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14)
‘마법이랑 상관없지! 그러니 좀 닥치고 있어 봐!’
일단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면서 표정을 굳힌 투란은 숨을 고르다가 고무쇠 아저씨, 이제는 고무쇠 할배라든가 영감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릴 듯한 예르카를 향해 입을 열고 소리를 낸다.
“아저씨, 순서대로 이야기 좀 해 봐요. 그러니까…… 그쪽 아줌마랑 딸은 가만히 좀 있어 줄래요? 진짜 티아라라면, 내가 왜 이러는가 알 테지…… 요? 아무튼! 아저씨, 순서대로, 차분히.”
티아라와 아르안이 잠깐 삐죽거리는 입술과 불만 섞인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투란이 한없이 진지한 태도인 것을 보며 별다른 소리를 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르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목청을 가다듬어 더 다른 말을 하지 말라는 시늉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일단은…… 투란, 네가 죽었다는 때부터 하는 것이 좋겠지? 너도 떠난 이후에 샤오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모르잖아? 그래, 거기서부터가 좋겠군. 음, 먼저 두룩칼…… 이젠 그 이름에 너무 익숙해졌구나. 그래, 네 양부가 투란이 죽었다는 말을 전했을 때, 샤오덴…… 그 촌장 할배는 곧바로 알킨까지 포함해서 두룩칼의 가족 전부를 마을에서 쫓아냈단다. 음, 그 부분은 티아라가 이야기할까? 그냥 내가 해? 그래, 그러자꾸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짚어 주렴. 내가 나중에 따로 알아본 부분이랑 로잭이 조사한 부분도 더해서 이야기하자면…… 샤오덴, 그 영감은 네가 몬스터 로드가 되어 마을로 돌아오면 뭔가 해 줄 일이 있었다더군나. 한데 느닷없이 네가 죽었다는 말만 갖고 두룩칼이 돌아오자, 나름대로 격노해서 그런 모양이다. 로잭은 그 부분을 조금 더 파고들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미 죽어 버린 아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더 안 한다면서 입을 다물었다더군. 애초에 그 영감, 마을 벗어난 일에 전혀 관심없기도 했고…… 뭐, 투란 네가 직접 가서 물어보면 뭔 말을 해 줄런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한 십여 년은 거의 연락도 소식도, 우리는 각자 살고 있었다. 사실은 문제가 생기고 있었지만 우린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 문제에 대해 알아차린 것은…… 티아라가 게르민을 만나서, 아, 게르민은 티아라의 남편이고 아르안의 아비 녀석이란다. 그래, 경매장에서 아르안이 빼앗…… 으흠, 가져온 것은 게르민의 유품이란다. 게르민이 샤오콴에 찾아왔다가 티아라랑 눈이 맞…… 어흠! 사랑에 빠졌지. 그리고 티아라의 부모에게 더 이상 샤오콴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도 알아냈단다. 아, 투란 넌 모르는 이야기인가? 둘이 왜 티아라가 태어나기도 전에 샤오콴으로 왔는가…… 어? 이 이야기는 하지 마? 뭐, 저리 눈치 주니 궁금하면 네가 나중에 따로 티아라한테 물어봐야겠구나.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게르민의 소식에 티아라네는 마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거의 곧바로 떠났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경계 도시에 닿기도 전에 암살당할 뻔했고 노골적인 습격도 받았다. 그래, 샤오콴에서 누군가 벗어나 로그람 안으로 들어서려 하면 죽이려는 놈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야. 미리 말해 두자면 이전에 샤오콴에서 살았던, 투란 너를 기억하는…… 보석에 미친 꼬마를 기억하는 작자들은 하나씩 둘씩 제거되고 있었지. 게르민과 티아라 가족이 그 사실을 알아낸 것은 몇 년 뒤에 로잭과 만난 다음이었던가? 아, 따로 알아내서 로잭을 찾아냈던 거냐? 뭐, 조금 헷갈릴 수도 있잖아. 벌써 이십 년 넘은 일이니까…… 아무튼 티아라네가 로잭과 만나면서 상황이 그나마 드러났다. 로잭은 몬스터 헌터로 경험을 쌓으면서 샤오콴 마을 출신이 몬스터 헌터로서 어떤 강점을 갖는가를 알아차렸고, 마을 출신을 하나라도 더 엮어 팀을 만들고 싶어 했지. 그랬기에 마을 출신들이 한 명 두 명 기묘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먼저 눈치채고 몸조심을 하다가 티아라 가족이랑 만났던 거라더군. 