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2)
“어이, 그란. 이거 어디로 가는 거냐?”
걸쭉한 목소리로 묻는 이는 거의 마지막에 널판 끝자락에 앉으려던 사람이었다. 차림새는 다른 이들과 거의 비슷해 보였지만 투란에게는 그가 나름대로 재간이 있어 보였다. 팔뚝에 찬 버클러, 버클러 안감에 작은 단도 두어 자루가 교차한 채로 꽂혀 있기도 했고 허리춤에도 몇 자루 단검이 꽂혀 있었다. 그런 채로 장검도 허리띠에 두 자루씩이나 매고 있으니, 이 주변에서는 칼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야, 앉을 자리도 파악 못 해서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있잖아!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차림새를 보고 판단하는 바가 마땅치 않은 듯이 으르렁거렸다. 투란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차 옆 널판 끝자락에 앉으려다가 미끄러졌고 뒤늦게 지붕 위로 엉기적거리면서 올라가는 중인데, 주변에서 그를 향해 ‘아니, 저 주정뱅이도 왔어?’ ‘어우, 술 냄새!’라고 대놓고 투덜거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꿋꿋했고, 그란도 그에 대해서 뭔가 인정하는 바가 있는 듯이 대답해 주고 있었다.
“바로크 국경 너머 에테온의 변경 지역까지. 구체적인 목적지는 가는 도중에 정한다고 했다.”
“어? 그럼 위험한 거 아냐?”
지붕 위에 반쯤 몸을 걸친 채로 나온 반문이었다.
투란이 흘깃 그란을 보니 낯을 잔뜩 구긴 채로 멀리 보는 눈길인 채로 입을 꽉 다물어 버리고 있잖은가. 아무래도 주정뱅이 아저씨의 물음에 대해 더 답할 생각이 없던가, 혹은…….
“언제는 위험하지 않았나?”
“위험해서 싫으면 빠지라고, 왜 술 처마시고 늦게 나타나서 헛소리야!”
주변에서 먼저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먼저 지붕 위에 서 있던 이도 한마디 했다.
“사르굴, 빠지고 싶을 때는 언제든 빠져도 되잖나? 괜한 말로 분위기 망치려는 속셈이 따로 있다면, 혀부터 자르고 목을 쳐 주지. 자, 더 할 말 있나?”
사르굴이 바로 지붕 위에 올라앉으면서 고개와 손을 동시에 저으며 답한다.
“없어!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지! 누가 뭔 속셈으로 그딴 소리를 하냐고! 아, 나 술 깼어, 깼다고!”
투란은 문득 툴로쉬의 소개를 받아들였던 이를 다시 봤다.
마차 위 지붕에 선 채로 상단 캐러반 전체를 둘러보며 인원 배치를 살피고, 그 곁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에서 바로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 저런 역할을 맡은 이에 대해서 투란도 들은 바가 있었다.
‘호위대장인가?’
―대장이니 널 이 황당한 녀석들 틈새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워 담갔겠지!
드라고니아의 평가는 묘하게 사나웠다.
투란으로서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넌 또 왜 삐졌냐?’
―지금까지 다양한 상황을 봤다만, 자신들이 어디에 참여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몰라라 하는 놈들은 없었어! 어디인가 모르면 궁금해하고, 무슨 일인가 모르면 살펴보고…… 근데 이놈들 대체 뭐야! 그냥 참여한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나서서 싸울 일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 꼬라지로……!
‘하급 용병이란 거야. 가끔은 헌터 일도 하고 가끔은 캐러반의 호위도 하고, 이리저리 떠돌면서 목적 없이 그저 살아만 있으려는 이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런 아저씨들이랑은 어울린 적이 없……지?’
문득 언더섀도우의 기억 없는 동안을 떠올리며 투란은 묻는 말로 맺어야 했다.
―없다. 그쪽에는 먹히느냐 튀느냐로 아주 바빴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열매란 처지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이 노력하는 이들이 한가득했으니까. 체념하고 열매란 먹이가 되고 노예로 사는 녀석들도 최소한 주인의 명령에 충실했어. 이렇게 황당한 녀석들은 없었다고!
‘그래, 그러니 이번에 잘 보자고. 정말 황당한가 어떤가.’
투란은 입가의 실룩임을 누르면서 흘깃 곁을 봤다.
그란은 대장과 사르굴의 소소한 대화라든가 다른 이들의 투덜거림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눈을 감고 느긋하게 마차에 기댄 채로 잠든 시늉을 하고 있었다. 무릎 위에 얹은 도끼를 꼭 쥐고 있는 손만 아니었으면 정말 졸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소소한 일들이 수습되고 나서 캐러반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캐러반이 도시를 벗어나서 왕의 대로에 들어서고, 머뭇거림 없이 달려나가니…… 구름이 듬성듬성한 하늘 아래에서 햇살이 시원했고 바람은 고요한 채로 반쯤 포석된 길 위로 바퀴 소리만 요란하게 번져 나갔다.
