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8)
말과 함께 쥴이 땅바닥에 거의 어깨까지 손을 밀어 넣었다가 빼고 있었는데, 그 손에 붙들려 나온 것은 망가진 갑옷의 파편이었다. 배후를 지키기 위한, 등에 붙이는 듯한 갑옷은 철제(鐵製)인데 잔뜩 우겨진 채로도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발톱이 아니라 검이군요?”
툴로쉬가 돛을 완전히 말아 버리면서 뛰어내린 다음에 그 흔적을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쥴은 혀를 차며 그 말을 받는다.
“사티로스의 조잡한 도구가 아니야. 여기 그런 도구가 아예 없기도 하지만, 이건 신성한 힘을 머금은 칼날의 흔적이라고. 이 철갑옷의 주인은 느닷없이 뒤통수 맞고 죽었어. 아래를 파 보면 정확히 알 거야. 일부러 땅바닥을 갈아엎어서 덮고 감추기까지 했으니까, 주의 깊게 봐.”
“사티로스 쪽 정리 부탁드리죠.”
툴로쉬는 바로 자세를 낮추면서 말했다.
쥴이 주변에 아직 불타지 않은 사티로스의 잔해를 향해 불붙은 땅덩이를 툭툭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잔해가 곧바로 짙은 탄내와 연기를 뿜어내며 타올랐다. 정수를 얻어 낸다는 시늉은 어디에도 없었고, 노래하는 술꾼과 기타 등등의 사티로스를 모조리 재로 만들어 버리는 셈이었다.
투란은 쥴이 잔해를 재로 만드는 광경과 툴로쉬가 땅을 푹푹 떠내면서 그 아래 파묻힌 것을 조심스럽게 파내는 모습을 멀뚱거리며 지켜봐야 했다. 딱히 나설 일이 아닌 듯했고, 끼어 봐야 뭔 일인가 궁금해하며 훼방만 놓을 듯했으니까. 그러나 투란은 조심스럽게 구경하는 척하며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보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빨랑빨랑 알아봐 줄 수 없냐?’
―탐지해 보고 있다만…… 몇 마디 나온 말과 탐지한 부분을 겹쳐서 알아낼 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군. 음, 사제? 아니, 성기사나 성전사 쪽이려나? 아무튼 신성력을 무기에 깃들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신성력이 깃든 무기로 여럿이 죽었다. 뒤를 쳐서 다 죽여 버린 듯한 광경인 것은 알겠지? 말하자면 동료를 앞에 두고 배신했다는 상황? 그 정도일 거야. 그런데…… 그 배신한 자는 죽지 않고 이 자리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뭐? 배신하고 자살하고 그런 것 아니고?’
―자살? 왜 그런 생각을……?
‘노래에 홀려서 동료를 배신하고 그다음에는 자기도 죽고, 몬스터에게 홀리면 대부분 그런 결말이잖아. 저 술꾼이란 사티로스도 손발 움직이는 것보다 그런 식으로 사냥을 하고 동족을 죽이는 놈 같고…… 정말 배신해 놓고 도망쳤다면, 홀리지 않고 술꾼에게 미끼로 내던진 다음에 도망쳤다고 볼 수도…… 있을까? 없을까?’
―그보다는 그런 일이 터진 다음에 왜 땅이 뒤집히면서 모든 상황을 파묻어 버렸나가 더 의아하잖냐?
‘어? 으음…… 그러네?’
―신성하든 아니든 뭔가 마법이 사역된 낌새는 있다만, 정확하게 저 파티 멤버의 사망 상태를 갈아엎고 숨기려 했다는 점만 확실하군.
‘어떻게 된 상황이래?’
―글쎄다…… 툴로쉬는 결론이 난 모양이군.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쥴이 춤을 추는지 난동을 부리는지 애매모호하게 날뛰는 쪽에 돌아갔던 눈길을 돌려 툴로쉬를 봤다. 굉장히 짜증 난다는 표정과 눈빛이 사납고 날카로운 것으로 봐서, 별로 좋은 결론은 못 낸 모습이 분명했다.