맞지? 그래, 그 시점에서 게르민이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단다. 덕분에 티아라 어미, 아비는 꽤 오래…… 죽어 나가는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오래 살았고, 여기까지 와서 나름대로 편안히 잠들 수 있었어. 아, 그만 노려봐라. 길바닥에서 찢겨 죽은 녀석들이랑 비교하면 그렇잖아? 뭐, 늙어 죽어야 꼭 행복한 것은 아니라니까. 따질 것 있으면 나중에 따지고, 어쨌든 투란. 마법사인 게르민, 아르안의 아비 덕분에 생존자를 모으고 여기까지 피신해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게 한 오륙 년 걸렸지, 아마? 그 과정에서 두룩칼이 살인 의뢰를 한다는 것까지 밝혀냈지. 그 두룩칼이 뭐 하는 놈인가 전혀 모르는 채이긴 했다만, 아무튼 최소한의 단서를 얻어 낸 셈이었어. 그리고 십 년쯤 지났을 때, 붉은 보석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있는 알킨을 로잭이 발견했다. 두룩칼을 쫓다가 말이야. 로잭이 그 당시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알킨은 로그람의 대귀족처럼 행세하는 것을 본 거야. 거기에 두룩칼과 알킨이 만나는 광경까지 간신히 확인하고 나서야 로잭은 알아차렸단다, 두룩칼이 누군지 말이야. 그리고 바로 로잭은 확신했다더구나. 어떻게 된 일인가 말이야. 두룩칼의 아들, 몬스터 로드가 되기 전에 얻은 아들인 알킨이 대귀족의 신분일 리가 없는데 그런 귀족인 듯한 몰골인 까닭…… 세상 떠돌면서 로잭은 귀족 가문에서 아이에게 신분 증명으로 지니게 하는 마법의 보석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로잭이 알지 못했던 것, 아직 우리가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너를 증명해야 할 보석이 알킨을 증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만…… 확실한 것은 투란 네가 어린 시절에 그 보석의 마법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부분이었지. 그리고 두룩칼, 그놈이 너에 대해 아는 이들을 세상에서 열심히 지워 버리려 발버둥 친다는 점. 어떤 방법을 썼더라도 그 보석의 마법이 완전히 무효화되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냐? 아르안의 아비는 그 사실을 알아내고 파고들려 했다. 쉽지 않았지. 무엇보다 알킨이 대체 어떤 대귀족의 비호(庇護)를 받고 있는가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붉은 보석이 어느 가문에서 사용되는가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거야.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두룩칼이 그 비호 아래 샤오콴 출신들을, 투란 너에 대해서 아는 이들을 지워 나갈 수 있었는가 또한 의문이었지.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이고, 우리처럼 샤오콴이랑 관계가 있고 너를 알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길은 로그람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뿐이었단다. 하지만 우릴 추적해 죽이려 하는 놈들은 멈출 줄을 몰랐어. 로잭이 발버둥 쳤고 나도 그랬다. 아르안의 아비, 게르민이 마지막이라고, 목숨을 걸었다며 전설적인 마법을 시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티아라의 어미, 아비가 죽은 다음이었다. 간신히 티아라를, 손녀인 아르안을 지키고 죽었지. 게르민은 딸과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뭐든 해야 했어. 자,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을 알겠지? 게르민은 죽었지만 투란 네가 여기 왔다. 알킨이 지닌 보석의 진짜 주인인 네가 말이야!”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 예르카가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의 틈새에 티아라와 아르안이 웅얼거리듯 몇 마디씩 보탰고 투란은 갸웃하며 몇 마디 추임새를 넣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잠시 목을 쉬듯이 예르카가 말을 멈췄을 때, 티아라와 아르안이 투란을 보며 뭔가 기대하는 듯 마는 듯한 묘한 눈길을 보내왔다. 때문에 투란은 말해야 했다.
