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17)
“로잭이 돌아온 모양이야.”
예르카가 담담하니 일어서며 말하고 있었다.
투란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서니, 예르카가 바로 고갯짓하며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잭이 귀환하는 곳으로 가려는 낌새였고, 투란이 거절할 까닭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몇 걸음 가다 보니 아르안이 복도를 내달리며 예르카보다 먼저 가는 모습이 보였다. 티아라 역시 금방 예르카의 앞에 나타나서 반쯤 달리는 듯, 아르안을 쫓는 듯이 보였다.
꽤 급해 보이는 모습에 투란은 예르카의 뒤로 바싹 붙으며 물어야 했다.
“뭔 일 난 건가요?”
예르카가 살짝 고개를 돌려 투란에게 쓴웃음을 보인 채로 답한다.
“아니, 위험한 일에서 돌아오는 거니까…….”
왠지 뭔가를 변명하는 듯해서 투란은 한번 더 갸웃했지만 그냥 얌전히 예르카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무슨 일인가는 이제부터 로잭을 만나 보면 알 테니까.
그래서 뒤따라 가는 사이에 투란은 건물의 건축구조에 대해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라는 거야.
긴 설명이 끝났을 무렵, 이곳이 여행자를 위한 여관으로 지어지기는 했지만 지상보다 지하 쪽에 더 크고 정교한 구조물을 지녔으며, 외부의 비뚤거리는 담장 아래로 커다란 원형 구조물, 그 원형 안쪽으로 사각과 삼각이 연이어 내접하는 형태로 특이한 마도 술식을 해방하기 위한 준비까지 갖춰졌다는 부분까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덤으로 이 건축구조의 중심에는 지하에서 지상, 하늘의 허공까지 이어진 묘한 굴뚝 같은 부분이 있고 바람의 길을 맞이해서 넓혀지며 누군가를 맞이했다는 것까지…….
‘평소에는 층마다 쓰레기 버리는 구멍으로 뒀다가 마법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맞이한다니, 사람도 쓰레기 취급하는 것 같잖아!’
쓰임새에 대해 듣다가 투란은 이리 투덜거리기도 했다.
어쨌든 예르카를 따라 투란은 지하로 계단을 밟아 빙빙 돌며 내려갔고, 두어 층 정도 되는 아래편에서 계단이 끝나며 위로 열렸던 구멍이 바람이 새어 나가며 닫히는 상황 아래에 반쯤 앉고 엎어진 듯한 몰골인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누구지?’
그 사내에 대한 투란의 첫 소감은 이랬다.
어쩔 수 없었다.
짧아도 더부룩한 수염은 둘째 치고, 얼핏 보면 예르카랑 엇비슷한 나이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로 반쯤 허연 머리카락과 빳빳한 주름…… 패인 꼴이 흉터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목덜미와 귀 사이를 채운 진짜 흉터 덕분에 아니라고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낯선 외모와 함께 풍겨 내는 백전노장(百戰老將)의 분위기, 지금도 막 어디선가 배를 베이고 후벼진 채로 돌아온 듯이 피가 뚝뚝…….
“어? 저게 저렇게 잘리나?”
가슴 한 귀퉁이에서 옆구리까지 이어진 몇 가닥의 흔적, 한데 입고 있는 가죽 위로 덧대진 철사(鐵絲)는 압축한 강철이라 어지간히 예리한 것이 아니고서는 긁힌 흔적만 남는 보호대였다. 그런 것을 베어 찢고 내장이 보일 정도로 상처를 내다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투란이 이런 점을 엿볼 때, 아르안은 비명처럼 소리치는 중이었다.
“엄마!”
배를 움켜쥐고 피 흘리는 사내를 부른 말은 아니었다.
티아라가 한구석으로 바쁘게 뛰어갔고, 그사이에 아르안은 사내를 부축하며 빠르게 묻고 있었다.
“아저씨! 정신 있어? 로잭, 정신 있냐고!”
뒤엉킨 그 호칭이 투란의 뇌리 한구석으로 파고들며 슬그머니 서늘한 느낌이 등골에 맺히는 듯했다.
“비켜 봐!”
티아라가 길쭉한 통, 손잡이가 위편에 달린 것을 가져와 아르안에게 소리쳤다.
아르안이 재빨리 비키기는 했는데, 두 손은 상처를 억누른 사내의 팔을 당겨 치우는 채였다. 티아라는 그 상처 위로 가져온 것을 들이대며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치익, 안개가 손잡이의 불거진 자리에서 뿜어 나왔다.
피와 만난 안개가 거품을 일으켰고 갈라진 상터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억누른 신음, 비명을 지르고 싶어 하는 험악한 표정이 로잭…… 투란에게는 낯선 아저씨처럼 보이는 사내의 얼굴 위로 가득 그려졌다.
꽤 고통스러운 듯한데, 상처는 순식간에 핏자국을 빨아들이며 오그라들고 있었다. 몸에 새겨져야 할 흉터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갈라지고 부서졌을 뼈마저 제자리로 돌리겠다는 듯이 맹렬한 효과였다.
―어마어마한 효력인데? 무슨 포션이…….
