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4)
“빛그물 칼날, 그거 다시 쓸 수 있나? 미끼였던 마도구는 하나 더 있나?”
아란의 관심사는 당연하면서도 평범하다 할 수 있었다.
투란 역시 낯선 마도구를 보고 그 쓰임새에 놀라면 같은 것을 묻고 싶어질 테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투란 스스로도 사용하고 나서야 제대로 기억해 낸 것이 헌터스 팩의 마도구였으니…….
“체인네트 수정은 한번 쓰면 과열되고 열흘 정도 뒤에나 다시 쓸 수 있어요. 네, 빛그물을 뿌리고 절단하는 마도구말이에요. 그렇게 한 열 번? 열두 번? 그러고 나면 수정이 깨져 버린다고 하더군요. 미끼 동전은 눈치챈 것처럼 일회용이고, 한 팩에 다섯 개 정도씩 담아 줄 거예요.”
“팩?”
투란의 대답에서 아란은 한마디를 짚었다.
투란은 히죽 웃었고, 케이라가 아마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촤악 늘어놓기 시작한다.
“헌터스 팩? 모르세요? 아, 혹시 알드바인 이야기는 못 들어 봤나요? 오러 마크도 싸게 새겨 주고 헌터 장비를 제작해 주는 대공방도 있는데…… 거기서 한 묶음으로 장비랑 도구를 팔아요. 봤다시피 이런저런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마도구도 섞여 있는 팩이죠. 어, 알드바인까지 가서 사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상아탑에 요청하면 원하는 지부에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음? 배송에 따른 비용요? 그건…… 글쎄요, 상아탑이니까 어디라도 대충 비슷할 것 같은데요? 어, 난…… 소개해 준 분이랑 잘 어울려서 한몫 받은 거죠. 최소한 금전 세 닢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가격은 한번 물어봐야 할걸요.”
말 끄트머리는 살짝 속삭이는 시늉을 하면서 낮춰진 채였다.
아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충분히 투란의 이야기를 알아들었고 목소리를 낮춘 까닭도 짐작한다는 듯한 그 태도에 투란은 싱긋 웃고 돌아설 수 있었다.
좋은 장비, 도구를 가진 자가 곁에 있을 때…… 어떻게 구했는가를 묻고 나중에 따로 구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 급하니까 그 장비 도구를 어떻게든 뜯어내려는 작자도 있잖은가. 특히나 가격이 금전 단위가 되면, 가진 놈 것을 빼앗는다는 쪽으로 급격하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이 인간답다 하니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뭔 장사라도 할 작정이냐? 뭘 그리 정성스럽게 알려 줘?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슬그머니 아란을 부추긴 투란에게 툴툴거렸다.
그저 상아탑에 알드바인의 헌터스 팩에 대해 알려 달라고만 해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짚는 바이기도 했다.
‘에이, 나한테 고급 헌터스 팩 넘기면서 홀시딘이 금전 받으려 했잖아. 이 정도면 내 덕에 몇 개 팔았다고 나중에 으스댈 정도의 이야기는 될 테니까, 거저 받은 것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지!’
―거저 받아 놓고 뭘 거저 받지 않았다고 우겨?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알지?’
불쑥 말을 자르고 묻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다가 한숨처럼 대꾸한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잖아?
‘그래, 내가 또 하나 더 있지. 아주 조용히, 어깨 안에 숨은 것처럼 꼼짝도 않고 있다가 불쑥 나서서 필요한 일을 해치웠지. 분명히 나야, 그런데…….’
―이미 말했잖아. 기억을 덮어 뒀다고 해도 잊어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는 적절히 활용될 것이라고 말이다.
‘응…… 그러긴 했지. 그래도 헌터스 팩이라고, 헌터스 팩! 그냥 훑어보고 그러려니 넘겨서 제대로 뭐가 있는가도 몰랐던 것! 그걸 이렇게 딱 맞춰 쓰는 일에도 나설 거란 생각을 어떻게 하냐!’
―이 여행이 너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지. 괜한 소란 피우지 않고 적절하게, 얕보이지도 않는 적당한 수준에 맞춰서 여행하자는 네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 아닌가?
‘어, 그야 뭐…….’
투란은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원하던 대로 된 것이 맞기는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투란 스스로가 슬쩍 옆으로 밀려난 채로 일이 쑥쑥 저질러지고 끝났을 뿐이다. 그 결과에 딱히 불만이 있는가 하면, 그 또한 아니었다.
때문에 투란은 지금 자신이 대체 무엇을 느끼기에 아리송하고 애매하며, 불만을 쥐어짜 내려는 듯한가를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없는 불평불만을 찾는 듯하다니…….
