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1)
Chapter 23. 광란의 드레이크
‘후우, 위험했다. 계속 말을 걸기를 잘했네.’
몸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려 하는 떨림을 악마의 심장에서 흘려 낸 덩굴줄기로 움켜쥐면서 투란은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똑바로 자세를 잡고 쓰러져 있는 고르고니아, 스테노아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강렬한 외침이 다시 투란의 뇌리를 흔들었다.
‘야, 골 아파. 소리도 아니고…… 그러지 마.’
찌릿하게 울려오는 물음은 분명히 소리가 아니었지만, 정말로 골을 지끈하게 할 정도로 독하게 전해졌다. 그냥 뒀다가는 골 아파서 앓아눕게 되지 않을까 절로 염려될 정도였다. 그러니 일단 말려 보는 수밖에 없다.
—왜 고르고니아가 쓰러졌냔 말이다!
투란의 골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란 듯한 물음이 더 세차게 울렸다.
‘아오…… 설명해 줄 테니까, 기다려.’
후욱!
강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투란은 숨을 힘껏 들이쉬었다.
몇 달 동안을 숨죽이며 가느다란 덩굴줄기를 통해 들이쉬던 숨결과 다른, 억세고 팽팽한 숨결이 투란의 허파를 가득 채우며 퍼졌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맥동이 더 강하게 투란의 몸에 번져 나갔다.
투란의 손이 가만히 피로 물든 고르고니아의 눈가에 닿았다.
핏빛 사이로 금색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며 어른거리는 형상이 엿보였다.
투란이 손가락 사이로 핏빛을 긁어내는 것을 느낀 듯했다.
하지만 고르고니아의 금빛 모피가 출렁거리는 맥동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천천히 다시 온몸에 숨결을 뿌리듯이 힘을 모으며 투란은 가슴에 손끝에 맺힌 핏방울을 얹고 문질렀다.
소리 없는 맥동, 고요하게 맴도는 톱니 고리…….
핏빛의 톱니바퀴, 그 고리가 오므린 투란의 손아귀에서 가만히 고르고니아의 눈가에 떨어져 내렸다.
—이봐……!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향해 잠시 멈추라고, 말리는 듯한 말을 꺼낸 기척이 있었지만 투란의 정신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런 투란에게 호응하듯,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눈가에서 시작된 핏빛톱니의 회전은 다른 톱니를 새로 그려 냈고, 새로 그려진 톱니는 스테노아에게 쉴 새 없이 스며들었다.
파아아……!
산산이 흩어지는 투명한 거품, 그 속에 남은 것은 꿈틀거리는 알뿌리와 넝쿨 가닥의 잔해뿐이었다. 애초에 고르고니아라는 것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금빛 털과 뿔을 자랑하던 스테노아의 형상은 한 점의 티끌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 광경은 바로 드라고니아를 놀라게 했다.
—왜 스테노아의 몸속에 저런 것이…… 부서진 꼴로 남아 있지?
‘그야, 저 안에서 터졌으니까.’
—몸속에서 터졌다고? 어떻……?
‘나중에!’
투란은 손아귀에 새로 올려진 핏빛의 고리, 그 안에서 맥동하는 고르고니아의 맏이 스테노아의 에센스를 느끼며 다시 자신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순간이며, 약 여덟 달의 사냥을 마무리할 때였다.
발목을 감은 악마의 심장 넝쿨…….
온몸에서 가볍게 흘러내리는 길고 가는 실그물의 가닥들이 멀리 이어지며 끌어당긴 양분이 투란의 몸을 채웠다.
핏빛의 고리가 영롱한 금빛을 그 속에 채운 채로 투란의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옮겨졌다. 검은 톱니바퀴의 고리가 핏빛을 머금었고, 삼켰다.
사라락, 굵고 가는 덩굴줄기가 사방에서 요란하게 꼬이는 소리를 냈다.
투란의 정신은 저절로 문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마개, 뚜껑…….
투란이 그렇게 여기는 겹쳐진 톱니바퀴, 원반으로 보일 수밖에 없이 촘촘하게 엮이고 꽉꽉 조여진 형상은 이미 금빛 무리에 푹 묻혀 있었다. 천칭의 축, 기둥이라 해도 상관이 없는 정상까지 모두 휘감은 금색의 광채는 맥동하듯이 뭉쳐 들 때는 태양처럼 일렁이며 환했고,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를 두듯이 맥동이 풀려 퍼져 나올 때는 달빛처럼 여리면서도 선명한 색채를 주변에 뿌렸다.
이 풍경을 단지 느끼는 것만으로 투란은 뭔가가 자신을 가득 채우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저 금빛을 천칭의 축, 밖으로 새는 뚜껑 앞에 둬서도 안 되는 것 역시 분명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곧 투란에게 한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래로, 저 아래에…… 깊은 곳으로!’