‘군납! 군납이야!’
드라고니아가 살짝 놀란 듯이 중얼거릴 때, 투란은 스산한 놀라움을 담아 억지로 목소리를 삼키며 마음속으로 비명 지르듯이 외쳤다. 덤으로 투란의 눈길은 슬그머니 가늘어진 채로 티아라를 흘깃거리기도 했다.
도대체 로잭이라고 하는, 투란으로서는 ‘아닐 텐데?’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게 하는 저 아저씨랑 무슨 원한이 있기에 좋은 포션 다 놔두고 저걸 분무기에 담아…….
‘어? 잠깐, 저 분무기는?’
자유롭게 흐르던 생각이 지난날의 기억 한 토막을 건드렸다.
* * *
“할배, 그냥 물뿌리개면 되잖아요?”
“비 맞은 꼴이라잖아!”
“재료 다 썼는데…….”
“새로 구해 오면 돼! 젠장, 투란! 내 보조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말고!”
주름진 샤오덴 할배가 곁에서 재료를 내주는 소년 투란에게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얌전히 ‘네, 네.’라는 대꾸를 하며 수제(手製) 공구를 내주기는 하는데, 샤오덴 할배의 공방이자 거처인 그늘 너머 저편에서 흘깃거리며 구경하는 오라클 아저씨를 향해 ‘이거 다 아저씨 탓이잖아요!’라고 눈 흘기는 일 또한 잊지 않았다.
도대체 물을 안개처럼 뿌려서 어쩌자는 것인지, 왜 물통에 꼭지 달고 구멍 낸 물뿌리개로 만족을 못 하고 굳이 안개 뿌리개…… 분무기(噴霧器)라는 것을 만들겠다고 할배가 갑작스럽게 변덕을 부리게 했는지…….
어른들의 바보스러움을 소년인 투란은 구원해 줄 수 없다 여기며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 * *
“덴 할배가 만들다 실패한 엉터리……가 아닌가?”
투란의 중얼거림은 낮은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티아라는 이를 듣고 제대로 움찔하는 모습이었고, 투란보다 한 걸음 앞에서 상황을 내려다보던 예르카가 껄껄웃음 짓는 채로 돌아보며 대답한다.
“아, 기억하는 거냐? 너 죽었다는 말 듣고 너 때문에 실패한 것들이라면서 이것저것 다시 만들어 봤다더구나. 그중에서 성공한 것이 저것이라네. 뭐, 잡화점 공방에 가면 동전 한 닢으로 쉬이 구할 수 있기는 한데…….”
“아니! 누구 때문에 뭔 실패를 해요! 와아! 그 할배, 사람 없다고 막 떠넘기네?”
투란이 발끈해서, 저절로 높아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예르카가 더 커지려는 웃음을 참는 듯이 끅끅 하는 시늉을 섞어 대꾸한다.
“몬스터 소재를 가공하고 수리도 하는 자기가 도시 잡화 따위를 못 만들 리가 없다고, 옆에서 나불거리는 꼬맹이 때문이었다고 했다던데? 푸하핫, 그렇게 억울해하지 마라. 그 영감 나름대로 널 추모해 보려는 짓이었을 테니까.”
“그 할배가 누굴 추모해요? 진짜로 실패를 떠넘기려는 수작이었을걸요! 아니, 그런데 왜 저 괴상한 분무기가 여기…….”
투덜거리던 투란은 문득 돌아보는 티아라의 어색한 표정에 말을 흐리고 말았다.
예르카가 한 걸음 나서며 어깨를 으쓱한 채로 말한다.
“그야 어린 소녀인 티아라에게 너를 기억하고 추모할 물건이 따로 없었으니까. 포션을 담아 뿌리는 용도로 오래 사용해 왔어. 어이, 로잭. 정신이 좀 드나? 여기 어딘가, 내가…… 우리가 누군가 알아보겠어?”
“예르카, 고무쇠 영감.”
숨을 몰아 내쉰 대답이 로잭에게서 흘러나왔다.
그 몇 마디와 함께 로잭은 그대로 옆으로 구르듯이 벌러덩 누워 버리고 있었다.
마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온몸의 힘을 다 써 버렸다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에 지난날의 추억을 옆으로 밀어 버린 투란은 슬그머니 티아라에게 묻는다.
“그거…… 군납 담은 거야?”
묻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이 티아라가 잠깐 눈꼬리를 치켜올리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어 숨을 고르면서 대답한다.
“부작용은 있어도 이만큼 확실한 효과를 내주는 포션을 싸게 많이 구할 수가 없잖아. 딱히 로잭을 괴롭히려고 한 짓이 아니야!”
“음, 그렇지. 그렇겠지.”
건성으로 하는 투란의 대꾸였다.
티아라가 다시 투란을 제대로 노려보는 시늉을 하는데, 로잭의 뺨을 두드리며 아르안이 화난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로잭! 어디서 자빠져 자려고요! 얼른 안 일어나? 와, 이 아저씨가 진짜!”
짜악, 짜짝!
