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
—맞다. 이건 분명히 드레이크라고 인간들이 부르는 그 녀석이야.
뭉클거리는 묘한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기척을 띤 대답이 전해졌다.
‘근데…… 이거 죽은 거야, 산 거야?’
투란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다음 의문을 떠올렸다.
드레이크, 거대한 날개와 머리, 꼬리랑 네 개의 발, 우람한 뿔 한 쌍까지 지닌 이 녀석의 형상을 포착했을 때부터 투란이 이상하게 여긴 부분이었다. 감지해 본 바로는 분명히 피도 돌고 있었고, 심장도 뛰고는 있었다. 한데 멋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울부짖어 주변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녀석이 어째서 여기 처박혀 이러고 있는가? 아예 죽은 놈이라면 차라리 고르고니아에게 당했구나 할 텐데, 이 드레이크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꼼짝도 않고 고르고니아에게 피와 살을 뜯어 먹히고 있었다.
—절반은 살아 있고, 절반은 죽었다고 봐야겠지.
‘엥?’
투란을 놀라게 하는 드라고니아의 어딘가 피곤하고 씁쓸한 대답이었다.
죽었으면 죽은 거고 살았으면 산 거지, 이 무슨 대답인가?
—심장이 뛰고, 피가 돈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죽었다고 하기 힘든 상태가 맞아. 하지만 이 드레이크는 이제 움직이지 못한다. 이 녀석은…… 스테노아의 눈빛에 맞아 이 꼴이 된 거니까.
‘눈빛?’
—고르고니아 세 자매는 그 눈동자에 특이한 힘을 담고 있다. 말 안 했나?
‘안 했거든! 그 막내가 특별하다는 소리만 한 것 같은데.’
—흠, 그래? 그럼 말 나온 김에 하지. 너 또 잠들 참인 것 같으니…….
‘야, 자는 거 아냐! 젠장, 하던 말이나 해 봐!’
투덜거림을 잠깐 토하려던 투란은 곧 관두고 재촉했다.
아무래도 저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듯한 태도였다. 이를 뭔가 흥미로워하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기척이 풍겨 나왔고, 이야기도 함께 흘러나온다.
—메듀시아의 눈빛은 석화(石化)의 힘을 지녔다고 했지? 아주 특별한 그 힘과 비교하면 어딘가 많이 모자란 듯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힘이 스테노아와 유렐리아의 눈빛에 담겨 있다. 지금 중요한 스테노아의 눈빛에 담긴 힘은…… 돌처럼 굳어지게 한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거야.
‘돌이 된다는 소리?’
—아니, 그건 메듀시아의 눈빛이고! 스테노아는 대상의 구성 형질을 돌로 만드는 그 눈빛과 다르게, 돌이 된 것처럼 대상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잡아 놓은 채로 살점을 뜯어 먹고 그 피를 마셔 댈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드레이크에게 저 속박을 풀고 다시 일어설 수단은 없다. 알아들었냐?
‘돌처럼……이로군.’
투란은 겨우 드라고니아의 말을 완전히 납득한 것처럼, 졸린 듯이 대꾸했다.
다시 일어나 날지 못하는 드레이크, 남은 것은 그저 뜯어 먹혀 끝장날 순간만을 기다리는 꼴, 그 몸은 살아 있지만 정말로 드레이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반은 살았다 할 수 있지만 반은 죽은 것이다.
‘아, 그런데 저쪽에 조그맣게 생겨서 이놈이랑 닮은 거 하나 있던데. 드레이크도 큰 종류랑 작은 종류가 있나?’
투란의 정리되어 가는 생각 속에 다시 작은 의문이 피어났다.
이제 섬의 거의 대부분이 투란이 끌어내는 지각 능력 범위 안이었다.
그 덕분에 투란은 이 드레이크랑 거의 비슷한 냄새, 비슷한 외모이지만 훨씬 작은 놈이 하나 더 있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새끼다, 그건.
짧은 대답을 들으면서 투란의 의식은 깊게 가라앉았다.
* * *
크륵, 푸륵!
스테노아는 머리를 흔들며 입을 벌린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두 가닥 뿔이 공명하며 깊고 그윽한 음향이 여리게 멀리 퍼져 나갔다.
반향이 주변의 풍경을 훑었지만, 그 속에 고르고니아를 위협하는 어떤 대상도 없다는 점만 분명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스테노아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뭔가를 혀로 핥아 삼킬 때마다.
스테노아는 자신의 숨결을 따라, 자신이 맛보는 것을 따라서 바닥에 폭신하게 깔린 희미하고 여린 실그물이 닿아 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 실그물의 근본인 뿌리 더미는 어떤 위협도 없는, 그저 이 근방에 빳빳하고 단단하며 긴 풀잎이 깔릴 때처럼 스며들어 퍼진 하찮은 것이었다. 때문에 스테노아는 이 가는 티끌 같은 것이 자꾸 자신의 몸에 달라붙고, 가늘게 쪼개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머리와 뿔에 휘감기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그 하찮은 것이 언제부터인가, 마치 스테노아의 몸에 드리운 얼룩처럼 짙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고 맛을 보는 순간마다 끼어들 정도로, 점차 깊이 스테노아에게 스며드는 듯했다.
