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3)
사티로스는 비처럼 쏟아 내리는 용암에 구멍투성이가 되어 불타올랐다.
고블린은 굵직한 용암 줄기를 피하지 못하고 들이박아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컹컹거리던 개는 자신의 울부짖음에 스스로 취해 공포에 질린 채로 굳었다가 흘러온 용암에 불타 녹아 버렸고 그 곁에 있다가 뛰어 도망치려던 고양이는 주르륵 쏟아진 장막 같은 용암 비에 토막 나고 불타 버렸다.
인간보다 큰 덩치의 날벌레 떼가 지상의 변화에 못지않은 공중에서 거의 닮은 꼴로 토막 나고 꿰뚫리면서 떨궈져 내렸다. 그 중심에 여왕처럼 버티고 있던 큰 벌레 괴물 또한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조차 지어진 적이 없는 다양한 몬스터, 하찮다고 널려 알려진 몬스터 무리가 어우러진 채로 자글거리는 로열젤리와 함께 녹아내리는 땅 위에서 치솟고 터져 나가는 불길에 휩쓸리고 있었다.
하늘을 메운 먹구름에서 불길 같은 가닥이 퍼져 나가고, 그 먹구름이 덮개가 된 탓에 어느새 거대한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풍경 속에서 바닥을 메운 용암…… 주변의 어둠에 동화된 것처럼 그 용암의 일부가 검은 결정으로 변해 갔고, 그 표면 위로 붉게 빛나는 핏빛의 고리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온갖 상처 속에서 불타지 않고 간신히 버텨 내던 몬스터 무리, 그럭저럭 이 난리 속에서 살아남은 길을 찾아낸 몬스터 떼에게 그 식어 버린 검은 결정은 가라앉지 않고 버텨 주는 물 위의 작은 판자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위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기묘하게 그 검게 변한 결정이 맺힌 곳에는 용암의 비조차 피하는 듯했으니, 그 모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뿐이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상처에서 번져 나온 피, 혹은 그 상처가 직접 결정질 위의 핏빛 고리와 만났을 때…… 몬스터는 투명한 결정으로 변하며 바스러지고 사라져 갔다. 그 빈 자리로는 새로운 몬스터가 상처투성이로 몰려왔고…… 오래지 않아 투명하게 변해 갔다. 그나마 몇몇 몬스터가 투명해지지 않은 몸의 파편을 살짝 남기기는 했는데, 이 또한 뭔가에 쓸려 나간 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의 수를 줄이는 어둠의 영역도 경계를 이루며 조여드는 용암의 울타리와 함께 오그라들며 줄어 갔고…….
꾸욱, 꾸륵!
콰드득, 화아앗!
배 속부터 거세게 힘주는 소리를 냈던 버그베어가 몸통부터 일그러지다가 불타올라 재가 되어 사라졌다.
‘벌써 네 마리째……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투란은 갸웃하며 하피 여왕과 맞서는 로드 오브 몬스터를, 그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투명화해 은신해 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낌새 없이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하피 여왕이 내지르는 용암 깃털과 용암 발톱을 가로막을 수는 없을 텐데…… 저 일회용 방패인 버그베어는 완전히 낌새 없이 튀어나온다!
―알아냈다, 저 금색 액정 속에 압축된 채로 영체화하고 있어. 움직임으로 봐서는 그냥 튕겨 올리는 모양이다. 살아 있는 버그베어라고 할 수 없겠어. 어쩌면…… 로열젤리가 금색 액정일 때는 삼킨 것의 형체를 복제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얻지 못한 네 번째 관찰, 탐색의 결과를 바로 말해 줬다.
‘모양만 흉내 냈다는 말이네?’
조금 어이없어하다가 투란은 곧바로 하피 여왕의 형상에 집중했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과 겹쳐진 하피 여왕의 입에서 소릿살이 뿜어졌고, 섞여 들어간 숨결 속에서 블랙애쉬가 맴돌았다.
콰릉!
허공에 균열과 폭발이 뒤엉켰다.
그 풍경이 정리되기 전, 이제 황금의 성채와 옥좌 주변을 한껏 감싸고 맴돌던 마그마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며 범람하는 것처럼 저항하는 로드 오브 몬스터를 향해 짓쳐들어 갔다.
일렁거리는 황금 장벽이 힘겹게 치솟으며 막아 내려 했지만, 마그마와 엮인 채로 맴도는 핏빛 고리 앞에 투명하게 녹아들며 으스러지고 흩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그마가 로드 오브 몬스터를 휘감고 짓이겼다.
―음? 공생(共生) 형태가 실체였나?
드라고니아가 로드 오브 몬스터의 머리 부분을 째고 튀어나오는 검은 연기, 아지랑이처럼 맴도는 시커먼 바람결 같은 형체를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뭐? 공생? 그건 기생이랑은…….’
의아한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번개처럼 그다음을 채워 넣는 이야기를 흘려 넣는다.
