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89)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닳고 닳아서 피곤한 것이겠지.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시늉과 함께 툴로쉬의 상태를 평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투란은 저절로 터지는 소리 없는 외침과 함께 마음속으로 성난 표정이라도 짓고 싶었지만, 일단 툴로쉬를 향한 표정은 최대한 신중하게 꾸미고 묻는 소리를 꺼내 놓는다.
“툴로쉬, 저 본체를…… 로드 오브 몬스터를 놓치지 않고 없애더라도 저 이상한 영향력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 그렇게 보고 있어.”
지친 목소리가 저절로 툴로쉬의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쥴의 목소리가 투란의 뒤통수를 향해 울려 온다.
“로드 오브 몬스터의 지배력은 그 범위와 기한이 한정적이다. 중심이 되는 로드 오브 몬스터를 쳐 죽이거나 하면 지배력이 해제되기 시작하고, 지배당했던 놈들은 자신의 본능이 깨어나면서 지배당할 때의 명령과 어긋나는 것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고 광폭한 난동을 부리지. 몬스터 로드가 광란해서 일으키는 폭동처럼 제한 시간도 없는 채로 말이야. 거의 탈진해 뒈질 때까지 그 광폭한 난동은 지속된다고 보면 돼. 그러니까, 별동대를 보낸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정 시간 뒤에는 다시 돌아오도록 명령해 두는 것이 로드 오브 몬스터가 본능이기도 하단 말이지. 하지만 사티로스 프린스, 그 두 마리가 이끌고 나간 무리라든가 그 전에 따로 호드의 직전까지 뭉친 고블린이라든가, 돌아올 낌새가 전혀 없이 진격하는 중이다. 기한도 범위도 제약받은 것 없이 로드 오브 몬스터의 지배력이 발휘된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야. 그게 무엇 때문인가 따지면, 저 로열젤리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잖아?”
“어, 그러면 그 영향력을 없앨 방법이?”
어정쩡하게, 그래도 설마설마하는 표정을 나름대로 꾸미면서 투란이 다시 물었다.
쥴이 쓰윽 투란 곁에 서면서, 투란의 어깨에 한 손을 척 걸치면서 대답한다.
“칼로드는 말이야, 투란. 옛날에 강력한 정신 지배, 그 원흉이 사라져도 고스란히 그 명령이 유효하게 발휘되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 지배를 이 세상에서 싹 지워 버렸어. 그 영향력은 물론이고, 두 번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능력의 원천까지 싹 없애 버렸지. 바로 그 눈으로 말이야, 투란. 어때 짐작할 수 있지?”
슬쩍 어깨를 낮춰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면서 투란이 묻는다.
“한 가지 궁금한데요, 몬스터끼리 사이좋게 지내게 된 일이 무엇 때문에 그리 위험하다고 여기는 거죠?”
쥴은 ‘어?’ 하고 어리둥절했고, 툴로쉬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을 한다.
“투란, 저 로열젤리는 몬스터만 물들이는 것이 아니야. 지나온 길에 뒤엉겨버린 들짐승, 날짐승도 휩쓸려 있어. 그리고…… 육식 맹수를 피해야 하는 초식 짐승이 나란히 사이좋게 서로를 핥아 주는 꼴도 있지. 이렇게 말이야.”
말과 함께 구슬을 어루만져 새로 보여 주는 풍경, 그 안에서는 늑대와 토끼가 여럿 어울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구석에서는 늑대가 토끼 발을 산 채로 씹는데, 한구석에서는 그 토끼의 털을 핥아 골라 주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토끼들이 씹히고 핥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늑대에게 비비적거리면서 장난이라도 받아 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과연 저 광경이 사이좋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늑대가 사냥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봐야 하는가?
투란이 맹하니 보는 사이에 슬쩍 비치는 관점이 옮겨지니, 늑대가 몬스터에게 산 채로 씹어 먹히는 중이다!
―생태(生態)가 유지된다고 해야 하냐, 망가졌다고 해야 하냐.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분명히 먹고 먹히는 관계는 지속되는데, 그 안의 팽팽한 긴장감 따위는 없고 한 무리가 되어 사이좋은 분위기라니…….
툴로쉬의 목소리가 조금 무겁게 이어지며 투란의 귓가에 스며든다.
“나는…… 우리는 인간도 저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쥴이 바로 몇 마디를 더한다.
“다들 모여서 먹고 먹히는 채로 하하 호호 웃는 관계가 바람직한 낙원의 모습이라고 외치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지. 그런 놈들이라면 저걸 무슨 신수라고 부르면서 우러러 섬기려 할 수도 있어.”
―무슨 끔찍한 발상이냐?
투란의 뇌리에 쥴의 이야기를 밀어내려는 듯한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귀를 살짝 더듬고 머리를 긁적이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온 세상이 전부 로열젤리에 물들여지고, 로드 오브 몬스터가 다스리면……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상황이려나……?”
“멸망한 시체 같은 세상.”