그로부터 스테노아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그래서 스테노아는 살며시 가면 같은 얼굴을 당기며, 꿰맨 자국 같은 눈을 떴다.
금빛의 휘광이 가면조각 위로 번져 갔고, 작은 금색의 아지랑이가 스테노아의 뿔과 머리 언저리의 금빛 모피를 짙게 맴돌았다.
푸우웃! 크흐우우우!
쾌적한 숨결, 산뜻한 맛을 느끼며 스테노아는 눈앞에서 금색으로 물든 채 흩어지는 뿌리 더미, 그 가늘게 엮인 실그물의 조각들을 바라봤다. 딱히 저항한 것도, 몸부림치는 것도 없었다. 바닥에 밟히다가 피어나는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곧 스테노아의 눈이 다시 감겼다.
꿰맨 듯한 자국의 눈가를 흔들며 스테노아의 머리가 갸웃거렸지만, 주변에는 딱히 변한 것이 없었다. 그저 그냥 회색의 티끌이 잠시 금색으로 물들어 흩어진 듯한 광경만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결국 스테노아는 자신이 딛고 다니는 이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실그물, 뿌리 더미의 자잘한 조각들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어슬렁거렸다. 달리 뭔가 해 볼 짓은 없다는 듯했다.
그렇게 스테노아는 점차 온몸의 금빛이 짙은 얼룩이 지는 꼴이 되어 갔다.
* * *
‘얼마나 지났나?’
드레이크의 몸통 아래, 어느새 두껍게 쌓인 넝쿨 뿌리 더미 속에서 투란은 조용히 눈을 뜨며 생각했다. 잠을 자는 듯했던 투란의 몽롱했던 의식은 이제 완전히 선명해진 채였다.
—총 8개월이 지났다. 네가 이 섬 주변을 맴돌고 나서 말이야.
‘음? 그럼…… 여기 올라와 숨은 것도 4개월째인가? 드레이크 발견할 때 그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랐군.’
—그게 한 달 전이다.
‘에? 그때부터 또 한 달이 지난 거야?’
—이 쓸모없는 짓을 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
‘응? 쓸모없다고?’
—이 조그마한 땅덩이를 온통 그놈의 뿌리로 물들인 것은 대단했다. 그래 그건 정말 대단한 짓이라고 나도 인정해. 아무리 충분한 양분을 늪에서 얻어 낸다고 해도, 이 정도로 끈기 있게 중심을 잃지 않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보통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걸로 어쩌려고?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몸에 얼룩 좀 끼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 퍼뜨린 뿌리줄기를 한꺼번에 엮어서 묶으면 스테노아가 묶일 것 같아? 녀석의 눈빛에 너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서 산산이 으스러진 뿌리 가닥들을 느끼지 못했나?
‘음, 그거 대단했어. 설마 드레이크도 아닌 잔뿌리에도 그렇게 통할 줄은 몰랐어. 악마의 심장이라면 그냥 식물형이니까 괜찮을까 했는데…….’
투란의 대답은 상당히 평온했고, 그런 마음의 기척은 분명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다. 더불어 투란이 이제 상황을 정리하고, 끝장을 내려 한다는 기척 또한 분명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다시 투란을 향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쩌려는 거냐? 지금 네 힘으로는…… 스테노아에게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잖아.
‘음? 흐흠, 글쎄…….’
깊이 파묻힌 투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궁금해하는 드라고니아에게는 애매한 대답을 했지만, 투란에게는 뭔가 확신이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투란은 팔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손발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팔다리의 뻣뻣함은 금세 사라졌고, 악마의 심장이 투란이 방금까지 한 사흘은 움직인 사람인 것처럼 몸을 유연하게 풀어 줬다.
그다음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투란은 일어섰다.
드레이크의 곁에서 우뚝 선 모습인 투란의 눈길이 한쪽을 향했다.
어슬렁거리며 끼니를 때울 예정으로 찾아오던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투란의 눈길을 받으면서 멈췄다.
늪의 습기를 담은 바람이 여리고 흐릿하게 흘러 지나갔다.
스테노아는 의아한 듯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그 뿔의 공명을 통해 투란을 파악하려는 듯한 음향을 쏘아 보냈다.
투란은 그 음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스테노아의 흉내라도 내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을 살짝 울려오는 이 음향, 파묻힌 채로 숨어 있을 때는 얼핏 늪에서 느꼈던 그 반향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음, 이 녀석이 그 박쥐는 아니란 거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피식, 기묘한 웃음이 스테노아를 마주 보는 투란의 입가에 피어났다.
