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4)
타박타박.
툴로쉬는 잔걸음 소리가 고요함을 깨뜨리는 벼락처럼 울리는 풍경을 다시 돌아보며 한숨을 잘게 쪼개 내쉬어야 했다. 걸음을 내딛는 곳에서는 재가 피어오르고 녹았다가 다시 굳어가는 지면의 뜨거움은 방열 처리가 된 가죽 장화를 뚫지 못했지만 후끈하게 밀려오는 바람결을 통해 넉넉하게 느낄 수가 있는 참이었다.
‘캘러미티…….’
툴로쉬의 뇌리에는 쥴이 언급한 한마디가 다시 맴돌았다.
그 한마디에 이견(異見)을 들이댈 수가 없는 명확한 증거가 지금 툴로쉬의 주변 상황이었으니까.
“야, 뭘 두리번거려?”
앞장서서 가던 쥴이 혀를 차며 빨리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겨우 가라앉기 시작한 뜨거움, 몰아닥치는 바람결에 숨결이 트인 풍경 속을 거침없이 헤쳐 나가는 쥴의 모습은 당당해 보였다. 분명히 이렇게 가라앉지 않은 불길 속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쥴은 툴로쉬와 발걸음을 맞춰 주려고 기다린 것일까?
“거참, 넌 잡념이 너무 많다니까! 빨리 오라고! 아직 로열젤리 마무리를 확인하지 않았어! 빨랑빨랑!”
툴로쉬는 더 머뭇거렸다가는 쥴이 자신을 들고 뛸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요, 가!”
툴툴거리는 말과 함께 쥴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고, 쥴도 달리는 툴로쉬에게 맞추듯이 앞장서서 뛰었다.
이렇게 기묘한 풍경에 대한 감상을 뒤로 한 채 달린 둘이 투란의 위치를 추적해 도착해 보았다.
“빨리 왔네요?”
투란은 흑요석으로 된 소파…… 암석이 녹아 시커멓게 굳은 탓에 번들거리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돌 소파에 느긋하게 앉은 채로 맞이해 주고 있었다. 투란의 앞에는 검은 상자가 대각선으로 잘려 속을 드러낸 듯한 모양으로 놓여 있기도 했는데, 그 안에는 물컹거리는 로열젤리가 금빛 실 가닥을 머금은 채로 담겨 있었다. 한데 그 로열젤리를 향해 투란이 육포랑 밀포를 툭툭 던지고 있잖은가.
“뭘…… 하는 거냐?”
쥴이 육포와 밀포를 덮고 녹여 삼키는 로열젤리, 명백하게 몬스터 젤리의 특성을 드러내는 꼴을 보며 물었다.
“황금 민달팽이를 없애고 떼어 냈는데, 저 상태로도 몬스터인가 확인해 보려 했죠. 혹시나 했는데, 몬스터 맞네요. 그러니까…….”
투란이 주섬주섬하는 대답에 툴로쉬가 나서며 보태듯 말한다.
“본체로부터 독립한 파편이군. 그렇다면 영향력은 여전하겠어.”
쥴은 가만히 상자 안을 노려보는 듯하다가 콧등을 찌푸리는 낯으로 묻는다.
“이거…… 셰이아의 마력 장벽이냐?”
“그럴걸요?”
투란이 어영부영 뭉개는 대꾸를 했다.
툴로쉬가 투란에게 묻는다.
“삼키고 싶어 남겨 둔 것인가?”
“아뇨. 이제부터 칼로드가 남긴 힘을 써 보려고 해요. 제대로 힘이 쓰이면 어떻게 되는지…… 여기서 저걸 없애면 정말 같은 종이 전부 사라질지 어떨지, 잘 모르니까…… 나름대로 제대로 힘을 썼는데 안 되면 어찌 되나 하는…… 음, 그러니까 확인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투란이 대답을 하다가 두서없는 자신의 말에 살짝 민망한 듯 고개를 젓고 더 좋은 말을 찾는 듯이 말소리를 줄였다. 그 웅얼거림에 쥴이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말한다.
“여기서 저걸 매개 삼아 타나토스의 눈을 쓴 결과를 어찌 확인하냐는 말이지? 그거라면 툴로쉬가 추적해서 바로 대답해 줄 수 있을걸? 이전이라면 며칠 걸렸겠지만 지금은 퍼뜨려 놓은 추적자들을 이용해서 바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툴로쉬?”
“네, 가능할 겁니다.”
툴로쉬의 대답은 명확했다.
투란이 안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뿔이 돋고 뼈의 가면이 씌워지고, 몸이 부풀며 뼈의 갑주가 둘러쳐지고, 어깨 너머로 날개가 돋기까지 하며…… 두 눈구멍에 보랏빛 허무와 금색 눈동자가 떠오르기까지 금방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몬스터의 형상을 드러내는 몬스터 로드의 모습이었지만 쥴도 툴로쉬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태도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로열젤리가 담긴 꼴에 집중하며 이제부터 벌어질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야, 잘 좀 봐죠.’
―아까도 말했지만, 내 쪽에서 뭘 어찌할 일이 없다니까.
