그놈이다. 로열젤리 슬러그의 안쪽…… 거대한 황금 민달팽이 안에 자기 몸을 꽂아 넣고 호위를 받는 중인 거야. 저 왕관 방울 돌기 주변에 살짝 어둑한 그늘 보이지? 거기서 버그베어 호위들이 떼로 튀어나왔다. 그림자 속에 대기하고 있다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저 금색 체액 속에 숨어 있었던 것 같아.”
“금색…… 체액?”
“그래, 저 금색 부분도 콸콸 흐르고 줄줄 흐르는 액상 형태야. 그 중심 부분에서 밖으로 흘러나올수록 금색이 옅어지고 전체적으로 투명해져. 하지만 그 투명한 안쪽에도 실 가닥처럼…… 그래, 이렇게 하면 보이지? 실그물처럼 금빛 가닥이 번져 있어.”
툴로쉬가 조금 더 환영을 조절해서 잘 보이게 맞춰 주며 말했다.
투란은 살살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툴로쉬는 바로 로드 오브 몬스터를 다시 환영의 중심으로 비춰 내며 말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는 어떤 형태의 몬스터에게서도 발현될 수 있는 특성이다. 그 특성이 발현된 몬스터의 성질에 따라 휘하로 모으는 몬스터의 품종이 갈릴 때도 많지. 때문에 이 녀석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영락없이 거대화한 스캐럽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같은 방식으로 휘하를 모으고 진격하는 꼴을 보고 나서는 사실은 격퇴한 줄 알았던 놈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어. 그리고 다시 그 모든 전투 상황을 재검토하고서야 매번 배우고 확장하며, 영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이 녀석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라고 결론 내렸지. 때문에 이번만큼은 결코 놓칠 수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못 막으면 춤추는 산맥의 왕국 하나둘은 그냥 파괴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야. 그래서 무리해서 홀시딘을 졸랐다. 투란, 억지로 오게 한 일은 미안하다. 나중에 꼭 보답할게.”
“에? 어, 아니, 뭐…… 칼로드의 비전도 얻었고 했으니까…… 괜찮아요, 아무튼.”
갑작스럽게 나온 사과의 말은 투란을 허둥거리게 했다.
툴로쉬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구슬을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굳이 너에게 칼로드의 유물을 잇게 한 까닭은 이 상황이 로드 오브 몬스터를 무찌른다는 것으로 끝나질 않기 때문이다. 다른 때라면 일단 그 실체가 뭔지 모르더라도 로드 오브 몬스터의 군세를 무찌르고 녀석이 드러낸 외형을 박살 내는 정도로 끝내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어. 그 와중에 도망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정교하게 녀석의 실체를 파악하고 잡아낼 방법을 찾아낸 다음일 것이라고 장담도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그런 식의 대처는 선택할 수가 없다, 바로 저 로열젤리 슬러그가 로드 오브 몬스터의 종자이고, 성채가 돼 버린 탓에 말이다. 칼로드의 유물은 저걸 끝장내고 그 영향력을 지우기 위해서 필요하다, 투란.”
“어떤 영향력인데요? 로열젤리를 먹여서 다른 몬스터를 강화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는 건가요?”
투란이 툴로쉬가 숨을 돌리며 말을 멈춘 사이에 냉큼 물었다.
생긴 그대로 이름 붙였다 했으니 원래의 로열젤리, 그 이름의 벌꿀과 비슷한 효과를 몬스터에게 적용할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춤추는 산맥에서 강화되고 변이를 거듭한 몬스터가 그렇게 희귀한 것도 아니잖은가? 그 이상의 무슨 효과가 있기에 툴로쉬가, 쥴이 칼로드의 전승을 필요로 했을 터였다.
툴로쉬는 투란의 추측한 바를 짐작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구슬을 어루만졌다. 환영이 새로운 형태, 풍경을 비춰 내기 시작했다.
두꺼운 머리, 짧은 다리와 우람한 몸통의 개 몇 마리.
가느다란 몸통에 작은 머리와 길쭉한 네 다리를 지닌 고양이 몇 마리.
개와 고양이 여러 마리가 서로 비비적거리면서 한 귀퉁이의 투명한 거품에 엉겨 붙어 사이좋게 노는 듯한 광경이었다.
“테러 도그, 피어 캣이야. 들어 본 적 있지?”
불쑥 툴로쉬가 갸웃거리는 투란에게 묻듯이 말했다.
생김새로 알 수 없었지만 그 물음에 담긴 이름 덕분에 투란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음? 아, 그 울음소리가 끝내준다는…… 어라? 그 개랑 고양이 닮은 괴수는 홀로 놀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같은 종자라도 서로 울음소리를 질색하는 녀석들이라 무리 짓지 않는 것 아니었나요?”
“맞아. 그 말 그대로야. 테러 도그든, 피어 캣이든 같은 품종끼리조차 쉽게 어울리지 못하지. 자기 이외의 누구에게나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그 빌어먹을 공포와 절망의 포효 때문에 말이야. 덧붙이자면, 이 개와 고양이를 닮은 녀석들은 서로 보기만 하면 죽기 살기로 짖으면서 싸워. 같은 품종끼리는 소리 지르다 적당히 멀어지지만, 테러 도그와 피어 캣이 만나면 한쪽이 똥오줌 못 가리고 쓰러질 때까지 으르렁거리고 싸우다가 진 놈이 이긴 놈의 한 끼 식사로 사라져.”