한구석에서 투란이 속으로 끙끙거리는 사이에 상단은 다시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그 움직임에 슬쩍 끼어서 투란은 다시 마차의 널판에 올라앉았는데, 이번에는 그란과 사르굴이 앉은 틈새에 투란이 제대로 끼는 꼴이 되었다. 어째서인가 다른 호위들이 슬그머니 셋에게서 거리를 두는 듯한 낌새도 있었다.
사르굴은 그런 낌새를 느끼며 갸웃하는 투란에게 피식 웃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중급 이상의 실력을 보이는 몬스터 헌터를 만날 일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잖아.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런가, 의심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 보통 자네 또래 정도의 젊은이는 군단병이 되네 마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나.”
“어? 아, 네…….”
투란도 옅은 쓴웃음과 함께 적당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샤오콴 마을처럼 고대 왕국의 터전보다 더 깊은 산맥의 오지(奧地)에서 자라난 투란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왕국의 경계 안쪽에서 자라난 이들이라면 열대여섯이 되면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군역을 택해 군단병이 될 것인가, 헌터 길드에 이름을 올리고 정기적인 몬스터 사냥에 참여할 것인가.
‘군역은 이 년 안쪽이고, 몬스터 헌터로서는 일 년에 최소 두 번씩, 오 년에서 육 년 정도 참여해야 한다고 했던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바를 되새겨 보니 사그굴의 말이 한층 더 깊이 투란의 마음에 와 닿았다.
―어린 나이라…….
드라고니아가 실실 새는 웃음이 담긴 말투로 웅얼거렸다.
‘응? 왜? 아…….’
뭐가 우스운가 물으려다가 문득 깨달을 수 있는 투란이었다.
언더섀도우에서의 왜곡된 시간…… 동시에 투란은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나 거기서 열 살 이상 나이 먹지 않았나? 에스탄도 그냥 지난 시간만큼 폭폭 늙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수준 이상의 뱀파이어 혈통을 계승하면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로영생(不老永生)이라 불러도 될 능력이 자연스럽게 새겨진다. 뭐, 너의 경우에는 섀도우하트만으로도 죽지 않는 동안에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니까 이래저래 이미 불로영생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하겠지만…….
‘그냥 안에서 보낸 시간이랑 상관없이 밖에서 서너 달 지났으니까 변함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구나.’
―뭐? 설마 여태 나이 처먹은 생각 안 한 것이 그 때문이었냐? 그럼 지금은 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그야 당연히 네가 이상한 말을 했으니까, 꼭 내가 엄청 나이 먹고 어린 모습으로 어린 척한다는 시늉을 했잖아.’
덜컹거리는 마차 탓에 앉은 자리가 살짝 투란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덩달아 사르굴의 목소리가 뒤틀린 듯이 이어져 투란의 귓가에 울려 온다.
“군역 대신에…… 어큭, 혀 깨물 뻔했네! 아윽, 아무튼! 군역 대신에 몬스터 헌터가 된 모양이지?”
꽤 큰 목소리였는데,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기우뚱하며 사르굴의 입가가 거의 투란의 귓전에 달라붙을 듯이 접근하면서 낮고 빠른 목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냥 그렇다고 해. 귀찮은 것 싫으면.”
투란은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사르굴에게서 딱히 적의(敵意)도, 악의(惡意)도 느껴지지 않았고 시큰둥하니 뭔가 덮고 얼버무려 놓으려는 낌새만 스며 나오니까. 해서…….
“그렇죠, 뭐.”
주변에 잘 들리도록 투란도 슬쩍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그란이 흘깃 고개를 뒤트는 척, 투란과 사르굴을 훔쳐보는 듯하다가 홱 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는 시늉을 했다.
사르굴은 투란에게서 몸을 떼어 내며 다시 큰 목소리로 외치듯 말한다.
“하긴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경험을 쌓고 강해졌겠지! 나나 그란도 비슷한데 말이지…….”
이 뒤로 이어져 나온 이야기는 자주 늘어놓는 넋두리인 모양이었다.
그 너머로 줄줄이 앉은 호위들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듣는 시늉초자 않고 외면하는 모습들이라니, 투란도 그냥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스쳐 가는 풍경과 지나온 길에 더 눈길을 보냈다.
귀를 기울이는 낌새가 지워진 듯하니 사르굴은 금방 졸린 척하며 눈을 감고 등을 기대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란은 이미 몸을 푹 기대 눕힌 자세로 눈을 반쯤 뜬 채로 조는 모습이었다.
