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7)
“뭐, 안 좋게 엮인 적이 있나 봐요?”
슬그머니 투란이 물었다.
쥴은 ‘엥?’ 하며 눈을 몇 번 껌벅이는가 싶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핫, 으하하핫! 아냐, 투란. 그렇지는 않아. 노래하는 술꾼이랑 내가 고약하게 얽힌 일은 없어. 으하하핫, 오해하기 쉽게 말해서 미안! 아하핫…… 아오, 이거 웃을 일이 아닌데 어째 웃음부터 나오냐. 후으읍!”
결국 스스로 볼을 꼬집고 숨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얼떨떨하니 투란이 다시 묻는다.
“그럼, 왜……?”
그토록 수상한 분위기를 띄웠단 말인가!
쥴이 키득거리며 머리를 긁적이는 채로 슬쩍 툴로쉬 쪽을 보는 시늉을 하며, 꽤 민망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 그게…… 정말 고약하고 안 좋게는 아닌데…… 술꾼 자식들이랑 어울리다가 그놈들 도망치는 일을 좀 도왔거든. 그때 그 자식들 중에는 살인귀에다가 강간을 되풀이하는 놈까지 섞여 있었는데…… 툴로쉬가 한참 어린 시절에 그 악당을 죽이겠다고 쫓다가 나한테 몇 번 방해받고 결국…… 음, 결국 춤추는 산맥에서 도망치고 말았지. 야, 그렇게 삐딱하게 보지 마! 난 그런 놈이 섞인 줄 몰랐다고! 아무튼 술꾼 자식들은 아무 이유 없이도 처맞다가 살해당하기까지 하던 때였어. 반격해서 죽인 일이라는데, 탓하기도 뭐한 시절이었다고.”
“정말 사람이었나 보네요. 몬스터라면 변명이고 뭐고 의미 없었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투란이 조금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의 뇌리에 속삭인다.
―확실히, 몬스터의 본성을 드러낸 경우가 아니었던 모양이네.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인간답다고 해야 하나?
‘야, 그게 어디가 인간답다야! 드라코눔에는 그런 거짓말쟁이가 없는 것처럼 말한다? 지성을 지닌 경우에 아주 흔한 일이잖아! 나도 그 정도는 확실히 알거든!’
―드라코눔 이야기가 아니잖아! 술꾼의 자식들이 지성을 갖춰서 인간답게 자기 한 짓을 변명한다는 점을 말한 거야! 아니, 드라코눔이 왜 나와? 넌 아직 그 근처에도 안 가 봤으면서!
‘흐흥…….’
가볍게 코웃음 치는 시늉을 했지만 고요하게 숨결을 가다듬으면서 쥴의 키득거리는 표정을 바라보는 투란이었다. 쥴은 투란의 중얼거림에 ‘아?’라고 하다가 웃으면서 조그맣게 말을 잇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네 말대로였네. 그때 난 지성을 지닌 몬스터의 자식이란 말을 굉장히 우습게 여겼던 것 같아. 그저…… 춤추는 산맥 어디를 가도 가끔 볼 수 있는 마수처럼, 그냥 인간이 그런 특성을 지니고 날 수 있겠거니 했지. 으하하핫, 그게 더 상식적이었으니까. 그때까지 술꾼의 자식이면 당연히 술꾼 같은 몬스터일 것이라고 여겼었네. 맞아, 그랬어. 하핫, 그래서 툴로쉬랑 다른 녀석들 훼방 놔서 억울하게 죽는 놈 없게 하겠다고 했어. 뭐, 진짜 나쁜 놈도 그 틈에 끼어 달아나게 돼 버리긴 했지만…….”
“음? 그걸로 끝이에요? 춤추는 산맥을 벗어났다고 못 쫓는 것도 아닐 텐데?”
“어? 그야…… 쫓는 것도 내가 꽤 잘 방해했거든. 크하하핫.”
슬그머니 목소리가 높아진 채로 낄낄거리는 쥴이었다.