투란은 숨을 들이쉬었고, 거칠고 사나운 음향이 입가에서 괴상하게 울리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의 힘을 발휘했다. 그 변화가 곧바로 눈구멍의 광채를 미간으로 옮겨 나갔고, 두 눈구멍에서 몰려온 금빛이 미간에 어울리며 세 번째 눈동자를 만드는 듯한데…… 그사이에 보랏빛 허무와 금빛 눈동자는 초록 눈알과 핏빛에 가까운 눈동자로 변화하고 있었다.
번뜩.
뭔가 눈꺼풀도 없는 눈알이 희번덕거리며 무색의 광채를 번뜩였다는 듯한 기척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로열젤리가 거품처럼 부풀었고, 실 가닥 같은 금빛이 그 안에서 출렁이는 듯하다가 사그라들었다. 곧 거품이 간단히 터져 나가며 으스러지다가 흩어지고 금빛도 촛불 꺼지듯이 사라졌다.
완연히 변해 버린 두 눈동자를 손끝으로 더듬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이 쇳소리가 담긴 말을 한다.
“됐어요. 확실히…… 느끼긴 했는데…… 제대로 된 것인가 아닌가는 잘…….”
“괜찮아, 나도 느꼈어. 아마 제대로 됐을 거야. 옛날 칼로드 때랑 같았으니까.”
쥴이 단호한 말투로, 그럼에도 어딘가 다독이듯이 투란에게 말했다.
투란은 조금 더 눈알을 더듬고 숨을 고르다가 묻는다.
“이 눈…… 다른 몬스터처럼 느껴지는데, 이거 괜찮은 것 맞아요?”
쥴은 투란 곁에 앉으며 더욱 간단히 대답한다.
“켈베로스의 눈, 그렇게 변했을 거야. 칼로드도 그랬지. 따지고 보면 그게 원래 칼로드가 얻은 몬스터의 정수였어. 삼키고 나서 한참 후에 타나토스의 눈으로 변했지. 아니, 변하고 난 다음에 타나토스의 눈이라고 불렀던가? 아무튼…… 켈베로스가 뭔지 몰라? 으음…… 지옥의 사냥개 중에서 머리가 셋 달린…… 헬하운드 말이야, 헬하운드! 아, 못 봤으면 애매한데…….”
설명을 하려다가 말이 꼬이는 듯이 쥴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쥴이 툴로쉬를 보는데, 툴로쉬는 비어 버린 상자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귓가에 손끝을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허공을 노려보는 듯한 묘한 눈길이 여기 없는 누군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단편으로 들려오는 몇 마디는…….
“싸워? 그럼, 무리는? 확실해? 다른 쪽은? 음, 그래…… 제대로 된 셈인가? 알았어. 그쪽으로 진로를 잡아 볼게. 계속…… 어, 알았어. 이쪽? 어, 이쪽은…… 그래, 맞아. 끝장냈어.”
띄엄띄엄 건너뛰는 사이에도 살짝 밝은 분위기로 들려왔다.
잠시 뒤 귓가에서 손을 뗀 툴로쉬가 긴 숨을 내쉬는데, 금방 자신을 바라보며 멀뚱거리는 쥴과 투란을 돌아봐야 했다.
투란은 몬스터의 형상을 어느 틈엔가 지우듯이 없앤 채로 지나가던 몬스터 헌터로 보이는 차림새를 하고는 혼잣말하는 듯했던 대화의 결과가 궁금하다는 듯한데, 쥴은 곧바로 입을 열어 툴로쉬에게 청하고 있었다.
“켈베로스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줘.”
“네? 아니, 왜…… 흠! 헬하운드라고, 흔히 불타고 불 뿜는 돌덩이 개새끼라고 널리 알려진 몬스터 중에서 머리가 셋 달리고 시커멓게 생긴 채로 더 시뻘겋게 타는 몰골을 한 대장격인 놈을 켈베로스라고 해, 투란. 자주 나타나는 놈은 아니고, 잡힌 적은…… 공식적인 기록에는 없을걸? 난동 부린 기록은 몇 가지 있는데, 여러 마리라기보다는 한 마리가 잡히지 않고 간간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라고 하지. 이 정도면 대강 알겠지?”
툴로쉬가 오롯하게 자신에게 들려주는 설명에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헬하운드를 찾아다닐 일도 없고, 그중에서 대장이란 놈이 머리가 셋인가 따질 일도 없으니 일단 저 정도면 충분하잖나. 다만…….
“칼로드가 켈베로스를 잡았는데, 잡고 나니 타나토스의 눈이라고요?”
쥴을 향해 확인하듯 묻는 투란이었다.
“어, 아마 그랬다지?”
남 이야기니까 건성이라는 듯한 쥴의 대답이었다.
투란이 ‘아, 그랬군요.’라는 사이에 툴로쉬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랬던 겁니까?”
“응? 얘기 했……지 않았나?”
쥴이 엉거주춤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눈길을 돌렸다.
툴로쉬는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으르렁거린다.
