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2)
쥴은 눈을 깜박였다.
곧 쥴의 두 손이 동시에 두 눈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문지르고 손바닥의 도톰한 살로 문지르고…… 그다음에 다시 번쩍 뜬 쥴의 두 눈동자는 파란 광채가 번득일 지경이었다.
“환각 아니네?”
그러나 쥴은 이렇게 얼빠진 소리를 내며 자신의 시각이 매우 정상, 매우 온전하게 저 풍경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더불어 툴로쉬 역시 고글을 벗어 작은 천으로 벅벅 닥고 다시 썼다 벗었다를 두어 번 반복하다가 쥴의 말에 덧씌우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흑철성(黑鐵城), 블랙아이언이라고 했잖아요? 쥴 님, 저거 블랙아이언 벽이 아니라 그냥, 어, 마그마 로드같습니다만? 그 용암왕(鎔巖王) 말입니다, 맞죠?”
딱히 묻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툴로쉬의 목소리에 쥴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인 듯, 쥴의 표정이 점점 하얗게 탈색되고 있었다. 눈동자가 저 하늘에 가득 번져 나가는 시커먼 먹구름, 붉은 금이 핏줄처럼 맥동하고 시뻘건 번개처럼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괴이한 먹구름을 응시하는 채로!
둘이 자신들이 본 광경을 의심하다가 인정하는 사이에도 하늘을 채운 먹구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 * *
‘좋아, 다음!’
투란은 의지를 담은 마력을 강렬하게 퍼뜨리며 다짐했다.
반지는 그 의지를, 마력을 중계하며 명확하게 그 기능을 투란에게 되새김시켰다.
문장, 몬스터 엠블럼마다 갖는 서로 다른 특성과 몬스터 로드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는 마력의 독특한 형질(形質)…… 때문에 하나의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바꿔 쓸 수 있다고 해도 어느 문장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 고유 마력의 특성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몬스터의 형상은 문장을 바꾸는 순간, 고유 마력을 상실하고 해체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점은 몬스터 로드에게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
애초에 몬스터 로드가 품을 수 있는 몬스터 엠블럼, 문장은 일생에 단 하나뿐이니까.
황금매를 만나 강제로 문장이 전환되는 일을 겪기 전까지 투란도 그런 고유 마력의 차이 따위는 그저 사람마다 다른, 몬스터 로드마다 다르니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황금매를 만난 후, 그다음부터 겪은 일은 투란에게 마력의 속성과 특징, 변환과 전개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해 줬다. 그런 경험을 통해 문장의 근원을 이루는 심연은 하나뿐일지라도 자신의 문장마다 독특한 고유 마력을 형성한다는 것도 알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아닌 둘을, 둘에서 셋을 지니게 되면서 그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하이로드 쥴이 전해 준, 다양한 문장을 품은 백금의 반지가 그런 독특한 고유 마력에 대해서 투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 줬다. 자신의 몸을 바탕으로 삼는 형성과 해체뿐 아니라, 고유 마력이 유지되는 동안 분리한 신체의 일부…… 몬스터의 파편이라 할 부분에 적용되는 고유 마력이 문장의 전환을 거치고도 얼마 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
거기에 더해진 황금매가 지닌 특성…….
그 결과가 마그마 로드가 이뤘던 호수를 먹구름처럼 재현해 내고 문장을 교체한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채로 폭우처럼 용암 가닥을 쏟아 내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이 상황이 영구히 지속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필요한 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은 품을 수 있었다.
황금매가 계약에 따라 파워 서클로부터 마력을 공급받고 있으니까.
‘좋아, 그럼…… 어디 보자, 어라?’
다시 문장을 전환, 교체해 아래를 내려다본 투란은 갸웃했다.
보랏빛 허무 속에서 일렁이는 금빛 눈이 보여 주는 풍경은 예상했던 것과 다른 기괴한 모양이었다.
로열젤리 슬러그를 중심으로 황금빛이 번져 나가는데, 로드 오브 몬스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주황색 영역이 이를 밀어내고 갉아 먹으려는 듯이 맥동하는…… 거대한 영역을 장악한 대형 몬스터 둘이 서로의 세력을 겨루는 듯한 광경이었다.
로열젤리 슬러그는 황금빛 덩어리에서 흘러나온 금빛의 실 가닥, 실그물로 엮인 채로 어떻게든 산맥의 안쪽을 향해 긴 더듬이를…… 그 더듬이 몇 가닥이 흡사 달팽이의 것처럼 보이기에 그 이름이 어울린다 싶게 하는 촉수 형태를 열심히 내밀면서 한편으로는 로드 오브 몬스터의 주황색 영역 안으로 금빛 그물을 몰아넣으려 버둥거리는 것 같은 반짝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에 대항해서 로드 오브 몬스터 역시 자신의 주변으로 끊임없이 주황색의 맥동을 일으키며 산맥의 밖을 향해 이끌어가려는 듯하니, 거대한 황금빛 덩어리가 그 맥동에 따라 움찔움찔하면서 억지로 끌려 나오다가 다시 반짝이며 버티려는 꼴이 확연히 드러나는 중이었다.