―기생은 숙주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특히나 몬스터가 기생형이라면 숙주를 제멋대로 변이시켜서 목적만 달성하려고 들지. 하지만 공생형 몬스터는 숙주를 강화한다, 숙주 본래의 특성을 더욱더 우월하게 발휘하도록 돕는다는 말이지. 더불어 숙주의 생명과 결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숙주를 보호하기까지 해. 그리고…… 로드 오브 몬스터라면 숙주를 완전히 지배해서 대리로 부릴 수도 있겠지. 저놈이 여태 잡히지 않고 실체조차 모호했던 까닭일 거야. 매번 다른 숙주를 골라 나타나서 그 이전의 경험까지 활용했다는 것이지. 이번에 놓치면 다음에는 이 로열젤리 슬러그를 숙주 삼아 나설 수도 있어. 그때는 하이로드나 엘더 헌터가 예상한 것보다 더한 재앙일 거야. 아직 슬러그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지금, 놓치지 말고 바로 처리해라.
‘그래, 저놈 진짜 네 말대로 할 생각인가 봐.’
투란은 검은 바람결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척하다가 황금 성채 한구석으로 쏘아지며 더욱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는 광경을 봤다. 완전히 낯설고 이상한 모양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투란에게도 낯이 익은, 춤추는 산맥에서 살다 보면 가끔 한두 번은 보게 되는 꼬챙이 지렁이였으니까. 하지만 어떤 꼬챙이 지렁이도 검은 바람결처럼 변해서 휙휙 날지는 못한다!
캬아앗!
하피 여왕이 무시무시한 괴성을 토해 냈다.
마그마에 파묻히지 않은 황금 성채의 귀퉁이 주변, 허공에 균열이 터졌다.
이번에는 이전과 공수(攻守)가 바뀐 채 터진 균열이었다.
여왕의 외침에 생겨난 음파 장벽이 꼬챙이 지렁이를 막으려다가 터져 나간 광경이므로…….
꼬챙이 지렁이의 형체가 흩어졌고 다시 검은 바람결이 되며 허공에서 스러져 가는 균열 틈새로 스며들며 황금 성채에 닿으려 했다. 하지만 그 바람결보다 먼저 황금 성채에 핏빛 고리의 무늬가 떠올랐다.
―끝난 거냐?
투명하게 변화하며 사라져 가는 황금의 성채, 단단하게 고형화된 채였던 로열젤리 슬러그의 한 부분이 완전히 끝나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향해 하피 여왕의 포효가 덮쳐 갔다.
‘앗, 따가워!’
투란은 검은 바람결이 뒤틀리며 작은 회오리 모양을 만들며 최후의 저항을 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에 직접 파고드는 파동을 하피 여왕이 목젖을 울리며 가소로워하며 튕겨 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그마가 뒤엉킨 하피 여왕의 날개가 검은 바람결을 그대로 휩쓸고 움켜쥐듯이 오므라들었다. 날개는 그 순간에 변형했고, 거대한 손아귀처럼 발버둥 치는 회오리를 움켜쥔 듯했다.
―로드 오브 몬스터를 한 문장 속에 두 마리 둘 수 있나?
뭔가 순수한 탐구심을 담은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그 의미를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하피 여왕의 본능이 곧바로 정신 속을, 마음을 파고들면서 단번에 뿜어낸 사나운 파동이 검고 작은 회오리를 으깨 버렸고 꼬챙이 지렁이가 너덜거리며 찢긴 형태로 툭 튕겼으니까.
‘용납 못 하네, 역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직접 자신의 사후(死後)를 대비해 준비하는 후계자조차 일찍 깨어나면 짓밟고 죽여 버리는 것이 로드 오브 몬스터의 본성이니까.
―이제 끝난 셈인가? 뒤처리를…… 어떻게 할 거냐?
로열젤리 슬러그의 거대했던 중심, 그 핵이라 할 수 있었던 황금의 슬러그는 이제 완전히 붕괴해 버린 듯했다. 그로부터 생산, 방출되었던 로열젤리는 용암의 노도 속에 열심히 으스러지는 중이니 얼마 더 버티고 남겨질 수 없는 듯했고.
‘뭐, 어떻게든…….’
대답과 함께 투란은 하피 여왕을 다시 마그마의 형상 속에 담갔다.
이제부터 방대하게 펼쳐진 마그마 로드, 황금매와 ‘천칭’에서 제각각 형성된 채로 어우러진 형상을 수습하고 남겨진 로열젤리의 영향력을 치워야 했다.
‘그러고 보니 직접 맞닥뜨린 것이 처음이었네?’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기묘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가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하는 짓을 열심히 지켜보며 적당히 흉내 내는 모양…… 투란 자신의 기억에 의해 전해도 블랙애쉬를 풀풀 휘날리며 간간이 터뜨리고는 했는데, 이번에 직접 닿으며 그 흐름과 정교함을 배운 탓인가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가 주도하는 부분에서 빠르게 검은 재의 형체가 지워지고 있었다. 그 꼴로 봐서는 인힐트 블레이드 따위의 도구를 생성해도 이제 블랙애쉬의 잔해를 흘리지는 않을 듯한 분위기였다.
