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3)
투란은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살짝 그런가 싶었지만 사실은 조금 깊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어찌할까, 갑자기 멍멍하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탓이었다.
―야, 뭘……?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가속된 사유(思惟), 그런데 그 내용이 온통 허둥지둥거리면서 뭘 어찌해야 하는가를 몰라 당황하는 것이었으니…… 갑작스러운 투란의 당혹스러움이 드라고니아조차 어이없게 한 셈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다 죽여도 되나? 이럴 때, 적당히 섞여 있어야 하는 거라고! 근데 적당히 하다가 누가 다치면 어쩌지? 우왓, 어떻게 해야 이럴 때 적당히 하는 거지? 으아아!’
―하다 하다 별짓을!
판단을 돕는 대신, 드라고니아는 으르렁거림을 흘려 내며 발끈했다.
하지만 투란은 지금 자신의 당황한 상태에 대해 매우 적절한 변명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경우는 없었다고! 고블린 백 몇 마리 앞에서 덜덜 떨고 있기까지 하잖아! 겨우 마차로 벽을 만들고 그 안에 웅크리다니! 아예 싸울 생각이 없는 저 태도는 대체 뭐냐고! 호위만 싸우란 법이라도 있냐? 없어, 그런 것! 아무리 국경 안에서 평온하게 살았다고 해도…… 여기 춤추는 산맥이잖아! 근데 이 어설픈 꼴들은 대체 뭐야? 나, 어디까지 나서야 하는 거지?’
단숨에 몰살시키는 짓은 쉽다, 그러면 자신이 뭘 했는가 훤히 드러낼 뿐이고.
몰래 하는 것도 그리 어렵다고는 할 수 없었다, 소소한 지진이라든가 살을 꿰뚫는 폭우 정도는 정령수들에게 맡기기만 해도 되니까. 그다음에 시침 떼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잖나?
그러나 무엇을 하든 마력이 민감한 이들, 상황 파악이 예리한 이들에게는 의심할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마수처럼 마력을 다루는 그란이라든가 이미 툴로쉬에게 적당히 소개를 받아 투란을 믿는 듯한 아란이라든가, 사방을 노려보는 눈길만큼은 어지간한 수준에 이른 것이 분명한 사르굴은 분명히 투란을 의심할 터였다. 자신들이 익숙한 다른 누군가보다 낯선 투란이 가장 의심하기 쉬우니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어찌 풀어낼 것인가?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거의 주변이 멈춰 있는 듯한 풍경을 바라보는 채로 가속된 사유를 멈추지 못하는 투란에게 마침내 드라고니아도 못 참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투란은 자신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을 깨달았다.
왼쪽 어깨였고 왼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
―뭐?
손아귀에 작은 원반,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전 같은 것이 잡혔다.
‘이게 뭔?’
―그것은……?
의아함이 중첩될 때, 투란의 왼손은 가볍게 그 동전을 저쪽으로 날리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대하는 투란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리고 격하게 고블린 무리를 향해 투지를 뿜어내는 상단 호위들의 숨결이 교차하는 듯한 찰나에 동전은 흙먼지의 방벽이 갈라진 틈새 너머에서 환하게 빛났다.
찌르르…….
인간의 귀에는 살짝 간질거리는 벌레의 울음 같은 것이 찾아들었다.
고블린 무리 백여 마리는 꽥꽥거리면서 날려가는 동전을 향해 돌아서며 그쪽으로 몰려나가는 역동작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나 탐스러운 미끼를 외면할 수 없어 돌아서는 짐승 같은 분위기였다.
이를 갈며 의아한 소리를 낸 이는 그란이었다.
“뭐야, 저게 무슨…….”
사르굴은 흠칫하는 눈길로 투란 쪽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둘보다 두어 걸음 처져 있던 투란은 당연하다는 듯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품속에서 뭔가 꺼내 내미는 시늉을 했다. 품속에서 나온 것처럼 작은 수정 막대가 내미는 투란의 손에 들려 있었고, 허공을 가득 메우는 빛줄기를 뿜어냈다.
빛줄기는 제멋대로 교차하며 동전을 향해 몰려가는 고블린 무리를 단숨에 휘감고 조여들었다.
서걱, 투툭.
간단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 무리가, 멀리 돌아가려다가 돌아온 십여 마리까지 뒤엉킨 채로 토막 나서 피를 뿌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나무토막을 억지로 붙여 놓은 모형이었다는 것처럼, 툭툭 떨궈지는 절단된 육체가 피를 뿜어냄으로써 나무토막이 아니란 것을 간신히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저, 저게 뭐야?”
“마법? 마법이지?”
상단의 호위로 채용되어 고블린과 사투를 기대했던 이들이 겨우 놀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고 납득하지 못한 혼란이 퍼져 나가는 셈이었다.
