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7)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는 있을 만한 것이 있다 싶은 풍경…… 하지만 그 풍경 속에는 투란에게 아주 낯선 것들도 가득했다. 투덜거리고 스쳐 지나가고 나면 나중에 ‘그게 뭐였지?’라고 되뇌며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할 만한 느낌을 간직한 낯선 것들…….
‘뭐, 느긋하게 보고 가면 되잖아.’
―서두를 일이…… 없기는 하다만, 정말로 그럴 거냐?
되뇌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투란은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투란의 걸음이 꽤 빨라졌고 눈동자는 반짝이는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대방벽의 안쪽, 성벽을 두른 도시는 그런 투란에게 기꺼이 즐길 수 있는 광경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바로크 왕국의 변방 도시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에 봤던 건물들은 둥근 원통을 떠올리게 했다. 도시 전체가 높고 낮은 원통, 굵고 얇은 원통이 기둥처럼 채워진 듯한 풍경이었고 가끔은 높은 기둥에서 가지를 뻗고 나와 매달린 원통도 있었다. 한데 나라를 하나 건너오니 그런 풍경은 싹 사라졌고, 대신 미묘하게 기울어진 벽을 지닌 네모난 건물들이 가득했다. 멀리서 보면 그 기울어진 형태가 나란히 서면서 높이 쌓아 올리면 세모꼴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 높은 건물들은 한층 한층 쌓여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폭이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풍경이 여기는 에테온, 바로크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듯하다면…… 벽에 수레를 붙이고 수레 위에 물품을 진열해 놓은 거리의 상인들은 아주 크게 여기가 에테온이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의 벽 하나를 열어 놓은 것처럼 상점이 자리 잡은 경우보다 적당한 벽을 골라 수레를 세우고 늘어선 상인이 훨씬 많아 보이는 묘한 광경, 그럼에도 건물 안에 자리 잡은 상점의 입구 부분은 용케 피하는 듯 보였는데…….
“이봐! 우리 가게를 막고 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당장 치우지 못해!”
“오늘 쉬는 날이었잖아! 장사 않는 날이면서 너무하는 것 아니야!”
가끔 멱살잡이하려는 듯이 배를 부딪치며 다투는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장사하는 자리를 차지하려거나 지키려는 모습들은 누가 먼저 수레를 벽에 붙였냐고 다투고 있는 경우에도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런 다툼을 하는 이들은 이미 자리 잡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매우 게으른 셈이었다.
물품을 늘어놓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구경하고 가라고 상냥하게, 때로는 울부짖는 것처럼 협박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상인들이 가득했으므로.
그 풍경 속에는 물품이 아니라 소소한 요리를, 음식을 내놓고 냄새를 풍기는 이들도 있었고…….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아, 저것도요!”
“어, 팔아 주니 고맙긴 한데 다 먹을 수 있겠나? 오래 보관할 음식이 아닌데 말이야.”
마구 골라 대는 투란을 향해 거리의 요리사가 매우 난감하게 되물었다.
“걱정 마세요! 내가 아주 많이 배가 고파서요! 아, 저것도!”
“그, 그래.”
결국 거리의 요리사는 눈을 찔끈 감고 ‘이놈, 다 처먹으면 배 터져!’라는 눈길을 거둬들이면서 투란에게 다채로운 요리를 한 묶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요리 묶음을 한 손으로 받쳐 들며 한 손으로 입에 담아 넣는 채로 투란이 적당히 앉을 자리를 고르는 사이, 드라고니아는 갸웃하며 말하고 있었다.
―희한하군. 보존식품도 아닌데 이동은 간편하게 묶어 주다니…….
‘걸어 다니면서 먹는 사람들 안 보이냐?’
―바로크나 알드바인…… 아니, 예전에 내가 알던 에테온과도 다르다. 세월이 흘러서 변한 일 같군. 이런 노점상들이 와글거리는 풍경이라니…… 확실히 물자(物資)의 유통이 확대되고 자원(資源) 상황이 좋아진 모양이군.
‘음? 그러냐?’
투란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거리의 요리사가 홀로 튀기고 볶고 뭉치는 괴이한 행각으로 요리해 낸 음식들을 하나씩 입안에 퍼담으며 배 속으로 굴려 넣기 바쁜 투란이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확 커졌다가 우걱거리는 상태로 폭 꺼지는 투란의 낯짝에 황당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는 했지만,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투란처럼 바쁘게 입에 뭘 넣고 움직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먹고 손이 빌 때쯤 해서 투란은 문득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무슨 요리라고 했지?’
―이거랑, 저거랑, 이거랑, 저거랑.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요리를 고를 때를 되새겨 주듯, 슬쩍 놀리는 말투로 속삭였다.
‘야, 프로브로…….’
―닥쳐.
‘칫.’
―대방벽의 마력을 느끼면서 자제하는 놈이 뭔 마법으로 요리 이름 알아내겠다고 투덜거려! 닥쳐!