―저런 건 예상 못 했다만.
드라고니아가 윙윙거리는 채로 프로브의 일렁임을 투란 머리 주변에 드러내면서 속삭여 왔다. 마력을 통해 소리 없이, 하지만 지금 투란이 저지르는 짓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데 잠깐 참는다는 낌새는 또렷하게 전하는 속삭임이었다.
‘어, 나도 상상 못 했는데…… 로드 오브 몬스터라고 몬스터를 보자마자 팍팍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지배당한 부분, 아닌 부분이 나뉘어 있다니…… 꽤 희한한 녀석이네, 황금 똥 덩어리처럼 생긴 것이…….’
―달팽이다, 달팽이!
투란의 비유에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도 쓴웃음과 함께 인정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한쪽으로 길게 촉수, 더듬이 갈래를 뻗어 내며 덩어리진 몸을 느릿느릿 확장하며 움직이려고 꿈틀대는 꼴은 확실히 달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 나머지 몸이 살짝 감긴 꼴로 로드 오브 몬스터를 중심 삼은 부분은…….
―그런 상상 하지 말고! 어쩔 거냐고! 지금 용암 비가 쏟아지는 중이고 용암 구름도 본격적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단 말이다!
다시 한번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저지른 짓을 똑바로 짚었다.
‘아, 이제 시작할 거야. 잘 보고 있어.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히 하고!’
키득, 마음속 깊이 웃는 느낌을 담아 투란이 대꾸했다.
* * *
쿠르릉.
땅울림은 허공을 메운 거대한 용암 폭우가 얼마나 거친가를 증언했다.
콰콰, 쾅.
공중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음은 뇌성벽력보다 사나운 먹구름의 실체를 증언하며 지상을 짓이길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툴로쉬는 뒷걸음치다가 쥴에게 등을 부딪혔고 곧바로 뒤로 손을 내밀었는데, 어느새 쥴의 허리춤을 잡은 채로 더듬거리며 외치기도 했다.
“쥴! 님, 나 놓고 가면 욕합니다! 현상금 걸어 버릴 겁니다!”
“안 가! 바지 당기지 마! 투란은 보이냐?”
허리춤을 잡은 툴로쉬의 손을 떼어 내며, 대신 쥴은 바싹 툴로쉬에게 붙어서 그 허리께를 끌어안는 자세로 도망칠 때는 같이 튀어 나갈 것이라고 몸짓으로 알려 주면서 묻고 있었다.
“가려져 버렸어요, 이미…….”
툴로쉬가 고글을 조작하다가 중얼거리는 대답을 했다.
용암의 먹구름, 시뻘겋고 시커먼 장막이 이미 몬스터의 군세를 찍어 누르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 하늘 높은 곳 어딘가에 원인이 되어 있을 투란이겠지만, 이제는 전혀 그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저게 투란이긴 하겠지?”
쥴이 맹렬한 돌풍 사이를 뚫듯이 툴로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툴로쉬도 ‘몬스터 로드이니까요.’라고 웅얼거렸다.
몬스터의 형상을 드러낸 몬스터 로드, 일단 저 먹구름처럼 보이는 광대한 용암의 형상은 분명히 투란이긴 할 터이니까.
“대체 어떻게…….”
그렇다고 해도 이 상황은 이해되고 납득할 범위를 심하게 벗어났다!
쥴은 툴로쉬처럼 생각이 막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브로큰 킹덤 가까운 안쪽에…… 나름대로 깊은 곳에 마그마 호수가 있기는 했을 거야. 거기서 꼼짝도 않고 있은 지가…… 몇백 년은 훌쩍 넘었지, 아마? 혹시 최근에 그 안쪽 지형을 탐색한 적 없냐?”
“탐색 범위 안에 마그마 호수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 그 마그마 호수가 수십 킬로짜리라던데.”
쿠르릉, 콰콰쾅!
쥴과 툴로쉬는 움찔하면서 혼란스러운 눈길로, 그래도 주저앉거나 내빼지 않고 주변에 닥쳐오는 영향력을 가늠하면서 저편을 관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 * *
쿠륵, 콰아아!
‘천칭’으로부터 인도되어 나온 마그마 로드가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 한 부분을 건드렸다. 붉은 장막처럼 뻗어 나온 용암의 줄기가 투란의 주변을 맴돌며 송곳처럼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뿔수리의 문장이 다시 투란의 몸에서 맥동하며 칼로드가 정련해 낸 형상을 이뤄 냈다.
주욱 내민 한 손, 날갯짓과 함께 투란은 강하를 시작했다.
내민 손끝에서 블러드 네일이 뻗어 나오며 엮이고 피의 장막을 펼쳐 냈다.
블랙애쉬를 피워 내지 않는 용암의 송곳, 피의 장막은 그 형상을 따르듯이 다듬어졌다. 그리고 쏘아진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벼락처럼 곧바로 거대한 황금빛 덩어리를 향해 움직였다.
