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09)
“아, 툴로쉬? 들려요?”
―들린다, 무슨 일이지?
투란이 손에 든 마도구에서 툴로쉬의 목소리가 가늘고 희미하게 울려 나왔다.
“어, 그러니까 여기 한 십 년? 그 전부터인가? 아무튼 떠돌던 불벼락 뿜는 골렘이란 몬스터랑 만났는데요…… 아, 찾아다닌 것은 아니고 길 가는데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마력 때문이겠군. 그놈, 마력을 지닌 상대라면 마법사든 몬스터 로드든 가리지 않고 잡아먹으려 나타나. 음, 투란 너라면 꽤 먹음직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네.
“그런 놈이었군요. 아무튼 일단 박살을 내 놨고, 입안? 목구멍에 박힌 마도구도 뽑아냈는데 말이죠.”
―선더플레어를 뽑아냈다고? 용케 안 부쉈구나. 내 쪽을 넘겨주면 금전 백 닢으로 계산해 주지. 어때?
“넵, 넘기죠! 아, 어떻게?”
―메일 박스를 사용하면 돼! 뭐, 그 가게 물품이니까 전부 연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지. 자, 그러면…….
한참 대화에 몰두하던 투란은 문득 툴로쉬에게서 받았던 전언용 마도구가 새로운 마력으로 차오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과 함께 마도구로부터 흘러나온 빛이 곧바로 상자의 형상을 허공에 그려 내는데, 어느 순간부터 질량(質量)을 간직한 실체가 되고 있었다.
―엄청나군! 정말 이걸로 물품 수송까지 가능하다니…….
드라고니아는 투란보다 몇 가지를 더 간파한 듯이 감탄했다.
투란은 그런 감탄보다 조심스럽게 묻기부터 해야 했다.
“여기다 담으면 돼요?”
―그래. 금전은…… 원래 네 계정으로 넣어 줄까, 아니면 지금 쓰고 있는 가상(假像)의 신분에 준비된 계정으로 넣어 줄까?
“어? 이 가짜 신분에 계정까지 있었어요?”
골렘에게서 획득한 것을 담다가 투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쯤 놀라고 반쯤 감동하는 낯짝이 되는가 싶은 순간.
―얀마!
―건네줄 때 이야기했다만.
드라고니아가 핀잔했고 툴로쉬는 목소리만으로도 깊은 한숨과 한탄을 품은 표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중얼거렸다.
“에, 에헷, 어흠! 일단 가…… 가상 신분으로 넣어 줘요. 지금 그 신분으로 여행 중이잖아요.”
―알았다. 아, 그런데 말이야…… 혹시 가는 길에 현상금 사냥을 해 볼 생각 있어? 인간 사냥 말고, 몬스터 사냥으로 말이야.
조심스럽게 묻는 툴로쉬의 목소리였다.
그 의미를 곧바로 깨달으며 투란은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대답해야 했다.
“쫓아갈 생각까지는 없어요. 그냥…… 뭐, 가다가 만나면 하나씩 치우기는 해야겠죠.”
―목적지까지 경로를 잡아 줄까?
경쾌하게 되묻는 툴로쉬였다.
목소리만 전하는 마도구가 아니었다면 투란은 바로 뭔 낯짝으로 저러는가 노려봤을 텐데, 엘더 헌터 툴로쉬는 묘하게도 목소리를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마도구를 넘겨줬다. 이야기 나누는 것에만 집중하는 대신에 더욱 멀리, 정확하게 전할 수 있다면서…….
“고맙지만, 괜찮아요. 그냥 발 닿는 곳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여행이니까요.”
―그래…… 혹시 마음이 바뀌면 알려 줘. 그럼, 선더플레어는 잘 받을게.
빛의 상자가 닫혔고, 다시 환영처럼 흐릿해졌다.
상자는 금방 한 가닥의 가느다란 빛줄기로 변환되며 하늘 높이 치솟아 사라졌다.
목소리를 전하던 마도구의 울림도 멈췄다.
슬쩍 손을 뒤집어 마도구를 반지 속에 담아 넣으며 투란이 소리 없이 묻는다.
‘저걸로 춤추는 산맥 어디에서나 보급도 가능한 거야?’
―그래. 다만 보내 줄 자도 필요하지. 툴로쉬가 켈 데릭의 가게에서 잔뜩 사들였던 마법이 전부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흐음, 보내 줄 사람도 필요하다라…….’
―넌 그냥 사다 배낭에 처넣으면 돼. 블랙레온은 처음부터 성 하나를 담을 정도의 마법 배낭이었잖아.
‘아니, 뭐…….’
입술을 삐죽이다가 투란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깔고 앉았던 골렘의 잔해, 튼튼한 허벅지의 파편이 기우뚱거렸다.
제법 큰 파편이라서 조그마한 스툴 정도의 용도로 썼던 파편을 돌아보며, 주변에 아직 부서진 채로 널브러진 다른 조각들도 함께 둘러보면서 투란은 갸웃거렸다.