―야, 딴생각하지 말고. 이 잔해를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응?’
―마그마로 다 뭉개진 수 킬로미터의 잔해 말이다! 몬스터를 다 갈아 죽였다고 우길 참이냐? 불타더라도 잔여물 정도는 남길 만한 녀석들이 와글거렸다고!
‘쇠도 녹이는 뜨거움이었잖아. 알아서 생각할 거야. 난 모른다고 하면 돼.’
투란은 그 와중에 ‘천칭’의 풍경을 살짝 확인했고 멋대로 흘러들어 온 몬스터의 정수를 분리해서 한쪽으로…… 주로 유니콘홀드의 성채 쪽으로 몰아넣고 몇 가지만 적당히 추려 ‘천칭’의 중심에 남겨 뒀다.
곧이어 백금 반지에 집중하며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연이어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마력 장벽으로 움켜쥐고 있던 로열젤리의 파편을 손아귀에 든 채로 검게 다듬어진 바위 소파에 걸터앉은 모습이 되었다.
‘너, 알 수 있겠냐? 이 로열젤리랑 금빛 슬러그 부분이 에센스가 다른데 말이야.’
―희귀한 일도 아니지. 절단된 몬스터 부위마다 다른 정수가 담긴 경우도 있잖아.
‘그건 또 그렇네…… 아, 툴로쉬랑 쥴에게 연락해야 하는구나.’
가만히 마력 장벽 속의 로열젤리를 들여다보다가 투란은 문득 생각했다.
거칠게 날뛰던 동안에는 잊고 있었는데, 툴로쉬가 준 메신저 마도구는 언제라도 연락이 가능했잖던가!
―바로 하지 마라. 적당히 식은 다음에 해.
‘뭐?’
―너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마그마가 범람한 다음에 남은 잔열(殘熱)이 가득하다. 사실 웬만한 마수라도 질식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쓰러진 몬스터 절반 가까이는 그 잔열 때문에 죽었을걸?
‘어…… 그런가?’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일단 기다렸다.
마그마의 형상이 완전히 거둬지기를, 그 흔적으로 남겨진 뜨거움이 식기를…….
* * *
윙, 윙.
툴로쉬는 재빨리 손목을 들어 올렸다.
손목에 감긴 밴드가 곧바로 빛을 흘려 냈고 일그러진 환영을 똑바로 펼쳐 내면서 투란의 모습을 꾸며 냈다.
“투란! 무사한 거냐?”
격한 툴로쉬의 물음에 환영의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쥴이 바로 곁에서 혀부터 차며 말한다.
“그게 아니잖아! 투란, 남은 괴물이 있기는 하냐?”
툴로쉬가 ‘어?’ 하다가 낯을 구겼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광범위하게 쓸어 낸 다음이었으니 정상적으로 던질 물음은 쥴이 한 말처럼 이뤄져야 했다.
“무사하지?”
하지만 툴로쉬는 고집스럽게 다시 묻고 있다!
환영의 투란이 쓴웃음을 짓고 대답한다.
“예, 일단…… 어쩌다 보니 슬러그 본체를 통째로 날려 보냈네요. 그보다…… 이제부터 로열젤리의 파편들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쪽으로 올 수 있겠어요? 아직 좀 뜨끈뜨근한데…….”
“간다!”
툴로쉬는 빠르게 답했다.
쥴은 어이없다는 듯이 툴로쉬를 보다가 바로 튀어 나가려는 그 어깨를 꽉 잡으면서, 손목까지 쥐어 투란의 환영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묻는다.
“숨 쉴 수 있을 정도로 정리된 것 확인하고 가마.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주변 수상하면 은폐하고 숨어 있도록 하고.”
“천천히 와도 될 것 같아요.”
투란의 환영이 가볍게 몇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툴로쉬가 눈을 껌벅이며 쥴을 바라봤다.
쥴이 한숨을 쉬며 조곤조곤 말했다.
“캘러미티 로드랑 빨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게 몰아닥쳐서 들러붙는 태도는 좋지 않아. 상아탑의 대마법사란 녀석까지 들러붙어서 이런 일 저런 일 떠넘기는 중이란 것, 눈치 못 채겠냐? 귀찮다고 잠적이라도 하게 하고 싶어? 그리고…… 이 자식아! 저기 너무 뜨겁다고! 멀쩡하게 숨도 못 쉴 지경인데 어딜 그렇게 뛰어들어 가려고 드냐고! 좀 진정하란 말이다!”
중간부터는 꾸짖고 타박하며 으르렁거림으로 변해서 맺어지고 말았다.
툴로쉬 역시 살짝 움찔하다가 겨우 진정한 듯.
“네,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는데…… 음, 좀 쉬는 편이 좋겠죠?”
말과 함께 풀썩 맨땅에 주저앉으며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