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
—뭐? 여차하면 그냥 저 아래로 처박는다고?
‘어, 다룰 수 없는 녀석이면 바로 치워야지.’
—여덟 달이나 걸려서 잡은 놈을?
‘몬스터 로드는 헌터가 아니라고. 다룰 수 없는 녀석을 품고 다닐 까닭이 없지.’
—그 힘을 탐내고 있었잖아?
‘그야, 갖고 싶지. 산을 뚫는 섬광인가도 싹 무시하고, 오러 몽거도 뻥 뚫어 죽이고…… 탐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다룰 수 없다면 바로 치우겠다고?
‘당연하잖아? 써먹지도 못하는 걸 왜 품고 있어?’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이 듣고 기억하는 당연한 일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조금 의아한 듯이 되묻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한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의 물음이 다시 튀어나올 뿐이었다.
—어떻게 잡은 거냐?
투란의 눈매가 살짝 성난 낌새를 띠고 휘어졌다.
‘이 녀석, 하고 싶은 말만 하네!’
이 생각은 바로 전해진 듯했다.
어딘가 차가워진 기척으로, 드라고니아의 대꾸 같은 의지가 또렷하게 실린 말이 돌아왔다.
—넌 나도 그렇게 보내려고 했지?
‘어? 어, 그야…….’
투란의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사실 그랬으니까.
키린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점이랑,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서 혼자 있는 것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는 상황을 고려해서 처음의 그 생각은 많이 옅어진 채이기는 했다. 이대로 그냥 속에 뭔가 시끄러운 녀석이 있다 해도, 정신 사납게 해서 위험하지만 않다면 괜찮을지 모른다는 기분이 슬슬 솟아나는 중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근데 넌 왜 내 맘대로 안 되지?’
돌연 떠오른 물음을 투란이 들이대듯이 전했다.
—내가 너보다 훨씬 지혜롭기 때문이지! 그런데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네 녀석이 지난 8개월을 보낸 방법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그러니 어서 말해 보라고!
잠깐 투란은 말문이 막히고 멍한 기분이었다.
이놈의 드라고니아가 지금 대체 뭐라 하는 것인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나불거리더니, 멍청한 놈이 뭔 짓을 했나 모르겠다고 바로 칭얼거리는 것은 또 뭔가!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멍청이보다 멍청하다는 것인지…….
‘에이, 헷갈리게 하지 마! 해 준다고 했으니까, 설명해 줄게!’
생각을 멈추고 투란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 이어진 덩굴줄기, 여전히 작은 섬의 주변을 휘감으며 펼쳐진 악마의 심장의 줄기들이 형성해 주는 지각을 통해서 투란은 고요함을 확인했다.
당분간 덤빌 놈 없는 고요함이었다.
작은 섬을 채운 정적 사이를 걸으면서, 투란은 지난 여덟 달 동안 느리게 조심해서 파악했던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선명해진 지각 능력을 통해 확인해 나갔다.
‘이것저것…… 생각보다 많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반쯤 뜯겨 나가고 남은 반은 거의 썩어 가는 형상을 한 그랑츄라든가 몸통의 반만 남은 채로 여기에 떨어진 듯한 비비나비도 있었다. 늪을 어떻게 넘어왔는가 이해가 가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반대로 늪을 제멋대로 헤집고 다닐 듯한, 철갑으로 똘똘 뭉친 듯한 물고기 닮은 녀석도 있고, 그 물고기에게 허리를 물린 채 다른 물고기의 머리통을 깨물고 있는, 개와 늑대의 어중간한 형상을 한 짐승도 있었다.
어떤 경우이든 일단 작은 섬에 올라와서는 썩는 게 기본이라는 듯, 대부분 묘하게 썩어 가는 꼬락서니를 그 잔해 한구석에 갖추고 있는 것도 나름 신기하다면 신기한 풍경이었다.
그런 녀석들이랑은 완전히 다른 것들도 분명히 있었다.
드레이크, 이제는 투란에게 분명히 느껴지는 거대한 놈과 작은 놈, 두 마리가 이 작은 섬에 뒹굴고 있었다. 이끼가 쌓이고, 풀잎이 길게 자라 엮이면서 둘의 형상은 크고 작은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전혀 썩는 낌새가 없는 것들이었다.
투란의 걸음은 어느새 큰 쪽 드레이크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투란의 뇌리에는 지난 여덟 달이 가지런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에게 설명을 하면서, 자신을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10년 사냥은 말 그대로 10년이 걸린 거야. 하지만 그게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해. 우선 잡으려는 놈이 환경을 바꾸는 놈이어서는 안 되고, 바꾸는 놈이라 해도 한번 바꾼 환경에 그대로 머무는 놈이어야 하지. 이게 첫 번째 조건이야. 그리고 스테노아는…… 뭔가 괴상하지만, 아무튼 이 조건대로였어.’
—이 늪의 작은 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지. 그래서?