풍경의 정상에 둘 수 없다면, 아래쪽에 두면 된다.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고, 따지고 든다면 과연 이 상황에 적합하다고 하기에는 많이 의심스러운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생각에 투란은 정신을 모으고 집중했다.
천칭의 축, 저 바닥에서 이런 마음에 호응한 듯한 기척이 피어났다.
까마득하게 먼 저 축의 아래, 기둥의 바닥으로부터 두 가닥의 검은 선이 축을 관통하고, 축을 휘감으며 치솟아 올라왔다. 축이 회전하고, 축을 이룬 작은 톱니바퀴가, 고리가 일제히 회전하며 이에 응했다.
금빛이 검은 나선에 닿자, 그 환한 빛 속에 시커먼 가닥의 그림자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금빛이 기묘하게 떨었고, 보다 빠르게 맥동하며 무거워졌다.
‘아래로!’
투란이 그 무거움을 향해 깊이 염원했다.
금빛이 서서히 축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실타래가 풀리듯이 흐르다가, 결국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축을 타고 거세게 아래를 향해 밀려갔다. 그 흐름은 곧 투란에게 바람처럼 느껴졌고, 투란이 이렇게 느끼는 순간에 금빛의 물결이 바람결로 변했다.
‘아래로! 어서!’
보다 강한 투란의 염원이 천칭의 풍경 속으로 울려 퍼졌다.
금빛 바람결이 더욱 짙게 검은 그림자를 품으면서 아래를 향해 쏟아져 내려가는 질풍이 되었다. 투란의 마음이 이 금빛을 따라 함께 천칭의 축을 따라 아래를 향해 흘러갔다.
‘어?’
어느 순간에 금빛 바람결이 천칭의 축 속으로 섞여 들어가며 길게 늘어지는 금빛의 실 가닥이 길게 엮인 장막처럼 늘어지며 축을 휘감는 흐름이 되었다. 그 흐름은 곧 뭉클거리는 구름처럼, 폭포의 바닥에 깔리는 포말처럼 엮여 들었다.
어느새 기둥을 휘감은 고리, 어느 틈엔가 굵고 큰 기둥이 된 천칭의 축, 까마득하게 멀리 올려다봐야 저편의 정상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곳에 금빛의 고리가 생겨났다. 흘러내린 금빛은 여전히 축을 꽉 휘감은 듯이 맴돌고, 축에는 이제까지 바람결이 되어 흘러온 금빛의 자취가 반짝거리며 남아 정상까지 이어졌다.
망연한 느낌 속에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고, 드라고니아가 문장 속에 이뤄 낸 별빛 무리가 저 먼 위쪽에서 맴도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깊이라면 거의 검은 심연인 저 바닥과 닿을까조차 의심스러웠다.
‘……아직 머네.’
위쪽의 정상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아늑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아래쪽의 검은 심연이었다. 마치 더 아래로 내려간다 해도 만날 수 없다는 듯했다.
‘추워?’
금빛이 반짝거리는 속에서 투란은 조금 기묘한 차가움을 느꼈다.
금빛 포말이 일렁이고 서서히 안개처럼 맴돌며 단단히 축과 이어져 내린 바람결은 튼튼한 천이나 담요처럼 굳어졌고 구름, 거품 같던 고리는 점차 퍼지면서 두꺼운 길이라도 꾸미는 듯했다.
이 기괴한 광경을 둘러싼 것은 허무…….
그리고 투란은 곧 고르고니아의 맏이, 스테노아가 금빛의 일렁이는 구름 속에서 뿔을 드러내는 것을 깨달았다. 저절로 투란의 마음속에서 외침이 흘러 나갔다.
“스테노아.”
별빛이 금빛 사이를 가르고 튀어나와, 곧장 축에 부딪쳤다.
별빛이 닿은 곳에서 축이 빙그르 돌았고, 곧 금빛의 단단한 테가 새겨진 무늬처럼 나타났다. 고르고니아의 형상이 서서히 별빛과 금빛이 둘러진 머리를 들어 올렸고, 투란은 두 가닥의 금빛 뿔 사이에 보석처럼 자리 잡은 별빛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한 뼛조각 같은 가면이 뿔과 이어진 채로 드러났고, 아래위로 갈라진 듯한 실타래 같은 눈매 속에서 금빛의 고리가 선명한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드러나는 앙상하고 마른 몸…….
‘어?’
투란은 의아했다.
거의 여덟 달, 그 시간 동안 악마의 심장을 통해 볼 만큼 봤던 고르고니아의 몸과 상당히 차이가 나지 않는가?
