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13)
‘이 미친 상황이, 어쨌다고?’
사고를 가속한 채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주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몬스터 로드라도 강력하고 엄청난 저주라면 영향을 받을 테니까, 무시무시한 마법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문장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납득하려는 방식을 부정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고무쇠 아저씨, 노안(老顔)이 선명한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가 하는 말이 옳다 하고 있었다.
저주도, 마법도 아니고 그저 세월이 흐른 탓이라고!
―투란, 키린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지?
불쑥 나온 이름이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키린……? 왜?’
갑작스럽게 괴물 왕자님의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그때 키린이 그 숲에 머문 시간은 일 년 혹은 이 년, 길어도 삼 년을 넘지 않았다. 내가 온전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그 시간이 얼마 동안이었나 아직도 모르지만…….
‘그게…… 그게 무슨 뜻이야?’
투란은 정지된 듯한 고무쇠 아저씨, 티아라와 그 딸 아르안을 시야에 담아 살피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름진 얼굴, 세월이 각인된 표정의 고무쇠 아저씨.
부풀대로 부푼 채로 잔뜩 나이 든 아줌마가 된 티아라…… 투란이 기억하는 어린 티아라가 몇 년 더 자라면 되었을 듯한 모습인 아르안.
이들과 괴물 왕자님 키린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
―너는…… 키린이 오십 년 동안 사라졌다가 네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했지?
‘사실이잖아?’
―너에게는 사실이었지. 키린에게는 삼사 년 만에 오십 년의 세월을 거꾸로 넘어온 너를 만난 일이었다. 그것이 키린이 마주친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건 대체…….’
더욱 가속된 사고 속에서 투란은 정지된 주변을 다시 살피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드라고니아의 말이 전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그냥 멍하니 몰라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이미 언더섀도우를 겪었고, 기억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명확하게 몸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이야기?’
간신히 쥐어짜 낸 점을 짚어 보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하며 힘을 모은 듯이 말한다.
―그런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네가 겪은 일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춤추는 산맥이란 마경은 언더섀도우와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가의 본보기처럼……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이 아니야, 투란.
‘말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무슨 일이냐고! 알기 쉽게!’
―쉽게 말할 일이었다면 벌써 말했을 거야. 아무튼 가장 알기 쉽게 말한다면, 현재를 거치지 않은 미래와 과거가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너랑 키린이 만났다. 잠시 그냥 들어! 그러니까 네가 키린과 헤어진 다음에 키린은 오십 년 뒤의 세상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삼 년, 길어야 사오 년이 지난 자신의 시간, 시대인 세상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네가 보낸 시간은 짧았지. 하지만 그게 네가 세상으로 나온 시간을 어떻게 꼬아 놨는가는 몰라. 어쩌면 네가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을 돌파해 온 시간이 너 자신이 느낀 것보다 훨씬 길었을 수도 있어. 투란, 넌 그 안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가 제대로 느끼고 셈하지 못했잖아? 그런 데다가 시간의 교차점을 거쳐 온 거야. 그러니 원래 너와 같은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이 정도 변화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넌 시간이 아주 느려진 곳을 거쳐 왔을 수도 있고 말이야.
‘요약하면, 그냥 언더섀도우랑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거네? 응, 알았어.’
투란은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 버렸다.
드라고니아가 황당해하는 낌새가 무럭무럭 피어올랐지만, 그 또한 무시한 채로 투란은 고무쇠 아저씨와 눈길을 똑바로 마주했다. 사고의 가속이 끝났고 고무쇠 아저씨의 눈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바로 보였다. 한구석에서 티아라가 아르안의 걱정스러운 눈길 속에 깊이 숨을 고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쯤에서 투란은 자신이 할 말을 깨달았고, 입을 열 수 있었다.
“혼돈의 늪에 던져졌어요. 춤추는 산맥 깊은 곳, 어딘가는 모르겠고 거기서 발버둥 치면서 간신히 기어 나와야 했어요. 그사이에 어디를 어떻게 거쳤는가는 모르겠고…….”
“잠깐, 투란. 그냥 맨몸으로 혼돈의 늪에 던져졌냐?”
예르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하고 쓴웃음과 함께 대답을 해야 했다.
“아니요, 몬스터 엠블럼이 새겨진 다음에요.”
“그 녀석이 널 온전하게 몬스터 로드로 만들어 줬다고?”