얼마 동안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
투란도 반쯤 졸았고, 그사이에 드라고니아가 주변 지형을 탐색하고 기록하며 지도라도 만드는 듯한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데…….
―일어나라.
깜박 졸았다 싶은 순간에 한숨처럼 뇌리에 박히는 소리였다.
‘어? 왜……? 음?’
해가 꽤 올라갔다가 기울어지는 중이었고 주변의 지형은 도시의 풍경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낯설어진 채였다. 무슨 일인가 둘러보기 전에 투란은 자신처럼 졸고 있을 듯했던 그란을 바라보니, 한 손으로 도끼를 쥐고 한 손으로는 두툼한 가죽 포대를 늘어뜨린 채로 어딘가를 노려보는 모습이었다.
투란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바라봤고, 금방 드라고니아가 깨운 이유와 그란이 긴장한 모습인 까닭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이네?’
아직은 거리가 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꼬물거리며 열심히 왁왁 소리치고 캐러반을 향해 몰려오는 고블린 떼를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이미 마차 지붕에서 사르굴이 큰 소리로 외치는 중이기도 했으니, 투란처럼 졸던 이들도 모두 깨어나고 있었다.
“일어나! 밥값 할 때다!”
그 소리에 투란은 문득 쥴도 같은 소리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밥값이라…….’
바로크의 병신들이 좋아하는 말이라고는 얼핏 들은 듯했다.
바로크의 식사에 반드시 들어가는, 바로크 왕국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라고까지 하는 밀과 보리를 섞은 한 끼의 요리…… 조금 특이하다는 그 요리를 도시에서 투란도 맛봤고 무슨 양념을 섞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그 한 끼의 요리 대금을 일컫는 ‘밥값’이란 한마디에는 한몫 제대로 하라는, 먹고살 자격을 증명하라는 압박도 실려 있다고 했다. 한몫 못 하면 ‘밥값’ 못 한다고 구박도 한다고.
‘먹을 것 갖고 치사하게 군다고 투덜거렸지, 오러클 아저씨.’
바로크의 용병 출신들에 대해서 불평하던 오러클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몰려오는 고블린 무리는 얼핏 봐도 백은 넘길 듯한 수였다.
캐러반의 인원은 그보다 적다고는 못 하겠지만, 전투에 나설 역량이 되는 이들의 수는 명백하게 고블린보다 적을 터였다.
―긴장해라!
드라고니아가 꾸짖는 듯이 말했다.
‘응?’
투란은 그란이 앉은 자리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에 맞춰 내려서다가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기묘한 위협이라도 있는가 해서 둘러봤지만, 그냥 고블린만 백여 마리일 뿐이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손톱을 세우고, 간혹 녹슨 칼을 든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특이한 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떻게 봐도 투란이 긴장할 수준은 아닌 셈인데…….
―툴로쉬가 널 어떻게 소개해 줬나 잊었냐? 네가 여기 끼면 누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어! 어쩌다 다칠 수는 있어도 죽는 자가 나올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믿고 널 끼워 주겠다고 한 거잖아!
‘아…….’
투란은 조금 반성했다.
그런 보증을 받고 끼었다는 것을 조금 전까지 홀랑 잊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누가 눈앞에서 몰려오는 몬스터 떼랑 엮여 죽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캐러반의 대처가 어떤가, 맞서는 이들의 실력은 어떤가 대강 구경할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죽는다, 투란. 이 캐러반의 호위는 고작해야 이 마차 주변의 이십여 명이 고작이야! 나머지는 단검 한 자루도 없는 짐꾼이고 전투 능력이 없는 상인이야! 급한 상황이니까 알아서 맞설 것이란 기대는 하지 마!
‘그렇게 엉망이었냐?’
미묘하게 입가에 썩는 웃음이 솟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일단 앞장서는 그란을 바라봤다. 도끼를 들고 가죽 포대를 든 모습의 그란은 온몸에 힘을 끌어올리는 듯한 모습인데, 은근한 마력이 그 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사르굴이 곧 투란을 지나치며 앞에 선 그란의 곁으로 다가가 외친다.
“전투 대형을 갖춰! 아란 대장, 마차 쪽은 알아서 해 줘!”
호위대장 아란이 이에 곧바로 응답하고 있었다.
“캐러반! 방벽이다!”
줄줄이 길게 늘어져 있던 마차들이 원을 그리며 꼬리를 무는 것처럼 동그랗게 늘어서고 있었다.