‘내가 뭐라고 했냐? 칫.’
투란은 높이 솟아올라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방벽의 한 귀퉁이를 바라봤다. 방벽의 곳곳에 기둥, 혹은 탑처럼 치솟은 그 형태는 감시를 위한 것이라고 금방 느낄 수 있는데…… 그 감시탑에서 은은하고 옅게 배어 나오는 마력이 도시 전체를 덮은 채였다.
몬스터를 배제하기에 몬스터 로드에게도 좋지 않을가 했는데, 투란은 얼마 동안 대방벽의 마력을 겪고 나서 오히려 몬스터 로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마력은 몬스터의 본성을 물러서게 하고 몬스터 로드가 본래 인간이란 점을 부추기는 듯한 성향이었으니까. 때문에 투란은 살짝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법을 뭐라고 해야 하지?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데 말이야.’
―정신 조작계, 간단히 그렇게 말해도 되겠지. 마법사라면 보통 마인드 이펙션이라고 할 거야.
‘그 말이 그 말 같구먼.’
―연금술적 용어와 마법적 용어가 분리된 탓이다. 뭐, 굳이 누구 탓인가 따지고 싶다면 대마법사 카엘을 욕해라.
‘아, 네. 그보다 이 요리 이름 말인데…….’
―닥쳐.
‘칫.’
투란은 다시 돌아가서 요리 이름을 하나씩 물어보고 하나씩 더 살까 하는 생각까지 떠올렸다.
“아저씨! 볶음젤리랑 하드튀김요!”
“난 튀김빵! 구운젤리도!”
꼬맹이 몇몇이 거리의 요리사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가만히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싱긋 웃었다.
‘그런 이름이었군!’
―그만해라, 제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엉뚱한 것에 너무 빠져든다고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야, 먹을 것은 아주 중요해! 먹지 못하면 인간은 고통스럽게 죽는단 말이야! 아무리 몬스터 로드라도 먹어야 산다!’
―그래, 그리고 넌 몬스터도 산 채로 잡아먹을 수 있지.
‘맛없거든?’
―그래그래…… 응? 이번엔 또 뭐냐!
머릿속으로는 요리의 맛을 되새기는 듯하다가 투란은 옷감과 끈을 쌓아 둔 상점에 눈길을 주고 다가갔으니, 드라고니아는 새로운 호기심을 보충한 듯한 그 태도에 질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아, 가만있어 봐!’
그렇게 해서 투란은 수레가 아니라 건물에 자리 잡은 상점으로 들어갔고…….
포목잡화(布木雜貨), 가게의 간판은 그렇게 벽 한 귀퉁이에 길쭉하니 세로쓰기로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보였던 옷감, 끈 말고도 안에는 망치라든가, 톱이라든가, 가위라든가 하는 다양한 도구들이 벽에 진열된 채였다.
그 안에서 투란은 바쁘게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고무 편자, 미늘 갑옷에 덧달 수 있지.”
“오옷! 고무! 고무로 된 다른 것은?”
“고무 끈도 있고, 고무 망치도 있지.”
“에? 망치요?”
“흠집나지 않게 깔끔하게 두드리는 망치야.”
“끈은 어때요?”
“질기고 잘 늘어나지. 슬링슈터에 쓰기도 하는데, 활줄에는 요새 좀 시험해 보는 추세라네.”
“와앗! 아, 저건 고무가 아니네요?”
“그건 궁정대마법사께서 재현해 낸 소재라네. 이제 한 이삼 년 되었으려나? 주변 나라로는 아직 보급되지 않는 것이지. 가볍고 튼튼한데, 아직 제대로 된 장비로 제작하긴 이르고 시험도 많이 해 봐야 한다더군.”
“아하…….”
닥치는 대로 묻는 말에 적절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매우 침착하게 대답해 주는 가게 주인의 모습에서는 연륜과 여유가 물씬 배어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살짝 눈알을 굴리다가 방긋 웃고 물을 수 있었다.
“혹시 가게 차리시기 전에…….”
“헌터였다네. 후훗, 다리가 이 꼴이 돼서 말이야.”
역시 여유롭게 답하면서 가게 주인은 슬쩍 길게 늘어뜨린 자신의 작업 로브 한구석을 들어 올렸다. 한쪽 다리가 투란이 짚었던 묘한 소재로 만들어진 의족(義足)이었다. 슬쩍 엿보인 멀쩡해 보이는 다리에도 역시 이런저런 보조 도구가 붙은 채였다.
투란은 놀랍다는 듯이 가게 주인의 낯을 보고 말한다.
“용케 살아오셨군요?”
“후하핫, 그렇지! 운이 정말 좋았지.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네. 그래서 내가 그 친구들 몫까지 살려면 어찌하나 생각하다가, 이렇게 가게를 차린 거야.”