투란이 어이없어 그런 쥴을 흘겨보다가 슬쩍 툴로쉬 쪽을 바라봤다.
꽤 오래전의 일이라지만, 어쩌면 툴로쉬는 모두 그냥 흘려 내고 잊은 일일 수도 이겠지만…… 과연 엘더 헌터가 애송이 시절이었다고 해서 쫓던 사냥감을 멀리 갔다고 포기했을까?
마침 돌아서던 툴로쉬가 투란과 눈이 마주치자, 쓴웃음 짓는 표정으로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이며 말한다.
“노래하는 술꾼 자식들의 뒷이야기? 살인, 강간하던 놈은 제 버릇 못 버렸다가 수인족 마을에서 찢겨 죽었고 그저 몬스터의 자식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로 쫓겨나 떠돌이가 되고 말았지. 차라리 몬스터의 본성과 능력을 일깨웠다면 악독하게나마 살아남았겠지만…… 그저 어중간한 외모가 기형(畸形)일 뿐인 인간에 불과했기에 그리 좋은 일을 겪지 못하고 대부분 길에서 죽었다더군.”
천천히 다가오면서 높아진 목소리의 끝자락에 살짝 쥴을 흘겨보는 눈길을 더하기도 하는 툴로쉬였다. 왜 그런 뒷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듯한 그 눈길에 쥴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몰랐네, 거기까지는. 뭐, 인간이 서로에게 하는 짓이 다 그렇잖아?”
투란이 ‘엥?’ 하며 쥴을 보았다.
―이 작자, 진짜 성격 망가졌구먼.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속삭였다.
“그렇게 죽어 나간 형제들 이야기를 헌터 길드에 전해 온 자는 살아남은 한 명이었고, 노래하는 술꾼의 자식들이 춤추는 산맥을 벗어나면 어떤 특성을 지니게 되는가를 소상히 알려 오면서 다음에 또 자신들과 같은 경우가 생기면 무조건 죽이지 말고 어떻게든 돌봐 달라고 부탁했지. 그 한 명은…… 그럭저럭 잘 살다가 늙어 죽었다고 들었어.”
툴로쉬는 뒷머리를 긁적이는 시늉과 함께 뭔가 머리를 감고 있던 것을 벗어 내면서 이야기를 맺고 있었다.
끼익 하는 돛의 흔들림, 덜컹거리며 지면을 밟고 구르는 바퀴 소리가 잠시 요란했다. 그리고 살짝 소리가 잔잔해지니 쥴이 피식 웃고 말한다.
“마지막도 인간다운데? 아, 그러고 보니 궁금했는데…… 그런 몬스터의 자식에게 몬스터 엠블럼을 새겨 줄 수 있을까 없을까? 어때, 툴로쉬? 어떻게 될 것 같아?”
툴로쉬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투란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쥴을 흘겨봤다. 한데…….
―응? 그건 대체…… 어떻게 될까?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그 의문에 동참하고 있었다!
‘야, 왜 궁금한데?’
―당연히 궁금한 일이지! 몬스터 엠블럼은 본래 인간의 영육(靈肉), 심신(心身)을 기반으로 발휘되는 마법이다.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몬스터 엠블럼이 새겨진다면 몬스터의 자식은 인간인 것이고 아니라면 인간과 몬스터 사이에서의 잡종 교배의 결과물로서 지성을 갖췄을 뿐이란 이야기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잖아!’
이렇게 투란이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는 사이, 툴로쉬는 쥴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런 호기심뿐인 의문을 풀고 싶지 않군요. 노래하는 술꾼이 아예 자식을 수태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차선 따위는 없어요. 딴생각하지 마세요, 쥴 님!”
“야, 그냥 궁금하다는 것뿐이라고! 누가 결과를 알려고 일부러 자식 낳게 한다던? 얘가 날 완전히 미친놈으로 보네? 아, 그래. 내가 좀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쪽으로 미치지는 않았거든? 그렇게 미치는 녀석들은 마법사라고, 마법사! 특히 로그메이지! 난 아냐!”