방어를 맡은 상당의 호위병, 투란과 함께 널판에 걸터앉았던 이들이 몰려오는 고블린 무리를 향해 돌출된 자리에 선 채로 제각각 무기를 꺼내고 펼쳐 섰다.
그 광경을 이리저리 살피고 둘러보던 투란은 낯빛이 살짝 나빠졌다.
‘죽겠는데?’
몸놀림을 보니 이들 중에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 경우라도 고블린을 홀로 서너 마리까지 감당할 수는 없어 보였다. 두셋이 연계를 한다 해도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좋은 전투를 펼칠 듯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 선두에 선 그란, 그 곁에 나란히 선 사르굴이 꽤 날뛰어야 한다는 것인데…….
―무리로군. 풍겨 내는 마력의 잔향으로 봐서는 한 번에 십여 마리는 자빠뜨리겠지만, 죽이는 수는 서넛이 한계다.
‘몇 번이나 가능해?’
―애매하긴 하지만 다섯 번? 그쯤에서 마력이 고갈될 거야.
‘어떤 마법인가도 알겠어?’
―글쎄? 두어 가지 마법을 연계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좀 특이하군.
‘응?’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말에 투란이 어리둥절했다.
그란이 풍겨 내는 마력은 그리 강하지도 않았고 그리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쥐어짜 내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새어 나오는 듯한 낌새가 짙었다. 그런 정도라면 바로 술식을 파악해야 할 듯한데, 특이하다며 모르겠다니!
―체계가 전혀 없다고! 그냥 마수 수준이란 말이다!
‘어? 아…….’
울컥하는 몇 마디에 투란은 납득했다.
정리되고 단련된 마법사랑은 완연히 다르기에, 그저 타고난 마력을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알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마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마력의 남용일 수도 있었다. 그 남용의 효과를 몸으로 기억하고 끌어쓰는 것이라면, 말한 그대로 마수랑 닮은 꼴!
흥미롭게 그 뒤를 몇 걸음 뒤에서 따르며 지켜보려는데, 사르굴이 그란에게 나직하게 투란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반쯤 묶어 둘 수 있겠어?”
그란은 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반의반. 저 고블린 중에 위키드가 섞여 있어.”
사르굴이 냉큼 두 손에 한 자루씩 장검을 뽑아 들면서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오늘은 운이 나쁜 날이군.”
호위로 늘어선 이들 중에 이 말을 들은 이는 없는 듯했다.
다만 서로를 격려하면서 ‘비루먹은 고블린이야!’라든가 ‘저 정도는 열 마리씩 베어 죽일 수 있어!’라고 사기를 올리려는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눈을 조금 가늘게 하면서 찾아봐야 했다.
‘위키드가 있다고? 진짜 있냐?’
―없는 걸로 보였다만?
드라고니아가 다시 은밀하게 프로브를 움직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투란의 눈길이 조금 더 세밀하게 그란을 훑어 내렸다.
마법사가 되지 못한 채로 마력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수단으로 삼은 이, 도끼와 포대라는 묘한 도구를 전투 병기로 선택한 모습의 그란은 투란에게 매우 낯선 이였다. 과연 그는 어떻게 고블린 무리 속에 위키드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사르굴도 마침 그란에게 묻고 있었다.
“위키드 위치는?”
“터질 거야. 자극받으면 뭔가 터뜨릴 놈이다.”
“자극? 언제 할…….”
“지금.”
나직하게 오간 대화는 그란이 포대를 높이 치켜올렸다가 땅을 내리치는 빠른 동작과 함께 멈췄다. 그사이에 어흥 하는 듯한 괴상한 외침을 그란은 함께 터뜨렸는데, 포대가 바닥을 치는 순간에 그 목소리는 싹 지워지고 말았다.
쿠릉, 쿠르릉.
땅이 울렸고 흙먼지가 치솟으며 고블린 무리를 향해 몰려 나갔다.
그리고 곧 투란은 터진다는 그란의 말을 확인했다.
흙먼지가 목을 덮으려는 융단처럼 요동치며 밀려갔고, 거기에 고블린 무리가 휩쓸렸다 싶은 순간에 그 한쪽을 허무는 폭발이 있었다.
먼지를 태우는 듯한 불길이 흙먼지의 벽을 쪼개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감상하며 투란이 묻는다.
‘있는 거냐?’
―아니, 없다. 저건…… 위키드의 잔뼈를 마도구처럼 쓴 거야.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파악하며 살짝 놀란 듯이 말했다.
투란으로서는 헷갈리는 말이었다.
‘고블린 위키드의 뼈가 마도구처럼 쓸 수 있는 거였어?’
―위키드의 잠재력을 가진 녀석이 자신의 마력을 깨우기 전에 가끔 저러긴 한다고 하더군. 나도 처음 보는 일이야!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