쥴이 단언했다.
너무 확신하는 말에 투란이 맹하니 ‘무슨 뜻?’이라는 눈길로 쥴을 봐야 했다.
툴로쉬가 낯을 구기는 채로 보태 말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짓을 할까? 그 결말은 오래전에 기록되어 있어. 더 이상 지배하고 정복할 대상이 없어지면 로드 오브 몬스터는 자신이 지배하고 정복한 휘하를 무덤 삼아 잠든다고 말이야.”
“그게 뭔 소리예요?”
투란이 흠칫해서 툴로쉬에게 되물었다.
쥴은 아는 바가 있는지 혀를 차며 머리를 흔들었고, 툴로쉬는 침착하고 무겁게…… 때문에 은근히 무섭게 들리는 이야기를 바로 잇고 있었다.
“실제로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야. 하지만 로드 오브 몬스터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날 때마다 거의 재앙급으로 성장하거나 그 직전까지 날뛰는 일이었기에 그 본능의 끝이 어딘가 조사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과거 엘더 헌터와 대마도사, 대성녀(大聖女), 대사제(大司祭) 몇 분이 참여해서 알아냈어. 로드 오브 몬스터가 모든 세계를 정벌했다고 여기도록, 폐쇄된 금역에 감금하고 그 끝을 보여 줬지. 그렇게 겨우 알아낸 결과가 그런 결말이란 거야.”
“처음 듣는데요?”
―그래, 나도 처음이다.
투란의 뚱하고 의아한 대답에 바로 드라고니아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툴로쉬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이 쥴이 불쑥 말한다.
“알아내고 나서 바로 엘더 헌터를 비롯한 성녀, 사제의 신전 몇 곳에 기록을 남기고 바로 봉인해 버린 지식이거든. 상아탑에서도 몰라. 아, 그냥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해야겠네, 상아탑은…….”
“알려고도 안 해요?”
투란으로서는 아주 뜻밖의 말이었다.
호기심이 넘쳐나서 치지 않아도 될 사고도 막 치는 것이 마법사, 아니던가?
“응, 그딴 결말 알 것 없이 나타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일단 격퇴. 그게 상아탑의 방침이거든. 사실 맞기는 해, 그 방침이…….”
쥴이 입술을 삐죽이며 왜 상아탑 따위가 그렇게 똑똑하냐는 듯한 웅얼거림으로 말을 맺어 버렸다.
툴로쉬가 그 흐트러진 말꼬리를 밝히듯이 이어 말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의 위협을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상아탑은 그 활동을 저지하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정한 거지. 애초에 굳이 그 결말까지 알 필요가 없기도 하고. 어쨌든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더라도 나라 몇을 멸망시키고 더 큰 피해를 낳을 수도 있는 골 아픈 괴물인 것은 변함없잖아?”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로열젤리를 뿌려 대는 수백 미터짜리 민달팽이 괴물 성채에 올라탄 저 로드 오브 몬스터의 실체는 뭐인 거죠? 보이는 그대로의 몬스터가 아니라고 했죠? 그럼, 뭔가 추측은 해 뒀을 것 같은데…….”
투란이 고개를 젓다가 다시 가닥을 잡아 보자는 듯이 말했다.
툴로쉬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환영을 다시 로드 오브 몬스터가 머무는 풍경으로 바꿔 비춰 내며 말한다.
“몇 번을 쳐들어오고 그때마다 다른 모습, 그렇다면 가장 쉽고 빠른 추측은 기생(寄生) 형태의 몬스터가 매번 숙주(宿主)를 바꾼다는 것이야. 일단 다양한 기생형을 검토하다가 지금까지 싸웠던 기록, 패퇴시켰던 순간에 대해 중점을 두고 다시 검토한 결과는 안개 형태의 기생체가 아닐까 해. 오래전에 격멸시켰던 품종이지만, 춤추는 산맥 안쪽까지 싹 다 뒤져 멸종을 확인한 것은 아니거든.”
“안개라니, 너무 애매한데요?”
투란이 살짝 투덜거렸다.
쥴이 피식 입꼬리를 뒤틀면서 말한다.
“블랙미스터, 흑무(黑霧)라는 품종일 거라고 난 확신한다!”
“확신까지 하는 근거는요?”
투란은 조금 삐딱하니 되물었다.
쥴은 당당한 표정으로 툴로쉬에게 턱짓했다.
쓴웃음과 한숨이 섞인 채로 툴로쉬가 대신 대답을 한다.
“검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현상이 매번 나타난 공통된 점이거든. 그런 타입으로 영리함을 갖추고 이전보다 우수한 새로운 숙주를 찾는 경우라면…… 악마종이 만들어 낸 품종이지만, 변형해서 만든 자들까지 잡아먹고 사라졌다는 흑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거야. 최대한 짜낸 추측은 이 정도이고, 이번에 저걸 제압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검은 연기가 보이고 흩어지면 도주했다고 봐야겠군요.”
