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0)
‘너, 안 놀란다? 내가 셰이아로 이런 적이…… 있었냐?’
투란은 쥴과 툴로쉬를 보는 채로, 소리 없이 되물어야 했다.
셰이아의 힘으로 그림자를 매개 삼은 이동, 어쩐지 될 듯해서 해 봤지만, 아주 새롭고 낯설다고 생각했다. 한데 투란의 이런 느낌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다니,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하다니?
픽, 웃음이 새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소리 없이 대답한다.
―본능적으로 해낼 수 있는 짓이라고 분류해 놨지. 일단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서는 그림자 정령의 힘이 꽤나 이상해지는 탓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보다가 몸에 익었거든.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한가할 때 하고, 정말로 암살하려고?
‘일단 그렇다고 해 둬야 혼자 가 볼 수 있잖아.’
―뭔 수작을 꾸미려고?
‘별일 아니야, 일단 마음 편히 구경을 해 보고 싶은 거니까.’
투란은 적당히 대꾸를 하다가 쥴과 툴로쉬가 새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관심을 기울였다.
먼저 쥴이 새로운 계획을 입에 담았다.
“그림자 정령 셰이아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몸을 숨길 수 있어. 옛날 요정족의 도약 능력이라면, 거리 한계를 가늠하고 공중에 중간 경로를 잡아서 단숨에 로드 오브 몬스터를 칠 수 있을 거야. 로열젤리 슬러그를 일단 방치하는 꼴이 되겠지만, 어때?”
툴로쉬는 잠시 깊이 생각을 하고 대꾸를 한다.
“우선순위를 로드 오브 몬스터에 둘 수 없어요. 로열젤리의 특이한 효과 때문에 외곽부터 깎아 들어가는 전술도 채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 감시망만 펴 놓고 뒤로 빠진 거잖습니까. 일단 로열젤리 슬러그를 제거, 최소한 로열젤리의 영향력만이라도 무력화해 놓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것만 처리하면, 몬스터 무리의 절반 이상이 서로 싸우다가 없어질 테니까요.”
“일리가 있군, 하지만 그건 투란에게 먼저 막대한 힘을 소모하고 숨으라고 하는 거잖아. 셰이아가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일단 주인에게서 힘을 끌어내는 계약의 정령이라고. 칼로드도 옛날에 그 눈을 한 번 쓰고 몇 년을 다시 형성해 내지 못할 정도라고 했어. 그 몇 년 동안에는 몬스터 로드로서의 역량도 거의 발휘 못 했다고. 셰이아만 믿고 해내라고 할 수는 없지. 너나 나나 투란과 함께 쳐들어가는 것은 무리이고, 대책은?”
“혼란을 틈타 돌격해서 투란과 합류하고 내빼야죠.”
“혼란?”
“로열젤리 슬러그가 그 영향력을 잃는다면, 저기 남은 녀석들은 서로를 원수처럼 보고 싸울 테니까요.”
“그럴까?”
“아닐 거라고 추측할 근거가 있으세요?”
“단번에 영향력이 증발하는 것이 아닐 수 있거든. 세계를 갉아 내고 수정(修整)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이야. 즉각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이뤄 내는 힘이니까. 분명히 시간이 흐르면 영향력이 사라진 결과로서 혼란스럽기는 할 테지만, 당장 힘을 소모한 투란을 빼내 와야 하는 단시간 내라면…… 글쎄, 어떨까?”
쥴이 이마에 살짝 주름을 드리우면서 갸웃거렸다.
툴로쉬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투란을 돌아보며 묻는다.
“투란, 완전히 탈진했다고 치고 셰이아를 이용해 몸을 은폐할 수 있어? 최소한 십 분 정도 말이야.”
“가능할걸요? 셰이아는 평소에도 내가 탈진할 경우를 대비해서 대기시켜 놓는 편이라 말이죠.”
방긋 웃음과 함께 투란이 대답했다.
쥴은 그 대답에 ‘엥?’ 하다가 어이없어하며 허탈한 듯이 웃었다.
“생각보다 교활하구나, 투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준비해 둔 마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주시죠?”
투란은 도도한 말투로 으쓱대는 시늉과 함께 대꾸했다.
쥴이 고개를 끄덕이며 퍼뜩 눈치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그렇지, 여러 가지 마법…… 너한테 그게 있었지.”
잠시 미묘하게 투란과 쥴이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는 낌새를 띠었다.
이 분위기가 어이없다는 듯, 툴로쉬가 살짝 낯을 구기며 바로 묻는다.
“뭐죠? 뭔데요? 무슨 대책인 건데요?”
히죽, 살짝 음흉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쥴이 고개를 젓는다.
“그냥 그렇다고. 너무 궁금해하면 무슨 약점 잡으려는 사람처럼 보이거든? 몬스터 로드의 비상수단에 대해서 너무 알려고 하지 마라, 툴로쉬.”