의혹이 짙은 예르카의 물음이었다.
한번 더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으며 투란은 대답해야 했다.
“그럴 리가요. 보이드 엠블럼이었어요.”
“너, 어떻게 버텼냐?”
격노한 듯이 잠시 눈가를 떨다가 예르카가 침착한 말투로 또 물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야말로 행운을 겪은 이처럼 투란이 대답한다.
“떨어지면서 마구 손을 휘젓다가 걸린 것이 악마의 심장이었어요.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삼켜 버렸죠. 그리고…….”
잠시 투란은 말을 멈추고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천천히…….
숨을 쉬기도 곤란했던 곳, 살갗을 헤집으며 독이 차오르는 듯했던 곳.
고무쇠 아저씨처럼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가 될 뻔했지만 실패했던 일.
그랑츄의 발목을 얻고 겨우 다시 걸음마를 배우듯 걸었던 일.
붉은 늑대와 샤머닉 트롤…… 오러 몽거에 이르기까지의 기괴하고 이상했던 풍경 속에서 허우적거린 일…….
그 틈새마다 채워진 복잡하고 난해해서 기억도 하기 싫었던 일!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모두 이야기해야 하는가?
투란의 마음은 더욱 쉽고 빠른 답을 찾아냈다.
“버둥거리고 나오다가 깊은 곳에 들어온 팀을 만났어요. 그쪽도 사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함께 나오고 보니 브로큰 킹덤이었죠. 거기서 몇 년을 보내다가 헌터 길드의 의뢰에 참여했는데, 그 의뢰가 바로크 왕국의 일이었죠. 덕분에 북의 황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바로크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음, 뭐 모처럼 이쪽으로 왔으니까 옛날에 들었던 대로 상단의 대상을 호위하면서 나라를 건너며 구경하고 있었던 거죠. 겨우 그럴 만한 여유가 생겨서요.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 음…… 설마 이 도시에서 이렇게 아저씨랑 티아라를, 이런 모습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런 우연이면 거의 전설에나 나올 일 아닌가요?”
예르카의 재촉하는 눈빛이 꽤 강렬했기에 투란은 그 기대에 응해서 그동안의 여정을 대강 늘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슬쩍 이 상황이 어이없고 희한해서 덧붙인 말에 예르카가 묘한 대꾸를 했다.
“전설에나 나올 일이지만, 우연은 아니란다.”
“네?”
어리벙벙한 느낌에 투란이 눈을 살짝 치켜뜨고 짧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짧지만 깊은 의문에 대해 탁자 건너편에서 볼멘소리로 답을 했다.
“아빠가 한 일이야! 우연일 리가 없잖아!”
나지막하면서도 갈라진 말투가 아르안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문득 투란은 아르안이 경매장 가드들과 충돌했던 까닭, 아버지의 유물이라는 단검을 감춘 완드를 떠올렸다.
‘마법사……?’
마법사가 무슨 짓을 했기에 다 늙은 고무쇠 아저씨가 이 일이 우연히 아니라 하는 것인가?
“무슨 뜻이죠?”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르카가 잠시 탁자 건너편을 돌아봤다.
투란이 그 눈길을 따라가니, 티아라가 고개를 저으며 아르안의 손을 잡고 기대는 모습으로 말한다.
“그냥 이야기해요, 아저씨가…….”
아르안이 입술을 꼭 다무는 것이 이 말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보였다.
예르카는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투란을 돌아보며 다시 말문을 연다.
“투란, 마법에는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 아니더라도 기묘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들이 많다. 꼭 불을 뿜고 번개를 뿌리고 얼음덩이를 날리는 것만이 마법이 아니지. 때로는 그 효과가 아리송하고 의아한 것도 많아. 그중에서…… 전설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마법도 있다. 그래, 너를 이곳에 인도한 마법도 그런 것 중의 하나야. 그 마법은 아예 운명의 인도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도 하지.”
“내가 여기 온 것이 마법의 결과라고요?”
다소 황당해서, 살짝 납득이 가는 아련한 부분을 느끼면서도 투란은 어이없어하며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르카가 이마에 미묘한 주름을 그어 내며 씁쓸한 낯이 되어 말을 잇는다.
“너를 여기 오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너를 여기 오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한 결과가 된 셈이지.”
