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5)
푸릇, 푸르릇!
산양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고, 콧김이 뜨겁게 뿜어 나왔다.
마주 보는 곳에서 또 다른 산양 머리가 그에 못지않은 콧소리와 함께 뜨거운 숨결을 내쉬며 결코 지지 않는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둘이 쉬는 숨결 속에서 산양 머리 둘은 갸웃하며 섞여 들어오는 상대방의 냄새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더욱 깊이 숨을 들이쉬어도 역시 그 냄새는 바뀌지 않았다. 모자란 이성이었지만 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은 적이다…….
사티로스 프린스, 사티로스 무리 속에서는 정점이며 결코 둘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여기 두 마리 사티로스 프린스는 서로를 아우르며 함께 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 관계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본능에 걸맞으며 어긋난 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틀 전, 갑자기 냄새가 변했고 본능의 외침이 바뀌었다.
결코 한 무리 안에 둘이 존재할 수 없는 왕자(王子), 사티로스 프린스는 서로를 전혀 다른 존재로 느꼈고 혼란스러움 속에 적으로서 마주해야 했다. 그 전의 기억이 명확했기에 혼란은 이틀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두 마리는 서로를 쳐 죽이기 위한 격렬한 싸움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도 왜 함께할 수 있었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움을 멈출 수 없는가를 희미하게나마 의아해하고는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냄새를 맡고 서로의 숨결을 확인하고 나니, 역시 상대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저 쳐 죽이고 이 무리의 단 한 마리뿐인 왕자로서 자리해야 한다는 점만 한층 더 분명해질 뿐이었다.
푸르흣!
다시 콧김과 함께 격렬하게 두 마리는 격돌했다.
* * *
“와아, 히엔나 생각나게 하네요. 저것도 설마 세 마리 모아야 세지는 경우려나?”
가늘게 뜬 눈으로 투란이 중얼거렸다.
투란처럼 뱃전에 기댄 쥴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 중얼거림에 대꾸한다.
“모으기만 한다고 되냐? 그거 조율하는 것도 힘들어. 덩치가 맞는 놈들을 모아야지, 끼워 맞춰야지…… 처음에 그걸 비전이랍시고 나불거린 놈을 만나면 한 대 쥐어패려 했다니까.”
“히엔나를 뭐에 쓰려고요?”
툴로쉬가 쥴의 말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가롭게 셋이 떠들고 있는 사이, 셋이 타고 있던 배가 기우뚱했다.
활짝 펼쳐 놓은 돛, 배의 양옆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고리가 바퀴를 잔뜩 품은 채로 요동치며 배의 균형이 다시 잡혔다. 물 없는 땅 위를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으며 굴곡진 지형 따위는 가뿐히 즈려밟고 굴러갈 수 있다고 과시하는 듯한, 배의 자태는 우아하면서도 가볍고 빠르다고 그 생김부터 명확하게 드러내는 중이었다.
툴로쉬가 꺼낸 마법의 배는 느릿하니, 제동이 걸린 것이 마땅치 않다는 듯이 지면을 살살 긁으면서 저 먼 곳의 풍경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돛을 흔들기도 했다. 단숨에 저 사티로스 무리가 둥글게 둘러싸고 지켜보는 왕자의 결투 속으로 돌파해 들어가고 싶은 것처럼.
“뭐, 어쨌든! 쟤네가 사이좋다가 지금 저러고 밤 꼴딱 새며 싸운다는 거잖아요?”
투란이 쥴과 툴로쉬의 아옹다옹하는 눈짓을 흘깃하다가 살짝 목소리를 높여 묻는 척 말했다.
툴로쉬가 저편에서 격돌하는 사티로스 쪽을 보면서 대답한다.
“그래, 원하던 대로 일이 풀렸다는…… 아주 다행스러운 결과를 보는 셈이지. 투란, 네 덕분이야.”
쥴은 이 말에 바로 툴툴거리는 몇 마디를 더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일이 풀린 것이니 계획을 잘 짠 것이라고 칭찬을 해도 되잖아? 실행하고 부담하는 일은 전부 투란이 잘한 것이긴 해도 말이야. 응,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투란?”
“뭘 모르고 휩쓸린 탓에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계획은 누가 세웠는데요?”
키득거리는 채로 투란이 되물었다.
툴로쉬는 한숨을 쉬었고, 쥴은 당당하고 뻔뻔하게 손끝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대답한다.
“당연히 나지! 칼로드의 일도 내가 기억해 냈고 말이지! 이 녀석은 엘더 헌터이면서 아주 위험한 마법을 동원하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징징거렸지! 에헴!”
“아, 그랬군요.”
투란이 낄낄거리는 시늉을 하며 호응해 줬다.
