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1)
Chapter 221. 춤추는 여로 Ⅰ
며칠이 지났다.
투란은 바로크의 도시를 홀로 머물고 있었다.
도시의 풍경, 스쳐 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차림새…….
‘어디가 다른 거지?’
도시 안의 지형 굴곡에 따라 생겨난 듯한 계단 한 곳,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 귀퉁이에 앉은 채로 투란은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거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낑낑거리는 짓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다가 조금 길어질 듯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알드바인…… 여기랑 비슷한 것 같은데 뭔가 달라 보인단 말이지. 알드바인 성벽 안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모습이랑 똑같아 보이는데,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왜 그렇지?’
잘 물었다는 듯이 투란이 냉큼 자신이 느끼는 바에 대해 말해 줬다.
―뭐가 왜 그렇지냐! 알드바인과 전혀 다른 바로크의 도시잖아! 당연히 다르지! 설마 애어른 할 것 없이 평온한 모습이 불만인 거냐? 앙?
‘어? 애, 어른? 아, 그거로구나!’
―뭐?
‘아하, 알드바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잘 노는 쪽은 애들이잖아. 술에 취해서 주점 안에서 널브러진 헌터들…… 맞아, 여기는 헌터다운 차림새가 적기도 했지! 아하, 그 차이였네.’
―알드바인은 경계 도시의 안쪽, 춤추는 산맥 깊은 곳이잖아. 그런 차이는 당연한데 대체 왜 그렇게 신기해하는 거냐?
‘당연하냐?’
지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듯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로 투란은 웃었다.
그렇게 조심했어도 가까이 지나던 사람 중 두엇은 투란이 자신을 보고 웃나 해서 흠칫해서 차림새를 되돌아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곧 투란이 그 눈길을 멀리 두면서 그쪽이 아니란 시늉을 해 주니 살짝 안도하며 지나간다!
‘알드바인의 주정뱅이 아저씨들이었다면 지금 단검 잡고 날 노려봤을 텐데…….’
―알드바인에 주정뱅이가 주점에서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다만?
‘어? 그랬나? 음, 기억이 가물거려!’
―뭔 핑계냐! 알드바인의 기억은 전부 온전히 보존되었을 텐데! 생각하기 싫다고 게으름 피우나? 다른 놈들 상대로 그러라고! 나한테 그딴 수작이 통하겠냐! 야, 너 그것조차 생각 않고 되는대로 나불거리는 거냐? 아놔, 이 녀석이 진짜!
‘시간 된 모양이네.’
―시간은 무슨, 음? 맞군, 얻어타기로 한 말수레가 슬슬 움직일 모양이다.
으르렁거리려던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투란은 천천히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며, 어깨 너머로 대충 끈을 두른 소박한 배낭을 걸친 모습으로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도시의 통행을 위한 포석이 깔린 큰 길이 있었고 그 한쪽에 부산스럽게 멀리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크에서 에테온으로? 크랙 안 가? 쳇, 가면 재밌을 텐데. 뭐, 재미보다 느긋한 구경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상인들의 캐러반에 빌붙는 것이 편할 거야. 적당히 짐 꾸리는 일 돕거나, 가는 길에 적당히 싸워 줄 수 있다고 하면…… 아, 실제로 싸움이 나거나 말썽을 겪을 때 돕게 되면 여행 중의 밥값도 안 받을걸? 아무튼 구경거리로는 장사꾼 캐러반만큼 흥미로운 것이 없지. 그렇지, 툴로쉬?”
쥴이 나불거렸을 때 툴로쉬는 낯을 찡그린 채로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 까닭은 쥴이 재미있는 일이 있다며 떠난 다음에 살짝 투란에게만 속삭이는 툴로쉬였다.
“도적이라든가 무리 짓는 마수, 괴수 따위가 가장 쉽게 노리는 것이 상인들의 캐러반이라고 말한 거야. 쥴 님은…… 그런 일을 무슨 놀이로 여기지만, 고블린 패거리라도 만나면 상인들 입장에서는 죽네 사네 하는 심각한 일이 되고 말지. 고대 육왕국이 서로를 잇는 왕의 대로를 남겨 놨다지만, 그 큰길을 가는 동안에 무슨 일을 겪게 될까는 아무도 모른단 이야기지.”
조금 섬세한 설명과 함게 추천도 남겨 놨다.
지금 이 시기에 국경을 넘는 캐러반 중에서 제법 괜찮은 곳으로 골라 투란에게 권해 준 셈이었다.