투란이 엿보던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었던 듯, 툴로쉬는 으르렁거리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렇게 꼬일 일이 아니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썩을 것들이 진짜! 쥴 님, 정리 끝났으면 이쪽으로 좀 오시죠!”
“멍청한 인간이 얼빠진 짓거리 저질러 놨는데 왜 날 불러? 그냥 알아서 처리하면 되잖아? 난 알려 준 것만으로도 할 만큼 한 거라고!”
투덜거리는 대꾸를 하면서 쥴은 투란이 기댄 뱃전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여차하면 배에 올라타서 몰라라 하겠다는 태도였다. 내려다보는 투란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가 파악한 부분 말고도 쥴이나 툴로쉬는 뭔가 더 알아낸 듯한 낌새가 엿보이니까.
툴로쉬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쥴을 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짓을 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저랑 다른 생각인가 어떤가 좀 알아야겠습니다. 일감 떠넘기려는 것 아니니까, 얘기나 해 주세요.”
“얘기만이다, 얘기로 끝이야! 으흠!”
슬쩍 멈춰 버린 배의 바퀴에 등을 기대면서 쥴이 팔짱부터 끼고 있었다.
투란이 보니 쥴은 지금 발견한 저 기묘한 배신의 일행, 그 잔해와 관련해서 손 뗀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셈이었다. 툴로쉬는 쥴이 발견한 바가 자신이 추측한 부분과 얼마나 같고 다른가를 반드시 확인하려 하는 듯했고.
“툴로쉬, 너무 긴장하지 말고 들어. 뭐, 그게 편하면 그대로 있고…… 아무튼 이 녀석들은 헌터용 철갑이랑 장비를 들고 있기는 한데, 헌터 아냐. 몬스터 사냥을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거나 의뢰로 탐색하러 온 것도 아냐. 동의하냐? 좋아, 다음으로 이놈들 신전과 거래가 많은 용병이란 것은? 아, 그건 못 느꼈냐? 죽은 다음에 시체가 파묻히고 빠르게 썩었으니 못 알아볼 만도 하긴 하네…… 그건 됐고, 이다음부터는 완전히 내 추측이니까 걸러 들어. 툴로쉬, 이 녀석들은 엘더 헌터의 행적을 추적하려고 여기 온 거야. 몬스터에 대한 경계를 하긴 했지만, 주목적은 지금 움직이는 엘더 헌터를 쫓는 일이다. 무슨 근거냐고? 쪼개진 팔찌를 봐, 그건 안쪽에 반쯤 남은 신성 주문의 흔적이 있을 거야. 내가 옛날에 겪어 봐서 아는데, 그 정도 성력(聖力)이 그렇게 망가진 도구 안에 남아 있다면 원래는 몇 배나 강한 추적 주문이었을 거야. 아마도…… 너에 대해 건너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이 주변에 너 말고 엘더 헌터가 없다면 말이야, 없지? 그래, 그럼 너 맞을 거야. 어? 이 와중에 뭔 일로 널 찾냐고? 그야…… 춤추는 산맥에 진출을 원하는 신전이라면 헌터 길드가 지닌 진정한 힘이라고 하는 전설적인 사냥꾼, 엘더 헌터를 포섭하고 싶어 하잖아? 엘더 헌터가 재앙의 조짐을 보고 움직이니까, 그 재앙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엘더 헌터를 추적해 왔겠지. 야, 그래서 말했잖아! 멍청한 인간이 얼빠진 짓을 한 거라고! 아무튼! 이 일에 나는…… 나랑 투란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어이, 투란! 너도 이 일에는 끼어들면 안 돼!”
한참 떠들던 쥴이 갑자기 고개를 홱 젖히며 건네는 말에 투란은 맹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쥴이 ‘아니, 얘가!’라면서 막 팔짱을 풀고 튀어 올라올 낌새였으니까. 하지만 투란도 일단 툴로쉬에게 묻기는 해야 했다.
“현상금 걸렸어요? 엘더 헌터를 찾는 현상금은…… 길드에서 받아 주긴 해요?”
잠시 쥴이 투란을 보고 눈을 끔벅거렸다.