두툼하게 적갈색의 살집으로 채워져 있던 부분이 모두 촘촘하고 단단한, 가면처럼 허연 각질의 결정으로 덮여 있었다. 가장 잘 보였던 가면 아래, 그쪽은 거의 그물처럼 꼬인 각질이 잘 맞물려 있었는데, 이제는 가면의 얼굴을 들어 올려도 그 아래편은 살점이 아예 안 보일 정도. 과연 거기서 혀가 나올까 의심스러웠다.
추르룹!
투란의 의혹에 답하듯, 맞물린 각질의 결정이 선을 따라 갈라지면서 뾰족하고 긴 혀가 툭 튀어나왔다.
‘엥?’
대롱 같은 혀는 어디에 갔을까?
그런데 그 뾰족한 혀가 앞으로 활짝 열리고 시익거리는 숨결을 토하며 대롱 같은 형상이 되었다!
‘아, 원래 오므리면 뾰족하고 펼치면 대롱이…… 아니, 그게 아니고! 얘, 뭐야!’
투란은 조금 당혹해서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금빛의 모피가 안 보이잖은가!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별빛의 보석과 두 금빛 뿔의 주변에서부터 금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각질로 꾸며진 몸을 덮어 간다.
‘아……!’
갑자기 투란은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형상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 어딘가 굽은 다리, 발가락이 없는 삐죽한 발, 손등은 단단한 갑각에 덮인 듯한데 손의 형상은 사람의 아기 손처럼 생겼다. 게다가 겨드랑이 쪽으로, 사람과 다르게 몇 가닥의 가녀린 팔이 두어 개는 더 달린 듯한 이상한 꼴이었다.
‘이게 원래 네 모습이구나.’
투란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어딘가 일그러뜨린 구부정한 모습, 사람과 다르게 양쪽으로 여러 개의 작은 팔이 겨드랑이 쪽을 채우고 몸은 살갗 대신에 기묘한 느낌의 단단한 껍질에 덮인 데다, 두껍고 빳빳하게 솟아난 금빛 털이 등뼈를 따라 흐르면서 서서히 몸을 꽉 채우며 조인 형상…….
고르고니아가 머리를 갸웃하더니 성큼 한 걸음 디뎠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던 것과 다른,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금빛 고리를 밟으며 산책하듯이 축을 따라 돌았다. 그러면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숨소리,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은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하는 듯한 느낌을 투란에게 전했다.
하지만 곧 그런 느낌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느릿느릿하니 금빛 고리를 거닐면서 한가롭게 혀를 날름거리며 몸을 덮은 금빛 털을 다듬거나 늘어지거나 하는, 투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런 태도를 통해 투란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엄청난 게으름뱅이잖아!’
문득 작은 섬에서 맴돌던 고르고니아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치 늪의 한복판 작은 섬에 갇혀서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는 듯했던 모습…….
한데 실상은 그냥 늪을 건너는 것이 귀찮았을 뿐, 딱히 작은 늪 속의 섬을 벗어나 어딘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뿐이다!
‘용케 잡았네, 이 녀석…….’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문득 궁금해졌다.
스테노아, 고르고니아 맏이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까?
배고플 때 뭔가를 먹고 어슬렁거리는 것 말고 갈망하는 것이 있을까?
몬스터를 움직이는 본능, 그 본능에 새겨진 갈망이 세상과 충돌하는 것이 몬스터가 일으키는 흉악한 짓이 된다. 과연 고르고니아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크륵, 츄우우우우우!
‘어?’
투란의 의문에 답하듯, 돌연 고르고니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금빛의 눈동자가 밝아졌고, 그 여리고 가는 눈빛이 축을 향했다가 위를 향했다.
마치 자신이 무엇인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는 듯,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듯,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늪을 가로지르거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듯!
‘이 녀석 도대체 뭐야?’
한층 더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의 마음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문장 너머, 작은 섬을 향해.
삼키고 나서 미친 듯이 날뛸까 봐 단단히 다졌던 투란의 각오를, 나태로 무장한 고르고니아가 아주 의미 없는 짓으로 만들고 있었다.
* * *
—야! 내 물음에 대답하라고!
잠시 숨을 고른 채로, 고개를 들며 하늘을 보려던 순간에 투란은 다시 골을 흔드는 강한 외침을 느끼고 말았다.
‘얘기해 준다니까…….’
뒤통수를 긁적이며, 한편으로는 몸을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켜는 듯하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속삭여야 했다.
—왜 고르고니아를 그리 깊이 처박았지?
‘엥?’
묻는 말이 바뀌었다.
투란이 고르고니아를 어찌 사냥했는가를 궁금해하던 것 아닌가?
가만 보니, 드라고니아 역시 상당히 변덕스럽다!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