쥴은 툴로쉬의 표정이 엄격하고 진지한 것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반박하는데, 거의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덕분에 툴로쉬는 ‘진심이시길.’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노려볼 수 있었고 쥴은 ‘진짜야, 진짜!’라고 억울한 표정을 섞어 대꾸해야 했다.
그 틈새에 살짝 안도하는 한숨을 섞어 넣고 투란이 저편을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저기 뭐 보이는데요? 저리로 가는 것 맞아요?”
툴로쉬가 그 손끝을 따라 눈길을 돌렸고,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쥴 님, 나서실 때입니다. 투란은…… 여기 귀마개.”
“어? 귀마개?”
저편의 풍경을 보다가 투란이 갸웃했다.
그사이에 곁에 있던 쥴은 툭툭 몸을 털며 자세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고개를 좌우로 꺾고 손가락을 맞물리며 기지개를 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 소소해 보이는 몸짓과 함께 쥴의 귀가 비늘에 덮였고, 손가락에는 가늘고 긴 손톱이 박힌 비늘 가죽의 건틀릿이 장착된 듯이 변했다.
―케이브 리저드?
드라고니아가 귀 언저리와 손가락의 명백한 변화, 더불어 발목과 발가락의 형태도 뒤꿈치를 잔뜩 들고 앞발가락 언저리…… 앞굽으로만 버티고 서는 형태를 드러내는 쥴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툴로쉬는 투란에게 간단히 설명을 했다.
“괜히 힘 낭비하지 말고, 그냥 귀에 꽂아. 노래하는 술꾼에 대한 대응책이야. 몸이 떨리는 것도 어느 정도 막아 주니까…… 쥴 님, 시작하시죠.”
끼익 하며 배는 멈출 생각 없이 방향을 꼿꼿하게 고정하며 나아갔고 쥴은 냉큼 뱃전에 올라서면서 변해 버린 발가락으로 움켜쥐는 듯이 밟더니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곧 뱃머리를 밟은 쥴이 멀리, 투란이 본 풍경의 한복판으로 내려꽂히는데…….
노래하는 술꾼, 사티로스 바드는 입가에 핏덩이를 묻힌 채였다.
산양의 머리가 아닌 인간의 머리에 뿔만 돋아난 생김새, 주글주글한 잔주름이 가득 채워진 추한 얼굴에 핏덩이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두텁고 날카로운 이빨이 괴이함을 풍겨 내는 듯한 외모였다.
그런 사티로스 바드의 주변에는 가득한 것은 산양 머리와 허리춤까지 인간의 상체, 그 아래로는 꼿꼿이 세운 산양의 하체를 지닌……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티로스 무리의 시체였다.
시티로스 바드는 그 시체를 뜯어먹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묘한 물체를, 인간들조차도 ‘땅 위에 웬 배?’라고 의아할 물체를 보자마자 목젖을 비우고 울려 대기 시작했다. 그 물체에서 누군가 껑충 뛰어 단숨에 자신의 앞에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로 사티로스 바드는 오로지 목젖을 울리고 배를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채였다.
그 결과는 매우 간단하게, 뱃가죽이 찢어지고 가슴이 갈라지며 뼈와 살이 가득한 속이 드러나고 찢겨 나가는 죽음이었다. 그러면서도 사티로스 바드는 그 쭈글쭈글하고 추한 얼굴에 의아함을 품은 채로 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으려 했다. 결국 그 목젖이 날카로운 손톱이 뾰족한 손아귀에 붙들려 통째로 뜯긴 다음에야 사티로스 바드는 죽음과 정적을 품는 듯했다.
끼이익, 지상을 미끄러져 온 배가 그 시체 무더기 앞에 멈췄다.