툴로쉬가 고개를 저어 한숨을 떨궈 내는 척하면서 말한다.
“둘이 싸우는 것은 좋지만, 저 둘 중 하나가 이겨서 싸움이 끝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쥴, 여기까지 구경하러 온 것 아니잖아요.”
쥴이 입술을 삐죽하면서 툴툴거리는 말투로 되묻는다.
“뭐, 구경하지 않으면? 어쩌라고? 내가 두 놈 다 죽여야 해? 그냥 여기서 네가 저격해도 되잖아. 너, 장궁으로 원거리 저격으로 빗맞힌 적 없잖아?”
투란이 눈을 반짝이면서 툴로쉬를 바라봤다.
툴로쉬는 고개를 흔들면서 쥴에게, 투란의 부담스러운 ‘명사수?’라고 묻는 눈길을 부정하듯이 대답한다.
“사티로스 프린스 둘을 동시에 저격해서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란 것, 알잖습니까. 저놈들이 저러고 싸운다고 둔한 얼간이는 아니지요. 저런 상황에서도 무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떼를 이룬 사티로스를 보세요. 저 두 놈, 누가 남든 간에 저 무리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럴 때는…… 압도적인 힘으로 둘 다 한 방에 쳐 죽여야 무리가 흩어졌잖습니까, 아시다시피…….”
“그랬지, 그래…… 투란, 어쩌고 싶냐?”
쥴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툴로쉬가 바로 낯을 구겼다.
“아니, 투란은…….”
“내가 잡아도 돼요?”
경쾌하고 명랑하게 투란이 재빨리 되묻고 있었다.
쥴은 피식 웃고 툴로쉬를 향해 말한다.
“소모한 만큼 채워 넣을 때라고.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 에센스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잖아? 그런 부분에서 칼로드의 재주는 보통이 아니지. 뭐, 그렇다고 바로 타나토스의 눈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관없지, 툴로쉬?”
“무리하는 일이 아니라면 제가 반대할 까닭은 없죠. 투란, 정말 괜찮겠어? 너는 그…… 그렇게 거대한 몬스터를 형성하고 해제한 다음에 또 다른 어마어마한 능력을 사용한 거야. 그중 한 가지는 몇 년 걸쳐서, 어쩌면 몇십 년에 걸쳐서 겨우 회복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조금 더 쉬어야 하지 않겠어?”
툴로쉬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투란에게 휴식을 권하고 있었다.
투란은 다시 웃음 띤 채로 대답한다.
“쉰다고 회복되는 눈알이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어떻게 얻었는지, 어떻게 써먹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칼로드가 전해 주지 않아서 말이죠. 어쨌든 열심히 잘 살다 보면 언젠가는 회복되는 모양이에요. 이를테면 강력한 몬스터를 잡아 삼키고 열심히 역량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된다? 그런 식으로만 기억을 남겨 뒀어요.”
쥴이 이해한다는 듯.
“어쩔 수 없지. 경험으로 파악한 것이 전부이니까. 어쩌면 몬스터 로드 한 사람이 일생에 한 번 쓸 수 있는 힘이었는지도 몰라.”
지난날의 칼로드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툴로쉬는 더 말리기를 포기했다는 듯, 살짝 체념한 표정으로 투란에게 말한다.
“꼭 하겠다면…… 사티로스 프린스 둘을 단숨에 쳐 죽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해. 무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줄 테고, 단번에 흩어져서 당분간은 서넛이 몰려다니는 수준만 유지하게 될 테니까. 정말 하겠어?”
“갑니다!”
신중하게 듣던 투란은 냉큼 손으로 뱃전을 찍어 누르면서 뛰쳐나갔다.
성큼성큼, 불과 두어 걸음이었음에도 투란이 지나친 거리는 십여 미터를 훌쩍 넘어섰고 걸음마다 몸이 부풀며 새파란 살갗을 사납게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 꼴을 보던 쥴이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뭐야, 저건…… 설마 청색(靑色)의 폭왕(暴王)? 아니, 저건 대체 어디서……?”
“뭡니까, 그게?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툴로쉬가 곧바로 쥴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사납게 묻고 있었다.
쥴은 살짝 당황해서 슬쩍 고개를 빼는 채로 대답했다.
“어, 뭐…… 옛날 엘더 헌터들은 알고 있었는데…… 넌 전혀 모르는 거냐?”
“삭제된 기록에 포함된 몬스터란 거군요?”
몇 마디 듣자마자 툴로쉬는 퍼뜩 알아차렸다는 듯, 아주 침울하게 말하고 있었다.
쥴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얼버무리려던 시도가 실패한 것을 인정하듯, 조금 길게 말한다.