순식간에 전환되는 문장,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백금의 반지로부터 맥동하며 퍼져 나가는 마력은 투란의 의지를 이어 나갔고 각각의 문장으로부터 형성된 몬스터의 형상은 모두 충실하게 그 힘을 끌어냈으니…….
블러드 네일은 두텁고 넓으며 투명하면서도 금빛 실그물로 가득한 젤리를 허공처럼 지나치게 했고, 그 뒤를 잇는 용암의 송곳 기둥은 닿는 부분을 단숨에 증발시키며 파쇄하고 흩어 냈다. 때문에 로열젤리 슬러그는 두텁게 쌓아 올린 투명한 장벽을 단숨에 관통당하고 말았다.
거대한 금빛 슬러그의 안쪽에 도달한 투란은 곧바로 마력 장벽을 끌어냈고, 손아귀처럼 휘둘러 뭉클거리며 새로 샘솟으며 가로막으려는 로열젤리의 한 귀퉁이를 뜯어내 쥐었다. 마력 장벽 속에 한 움큼의 젤리가 포박된 순간, 문장이 전환되며 투란의 모습이 다시 한번 변화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용암의 화신(化身), 그 상태로 투란의 미간 사이에 눈동자 모양을 담은 꽃송이가 피어났고 맹렬하게 흩어지며 사나운 섬광을 뿜어냈다. 한순간 번쩍했던 빛줄기는 금빛 형체를 돌파해서 로드 오브 몬스터를 향해 나아가는 통로를 열어 냈다.
통로 끝을 맞는 로드 오브 몬스터 앞에서 무엇인가가 빛줄기를 가로막고 튕겨 냈다. 그러지 않았다면 로드 오브 몬스터 역시 섬광의 사나움에 관통되었을 듯한데…….
‘튼튼하네, 버그베어. 맞지? 저거 버그베어지?’
튕겨 내기는 했지만 으스러지고 무너져 내리는 형체를 보며 감탄하는 와중에도 투란은 곧바로 손을 칼날처럼 세워 수직으로 내리긋고 있었다. 그 손짓에 따라 손끝에서 진짜 칼날이 시커멓게 맺히며 뻗어 나갔고,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던 용암 가닥이 호응하며 시뻘건 칼날을 뿜어냈다.
칼날은 맞물려 돌아가는 무수한 톱니무늬를 머금었고, 맹렬하게 격동하며 예리함을 과시한 채로 통로를 절단하고 로드 오브 몬스터까지 밀려 나갔다.
소리 없이 무엇인가가 로드 오브 몬스터의 갑각 형상 앞에서 동강 나고 풍경이 갈라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 순간에 로드 오브 몬스터가 박혀 있던 황금의 성채가 흔들거리며 기울어져 칼날의 궤도가 지나칠 자리를 바꿨다.
‘어쭈? 모처럼 인힐트 블레이드를 꺼내 봤는데 피해?’
발을 세차게 내디뎌 황금빛 슬러그의 본체를 밟으며 투란이 불편한 시늉을 했다.
붉게 달아올라 늘어지는 용암의 발에서는 핏빛 고리가 영롱하게 맺히며 사납게 금빛 형체를 물들이며 번져 가는 중이었는데…… 아롱지며 서서히 번져 가던 핏빛 고리가 크게 요동치는 파문으로 바뀐 것은 투란이 세 걸음을 내디딘 순간부터였다.
그 파문과 함께 금빛의 거대한 형체가 꿈틀거렸고 로열젤리가 거칠게 요동치며 그 부피와 무게를 늘려 나갔다. 용암의 폭우 아래에서 허우적거리던 다양한 몬스터의 무리가 로열젤리의 격류에 휩쓸린 것은 당연했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은 네 번째 걸음을 딛기 위해 도약했고, 허공에서 뒤틀린 채로 붙어온 용암의 기둥과 섞여 버렸다. 그리고 기둥에서는 곧바로 어깨부터 날개이고 가슴이 살짝 봉긋한 하피의 얼굴이 나타났다.
키앗!
입술이 열린 순간 날카로운 휘파람처럼 뭔가를 찢고 째는 소리가 울렸다.
로드 오브 몬스터 앞의 허공이 균열을 일으켰고 분산되는 듯했다.
―버그베어가 아니야, 이번에는…… 음파 장벽인데? 무슨 재주가 저리 많아!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잖아.’
로드 오브 몬스터를 향해 로드 오브 몬스터 하피를 들이대던 투란이 중얼거렸다.
지배력을 억누르기 위한 지배력이 끓어오르고 번져 나가는 용암 기둥으로부터 뿜어 나오며 황금 성채의 중심, 그 옥좌에 앉은 로드 오브 몬스터를 휘감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천칭’의 하피 여왕이 투란의 의지에 따라 더욱 또렷하게 그 형상을 드러내는데, 발목 아래와 날개 자락에서 이글거리는 용암이 맺힌 채로 뚝뚝 방울을 떨구는 중이었다. 어설프게 뭐가 다가오면 어떤 결과인가 저절로 상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