“어렴풋이 무슨 일을 겪고 있었나 정도는 알겠는데요…… 아저씨, 아저씨도 알잖아요. 내가 몬스터 로드이고, 몬스터 로드가 된 자에게는…….”
“혈연도 마법도 의미를 잃는다는 것? 그래, 그게 다들 아는 상식이지. 하지만 투란, 누구보다도 너를 죽였다고 확신하는 두룩칼이 너에 대해 기억하는 이들조차 지워 버리려고 했다. 그냥 심심해서 그랬을 것 같냐? 로잭이 그 점을 짚어 한 말이 있지, 나도 찬성하는 이야기야. 투란, 너의 혈통…… 네가 모르는 너의 친부모는 그냥 대단한 위세를 지닌 가문이 아니라, 로그람의 대가문 중에서도 다섯 안에 들어가는 귀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단다. 즉, 네가 몬스터 로드가 되었든 말았든, 그 가문의 혈통인 너에게 의미가 있다는 말이지! 난 게르민이 결코 헛된 마법에 목숨을 걸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예르카의 말투가 굉장히 완강하고 고집스러웠다.
투란으로서는 꽤 난감한 상황인데, 돌연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듯했던 예르카의 입술이 느려졌고 표정조차 갑자기 감속(減速)당한 것처럼 완만하게 움직이며 거의 멈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사고를 가속해 놓고 보는 듯한 그 풍경에 투란이 흠칫할 때,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헛소리가 아니야, 투란. 운명의 인도는 정말 그런 마법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대부분 그 희생을 바탕으로 세계에 간섭하는 마법이야. 운명의 사슬과도 닮았지만 더욱 낮은 수준에서 가능한 마법이고, 그 대신에 보다 무거운 댓가를 요구하는 마법이다. 게르민이란 마법사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들이 처한 처지를 뒤엎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괜한 반발은 하지 말고 좀 더 귀를 기울여라. 네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해도…… 지금은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사연을 더 자세히 알아내야 해.
‘야, 그건…….’
살짝 으르렁거리고 싶은 마음으로 뭐라 따지려는 순간, 투란은 예르카의 입술이 다시 제 속도를 찾으며 말을 잇는 광경을 보고 들어야 했다.
“너무 느닷없고 이상해서 당황스럽지? 그래, 나도…… 아니, 우리도 그랬다. 느닷없이 샤오콴을 거치며 살아왔다는 까닭만으로 공격당했고 죽어야 했으니까. 가족을 잃었고, 동반자를 잃었고, 팀 멤버가 이탈하는 꼴을 봐야 했지. 투란, 당장 모든 상황을 이해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일단 며칠 머물러다오. 로잭이 돌아올 테니까. 로잭, 기억하지? 녀석이 이번에 알아보려 간 일이 있어. 어쩌면 너의 진짜 신분, 두룩칼이 알킨을 밀어 넣고 너에 대한 자잘한 소문조차 지워야 할 정도로 사납게 나와야 하는 가문에 대해서 알아 올 수도 있단다. 무엇보다…… 이 녀석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 몰골인 너 자신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지! 우리만 이상한 일을 겪는 것이 아니잖아! 어디 급한 일이 있어도 뒤로 미뤄! 내가 곱게 보내 줄 거란 생각은 안 하겠지?”
반쯤 협박하고 반쯤 졸라 대는 노인의 모습은 투란을 한숨 쉬게 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게 했다.