진지한 말투를 꾸미기는 했지만 놀리려는 표정이 한가득한 채 나오는 말이었다.
툴로쉬는 어이없어하다가 픽 웃고는 투란에게 묻는다.
“어쨌든 탈진해도 십 분 이상 확실히 버틸 수 있다는 말이지?”
“아마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슬그머니 여운을 남기듯이 투란이 대답했다.
몬스터가 한가득한 곳, 일사불란(一絲不亂)한 고삐가 채워져 있다가 갑작스럽게 해방될 가능성은 물론이고 단번에 집중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자리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완벽한 장담은 오히려 이상할 뿐이었다. 때문에 툴로쉬는 그 미묘한 ‘아마도’란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로열젤리 슬러그부터 노리자. 하는 김에 로드 오브 몬스터를 같이 처리할 수 있다면 좋고, 그렇게까지 안 된다면 무리하지 말고 숨는 것으로 하지. 일단 쥴 님이랑 내가 투란 너를 빼내고 그다음 상황을 보기로 하고…… 괜찮겠지?”
투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쥴이 너무 그 고갯짓이 쉽게 나왔다는 듯이 혀를 찬다.
“쯧! 놀러 가냐? 좀 더 생각을 할 여유는 있어. 계획을 하나만 세우고 밀어붙이는 짓은 안 돼. 툴로쉬, 다른 계획은 없냐?”
“있죠, 불지옥 작전.”
“뭐? 야, 너 설마……?”
듣자마자 알아차린 듯, 쥴이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투란으로서는 ‘그게 뭔데요?’라고 물어야 할 작전인 듯한데…….
“최소한 겁은 줄 수 있을 겁니다. 경험했다고, 적응했다고 피해를 전혀 입지 않는 수준일 리는 없잖아요?”
단호하게 이어진 툴로쉬의 말에 쥴이 조금 뚱하니 거슬린다는 듯이 눈매를 좁히다가 한숨과 함께 묻는다.
“후우, 그래서 온데?”
“아직 찾는 중입니다. 뭐, 벨카인 님이 못올 경우를 대비해서 알드바인에 이미 주문해 놓은 것도 있으니까, 작전 수행에 문제는 없어요.”
태연한 대답이었지만 쥴은 이제 슬슬 어이없다는 듯이 툴로쉬를 훑어보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맴돌려 하는 듯한 순간, 이리저리 튀며 둘만 아는 이야기가 더 이어지기 전에 투란이 묻는다.
“알드바인에 뭘 주문했는데요? 불지옥 작전이 뭐죠? 그 작전이면 로드 오브 몬스터랑 저 몬스터 패거리를 싹 쓸어 낼 수 있는 건가요? 로열젤리 어쩌고도 싹 밀어낼 수 있고요?”
“아니, 그냥 겁줘서 춤추는 산맥 안으로 다시 몰아넣는 정도가 고작인 작전이다.”
쥴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툴로쉬도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더 보태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불의 지옥을 들이대서 물러서게 한다는 계획이야. 인페르널 플레임은 이 세상 불길에 타지 않는 녀석이라도 태워 버리니까. 알드바인에 주문해 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인페르널?”
―어디서 그 불꿏을 얻겠다는 것이지?
투란이 가만히 되뇌며 갸웃했고 드라고니아도 기묘하다는 듯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홀시딘의 마법 헬플레임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와는 다른 불꽃을 의미하는 듯하니까.
툴로쉬가 ‘음?’ 하며 잠깐 이야기를 멈춘 사이, 쥴이 냉큼 말한다.
“카엘을 부른다는 이야기야.”
투란이 ‘대마도사요?’라고 입을 벙긋거리려는 낌새를 보이려 하는 순간, 툴로쉬가 살짝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벨카인 님을 부른다고. 인페르노를 쓸 수 있는 하이로드이시니까. 연락이 닿지 않아서 문제이기는 한데…… 시간에 맞춰 오시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알드바인의 마스터 홀시딘에게 헬플레임의 매직스크롤을 제작해 달라고 청해 놨어. 상황이 상황이니까, 상아탑에서도 허가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아, 네…… 그러면…… 하이로드 카엘 룬 벨카인 님께서 여기 없는 까닭이, 그냥 연락이 안 된 탓이었어요?”
조금 가늘게, 살짝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이 쥴을 흘깃거리는 채로 툴로쉬에게 묻고 있었다. 이에 대해 쥴이 슬그머니 딴청 피우는 척하며 툴로쉬보다 먼저 대꾸한다.
“워낙 여기저기 사고쳐 놓은 일이 있어서 숨어 다니거든. 이름도 바꾸고, 얼굴에 가짜 흉터도 만들고…….”