‘다음 조건은, 환경에서 독립된 놈이면 안 된다는 거야. 한곳에 머무르기는 하는데, 멀리 사냥을 나간다든가 그 머무는 곳에서 뭔가 먹고 싸는 게 아닌 놈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머무는 곳이 녀석의 진짜 서식지여야 한다는 거야. 거기서 뭔가 섭취하고, 그걸 통해 유지되는 놈. 이것도 대강 맞아떨어졌어.’
—다른 곳에서 날아든 놈들이라도, 어쨌든 여기 떨어진 다음에 먹이가 되어 준 거니까 상관없다고?
‘음? 그 먹이가, 여기 있다는 거지. 여기서 바로 섭취 가능한 먹잇감이냐 아니냐가 문제라고. 그 먹이를 이용하는 것이 이 사냥의 시작이거든.’
—위장 속에 악마의 심장을 먹여 놓았다는 말인가?
드라고니아는 자신이 봤던 잔해를 떠올린 듯이 묻고 있었다.
투란은 느릿하니 드레이크를 둘러보면서, 구부정한 몸에도 불구하고 15, 6미터는 가볍게 채울 듯한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와 접혔음에도 그에 못지않게 크고 길어 보이는 날개에 감탄하며 대답을 떠올린다.
‘먹어서 들어간 것도 좀 있어. 하지만 잘도 소화시키던걸. 혀로 핥고 해서 삼킨 쪽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어. 그렇지만 반대편으로는 꽤 잘 스며들었지.’
—반대편이라니…… 설마?
‘먹고 싸는 걸 이용한다고 했잖아. 뭐, 원래는 정말 먹이만을 이용하는 것 같기는 한데…… 내 경우에는 천천히 줄기를 싸는 쪽으로 침투시킬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겨우 녀석의 위장 속에서 녹아내리지 않는 줄기를 만들었지.’
—고르고니아의 체내 소화 능력에 저항성을 지닌 악마의 심장 줄기를 만들었단 소리냐? 그런 게…….
‘저항성? 음, 그렇게 복잡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악마의 심장에는 웬만한 독이라든가 위험한 환경에도 어울려서 버티는 힘이 있기는 해. 그걸 이용해서 결국 녀석이 삼키는 쪽으로도 씨앗을 스며들게 했어. 그렇게 되는데 거의 대부분 시간을 썼지. 우선 주변이 이전과 확 달라지지 않게 조심해서 심장 줄기를 뻗어야 했고, 원래 여기 깔린 긴 풀잎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해야 했으니까.’
—결국 고르고니아가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말이군.
‘응.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뭘 삼키고 싸는 동안,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게 해야 했지. 이 사냥은 원래 그렇게 해서…… 사냥감이 먹으면 해로운 것을 어쩔 수 없이 삼키도록 하는 게 중요해.’
—독을 이용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군. 하지만 고르고니아의 맏이인 스테노아에게는 그런 독이 통하지 않는다. 단지 금빛 모피가 튼튼하다고 강인하다 하는 게 아니야. 어지간한 환경에서의 지독한 상황에서도 스테노아는 거뜬히 버틴다. 피를 토하거나, 쓰러지거나 하지 않아! 어떻게 한 거냐?
‘아, 그거…… 생각해 보니, 네 말대로 독처럼 천천히 안에서 망가뜨리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짓은 전혀 다르지만…….’
—그래, 결코 고르고니아가 병들어 쓰러지거나 내장 쪽에 문제를 일으켜 스스로 괴멸한 것은 아니었지!
‘뭐, 일단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거는 맞아.’
느릿하니 투란은 드레이크를 쓰다듬었다.
두껍고 선명한 비늘이 손길에 따라 살짝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강인한 비늘 가죽의 금색은 이 드레이크의 몸을 덮은 풀과 흙, 자욱하게 깔린 식물의 뿌리줄기를 떨쳐 냈을 때를 저절로 상상하게 했다.
—무슨 문제를 일으킨 건가?
조바심을 내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재촉이 투란의 가슴을 울렸다.
‘음, 네가 한 말에서 도움을 좀 받았지.’
—내가 한 말?
‘어비셜 볼텍스. 악마의 심장은 원래 악마의 것이었네 어쩌네 하는 거…….’
—그걸 이용했다고? 어떻게?
굉장히 의아한 듯, 그리고 한편으로는 불편한 듯한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다시 투란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약간 멋쩍은 듯,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자랑스러워하는 기척을 띤 투란의 말이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전해진다.
‘어, 그러니까…… 오러 몽거를 해체하면서 그 오러의 형상을 내가 얻었을 때, 악마의 심장이 이걸 다루는 걸 느꼈거든. 뭐랄까, 제대로 된 오러 몽거의 힘은 아니고…… 내가 나를 불러서 이끌어 낸 내 오러도 아닌데…… 악마의 심장이 괴물의 오러를 어렴풋이 다루더라고. 거기에 네가 한 말을 겹쳐보니…… 심장에게 어비셜 볼텍스를 강제적으로 한계점까지 끌어내도록 한다면…….’