“안 가요, 어딜 가긴 해도 당장 가진 않을게요. 어쨌든 이 희한한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가는 확인해야잖아요?”
예르카가 환하게 웃었다.
억지로 붙잡아 두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무래도 투란이 남아 주는 편이 훨씬 좋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어째서인가 그런 예르카에게 공감하듯 탁자 건너편에서 티아라도 딸과 함께 안도하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투란은 이 기묘한 분위기를 털어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슬쩍 말머리를 돌려 묻는 말을 꺼냈다.
“근데 아저씨, 상급 몬스터 로드인 거죠? 고무쇠는 그대로 쓰는 것 같은데…… 어떤 부적을 갖고 있어요?”
“응? 부적? 아, 하핫. 아니, 나는 부적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대신 문신을 새겼지.”
도도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늙은 몬스터 로드의 대답은 투란을 살짝 당황시켰다.
“예? 뭘 새겨요?”
“알고 있잖니? 부적을 대신할 문신, 징표라는 것에 대해서 너 어릴 적에도 여러 번 떠들지 않았냐?”
“아저씨, 그거 헛소문이라고 한 사람이 아저씨거든요?”
“어? 내가 그랬냐? 아하핫, 뭐 그랬을 것 같긴 하네. 그 시절에는 말이야.”
따지고 드는 투란에게 예르카는 껄껄 웃고 얼버무리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낯을 구기면서 투란은 보채야 했다.
“아저씨, 어디서 어떻게 어떤 징표를 얻었기에 부적을 안 쓰게 된 거예요?”
“음, 그게 말이지…… 얘기가 긴데, 티아라 뭐 마실 것이라도 내오지 않겠니? 투란도 숙소를 찾아왔다가 황당한 꼴을 겪는 중인데…….”
예르카가 갑작스럽게 연륜을 드러내듯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느닷없이 배려심을 발휘하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가, 어린 시절 고무쇠 아저씨가 늙은 얼굴의 가면을 쓰고 어른스러운 시늉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티아라는 예르카의 말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했다.
“아, 그렇겠군요. 아르안, 엄마 좀 도와다오. 뭐라도 좀 만들어 보자. 여기까지 숙박을 위해 찾아왔다는데…….”
주섬주섬 의자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리듯 말하던 티아라가 갑작스럽게 멈칫하며 투란을 돌아봤다. 아르안이 함께 일어서다가 ‘엄마?’라고 갸웃했고 예르카와 투란은 무슨 일인가 해서 티아라를 바라봐야 했다.
살짝 팽팽해진 듯한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티아라가 투란을 향해 묻는 말을 꺼낸다.
“투란, 다이얀에서 여기까지 온 거…… 어릴 적에 들었던 다이얀의 경매소라든가, 이쪽의 숙소가 꽤 좋다든가, 그 얘기가 기억난 때문이야?”
“어? 맞아, 그랬어. 처음 오는 곳이지만 그 얘기가 기억…… 티아라?”
대답하던 투란은 티아라의 두툼하고 동그랗게 부푼 듯한 볼 위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말을 멈춰야 했다. 뭔가 자신이 잘못 말한 일이 있던가? 어째서 갑자기 저 아줌마 티아라가 우는가?
아르안이 그 의문에 답하고 있었다.
“아빠가 말한 대로네! 정말로 엄마가 기억하는 옛날 일을 매개로 답이…… 투란이 온 거였네!”
투란으로서는 눈만 깜박이며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르카는 뭔가 안다는 듯이 말을 받고 있었다.
“아, 그렇군! 티아라의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서 단서를 끌어낸다고 했지! 아하, 과연 그렇군. 뭐 투란이 직접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정말로 게르민의 마법이 성공했다고 느껴지는군!”
어쩔 수 없이 투란은 한숨을 참음 드라고니아에게 물어야 했다.
‘야, 이건 또 무슨 얘기야?’
―마법에 대한 이야기지, 뭐…….
왠지 귀찮아하는 듯한 묘한 대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