껄껄거리면서 즐거워하는 가게 주인의 표정은 꽤 밝았다.
―뭔 마법이라도 썼나? 기억하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텐데, 대단하군.
드라고니아가 가게 주인에게 조금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투란도 그 감탄에 동의하면서, 가게 주인에게 웃어 보였다.
“돌이켜 보면 그림 투아란의 가호가 걸린 이름을 쓴 탓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네. 군단 하나가 동원돼서 잡으려고 했는데, 끝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 놈에게서 이렇게나마 살아남았으니 말이야.”
살짝 지난날의 추억에 빠져드는 듯한 말이었는데, 투란은 순간적으로 낯빛이 맹하니 굳어진 채로 속삭이듯 묻고 말았다.
“아저씨, 설마 이름이……?”
가게 주인은 투란의 낯을 마주 보다가 푸훗 하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투란이지, 크흐흣, 자네 표정을 보니…… 본명이 투란이구먼?”
“그렇죠.”
“푸하하핫, 나도 그래. 심지어 난 고아도 아닌데 말이야. 내 아버지가 흔한 이름이 아니라 드래곤로드의 가호가 닮긴 것이라며 그리 붙여 줬다네! 하하핫, 가짜 이름 아니냐고 의심받는다고 억울해할 것 없어. 살다 보면 흔한 이름이라 좋은 점도 많고, 결국은 그림 투아란의 가호를 담은 이름이라니까. 봐, 나도 이 지경인데 살아 있잖나? 하하핫.”
“네…….”
울까 말까 망설이는 웃음으로 투란은 어설프게 답해야 했다.
―그란이나 아란도 마찬가지로 그림 투아란에게 파생된 이름이잖아. 뭘 새삼 이 사람 앞에서 그딴 표정이냐?
드라고니아는 핀잔했다.
가게 주인 투란은 껄껄 웃으며 투란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문득 재미있는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묻는다.
“아, 혹시 저 재료에 관심 있나? 플라스티콘이라던데, 변형하기 좋은 특성이 있다더군. 저건 압축해서 강판형태로 만든 것이고…… 원하는 모양으로 주문하면 바로 맞춰 줄 수도 있어. 칼자루라든가, 활대라든가! 강도(剛度) 또한 조절이 된다네. 한두 시간이면 마법사가 바로 뚝딱거리며 만들어 주지! 어때, 뭐 하나 맞춰 보지 않겠나?”
은근히 판매를 시도하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투란뿐 아니라 드라고니아의 호기심 또한 자극했다.
―플라스티콘? 처음 들어 보는데? 에테온의 대마법사가 뭘 재현해 낸 거지? 프로브 붙여 볼 테니까 하나 만들어 봐라!
‘얀마…….’
마음속으로는 울컥하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투란은 가게 주인 투란을 향해 냉큼 묻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추천하실 것은?”
“투구와 부분 갑주!”
“세트로 하나 되죠?”
“물론이지!”
묻고 답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리고 제작 신청 또한 가게 주인이 곁에 있는 나팔을 쥐고 떠드는 것으로 끝났다. 그 나팔 한쪽에 끈이 매달려 벽 안으로 이어진 상태로 봐서는, 끈의 다른 끝자락에서 누군가 대기하고 있다가 대꾸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다음 두어 시간 동안, 투란은 가게 주인 투란의 다채로운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덤으로 가게 주인을 은퇴시킨 괴물에 대해서도…….
“야생의 골렘? 그게 뭔 멍멍야옹 하는 소리인가 했지. 풀려난 오우거가 돌 갑옷을 입은 것이 아닌가 했거든. 그런데 아니래. 그것도 풀려난 오우거처럼 마법사가 제조해 낸 것이기는 한데, 완전히 다른 계통의 마법이라나? 뭐라더라, 인형 유희? 인조 인형? 뭐 그딴 소리를 하는데 마법사도 아닌 내가 알 수가 있나. 아무튼 몇십 년 전에 현상금 걸렸던 로그메이지가 만들었는데, 만들자마자 그놈한테 맞아 죽었더군. 그리고 제작자를 쳐 죽인 놈이 도망쳐서 야생이 되어 날뛴다나? 오우거처럼 강력한 힘에다가 돌 갑옷을 입은 듯한 몰골이었는데…… 아, 그 망할 녀석의 진짜 무서운 점은 입에서 불벼락을 쏘아 내는 것이었어.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지. 빌어먹을 상황이었던 것이, 우리 팀이 몰아붙이기 전까지 그놈이 입에서 뭐 토한 적이 없었다는 거야. 때문에 길드도 발칵 뒤집혔고, 뒤늦게 왕국 군단이 나서기까지 했는데 이게 영악스럽게도 빠져나갔어. 아직 못 잡았다네. 게다가 방벽 안쪽을 돌아다니는 중이라더군. 벌써 십 년 가까이 흘렀던가? 하하핫.”
투란과 드라고니아는 짙은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