그 혼란을 깨끗이 아란의 목소리가 마차 위에서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살아남은 고블린이 있다! 정신 차려! 칼 들어! 몽둥이 세워! 긴장 풀지 마! 방심하면 죽는다! 내려놓지 말고 들라고, 칼!”
그 말대로 빛줄기가 흐릿하게 지워져 가는 와중에 몇 마리 고블린이 토막 난 무리 속에서 튀어나왔다.
‘어? 뼈다귀 든 놈!’
투란은 그 몇 마리 속에 썩고 삭은 뼈를 든 채로 흉악한 눈빛을 번들거리는 한 마리를 바로 포착할 수 있었다. 눈길을 주는 곳에서 바로 튀어나왔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자신이 미리 알고 보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마저 있었다.
―흐음? 뼈의 마력을 소모해 막아 낸 모양이군.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분석했다.
상황은 투란에게 이 과정의 까닭을 파헤치기보다는 행동하기를 강요했다.
재빠르게 투란은 여전히 등에 매달린 배낭을 몸 앞으로 당겼고, 그 안에서 잘 분해되어 보관 중인 한손잡이 쇠뇌를 꺼내 빠르게 조립해 나갔다.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이는 셈이었고 그 과정에서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고블린이나 개, 고양이 따위의 짐승까지 포함해서 인간의 귀가 듣지 못하는 영역을 듣는 녀석들을 자극해서 한 방향으로 끌어모으는 동전…… 토막 내는 빛의 그물을 한번 사용하고 뜨겁게 달아올라 땅바닥에 떨궈 놔야 했던 조그마한 막대 수정…… 이 두 가지 마도구는 모두 헌터스 팩에 담겨 있었다.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상급 도구라더니……’
케이라의 말이 새삼스럽게 실감 나는 투란이었다.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몸이 헌터스 팩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필요한 것을 꺼냈다는 점, 꺼내 쓰고 나서야 투란 스스로 그게 뭔가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어이없는 일!
다시 한번 어깨가 찌릿했고 투란은 뼈를 든 고블린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사이에 투란의 손은 한손잡이 쇠뇌를 조립했고, 살을 걸어 겨냥까지 해내 가는 중이었는데…….
가아악, 투에엣!
뼈를 든 고블린이 괴이한 목젖 울림과 함께 세게 침을 뱉았다.
―마력을…… 사용 못 하게 되었군. 방어에 모두 소모한 모양이다.
경고하려는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슬쩍 맥이 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투란은 이해했다.
겨냥하는 꼴을 보고 고블린이 투란에게 뼈를 이용해 뭔가 하려 했으나, 뼈에 축적된 마력이 바닥나서 그냥 침 뱉으며 눈알 부라리는 시늉으로 끝난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쇠뇌살의 끝에 걸린 처지를 깨달은 고블린이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무리가 토막 나서 피와 살, 잘린 몸통이 뒤엉킨 바닥을 구르면서도 손에 든 뼈는 꽉 쥔 고블린…… 그 주변에 함께 살아남았던 몇 마리가 그 광경을 보고 뒤도 안 돌아본다는 것처럼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다.
‘이 자식이!’
겨냥에서 벗어나는 놈을 맞히려고 이리저리 팔을 흔드는 꼴이 된 투란은 살짝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위키드의 이상한 마법은 못 쓰지만 고블린은 꽤 민첩해서 쏘면 맞힐 수 없는 상황이라니!
―에어로에게 보조시키고 그냥 쏘지?
‘시끄러워! 그냥 맞혀 볼 거야!’
갑작스럽게 오기 부리는 투란이었다.
왠지 상황에 휘둘린 것이 억울한 탓이었는데, 이런 투란의 흔들거리는 마음을 농락하거나 위로하려는 것처럼 힘찬 외침이 뒤에서 터져 나왔다.
“으라라라랏! 뒈져랏!”
부우웅.
억센 소리는 칼자루가 허공에서 맴돌며 나고 있었다.
두텁고 짧은 단도가 투란에게서 좀 떨어진 허공을 스쳐 갔고, 뒹굴며 달아나려는 민첩한 고블린의 엉덩이를 때렸다. 휘청하며 고블린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투란의 쇠뇌가 쏘아졌다.
푹, 간단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등짝에 쇠뇌살이 꽂혔다.
부우웅, 또다른 거센 음향과 함께 도끼가 날아갔다.
투란은 역시 자신에게서 좀 떨어진 자리를 지나간 도끼가 고블린의 머리에 꽂히며 빠개는 꼴을 볼 수 있었다.
칼을 던진 이는 사르굴이었고, 도끼는 그란이었다.
투란이 흘깃 돌아보니 그란이 땀이 맺힌 얼굴로 빠르게 묻고 있었다.
“저놈이지? 마법 쓰는 놈…….”