물론 투란은 과연 아무 일 없이 조용히 갈 캐러반을 골라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드라고니아 또한 뭔가 적당히 투란이 크게 나서지 않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골랐을 것이라고, 엘더 헌터란 그런 놈들이라고 투덜거렸다. 아마 그래서 쥴이 투란의 소소한 여행에 따라붙지 않고 휑하니 가 버렸을 것이라는 추측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투란으로서는 상관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상한 인물과 함께 다니고 싶어 하는 상인들은 없을 테고, 툴로쉬가 적당히 손을 써서 합류하게 해 준다면 적당히 봉사해 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까. 한편으로는 설마 무슨 강력한 몬스터가 덮칠 수도 있는 캐러반이 있으랴 싶기도 했다.
―홀시딘이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하던데, 한번 더 연락해 두지?
불쑥 드라고니아가 권했다.
‘어? 다음 도시에 가서 한다니까.’
투란은 슬그머니 거부했다.
툴로쉬가 캐러반을 섭외해 주기 전에 이 도시의 상아탑 지부에서 홀시딘과 마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줬다.
그때 투란은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까 적당히 둘러보고 구경 좀 하다가 갈 것이라고, 어쩌면 일 년 정도 돌아다닐 수도 있다고 일방적으로 떠들고 재빨리 자리를 뜨려 했다. 아주 바쁜 척을 했는데, 홀시딘은 정기적인 연락만 확실하다면 뭘 해도 된다고 답했다. 다만 홀시딘이 말한 정기적인 연락이 사흘에 한 번이었고, 그 사흘이 슬그머니 지난 다음에도 투란은 ‘열흘에 한 번이면 충분하잖아!’라는 생각으로 첫 번째 연락부터 확 미뤄 버린 것이다.
―마법사를 골릴 궁리냐? 너 그러다가…….
‘에이, 골리기는! 툴로쉬도 사흘에 한 번은 뭔 감시냐고 했잖아. 게다가 내가 급한 연락을 안 받는다는 것도 아니고, 시알라를 한번 거쳐야 하지만 급한 일은 바로 연락받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
투란은 조금 장황하게 자신을 변명했다.
홀시딘에게 직접 연락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잔소리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투란은 시알라를 통하면 황금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해 뒀다. 마치 황금매를 지닌 자끼리는 색다른 마법의 전언이 가능한 것처럼…… 그런데 홀시딘은 그 말을 그냥 납득했다!
알고 보니 시알라 남매가 이미 그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도 황금매를 이용해서, 황금매와 연계된 파워 서클의 마력을 이용해서 그런 연락이 가능했단다! 다만 투란이 멀리 가 있는 사이에 찾아내고 터득한 방법이라 이제 와서야 알려 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고.
때문에 투란은 살짝 울컥하고 말았다.
그 전에 이런저런 마법의 전언 수단을 잔뜩 늘어놔 놓고 핑계로 들이댄 방법이 실제로 가능하다면서 나중에 알려 줬으니까. 어째서인가 시알라는 그렇게 투란을 조금이라도 골리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냥 통상적인 마법의 전언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쉬었다.
시알라가 황금매와 파워 서클을 이용한 방법 이전에 마도구라든가, 암호화된 전용 메신저 주문이라든가…… 이것저것 투란에게 잔뜩 넘겨주는 과정을 보면서 질린 듯했는데, 지금 되새기면서 다시 질린 듯한 드라고니아였다.
투란도 살짝 공감은 했다.
‘뭐, 비상수단이 많아서 나쁠 일은 없잖아?’
몇 년 연락 끊긴 상태로 마냥 기다리게 했다는 미묘한 죄책감으로 인해 남매들의 제안을 꽤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만다. 어째서인가 홀시딘에게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데…….
“여어, 왔나?”
느릿한 투란을 보며 높은 마차 위, 그 지붕에 선 사람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투란도 그를 올려다보면서 마주 손을 흔들어 줬다.
툴로쉬가 적당히 낯을 익히게 해 줬지만 자세한 사정은 덮은 채로 그냥 보이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이 있으니 안심하라고만 말해 줬다. 객관적으로 보면 꽤 수상한 소개, 하지만 저 사람은 그런 툴로쉬의 말에 더 묻지 않고 자신들의 여정(旅程)에 기꺼이 투란을 받아 줬다.
“어디 붙어 있으면 되나요?”
길게 늘어선 마차의 수를 세는 척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여기! 내가 탈 마차 옆으로 걸터앉으면 돼.”
대답은 간결했고, 그가 가리키는 마차 옆에는 바퀴 위로 툭 불거져 나와 여러 사람이 앉아도 될 듯한 긴 널판이 붙어 있었다.
투란은 짐을 옮기고 바쁜 이들을 보며 그 널판 쪽으로 다가갔다.
투란을 부른 이가 다시 저쪽을 둘러보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지붕에서 내려가 소리치며 옮겨 가는데, 그사이에 투란은 이미 널판 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이가 무릎 위에 도끼를 올려놓고 만지작거리면서 꽤 불퉁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오늘 처음 보는 이였는데 왜 저럴까?