가면 같은 스테노아의 얼굴 부분이 살짝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꿰맨 실 자국 같은 눈이 뜨이며, 금빛이 흘러나왔다.
요란하지 않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금빛은 스테노아의 머리에서 환하게 번지면서 드레이크까지 휩쓸 듯이 투란에게 밀려왔다. 투란이 그 금빛에 물든 것은 한순간이었다.
파사삭.
금색으로 물든 채 조각난 실그물, 뿌리 더미의 잔가지가 흩어졌다.
투란의 형상이 부서진 티끌처럼 흩어지는 광경이었다.
스테노아가 멀뚱히, 뿜어내던 금빛을 사그라뜨리는 금색 눈동자로 그렇게 망가져 없어지는 투란의 형상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새로운 침입자가 먹잇감 옆에 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태 주변을 채워 가던 이상하고 맛없는 것이 만들어 낸 것이던가?
갸웃거리는 스테노아의 곁, 땅거죽이 들썩이면서 다시 투란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주먹을 꽉 쥐고 스테노아의 금박이 너덜거리는 뿔을 후려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곧 뿔의 단단함에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지는 티끌이 되고 말았다.
스테노아의 가면, 열린 눈동자가 뒤늦게 주먹에서 시작해서 어깨까지 흩어지는 투란의 형상을 바라봤다. 저기 있던 것이 어느새 자기 곁에 와 있는가, 그런데 왜 또 저기서 그런 것처럼 흩어지는가.
점점 이상해지는 상황을 느낀 듯, 스테노아가 몸을 출렁이며 떨기 시작했다.
털 많은 짐승이 비에 젓은 몸을 흔들어 물방울을 튕기듯, 스테노아의 몸에 끼어 있던 얼룩이 떨어져 나오고, 주변을 가득 메우는 듯한 먼지 티끌 더미가 수북하게 피어올랐다.
스테노아의 형상이 그 티끌과 먼지 속에 완전히 잠긴 듯이 보일 지경이 되었고, 다시 금빛이 번져 나왔다. 티끌과 먼지는 금빛으로 물들었지만, 흩어져 멀어지는 대신에 무겁게 가라앉으며 스테노아에게 엮여 들어갔다.
그 금빛 먼지와 티끌의 끝자락이 회색과 갈색인 실그물의 가닥과 맞닿은 채인 것을 스테노아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 솟아나, 스테노아의 코앞에 그 형상을 이룬 투란은 아주 잘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아래에서 투란의 입이 움직였다.
“으스러진 조각이라도, 악마의 심장이 뿌린 줄기야.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다고. 너무 하찮은 것이 주변에서 얼쩡대니까…… 이상했지?”
스테노아의 두 뿔 사이에서, 가면 같은 얼굴의 윗부분에서 별빛이 순간적으로 뻗어 나왔다. 가늘고 긴 창처럼, 별빛은 시작되었고 투란의 형상을 꿰뚫을 때는 이미 그 몸통보다 더 굵은 빛줄기가 되어 지나갔다.
한데 목 아래, 가슴과 배가 완전히 뻥 뚫린 꼴이 된 투란의 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네가 오러 몽거를 그 꼴로 만들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방법은 생각해 내지 못했을지도 몰라. 뭐, 오는 길에 키린을 만나지 못했거나 이것저것 배우지 못했더라도 어쩌면 널 그냥 지나쳤을 거야. 여전히 오러 몽거의 꼬락서니를 한 채로 말이지. 어쩌면…… 이런 걸 운명이라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까지 왔고…… 오러 몽거를 얻었고, 키린을 만났으니까.”
푸륵, 크르르르!
스테노아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거센 콧김과 숨결을 내뿜었다.
동시에 대롱 같은 혀가 튀어나오면서 한순간에 떠들고 있는 투란의 머리도 관통했다. 하지만 이마 한복판이 뚫린 채로, 투란의 입은 계속 움직이고, 간당거리며 붙은 목청이 계속 울리면서 말이 나온다.
“이제 내가 확인할 것은 한 가지뿐이야.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맏이인 스테노, 넌 위장 속에서 주먹 쥐는 오러 몽거를 이길 수 있니?”
작은 속삭임처럼, 으스러져 가는 투란의 형상이 소리를 맺었다.
그리고 스테노아의 금빛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핏빛이 곧장 스테노아의 눈가에 떠올랐고, 곧 굵은 핏방울이 맺혀 흘렀다.
혀를 내밀고 있던 스테노아의 뭉툭한 입이 더 크게 열렸고, 혀뿌리를 타고 핏물이 덩어리진 것처럼 솟구쳐 나왔다.
천천히 스테노아의 몸이 기울어졌다.
—이게 뭐야!
드라고니아의 소리 없는 외침은 천천히 고르고니아의 쓰러진 몸 곁에서 일어서는 투란의 마음속에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