‘두고 갈까, 들고 갈까.’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골렘, 짐승 같은 본능처럼 보이는 기능을 지니고 움직였지만 몬스터가 아니었다. 충전형 마석과 함께 집적형 마석이라는 두 가지 동력원을 지닌 마도구였을 뿐이었다. 로그메이지가 멋대로 만들고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풀려난 오우거처럼 떠돌고 있었지만, 애초에 만들어진 그대로 동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탓에 남겨진 파편은 망가진 마도구였고, 그중에서 가장 기묘하고 대단해 보였던 부분은 툴로쉬에게 넘겨버린 투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어찌할 것인가?
분명히 투란에게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잔해, 그러나 연금술사라든가 마법사에게는 어떨까? 다른 누군가가 만든 마도구란 그들에게 나름대로 볼 거리가 될 테고, 갖다 주는 사람에게는 소소한 돈벌이가 되는데…….
―암석 변환 기능이 담긴 부분은 연금술사가 흥미로워할 테고, 동작 모사 기능이랑 의사 생명으로서의 기능이 담긴 부분은 마법사가 탐구하려 들 만하지. 뭐, 어느 쪽이나 이걸 만든 로그메이지보다 수준이 낮을 경우에 말이다. 실력을 쌓기 위해 교재용으로 쓸 수는 있을 거야.
드라고니아가 심드렁하니 투란의 간소한 의문에 늘어지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조금 더 고민하는 척했다.
‘에잇, 여유 있으니까 일단 들고 가자. 나중에 홀시딘에게 재룟값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 뭐.’
―글쎄다, 상아탑의 대마법사에게 이런 수준은 좀…….
‘새싹처럼 자라나는 꼬맹이 마법사들도 가득 있잖아앗!’
―응? 뭐, 그건 그렇지.
키득거리며 투란의 돈벌이 궁리를 놀리는 드라고니아였다.
하지만 금방 정색하는 목소리로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그런데 너,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니었냐? 가는 동안에 이런 돈벌이를 하고 싶었다면 툴로쉬에게 길 안내 받는 것이 좋지 않았어? 왜 거절한 거야?
‘어? 어…… 뭐, 그냥 귀찮아서? 엘더 헌터가 커다란 재앙이나 그보다 살짝 못한 괴수, 괴물들이랑 툭탁거리면서 바쁜 탓에 십 년 넘게 손 못 대고 있는 녀석들을 잔뜩 소개해 주려던 거잖아. 가다가 우연히 만난 거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부러 쫓아가서 씩씩거리며 마주치는 일은 귀찮다고.’
웅얼거리듯이 대답하면서 투란은 골렘의 잔해를 모두 치웠다.
길가에 남겨진 파괴적인 흔적도 투란에게 동조하듯이 테트라와 에어로가 뒤집고 밀어내며 정리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간결하게 아쿠아가 이리저리 이슬방울을 흩뿌리고 정돈하니 길은 아주 깔끔하게 새로 포석을 깐 것처럼 정리되었다.
“자아, 그러면…… 발 닿는 길을 따라 잘 가 볼까!”
아무도 듣지 않는 곳, 뭔가 있다면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가 아니면 작은 짐승이 고작일 뿐인 곳에서 담담하게 지껄인 투란은 곧바로 경쾌하게 내닫기 시작했다.
말한 그대로, 발 닿는 곳을 밟으며.
* * *
살룬에는 가지 않았지만 투란은 팔룬이란 작은 도시를 지나쳤다.
팔룬을 벗어나 에테온의 왕도로 가는 길과 변경 도시로 가는 갈림길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얼룩진 그랑츄를 때려잡았다. 얼룩진 그랑츄가 나온 방향이 변경 도시 쪽이었기에 투란은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변경 도시는 새로 성벽을 쌓는 중이었고 다양한 목적을 지닌 이들이 와글거렸다. 헌터 길드 또한 일시적인 지부를 둘 정도였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이야기 중에서 투란의 관심을 끈 한 가지는 새로운 황금의 그리폰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꽤 오래전에 사냥당했던, 패왕이라 불리는 그리폰의 혈통을 물려받은 강한 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황금의 그리폰이 서식하는 곳은 에테온이 아닌 몇 나라 건넌 기가둠의 지역, 때문에 그냥 이야기만 담아 둔 채로 투란은 변경 도시를 떠났다.
빠른 걸음, 간혹 보는 눈이 없다 싶으면 날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투란은 에테온 왕국을 가로질렀고 솔로얀으로 향했다. 떠나온 고향…… 자라온 마을이 로그람과 기가둠 왕국의 접경지 깊은 곳이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대충 잡은 방향이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간혹 마수보거나 자주 듣던 괴물 나무를 구경하거나 하며 투란은 머뭇거림 없이 솔로얀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한 보름 정도 지난 후, 드라고니아가 아침 해가 한참 뜬 다음에 꾸물거리며 새로운 하루를 어찌 걸을까 궁리하는 투란에게 물었다.