—뭐! 볼텍스를 한계점까지라니! 그건 주변을 다 쓸어 버린다고도 하지 않았더냐!
‘스테노아가 대상이었잖아. 스테노아라면, 네 말대로 어딘가의 신화에서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 불러낸 몬스터라면…… 산을 관통하는 정도는 싹 무시할 정도로 강한 스테노아라면, 볼텍스의 파괴에도 꽤 버틸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안에 스며든 악마의 심장이 일으키는 볼텍스가 그렇게까지 위험할 정도는 아닐 테고 말이야. 어찌 되었든 오러 몽거의 힘에는 어림도 없잖아. 안 그래?’
—전부 운에 기댄 짓인 걸 알기는 하는 거냐!
‘음? 몬스터 로드의 사냥법이 다 이럴걸.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아주 잘 아는 놈을 잡는 거는 몬스터 헌터 쪽이라고. 제대로 된 방법을 찾을 때까지, 계속 지켜보면서 말이야. 몬스터 로드까지 그럴 수는 없지.’
끄덕끄덕, 자신을 향해 장하다는 듯이 투란의 고개가 움직였다.
그 순간을 되새겨보면, 확실히 고르고니아의 몸속에 스며든 작은 악마의 심장이 일으키는 파괴력은 약했다. 여러개를 중첩시킨다 해도 기껏해야 스테노아의 설사라든가 방귀나 뀌게 할 정도가 아닌가 하고 투란이 단정 지을 정도로 약했다. 그래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저 안에서 휘두를 수 있는 주먹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애초에 씨앗을 품으면, 그 씨앗에 기억된 몸을 구성해 내는 것이 악마의 심장.
그래서 투란은 자신의 주먹을 바탕으로 최대한 오러 몽거의 형상에 근접한 손을 형성하도록 염원했다. 악마의 심장 또한 오러 몽거의 형상이 완전히 해체되는 과정을 투란의 몸을 통해 파악한 기억이 있었다.
이를 통해 투란이 뿌린 악마의 심장 씨앗이 고르고니아의 체내에서 제대로 ‘어비셜 볼텍스’를 담은 주먹질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이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완전히 운에 기댄 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기억과 생각은 투란의 의지에 따라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계속 잔소리하고 꾸지람하는 녀석에게 비장의 한 수를 감춰 두는 게, 앞으로 또 이런 비슷한 일로 놀라게 할 수 있잖겠는가?
이미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뭔가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기척을 보이면서도 살짝 놀라는 낌새도 흘리는 중이었다. 거기에 대고 확인이라도 하듯, 투란이 한 가지 생각을 전한다.
‘난 몬스터 로드라고. 몬스터 로드란, 몬스터가 나타나면 일단 들이대는 거야. 몸으로 겪으면서, 몬스터를 잡는 쪽이라고. 그게 뭔지 따지기 전에, 그게 몬스터라면 잡아 삼키고 세상에서 지우는 거, 그게 몬스터 로드가 하는 일이라고.’
—그러다 죽으면…… 그보다 허무한 일이 없다 여기지 않나?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 로드가 죽을 때는, 이미 삼킨 몬스터를 세상에서 지우는 거라고. 허무할 일이 뭐가 있어? 그리고 그렇게 목숨 걸지 않는다면…… 몬스터 로드가 될 까닭이 뭐야? 알 수 없는 몬스터라도 들이대는 게 몬스터 로드라니까. 에, 물론 아는 놈이면 더 좋으려나?’
나오는 대로 전해지는 듯한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침묵했다.
그래서 투란은 보다 본격적으로 드레이크를 더듬으며 찾기 시작했다.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파먹던 곳을.
사각사각.
걸음걸이에 따라서 투란의 발목으로 넝쿨의 가닥들이 더 모여들어, 가늘게 뻗은 실그물을 휘감았다. 사방에 흩어지며 뿌려졌던 사명이 끝났으므로, 다시 본체를 향해 귀환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 움직임 속에는 사방에서 모아온 양분을 투란에게 공급하는 흐름도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으킨 몸 곳곳에 활기가 가득 찬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마침내 커다란 드레이크의 가슴 한 곳을 찾아냈다.
금빛 비늘 가죽이 빼꼼히 틈을 연 듯, 그 불그스름한 광채가 맺힌 속살이 드러난 곳이었다. 날름거리는 혀에 의해 상당히 핥아진 듯, 꽤나 깊이 살점이 파여 들어가고 뭉개진 듯한 형상이 틈새로 보였다.
투란은 천천히 손을 뻗어, 붉은빛이 맴도는 속살을 살짝 긁어 봤다.
약간 걸쭉한 핏기와 함께 드레이크의 살점이 묻어 나왔다.
‘좋아, 이 정도면…….’
투란은 다시 입술을 핥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어? 자, 잠깐! 야, 너 지금 뭐 하려고……!
깊은 침묵에 잠긴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이 상황을 느낀 듯 급한 외침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