“아마도요.”
조금 신중한 투란의 대답에 사르굴이 재빨리 머리가 빠개진 고블린에게 다가가며 여전히 그 손에 꽉 쥐어진 뼈를 발로 밟아 떼어 내며 외친다.
“고블린의 마도구, 이거지?”
그 말에 투란은 문득 기억해 냈다.
고블린 위키드가 어쩌다 만들어 낸다는 마도구, 힘센 고블린에게 가끔 부여되는 마도구가 있다는 소문…… 직접 봤다는 자의 이야기가 돌고 돌아 뜬소문처럼 들려오고 스쳐 간 이야기가 간혹 있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너무 희미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고블린이 칼도 들고 마도구도 들 수 있다는 경고처럼 흐릿하게 기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부숴.”
단호한 말은 아란의 목소리였다.
어느 틈엔가 마차에서 내려와 투란의 곁에 선 채로 아란이 꺼낸 말에는 강한 경고의 의미도 섞여 있었다.
투란도 그 사정을 금방 알아차렸다.
누가 아까워할 사이도 없이 사르굴은 뼈를 마구 밟고 잘 안 부러지는 부분은 칼로 내리찍기까지 하며 아란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뒤늦게 몇몇이 웅성거리는 말이 흘렀다.
“아깝지 않나?”
“야, 몬스터의 마도구야!”
“저주라고, 저주!”
“미쳐 죽고 싶냐?”
다들 투란처럼 한 박자 늦게 깨닫는 듯한 분위기였다.
몬스터가 사용했던 마도구는 기묘하게 오염되고 망가지기 일쑤였다.
애초에 몬스터가 마도구에 간섭하는 상황 자체가 드물기에 대부분 잊기 마련이지만, 가끔 이 고블린처럼 마도구를 휘두르다가 뒈지고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마도구의 오염이라든가, 뒤틀림을 알지 못하고 좋은 것 주웠다고 히히거리다가는…….
“아란 단장, 마도사들에게 팔면 비싼 것 아니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투란은 흘깃 뒤돌아봤다.
그란과 사르굴도 낯을 찌푸리면서 돌아봤다.
아란은 대장답게, 단장이란 직위에 어울리는 신중한 몸가짐으로 돌아서면서 한층 더 단호하게 묻는 말에 답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몬스터 헌터의 마도구를 막아 내는 데 썼어요. 고블린 위키드의 피가 절여져 있겠지요. 그냥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 고기 맛을 보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도사가 직접 이 자리에서 격리해 사 간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없잖아요?”
위압적인 말투가 잔뜩 배어 있었다.
말 꺼낸 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래도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 채로 아란의 말을 받는다.
“그런가…… 어쩔 수 없구먼. 우리 상단에게 큰 벌이가 될 듯했는데…… 아, 혹시 거기 몬스터 헌터께서는 방법이 없으신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물음과 함께 조금 간절한 눈길을 보내는 상인이라니, 투란으로서는 ‘엥?’ 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 전에도 누군지 낯도 트지 않았기에 저 상인이 누구인가도 투란이 알 리가 없다!
“멘도우 씨, 이 친구는 그냥 우리 여로가 왕의 대로를 따르는 안전한 길이라고 해서 잠시 참여했어요. 무리한 부탁은 관두세요. 몬스터 헌터는 마도사가 아닙니다.”
“어, 그냥 혹시나 했네.”
멘도우는 투란이 맹하니 보는 눈길이 ‘뭐래, 이 미친놈이?’라고 해석한 것처럼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고 있었다.
아란은 그 속내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대로 고블린 사체 무더기를 두고 가는 것은…… 난감하군요. 멘도우 씨, 손을 빌려야겠습니다. 이대로 왕의 대로 가까이에 미끼처럼 놔둘 수 없어요. 오가는 길에 저런 시체를 뜯어먹고 배불러진 괴물을 상대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캐러반이 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헌터 길드에 보고라도 하면…….”
“그냥 두고 간 우리를 찾아오겠지, 그냥 미친놈인가 치워야 할 쓰레기인가 확인하려고.”
멘도우가 씁쓸하게 구겨진 낯으로 아란의 뒷말을 대신하듯 말했다.
아란이 뼈를 완전히 잘게 부수고 흙과 섞어 여기저기 뿌리는 사르굴을 흘깃하면서 큰 목소리로 말한다.
“흩어져서 경계 위치를 잡는다! 마차의 일꾼들은 불 피울 준비! 연료(燃料)를 꺼내 와! 고블린을 화장하고 간다! 자자, 뒤처리 깔끔하게 하고 빨리 움직이자고!”
반쯤 명령하는 말투였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명령이었다. 그 속에서 투란은 어디로 가서 경계하는 척하며 구경할까를 고민했다.
“자넨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아란이 재빠르게 곁에 붙어 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