“안 했거든요! 젠장, 앞으로 켈베로스가 나타나면…… 아니, 헬하운드가 변이해서 켈베로스가 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몬스터 로드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뭔가 생각이 깊어진 듯한 중얼거림이 툴로쉬의 입에서 이어져 나오는데, 이번에는 쥴이 버럭 소리친다.
“야, 잠깐! 헬하운드가 왜 켈베로스로 변해? 그건 뭔 얘기냐! 난 전혀 들은 적 없거든!”
툴로쉬가 다시 눈을 끔벅이는데, 이번에는 조금 멍한 눈길이 ‘아니, 그걸 왜 모르셔요?’라는 의아함이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툴로쉬가 되물었다.
“벨카인 님이 그러셨다고 기록에 있던데요? 헬하운드가 무리 지으면 그중에서 대장 격으로 승급하는 현상이 있을 수 있고, 그러면 머리 셋 달린 색다른 개새끼가 나올 수 있는데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요.”
“그 썩을 놈이……!”
쥴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고 사기당한 듯한 사람처럼 억울해하는 신음을 흘렸다.
오가는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슬쩍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묻는다.
‘이게 다 뭔 얘기냐?’
―글쎄, 기본형의 몬스터가 더욱 성장한 형태란 변이한다는 말 같기는 하다만. 옴파레온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잔뜩 얽힌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타나토스니 타르타로스니, 켈베로스니 하는 호칭이 전부 그 신화 속에 있으니까. 뭐, 딱히 지금 네가 관심 둘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보다 확인해야지, 저 메신저 마도구로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했나 말이야. 엿듣기를 방해하는 효과까지 가져서 몰래 못 들었거든.
드라고니아는 마지막에 살짝 아쉽다는 듯하면서도 마도구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재미있다는 듯한 낌새를 담아 말하고 있었다.
마도구 쪽의 흥미는 적었지만 어쨌든 투란도 알기는 알아야 했다.
“저, 툴로쉬? 로열젤리는……?”
슬쩍 말머리를 트고 말꼬리를 흐리는 물음에 바로 툴로쉬가 답한다.
“아, 잘 처리된 모양이오. 완전히 상황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어울렸던 놈들이 다시 본성을 드러내고 다투면서 찢어지는 중이라네. 사티로스 프린스 녀석들도 제정신을 찾고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한바탕 할 것 같아졌데. 단지…… 음, 뭐랄까. 빠르게 영향을 받는 경우랑 아닌 경우가 좀 있는 모양이야. 혼란스러우면서도 기억에 남은 친근함이 있는 것처럼 거리를 두는 것부터 시작한달까? 어쨌든 투란은 할 만큼 해 줬어. 이다음 일까지는…… 특별한 상황 아니면 물러나 있어도 될 거야.”
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태 말한다.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이제부터는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측하고 크게 문제 되지 않겠다 싶으면 전부 왕국의 군단에게 떠넘길 거야. 엘더 헌터가 나서서 날뛸 상황이 그리 많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러면…… 투란, 넌 어쩔 거냐? 좀 더 쉬기는 해야 할 테고…… 어디로 갈 거야? 아, 그 대마법사가 기다리는 상아탑이 있는 곳으로 갈 거냐? 모처럼 이쪽으로 왔으니 바로크 왕국에 가서 유명한 병신들 구경이라도 할래?”
“구경을요?”
난데없는 말에 투란이 맹하니 되물었다.
툴로쉬가 쓴웃음을 짓고 쥴을 슬쩍 흘겨보다가 투란에게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에게 약속했어. 제대로 돌려보내 주는 일까지 책임진다고. 물론 투란이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야. 가는 곳을 정하는 사람은 투란이니까, 마음대로 정해도 돼. 아, 그 전에 가까운 상아탑에 가서 연락은 넣어야 할걸? 긴급 상황은 일단 피했으니까 조금 느긋하게 말이야.”
“또 휑하니 날아가는 건가요? 가는 길에 어디 들른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어요?”
투란이 갸웃하다가 슬그머니 묻고 있었다.
툴로쉬는 ‘응?’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그렇지. 내가 되돌아가는 길에 사티로스 프린스 녀석들을 확인해 주기로 했거든. 얼마 전에 이곳에서 떠난 놈들이니까. 투란은…… 알아요, 알아! 쥴 님도 바로 마수를 이용해서…….”
“아, 그거 사양!”
쥴이 고개를 젓고 진저리 난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도 금방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 마수, 너무 힘들어요. 그보다 사티로스 프린스라니, 가는 길에 잡는다는 건가요? 무리를 이끌고 나갔으면…… 어쨌든 누군가 잡을 거잖아요?”
쥴은 ‘엥?’ 하는 소리와 함께 투란을 바라봤다.
툴로쉬도 살짝 쓴웃음을 짙게 띠면서 묻는다.
“사티로스 프린스에 관심 있는 거야, 투란?”
몬스터 로드라면 당연히 갖는 관심일 테지만, 투란이라면 ‘그까짓 것’으로 여겨서 몰라라 할 수도 있는 몬스터일 뿐이었다.
“본 적이 없어서…….”
어설픈 웃음과 함께 투란이 답했다.
휑한 바람이 스쳐 가며 주변의 열기가 많이 지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