제대로 터진 볼 때리는 소리, 그 감촉에 로잭도 어쩔 수 없었던 듯 누였던 몸을 일으키며 맥빠진 소리로 말한다.
“그만! 아직 약효가 남았다고! 그렇게 치면 내가 몇 배나 더 아프단 말이다!”
투란은 문득 짧은 수염이 더부룩한 로잭, 아직도 자신이 알던 진짜 로잭인가 의심스러운 아저씨의 낯짝이 벌겋게 부풀다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광경을 알아차렸다. 저 정도라면 소문의 군납 포션이 살을 지지고 볶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기 딱 좋아 보인다!
‘참을성이 대단하네? 꼭 진짜 로잭처럼…….’
―야, 진짜 맞을 텐데 뭘 그리 못 믿는 거냐?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어딜 봐서! 전혀 로잭이 나이 든 모습이 아닌 것 같거든? 기껏해야 눈가가 조금 닮은 정도인데!’
투란은 강력하게 자신의 기억 속의 소년과 눈앞에서 뒹굴고 있는 상처 입은 아저씨랑 닮지 않았음을 외쳤다, 소리 없이.
한데 예르카가 갑자기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면서 투란을 고갯짓하며 로잭에게 묻고 있었다.
“로잭, 알아보겠나?”
겨우 상처가 맞물린 채로 여전히 온몸을 타고 도는 통증에 눈살을 구기고 있던 로잭이 고개를 들며 새로 열린 시야에 담긴 멀뚱거리는 인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함, 놀라움의 뒤를 이어 꽤 비통한 목소리가 로잭의 입술을 넘어 터져 나온다.
“투란! 그렇게 억울했냐! 유령이 되어 돌아오다니! 그토록 분했구나!”
“네?”
“뭐?”
투란이 맹하니, 예르카가 멍하니 한마디씩 뱉었다.
그리고 아르안은 곧장 로잭의 등짝을 사납게 두들기며 소리친다.
“정신 차려! 산 사람 놓고 뭔 유령이야! 이 아저씨가 아직 정신이 덜 들었나! 엄마, 더 뿌려 봐요! 머리 쪽에 상처가 남았을지도……!”
치이익, 티아라의 손이 딸의 말을 따르듯이 무자비하게 분무기를 쥐고 흔들었다.
이는 로잭의 낮은 신음뿐 아니라 아르안까지 손을 쥐고 팔딱팔딱 뛰게 했다.
“엄마아아앗! 나는 왜에에! 꺄아악!”
때리다 살짝 부은 손을 부여잡고 아르안이 옆으로 뒹굴어 간 사이에 로잭은 눈을 껌벅거리며 자신의 시야를 점검하다가 일어섰다. 그다음에 다시 투란을 보더니, 한 걸음씩 다가오며 가는 눈길로 확인하고 손을 뻗어 손가락 끝만으로 투란을 더듬어 보기까지 하려 했다.
투란은 그 손길을 슬쩍 피하려 했지만, 어딜 봐도 미친놈 같다고 눈빛으로 외치는 채이기도 했지만 어느 틈엔가 곁에서 팔을 잡아 버린 예르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예르카는 노인의 지혜를 발휘하듯, 이럴 때는 그냥 만지도록 냅두라는 눈빛을 강렬하게 번뜩이는 중이었다.
결국 로잭의 손끝이 투란의 가슴을, 어깨를, 볼을 살짝살짝 누르고 스쳐 지나갔고 놀라움을 담은 떨리는 목소리가 로잭의 입에서 다시 새어 나온다.
“얘, 이거, 진짜? 어떻게?”
수많은 의미를 담은 짧은 몇 마디였다.
누가 들어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라고 되물을 듯한 몇 마디였지만, 예르카는 상냥한 노인의 웃음을 담아 한마디씩 대응하는 답을 늘어놓는다.
“투란이다, 진짜 투란이지. 그놈이 빠뜨린 혼돈의 늪에서 산맥 깊은 곳의 마경, 아무래도 세월의 마경이란 곳으로 떨어졌다가 나온 모양이다. 그래, 우리에게는 수십 년이 이 녀석에게는 수년에 불과했다는 말이지. 그리고 나온 곳이 하필이면 브로큰 킹덤 쪽이었나 봐. 이제 겨우 돌아오는 길이었던 모양이야, 나름대로 갚아 줘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세월의 마경…….”
로잭은 신음하듯 되뇌였다.
마치 그 정도면 대강 상황을 알아차렸다는 듯한 모습에 투란은 신기하다는 듯이 로잭을 보며 중얼거림을 토하고 말았다.
“진짜 로잭……? 티아라야 닮은 딸이라도 있지만…… 혹시 닮은 아들 같은 것 없어……요?”
예르카가 먼저 ‘뭐라는 거냐?’라는 눈길로 투란을 바라봤고, 로잭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곧장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황당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린다.
“야! 나 아직 미혼이고 독신이거든! 아들은 무슨!”
“어? 아저씨, 이 젊은 아저씨 로잭이 아니야! 로잭은 항상 아들딸 주렁주렁 매달고 대가족이 될 거라고 했다고!”
투란이 예르카를 보며 로잭을 품평하듯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