투란은 입을 다물고 한층 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예르카도 납득한다는 듯, 다시 한번 티아라와 아르안을 흘깃하고는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그 마법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꽤 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투란. 너랑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니야, 오히려 너와 너무 관계가 깊은 이야기지. 네가 여기 와서 우릴 만난 덕분에 우리에게 상황을 풀어 나갈 대책이 생겼다고 먼저 말해 둬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막상 떠들려니 음, 어디서부터 풀어놔야 할까 고민될 지경이네? 일단 투란, 넌 몬스터 로드가 되어 죽었다고 알려졌다. 마을을 떠난 그날 말이야. 뭐, 네 말대로라면 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꼴을 겪은 듯하다만……. 아, 다 집어치우고 투란, 네 친부모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예?”
너무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투란은 맹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예르카, 고무쇠 아저씨가 느닷없이 꺼낸 한마디는 전혀 나올 까닭이 없는 말이 아닌가? 샤오콴 마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투란의 어린 시절에 함께 뒹굴면서 살았던 사람이 뭘 묻고 있는가?
“전혀 생각도 않고 살았구나.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럼, 보석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거지? 알킨 녀석이 목에 걸고 다녔고 투란 네가 반쯤 돌아 버려서 갖고 싶어 했던 붉은 보석 말이야. 그렇군, 역시 그건 잊을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 보석 때문에 두룩칼이 널 죽이려 했다. 알킨에게 너의 보석을…….”
“잠깐, 잠깐만요. 누구요? 두룩칼?”
복잡한 와중에 투란은 손을 들어 예르카의 말을 끊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룩칼이라니, 살면서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투란이었다.
한데 그런 이름을 쓰는 자에게 죽었다고 알려졌다니?
예르카가 살짝 눈을 크게 뜨는 듯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꽤 씁쓸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과 함께 이야기를 잇는다.
“네 양부의 이름이다. 샤오콴 마을에서 쓰던 이름을 버렸지. 원래 알킨과 닮았던 자신의 이름을 바꿔 버렸다. 덕분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놈이 우릴 추적해서 죽이려 하는가 한참 동안 알 수가 없었지.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우리도 두룩칼이란 이름에 익숙해져 버려서 그냥 그렇게 부르게 되었어. 음, 너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야기였나? 아무튼 두룩칼은 갓난애였던 너를 샤오콴 마을로 데려올 때부터 그 보석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수작을 부리고 있었단 이야기야. 그리고 그 수작을 아는 이들을 한 사람씩 죽여서 자신이 한 짓을 감추고 덮으려 했다. 때문에 우리는…….”
“너무 빨라요! 뭔 이야기인가 따라갈 수가 없네! 잠시만요, 잠시만.”
투란은 손을 저어 예르카의 말을 가로막고 잠시 되새김질하는 시늉부터 해야 했다.
예르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너무 빨랐나?’ 하며 말을 멈추고 기다렸지만, 탁자 건너편의 아르안은 그러지 않았다.
“뭘 못 따라와! 당신 신분을 증명하는 마법의 보석을 빼앗았단 이야기잖아! 그리고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을 죽여 댔다고! 우리 엄마도, 우리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로잭 아저씨도 우리 아빠도…….”
“로잭?”
흠칫해서 투란이 그 이름을 되뇌었을 때.
“로잭은 안 죽었잖니!”
찰싹하며 아르안의 등짝을 후려치는 채로 티아라가 나직하게 외쳤다.
갑자기 등짝을 맞아 허리를 배배꼬는 모습으로 아르안이 항의하듯 다시 말한다.
“아저씨는 몇 번 죽었다고 봐야 한다면서요! 겨우 살아남았지만, 계속 도망 다니는 신세잖아요! 아빠는 고생하다 힘들게 죽었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끝까지 걱정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뿐이 아니잖아요! 우리 가족 말고도…….”
“아르안, 그만. 그렇게 늘어놓으면 무슨 이야기인가 전혀 알 수가 없잖니.”
예르카가 조용히, 하지만 위엄과 함께 무게를 담아 하는 말은 씩씩거리는 아르안의 입을 다물게 했다.
가만히 아르안을, 그 곁에서 표정이 나빠진 아줌마 티아라를, 이쪽에서 담담한 척하지만 눈빛이 섬뜩한 예르카를 차례대로 둘러본 투란은 한숨부터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마법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군?
이 틈에 드라고니아는 기대와 어긋났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한숨이 두 배가 될 듯한 투란의 심정은 몰라라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