뱃머리에 선 툴로쉬가 내려다보니, 쥴이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하면서 곧바로 한 손을 흔들어 작은 막대를 쥐고 있었다. 막대는 곧바로 한쪽 끝에서 불길을 흘려 냈고, 쥴은 횃불처럼 달랑거리는 끝자락을 바로 땅에 내리꽂았다.
시체 사이로,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번져 가면서 피와 살, 뼈까지 단숨에 소각(燒却)이 이뤄지며 탄내가 자욱한 연기, 그을림과 함께 퍼져 나갔다.
뱃전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투란이 눈살을 찌푸리고 쥴에게 소리쳐 묻는다.
“뭐예요, 이놈들 자기들끼리 싸우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아니. 그냥 노래에 홀려서 강간당하고 일방적으로 죽어 나자빠진 거야.”
쥴의 대답은 투란의 예상에서 꽤 어긋나 있었다.
잠시 투란은 눈만 깜박여야 했다.
―동족이고 동포고 없는 놈이었단 얘기군. 으흠…… 자식에 대해서는 다르려나?
완전히 구경꾼인 듯한 드라고니아의 웅얼거림.
투란은 입을 열어 쥴에게, 툴로쉬에게 다시 묻는다.
“이렇게 동족까지 덮치고 잡아먹는 놈이었어요?”
여태 그런 얘기는 쏙 빼놓았잖은가, 따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보통 동족, 동포라 칭해지는 같은 부류까지 사냥감으로 보는 몬스터는 그럴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더욱 다양한 대책을 세워서 사냥 계획을 짜야 하니까.
―뭔 생각을 하는 거냐? 하이로드가 때려잡겠다고 나서는데 뭔 다른 계획이 필요해? 툴로쉬가 쥴을 내세운 것이 그 대책이잖냐.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생각에 핀잔을 던졌다.
‘아? 어…… 그러네?’
뒤늦게 공감하고 인정했지만 동시에 투란은 잠시 꽂았다가 빼낸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면서 여전히 갸웃하며 툴로쉬와 쥴을 둘러봤다. 너무 빠르고 간단하게 끝장이 난 상황이라 뭔가 그러려니 하면서도 납득이 어려운 탓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자신이 눈에 담았던 광경을 되새김질해서 다시 살펴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되새김질은 문득 투란에게 깨닫게 했다.
‘문장 전환…… 교체했어. 케이브 리저드? 그 정수를 담은 문장을 골라 사용한 거야! 우와, 당연해 보였는데 너무 빠르잖아!’
쥴은 투란에게 건네준 반지와 같은 마법을 품은, 조금 다르다고 해도 어쨌든 몬스터 엠블럼을 품고 바꿀 수 있는 다른 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몫으로 얻은 것이라고…… 그 말을 지금 증명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되새겨 보는 투란을 이모저모로 놀라게 했다.
‘하이로드…… 같지 않았어. 그냥 몬스터 로드…… 그것도 어중간한 중급 수준처럼 느껴졌어! 어라? 아니, 그럼 순전히 아까 몬스터의 형상으로 저걸 때려잡았다는 거잖아? 케이브 리저드면, 그냥 동굴 안에 처박혀서 안 나오는 놈들 아니었나?’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투란이 가장 궁금한 것은 사티로스 바드를 찢어 버린 몬스터의 형상, 그 정체였다. 여기에 드라고니아가 간결하게 답을 해 준다.
―귀머거리 몬스터 중에서 특이한 생태를 지닌 경우지. 밝은 곳에서는 오히려 장님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아주 잘 보고, 냄새만 맡고 상황을 시각적으로 판별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인 놈이다. 노래만 막아 버린다면, 저 바드인 사티로스의 근력은 그저 보통 사람의 서너 배일 뿐이니까. 온몸이 흉기이고 난투, 격투가 자랑인 케이브 리저드가 완전히 압도할 수밖에 없겠지.
쥴의 목소리가 조금 무겁게 울리면서 다른 생각에 빠져들려는 투란을,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정리하려는 툴로쉬를 붙들었다.
“일이 꼬였다, 툴로쉬.”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