투란이 간단히 요약하듯 중얼거렸다.
쥴이 곧바로 고개를 젓고 말한다.
“그런 현상이 벌어지기 전에 칼로드의 눈길로 잡아 없애야지! 로열젤리를 통해 강화된 채일 테니까, 한꺼번에 없애 버릴 수 있을 거야.”
“흐음.”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지만, 투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칼로드가 남긴 뿔수리의 문장, 그 안에 담긴 타나토스의 눈이 과연 그렇게 원하는 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그 위험한 위력을 어렴풋이 엿보기는 했지만 로열젤리에 물들여진 채로 흩어져 다른 곳에 있는 녀석들까지 과연 그 힘이 닿을 수 있는가?
―안 되면 아케인 버스터 체인이 답일 수밖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넌 이미 파워 서클과 공명할 수 있고 그 가디언의 소환도 가능하다는 점이겠지.
‘야, 안 쓰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그 주문 위험하다고 울부짖었던 놈이 너야, 너!’
투란은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다가 장막의 환영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보고 툴로쉬를 바라봤다.
툴로쉬가 새로운 지형을 비춰 내며 말한다.
“일단 주변 상황부터 봐 두라고. 로드 오브 몬스터를 격파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놈에게 닿기 위해서 돌파해야 할 녀석들이 한가득하니까. 그리고…… 은폐된 채로 숨은 놈들, 몬스터가 아닌 날짐승이지만 로열젤리에 물들여져 주변을 감시하는 새 떼까지 고려해서 돌파 경로를 짜야 해. 땅 아래, 하늘 위까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으니까, 충돌은 피할 수가 없어.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거쳐 가는 과정의 싸움은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경로를…… 왜?”
듣고 있던 투란이 고개를 살래살래 젓기에 툴로쉬의 이야기가 멈춰졌다.
쥴이 바로 흥미롭다는 듯이 묻는다.
“단번에 도달할 방법이 있냐?”
“혼자라면, 어떻게든 바로 로드 오브 몬스터를 후려칠 수 있어요.”
투란은 아까 쥴의 흉내를 내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툴로쉬가 눈살을 찌푸렸다.
“혼자?”
쥴은 픽 새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재주 하나둘은 있을 만하지. 칼로드의 재간까지 얻었으니까 더욱 믿을 만한 말이기는 해. 그래서 혼자 와글거리는 놈들 틈새에 떨어진 다음은? 단숨에 처리할 수도 있다고 자신해?”
“아니, 잠깐! 자신 있다고 그냥 해보라고 권할 생각입니까? 투란, 무슨 생각인지 우선 제대로 설명을 해 줘! 이건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말고 할 여유로운 일이 아니라고!”
툴로쉬가 손을 젓고 고개를 저으면서 외치고 있었다.
당혹스럽게도 보이는 툴로쉬,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이는 쥴.
둘을 살짝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은 짧게 한마디를 흘렸다.
“셰이아.”
투란의 발아래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뭉클거렸고 단숨에 치솟았다.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버린 투란은 곧바로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쥴이 ‘어? 뭐?’ 하는 소리를 냈고, 툴로쉬는 멈칫하다가 재빨리 돌아섰다.
툴로쉬의 그림자가 짙어진 채로 불쑥 치솟으며 다시 형태를 잡고 검은 색채를 지우니, 바로 투란이 자리를 바꾼 채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어이없어하던 툴로쉬가 묻는다.
“그림자 정령……?”
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쥴이 황망하게 외쳤다.
“셰이아! 야, 너 분명히 그렇게 불렀냐? 정말 이 그림자 정령이 셰이아야? 진짜로? 얘를 대체 어디서 찾아냈지? 아니, 얘가 어째서 아직 세상이 있을 수가 있는 거냐? 진짜 셰이아야? 허얼!”
물음은 곧바로 허우적거리며 당혹스러운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답하기보다 투란은 살짝 툴로쉬 눈앞에서 한쪽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옹알거리듯이 속삭인다.
“리틀 점프.”
순간 툴로쉬는 고개를 홱 돌려 투란이 가리킨 곳을 봤다.
방금 있던 자리에서 눈 깜박이니 없어진 듯한 투란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툴로쉬가 중얼거린다.
“공간단축(空間短縮)…… 그런 도약(跳躍) 능력은 춤추는 산맥에서 사라진 요정족의 특기였는데…….”
이 두 번째 상황을 본 쥴은 단숨에 당황스러움을 떨쳐 낸 모양이었다.
“그림자 정령과 도약이라면, 쳐들어갈 경로 잡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긴 하지. 그렇기는 한데, 투란 너에게 그걸 권하기는 애매하거든. 타나토스의 눈을 쓰고 나서도 네가 정령을 다루고 도약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장담을 못 하니까 말이야. 으음, 그렇다면…….”
어느새 새로운 계획을 중얼거리는 쥴이었다.
―정말로 암살(暗殺)하려고?
드라고니아는 매우 수상하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