투란이 보기에 도끼 든 손의 힘이 느슨한 척하면서도 단단히 잡고 있는 모습이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반응할 듯 보이는 그란이었다. 그란 다음으로 슬쩍 아란을 확인하니, 이제는 마차 위에서 위로……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둘씩 나란히 움직이는 마차 지붕 위를 뛰어다니면서 상황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이미 고블린과의 일은 홀랑 잊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모습이네.’
투란도 느긋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지켜보면서 반쯤 조는 시늉을 시작했다.
덜커덩, 덜컹. 타각타각.
마차와 말발굽 소리가 자연스러운 풍경 너머로 흐릿한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갔다.
고블린 무리와 만남 이후, 몇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상단이 멈춘 것은 이미 길목에 자리 잡고 있던 다른 캐러반과 만났을 때였다. 그저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차가 적당히 자리 잡고 멈춘 다음에 짐꾼들이 바쁘게 흩어지면서 두 상단의 물품이 교환되고 있었으니까.
그사이에 두 상단의 호위들은 주변으로 흩어져서 나름대로 경계서는 자리를 잡고 굳은 몸을 펴며 제대로 쉬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저마다 각자의 할 일을 맡은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은 슬쩍 그 틈에 끼는 척, 두리번거리다가 역시 한쪽에 자리 잡고 앉는 아란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잠깐 돌아보고 올게요.”
아란은 갑작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부터 짓는 듯하다가 금방 눈가를 찌푸리면서 아주 낮게 되묻는다.
“우리 뒷편에 뭐가 붙었나?”
투란은 슬쩍 눈짓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바로 나직하게 몇 마디 덧붙인다.
“그리 멀지는 않아요, 사람들 보고 경계해서 접근도 안 하니까…… 뭔가 확인하고 적당히 쫓아 보내고 올게요.”
“혼자?”
아란은 길게 되묻지 않았다.
투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주변을 둘러보니…… 두 상단이 만난 대로는 숲이 양옆을 싸고 있는 언덕의 한복판 같은 형태였으니, 슬쩍 미적거리면서 나무 그늘 아래 뒹구는 시늉만으로도 잠시 모습이 안 보여도 될 듯했다.
하지만 이런 투란을 유심히 보는 듯하다가 슬쩍 따라붙은 이가 있었다.
“어디가?”
사르굴이 슬쩍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뭔가 상의하는 척하는 표정까지 진지하게 띠며 묻고 있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같이 가 줘?”
“아뇨, 그냥…… 나 가는 쪽을 보고만 있어 줘요.”
“그러지. 그란이랑 떠들고 있도록 할게.”
말과 함께 사르굴은 껄껄거리는 시늉부터 하고 그란에게 세차게 손짓하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있던 그란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부터 짓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최대한 사교성을 발휘한다는 듯이 사르굴 곁으로 다가왔다.
그다음에 투란은 슬쩍 나무가 빼곡한 숲의 귀퉁이를 향해 총총걸음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거리를 둔 이들이 보면 대소변이라도 급해진 듯한 태도로 착각하기 쉬운 모습인 채였다.
이를 지켜보던 몇몇…… 함께 왔던 상단 쪽의 호위들은 조금 낯빛이 꼬였고, 기다리고 있던 상단 쪽 호위들은 의아함으로 갸웃거렸다.
비록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고 주변을 확인한 다음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뭔 볼일을 본다는 것이 그리 안전하지 않을 텐데…… 그저 멀찍이 지켜보는 둘만 믿고 저리 혼자 시야 밖으로 나가다니!
―야, 잔뜩 수상하게 여기는 모양이다만?
드라고니아가 대강의 분위기를 얕본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픽 웃고 말았다.
‘뭐, 마차 뒤에 그늘에서 시선만 피한 채로 볼일 보는 것이 정상이니까.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아무리 왕국의 가호가 걸린 길목이라도 미친놈이 아닌가 싶기는 할 거야. 물론 그러니까 뒤따를 생각도 않겠지!’
―확실히…… 아, 그런데 저건 잡을 거냐?
‘어? 그냥 이글베어라며?’
―가까이 보니, 머리에 번개꽃이라도 달고 있는 것이 좀 희한한 개체인 것 같다만…….
‘뭐? 야, 그걸……?’
이미 흰머리 수리의 머리를 달고, 상체는 부푼 곰의 형태이며 두 발로 꼿꼿한 다리의 무릎 아래는 크고 사나운 닭발톱 같은 몰골을 한 몬스터…… 이글베어 앞에 선 다음이었기에 투란은 흠칫 놀라서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투란을 향해 두 눈썹과 미간 한복판의 깃 하나가 번개처럼 구부러진 모습인 흰머리 수리가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