―목적지가 대체 어디냐? 아무렇게나 마구 가는 줄 알았는데, 너 확실하게 어딘가를 향하고 있잖아?
막 밀포를 꺼내고 육포를 겹치던 투란은 멈칫하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묻는다.
‘며칠 전에 생각했는데, 너 모르는 척하는 거야?’
―길거리에 지나다니던 헌터의 장비를 몰래 옅보던 생각? 먹던 고기가 무슨 고기인가 뒤늦게 알아보려던 생각? 샤오 할배를 만나면 어떻게 뒤집어엎을까 궁리하던 생각? 하도 많아서 골라내기도 힘들잖아!
드라고니아는 본보기를 들면서 으르렁거렸다.
매번 다양한 생각이 스쳐 갔고, 그때마다 떠올린 장소가 달랐다는 핀잔이기도 했다.
장비를 생각했을 때는 어디서 샀는가를 궁금해했고, 고기를 궁금해할 때는 어디서 사냥했는가 혹은 키웠는가를 의아해했으며 샤오콴 마을을 떠올렸을 때는 바로 샤오덴 할배를 놀라게 할 궁리를 했으니까.
때문에 투란은 이 핀잔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 것 구경하고 싶다…… 그래서 옛날에 들었던 곳을 생각해 냈잖아.’
복잡하고 다양하게 스쳐 가는 상념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잇는 도시, 솔로얀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평범한 이들을 가장 강력하게 유혹한다는 그 도시를 투란은 또렷하게 다시 떠올렸다.
―마검(魔劍)의 도시? 거길 그렇게 부르냐?
‘응, 마갑(魔鉀)의 도시라고도 하고…… 그냥 합쳐서 마검갑의 도시 공방이라고 불러 대는 일도 있을걸? 평범한 사람이라도 손에 넣으면 단번에 오러 윌더에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적인 마검, 마갑이 감춰져 있었다는 도시잖아.’
―반역의 패왕 이야기냐?
떨떠름하니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실실 새는 웃음과 함께, 겹쳐진 육포와 밀포를 깨물면서 대답한다.
‘그래, 반역의 패왕이 처음으로 도적왕의 비보에 대한 단서를 찾았던 곳이지. 뭐, 그 전에도 유명했지만 그 뒤로는 더욱 유명해진 곳이라잖아. 마검의 도시에서 반역이 시작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 시작하는 이야기꾼이 얼마나 많은데!’
―다이얀, 도시 이름이 다이얀이지?
‘그래, 다이얀의 마검시장, 마갑장인…… 엄청 유명하잖아.’
―솔로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다들 몰라라 하잖아. 알드바인 근방에서는 언급도 안 하더만.
‘그야 뭐…… 나라를 몇 개를 건너고 춤추는 산맥을 직접 가로지를 수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 아냐? 아무튼 전설의 마검이나 마갑을 얻으면 단번에 몬스터 헌터 중에서도 상급으로, 몬스터 로드랑 비교해도 상급의 수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들 하지!’
―전설이 길바닥에 굴러다닐 때 얘기냐?
드라고니아가 살짝 흥분한 채로 으적으적하는 투란을 놀리듯이 말했다.
짓궂은 핀잔이기는 했지만 투란도 우물거리는 낯짝에 조금 쓴웃음을 띠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얀, 마검과 마갑으로 유명한 그 도시에는 사기꾼이 가득하다는 소문도 늘 함께했다. 조건만 맞으면 전설의 마검, 마갑을 얻을 수 있다고 사람을 홀리고 일이 잘못되면 전설을 갖출 조건이 어긋난 것이라고 둘러대며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작자들…….
‘난 네가 있으니까 사기는 안 당할 거잖아. 그렇지?’
―그건 또 뭔 얘기냐?
갑작스럽게 신뢰를 듬뿍 담아 말하는 투란이 낯설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되묻고 있었다.
‘마력이 은폐된 마석, 마력이 소실된 마석을 너라면 완벽하게 구분해 낼 수 있잖아? 그렇지?’
―마검, 마갑의 마보석을 감별해 달라고?
드라고니아는 겨우 투란의 속셈을 이해했다는 듯, 그래서 납득하기는 하지만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다시 되물었다.
‘할 수 있잖아?’
―그냥 마력만 머금은 마석과 정제되어 마도구에 박힌 마보석이랑 같은 취급 하지 마라. 수준에 따라서는 절대로 못 알아낼 수 있는 것도 많으니까.
‘전설적인 수준이면 못 알아내는 거냐?’
―그러니까 그 전설이 길바닥에 굴러다니냐고!
‘쳇…….’
―뭐가 쳇이냐!
으적으적, 살짝 꿈의 한 귀퉁이가 망가졌다는 듯이 찌푸린 표정으로 투란은 빠르게 먹던 것을 마저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어떻게 하면 드라고니아가 전설적인 마검과 마갑의 은밀한 마보석을 감별하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