“얘네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어 보입니다만?”
겨우 투란도 환영 속의 풍경이 어디가 괴상한가를 납득할 수 있었고, 납득했기에 바로 짚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툴로쉬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에 다시 구슬을 만지면서 또 다른 풍경을 비춰 줬다.
거기에는 사티로스와 고블린 무리가 옹기종기 모여서 사이좋게 사슴을 찢어 먹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얼핏 봐도 수십 마리가 뒤엉킨 무리이기에 잡아먹는 사슴도 한두 마리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사티로스와 고블린이 서로 그 찢겨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권하면서 자기는 배부른 척하는 꼴까지 꾸미는 광경이 매우 정겹지 않은가?
“이 녀석들도 참 사이가 좋네요? 아하, 사티로스랑 고블린이랑 로드 오브 몬스터 휘하라서 이렇게 친하게 지낼…… 리가 없는 거죠?”
투란은 적당히 납득할 수가 없기에 헛소리처럼 중얼거리고 말았다.
강력한 지배력으로 서로 싸우게 못 하게 하고 강제로 협력해서 전투하게 할 수 있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전투 이외의 상황, 그 대기 상태에서 저렇게 먹을 것을 나눠 먹고 서로를 돌보다니!
설마 저 로드 오브 몬스터가 몇 번의 패퇴를 겪으면서 지휘능력을 발달시키고 저 지경에 이르도록 다스리고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인간 이상의 지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인가?
―몬스터가 좋게 미치면 저럴 수도 있지, 몬스터라고 단체로 좋게 미치지 말란 법이 있더냐? 그렇잖아?
드라고니아도 못 참겠다는 듯이 헛소리하고 있었다!
투란이 입가를 실룩이다가 결국 툴로쉬를 보며 진지하게 묻는 소리를 낸다.
“툴로쉬, 저게 뭔 상황이죠?”
“저런 이상한 조짐을 발견한 것은…….”
툴로쉬가 다시 구슬을 어루만지면서, 새로운 광경을 장막에 비춰 내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사티로스 프린스가 두 마리 이상 발생한 다음부터였다. 들어는 봤지? 왕국의 군단이 맞닥뜨리면 가장 난감한 몬스터의 무리, 사티로스 프린스가 이끄는 사티로스 떼거리라고 말이야. 사티로스 중에서 왕자(王子)라 불리는 수준에 이른 녀석은 무리 내에서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개체를 용납하지 않아. 즉, 어떤 사티로스의 무리가 결성되더라도 사티로스 프린스는 한 마리만 남는다.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생겨났다 하더라도, 무리의 우두머리로 남는 것은 오직 한 마리. 하지만 저놈들은 둘이 한 번에 생겨났지만 저리 사이가 좋다.”
장막 위에서는 우람한 두 마리 사티로스가 서로 비비적거리다가 나란히 서서 무리를 이끄는 모습이 흔들흔들 비치는 중이었다. 한 놈은 어깨와 뿔이 굵직하고 한 놈은 허리와 장딴지, 무릎 아래가 묵직하게 부푼 형태로 다른 사티로스와는 격이 다르다고 외형으로 주장하는 듯했다.
“이걸 본 다음에 설마 하고 좀 더 주변을 자세히 뒤지고 파악하다가 테러 도그와 피어 캣의 패거리, 저 작은 놈들까지 마찬가지란 것을 알아냈지. 이런 현상은 로열젤리 슬러그의 주변에 모인 모든 품종 사이에서 크고 작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그 원인은…… 어떻게 봐도 한 가지뿐이었다. 로열젤리를 뒤집어쓴 놈과 아닌 놈 사이의 행태가 증명했지. 로드 오브 몬스터의 지배력 아래에서 서로 사이 나쁜 놈들은 겨우 다툼을 멈춘 채라도 으르렁거리는 몸짓만큼은 남는다, 하지만 거기에 로열젤리가 덧씌워지면 저 모양이 돼 버려. 품종마다 다른 본능의 차이 따위는 무시하고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내며 서로를 위해 기꺼이 대신 죽어 주는, 희생정신이 본능이 돼 버렸다고 할 수 있는 상태로 변한다. 저렇게 변한 놈들이 별동대가 되어서 본대보다 먼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전진해 있다. 그리고 여기 본대라 할 수 있는 로열젤리의 성채 속에서 그런 이상한 놈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지.”
“별동대라니, 여기 있는 몬스터 떼가 전부가 아니었어요?”
투란이 가만히 듣다가 흠칫해서 물었다.
툴로쉬는 한숨을 쉬고 대답한다.
“이 근방의 몬스터, 주로 고블린이랑 사티로스였다만 그걸 쓸어 담고 먼저 보냈어. 그리고 남은 녀석들은 어째서인가 더 많은 로열젤리를 흡수하고 더 강해진 것같이 보이기도 해. 마치 정예는 자신을 호위할 병력으로 남기고, 그 정예에 못 미치는 경우에 미리 보내서 정찰, 탐색을 시도하는 것 같았지. 그래, 내가 여기서 한 일은 저 본체라 할 수 있는 성채 무리가 움직이는 것을 막은 것이었다. 더 나아가며 새로운 몬스터를 휘하로, 로열젤리로 물들이는 짓을 조금이라도 늦춘 것뿐이야.”
투란은 툴로쉬가 굉장히 피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