툴로쉬도 쥴의 추측을 들으면서 굳었던 표정 위로 묘한 파문을 흘리면서 눈을 깜박이는 중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들을 잊었군.
드라고니아가 단련된 시각으로 둘의 태도를 분석했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고요해진 틈에 휑한 바람이 끼익 하는 배의 움직임 사이를 헤치고 스쳐 갔다.
쥴의 키득거림이 그 잠깐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현상금이야 걸렸지, 엘더 헌터인가 아닌가랑은 상관없이! 크흐흐흣, 그러고 보니 당분간 도시 근처로 안 간다고 했지? 푸후후훗!”
툴로쉬가 입가를 실룩이면서 짜증을 억누르는 낯으로 얼굴을 뒤틀면서 대꾸한다.
“그건! 쥴 님 때문이잖아요! 아냐, 투란! 엘더 헌터 찾는 의뢰를 받기는 해, 하지만 현상금은 걸리지 않아! 뜬소문이랑 전설을 좇는 바보 같다고 말이지. 어? 의뢰야…… 간절하게 몬스터를 사냥하길 원하는 이들도 가끔 있으니까, 기약 없이 그냥 받아만 두는 거야. 그런 의뢰 중에 중요한 정보가 담긴 경우도 있고…… 아니, 얘기가 이상해지고 있잖아! 쥴 님, 그만 좀 웃어요! 이 일은…… 몬스터 로드가 나설 일은 아니니까, 길드 안에서 어떻게든 처리하죠.”
말하는 사이에 혀를 날름거리면서 낄낄거리는 쥴 때문에 툴로쉬의 표정은 조금 더 뒤틀리고 말투도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툴로쉬는 결국 할 말을 다한 듯이 긴 숨을 내쉬는데, 그 틈에 바로 투란이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요?”
쥴이 웃음을 멈췄고, 툴로쉬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봤고 투란에게 누가 이야기할까를 정하는 듯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국 쥴이 혀를 차며 곧장 뱃전으로 뛰어올라 투란의 곁에 서면서 말문을 연다.
“주절주절은 아까 했으니까, 요점만 간단히 말해 줄게. 어떤 놈들이 춤추는 산맥에 자기네 세력을 퍼뜨리려고 엘더 헌터를 쫓고 있었어. 이 시기에 이 주변은 위험하다고 헌터 길드와 왕국 내에 경계가 분명히 강화되고 군단조차 그 움직임을 자제하며 방어에 주력하는 중인데도, 여기까지 쫓아왔고 노래하는 술꾼을 만났지. 그다음은 너도 쉽게 예상할 수 있지? 노래에 현혹당해서 죽어 버린 거야. 하지만 모두 죽지는 않았어. 가장 먼저 노래에 현혹당해 동료의 등짝을 찌른 한 명, 그 한 명은 술꾼에게 파먹히지 않았어. 그래, 수태한 거야. 엘더 헌터의 행적을 쫓아온 이들 중 한 명은 여자였던 거지. 그리고 돌아갔어. 술꾼이 주변의 사티로스까지 잡아먹는 동안, 그 악명이 자자한 신전의 탈출을 사용한 거야. 아마 자기가 겪은 일을 제대로 모르는 채였을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그 여자는 술꾼의 아이를 낳을 거야. 신전에서 과연 그 여자를 어찌 대할까?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투란. 저기 엘더 헌터께서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몬스터의 군세를 분쇄하고 뒤처리에 바쁘신데, 별 이상한 것들이 소소하게 끼어들어서 시비를 걸어온 셈이지. 어때 간단하지?”
“아까만큼 긴 이야기였어요.”
투란은 쥴이 으쓱으쓱하며 떠들고, 이를 한구석으로 흘리는 듯이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고 상황을 정리하는 툴로쉬가 이야기에 따라 어깨를 툭툭 떨구는 꼴을 보다가 짧게 감상을 토해 냈다.
쥴이 바로 낄낄거렸지만, 툴로쉬는 알 바 아니란 것처럼 추적자들의 잔류품을 챙겼고 재가 되어 버린 사티로스 무리를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배에 올랐다. 그리고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빠르고 과격하게.
끼이익!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지나가는 바람이 거셌다.