“너무 위험해도 탐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괴물이었으니까. 연금술사도 마법사도, 괴물의 적응력을 이용해서 온갖 가능성을 다 떠올리며 망상에 젖었지. 대마도사가 나서지 않았으면 인간의 손으로 키운 몬스터가 터무니없는 재앙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못 본 척하고, 모르는 척해.”
“네. 일단은 그러죠.”
“응? 왜 일단은? 뭘 확인하려고?”
“또 다른 누군가 저 몬스터에 대해서 아는가, 어떻게 투란이 저걸 삼켜 버렸는가…… 결국 다시 나타났기에 가능했잖습니까. 뒤처리해야죠.”
“아, 그건 또 그렇네.”
쥴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투란은 둘이 그런 대화를 하는지 마는지 상관없다는 듯이 격돌하는 사티로스 프린스, 두 마리의 머리 위로 바헬키마의 형상을 벼락처럼 떨구는 중이었다. 투석기가 쏘아 올린 바위처럼…….
콰앙!
먼저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산양의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우두머리,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두 왕자가 짓이겨져서 핏덩이가 되어 땅바닥에 처박히는 순간을 사티로스 무리는 절망스러운 외침으로 받아들였고 곧바로 사방팔방으로 뛰어 달아나고 있었다.
후욱, 사납게 숨을 몰아 내쉬면서 몬스터의 형상 그대로 그 광경을 둘러보는 척하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묻고 있었다.
‘야, 둘이 뭔 얘기 한 거냐?’
―잘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바헬키마에 대해 쥴은 알고 있던 모양이다. 청색의 폭왕? 그렇게 불렀어. 폭군도 아니고 폭왕이라니, 무슨 사연인가 모르겠군. 아무튼 툴로쉬는 엘더 헌터로서 뭔가 짐작한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바헬키마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싶은 듯하다만.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막는다고? 왜?’
―바헬키마의 피나 뼈 따위가 마법이나 연금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탐욕으로 수룡처럼 바헬키마를 잔뜩 키워 내려 한다면, 그래 놓고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한다면 바헬키마 한 마리가 수백, 수천의 마법사로도 감당 못 할 무시무시한 괴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이미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어. 대마도사가 그 정보를 통제하고, 하이로드인 쥴은 오래 살면서 그걸 봤을 수도 있겠지.
‘흐음…… 홀시딘도 모를 이야기란 말이네.’
―이름부터 짓고 있었잖아. 뭔가 알아내기도 전에 네가 모조리 없애 버린 셈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모르는 채이겠지.
‘툴로쉬가 캐고 다니면 관심이 생기는 수도 있잖을까?’
―으흠, 마법사의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로 아둔한 엘더 헌터는 아닐걸?
‘아, 그렇게 되나?’
쓰윽, 고개를 돌리면서 투란은 다시 사람의 형상을 복구했다.
그리고 투란의 눈길이 찍어 터뜨린 사티로스 프린스 두 마리를 훑어 내렸다.
한 마리는 뿔과 어깨, 상체가 불끈불끈하고 거대하다면 다른 한 마리는 우람한 허리와 허벅지, 발목과 발의 앞굽 뒷굽이 으스스할 정도로 억세 보였다. 서로를 비교하면 상체와 하체가 명확하게 다른 특성을 지닌 것이 보이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프린스 중 어느 쪽도 다른 평범한 사티로스보다 우람하고 장대한 체격으로, 무리 어디에 세워 놔도 당장 눈에 띌 지경이었다.
―삼킬 거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었다.
‘확인해야지.’
―확인? 아…… 로열젤리의 잔재 말이군.
투란은 미묘하게 긍정하면서 사티로스 프린스 두 마리의 잔해를 제각각 손으로 짚었다. 그 두 손을 잠시 가슴에 댔다가 다시 두 마리의 잔해를 짚으니, 곧바로 사티로스 두 마리의 잔해가 핏방울, 터럭 하나 남지 않고 투명하게 해체되어 사라져 갔다.
너무 깔끔해서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놀랐다.
“엥?”
투란의 입가에서 미묘한 소리가 나올 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소리 없는 감탄을 흘려 냈다.
―허?
그리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돛을 흔들며 커다란 바퀴를 굴린 채로 다가오는 뱃전에서 쥴이 그 광경에 대한 감상을 토해 내었다.
“여전하네, 역시 털끝까지 생명의 파동이 흘러넘치는 놈들이었어. 로열젤리 탓이라고 해야겠지? 저렇게 카프리곤으로 성장하는 놈이 한꺼번에 둘이나 한 무리에서 나올 리가 없잖아?”
“카프리곤……?”
투란은 흠칫하며 되뇌었다.
사티로스와 카프리곤이 서로 닮기는 닮았지만, 저 이야기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