갸웃하는 투란의 표정을 읽었을까, 도끼를 만지작거리던 이가 불쑥 입을 연다.
“난 그란이다, 이 상단에 여러 번 함께했지. 그런데…… 너 대체 누구 소개로 온 거냐?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군. 도대체 칼 한 자루 제대로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합류한 거냐? 이 자리는 급할 경우에 바로 뛰어나가서 근접 전투를…….”
차캉.
떠드는 이를 향해 투란은 가볍게 손목을 비틀면서 너클 블레이드를 내밀어 보였다.
하클 영감의 솜씨가 담긴 탓에 그 형체를 갖추는 과정조차 심상치 않아 보이는 칼날이 손등을 넘어 꽉 준 주먹 앞으로 쓰윽 뿜어지듯 나오는 광경이었고, 이는 그란의 입을 바로 다물게 했다.
키릭, 다시 칼날을 거둬들이고 널판 위로 올라앉으며 투란이 말한다.
“난 투란이에요. 한몫하는 몬스터 사냥꾼이 되려고 여행 중이죠.”
“한몫할 만해 보이는군.”
그란은 불퉁한 표정을 흐리면서 짧게 대꾸했다.
―엥? 뭐야, 이 정도로 납득한다고? 왜?
드라고니아는 시비 걸어오는 듯했던 그란이 너무 순순히 투란을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싫다는 듯이 떠들었다.
‘뭘 납득 못 해! 쥴이 말한 대로구먼!’
―어처구니가 없잖아!
“새로 끼는 입장에서 있는 놈들을 설득한다라, 그거 괜히 쥐어팰 필요 없어. 뭐 좀 괜찮은…… 그래, 너 팔뚝에서 칼이라도 뿜어내 봐. 어? 몬스터 로드가 아니라 그냥 헌터 흉내를 낸다고? 뭐, 그래도 그럴듯한 장비 하나 있을 텐데?”
쥴이 새로운 상단 틈에 낄 생각으로 설레고 신입을 의심하는 분위기를 예상하며 살짝 걱정도 하는 투란을 향해 떠든 이야기였다. 신입을 불안하게 여길 정도라면 그럴듯한 장비 하나만 대충 보여 주고 다루는 척하면 그냥 넘어가 준다고.
그래서 투란은 하클 영감의 너클 블레이드와 팜 블레이드를 넣다 뺐다 하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 그 정도면 어지간한 헌터라면 다들 알아차릴 것이라고 쥴이 대답해 줬다. 툴로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인정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 만난 그란 또한 인정하는 바였으니, 역시 하이로드와 엘더 헌터가 쌓아 온 세월의 앎은 만만치가 않다고 느끼는 투란이었다.
―알드바인이었다면, 제대로 쓰나 안 쓰나 확실하게 확인했을 텐데…….
‘어? 야, 거긴 거기고!’
툴툴거리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헌터들을 위한 대공방이 버티는 탓에 알드바인의 헌터들은 장비만으로 뭔가 판단하는 짓을 꺼렸다. 좋은 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실력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수준이 높은 장비가 많다 보니 제대로 쓸 줄 아는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퍼져 있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알드바인까지 당도했다는 시점에서 이미 기본적인 수준의 헌터는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어영부영 몰려들기도 하는 분위기가 짙어진 탓에 보이는 것만 못한…… 수준 낮은 실력인 이들도 왕창 늘어난 탓도 있었다.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이, 몇몇이 더 왔고 짐꾼들이 일을 마칠 무렵에는 투란의 곁으로 칼 두 자루를 품은 자부터 해서 각자 자신의 무기를 지닌 이들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한쪽으로 대여섯씩, 마차 좌우를 채운 다음에 순서가 되니 바로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에서 투란 곁의 그란에게 묻는 말이 던져졌다.
“어이, 그란! 이번에는 어디 쪽으로 며칠이나 간다나?”
그란은 눈살부터 찌푸리고 답한다.
“알 바 아니잖아. 그런 조건으로 고용된 처지일 텐데?”
불퉁한 말투가 또렷한 탓인가, 곁에서 몇몇이 웃으며 놀리는 말을 흘린다.
“취해서 관심도 없었으면서 뭘 꼭 출발할 때 물어요.”
“주정뱅이가 다 그렇지 뭐.”
“버릇이야, 버릇.”
“그렇네, 꼭 바퀴 구른 다음에 묻는 버릇이지.”
“시끄러워!”
결국 그란에게 물었던 이가 으르렁거리고 말았다.
한데 이렇게 조금 왁자지껄해진 분위기 속에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인간의 습성에 대해 성토하는 외침을 들어야 했다.
―이놈들, 다들 미쳤냐? 어디로 어떻게 가는가도 모르는 채로 칼 들고 앉았다고? 뭐 하는 놈들이냐, 대체!
‘글쎄.’
투란은 그냥 이렇게 적당히 흘려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