바퀴는 구르고 있었지만 거의 지면에 닿지 않는 듯했다.
그 상황을 조금 늦게 깨달은 투란은 바로 곁에서 여전히 낄낄거리는 표정인 쥴에게 묻는다.
“이 배, 날 수도 있었어요?”
“응? 아…… 한 요만큼?”
두 손을 어깨보다 조금 넓게 벌린 채로 대답하는 쥴이었다.
슬쩍 뱃전 아래를 보며, 스쳐 가는 지면의 속도를 가늠하며 투란은 조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상을 달리는 마법의 배가 가볍게 뜬 채로 물 위를 질주하는 것처럼 바람을 깔고 미끄러지는 광경은 나름대로 신기하잖나.
“투란, 구경은 적당히 하고 그만 쉬어. 너 아직 휴식이 더 필요해.”
쥴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하는 말은 투란의 고개를 돌리게 했다.
깊이 자고 일어나서 쥴의 활약을 구경한 것이 전부였잖나? 그 뒤에 툴로쉬가 뭔 복잡한 일이 엮인 것도 보긴 했지만, 딱히 투란이 피곤해야 할 일은 아니었는데…….
“음, 조금 이상하게 들렸냐?”
슬쩍 투란 곁으로 조금 더 붙으면서, 쥴은 웃음을 거둔 진지한 표정부터 지었다. 그 표정과 함께 쥴을 중심으로 기묘한 힘이 퍼져 나오며 투란을, 투란과 쥴을 휘감았다.
투란은 곧바로 이 힘이 처음 만났을 때 쥴에게서 느꼈던 바이며,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과 닮았으면서도 이질적이란 것과 장막처럼 퍼져 주고받을 이야기를 엿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쥴은 투란이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쓴웃음을 짓긴 했지만 하던 말을 이어 간다.
“반지는 굉장한 마도구야. 대마도사가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대마도사는 온갖 괴상하고 쓸모없는 해괴한 마도구도 자주 만들지. 그중에서 걸작이라 꼽히는 몇 안 되는 것이 있고, 반지는 그 으뜸이 아닐까 해. 하지만 투란, 그런 마도구라도 한계는 있어. 그 반지는…… 몬스터 로드로서 네가 지닌 힘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기는 해.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고 하던가? 그렇지만 네 힘의 총량, 너란 그릇에 담긴 힘의 용량을 확장하거나 강화해 주는 것은 아니야. 만약 그렇게 느낀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동안 낭비되던 힘을 절제시켜줘서 너 스스로 느끼기에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뿐이야. 달리 말하면, 넌 아직 로열젤리 슬러그를 물리친 후에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고 그냥 남아 있는 여분의 힘을 집중할 수 있는 것뿐이라고. 그 정도로 힘을 쓴 경우에는…… 예전에 하이로드 카엘, 그 벨카인 녀석이 힘이라면 넘쳐나는 놈인데도 여드레 정도를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자기만 했어. 어쩌면 너의 그릇은 더 클 수도 있지.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며칠은 더 쉬는 편이 안전해. 도시로 돌아갈 때까지는 그냥 배 위에서 뒹굴뒹굴하며 놀란 말이야, 쉽지?”
“쉽네요.”
투란은 무심하게 흘려 내듯, 아주 짧게 대답했다.
쥴의 이야기에 딱히 흠을 잡을 부분은 없었으니까.
드라고니아 또한 ‘마력의 그릇’, 힘의 총량(總量)이란 부분에 크게 공감하는 낌새를 푹푹 흘려 줬으니까. 거기에 투란이 지닌 특이한 조건을 고려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기는 해도, 결국 쥴의 이야기가 정론(正論)이라고 드라고니아는 공감하고 있었다.
쥴은 아주 쉽게 받아들이는 투란을 잠깐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짧게 덧붙이는 말.
“게다가 슬슬 살펴봐야잖아? 너의 심상 속에서, 반짝반짝 금덩이가 어떤 몰골을 하고 있는가 말이야. 길들어야지? 음흐흐흣!”
음흉한 표정 속에 음모가 가득 담긴 웃음도 섞인 채였다.
투란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