“상황이 생각보다 나쁘고 빠르게 변한 탓에 미리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 그사이에 종적을 감춰 버리실 줄은 몰랐지. 게다가 한번 퇴치했던 녀석인 탓에 벨카인 님에게 바로 청을 해야 하는가 마는가를 놓고 엘더 헌터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좀 있었거든. 알았다면 벨카인 님도 여기 쥴 님처럼 바로 나서 주셨을 거야. 어쨌든…… 투란의 시도가 의도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쥴 님이나 벨카인 님이 이전처럼 나서 줄 수밖에 없지.”
툴로쉬가 쓴웃음과 함께 말을 맺으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그 눈길에 투란이 바로 입을 열어 답한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되잖아요.”
“그래, 그러길 바라.”
“그렇게 될걸!”
툴로쉬의 말에 쥴이 어깃장을 놓듯이 으르렁거렸다.
딱히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는 듯이 툴로쉬가 쥴을 바라봤다.
쥴은 툴로쉬를 노려보는 척하다가 투란에게 말한다.
“칼로드가 물려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 반드시 넌 해낼 거야. 다음 계획은 네가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가 우리가 원하던 것이랑 다를 때를 대비하는 거야! 알았지? 넌 일단 무조건 성공하고 안전하게 후퇴한다, 그다음 일은 이 녀석에게 맡겨! 내가 이 녀석을 잘 감시할게!”
“아, 네.”
투란은 툴로쉬를 흘깃거리면서 어정쩡하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망할 하이로드는 왜 엘더 헌터를 감시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듯이 떠드는 거냐? 이건 무슨 인간적인 상황으로 안 보이는데?
드라고니아조차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적극적이었던 태도가 어느새 구경꾼의 수동적인 태도로 무장한 분위기라니!
‘장난이겠지, 아마도…….’
쥴의 기묘한 눈초리를 확인하면서 투란의 입가에서 미묘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툴로쉬도 그 한숨에 공감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연다.
“그러면…… 일단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녀석들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부터 해야겠군. 응? 왜?”
투란이 고개를 젓기에 말은 의문으로 맺어졌다.
“따로 정찰할 필요 없어요. 직접 내려다보고 살펴볼게요. 그보다 연락은 어떻게 주고받죠?”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 대신에 툴로쉬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손바닥 위에 조그마한 구슬이 달린 반지 혹은 귀걸이처럼 보이는 것이 툭 떨궈지듯이 나타났다.
“이걸로 하면 돼. 몬스터 로드라도 쓸 수 있어. 귀에 꽂아도 되고, 손가락에 끼어도 되고…… 응? 그건?”
이번에도 툴로쉬의 말은 제대로 맺어지질 못했다.
냉큼 투란이 손끝으로 작은 마도구를 찍는 순간, 사라져 버렸으니까.
쥴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으쓱거리는 말투로 소리 낸다.
“그 가게의 반지를 내가 선물했지! 어지간한 장비는 전부 챙겨갈 수 있는 특제품이야! 에헴!”
―뭔 소리야? 아니잖아!
드라고니아가 쥴의 당당한 거짓말에 황당해하며 으르렁거렸다.
‘아…… 숨기란 말이겠지, 뭐.’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툴로쉬에게 마도구를 찍었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여 줬다.
“좋은 걸 받았구나. 쥴 님이 보증할 정도라면, 그냥 안에 담아 둔 채로도 메신저가 작용할 것 같은데? 잠깐만, 들리나?”
툴로쉬는 슬쩍 뒤로 몇 걸음 떨어진 채로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었다. 투란이 낀 옷장 반지라 불리는 데릭 상회의 마도구 반지가 그 목소리를 중계해 주는가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투란을 살짝 놀라게 했다.
“어라? 귀에 바로 울리는데요?”
“역시 되는군. 쥴 님, 정말 좋은 걸 구해 주셨군요. 다행이에요. 이러면 상황에 대응하기 좀 더 편해지겠군요. 그럼, 이제 할 일은…… 투란, 일단 한숨 자 둬야 하지 않겠어? 칼릭을 타고 오느라 쌓인 피로까지 풀고, 최상의 상태로 나서는 편이 좋잖아. 마침 꿈자리 좋다는 침구도 있는데…….”
툴로쉬는 저쪽 한구석에 놓인 간이 침상을 가리키며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었다.
쥴도 갸웃하다가 투란에게 말한다.
“쉬는 편이 좋기는 하지. 칼릭이 워낙 빠르고 거칠게 날아왔으니까. 몸이 견딜 만하다 해도, 피로가 그리 쌓이지 않았다 해도 최선의 준비를 하는 쪽이 좋긴 좋잖아.”
둘이 보여 주는 일관성 있는 태도가 투란을 살짝 웃게 했다.
몬스터 로드의 힘이 그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이리저리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알기에 둘이 이러는 것이고,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있기에 미리 짚어 주는 셈이었다. 투란 스스로 괜찮다고 여긴다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일단 한숨 재워 보려는 의도가 훤히 엿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