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19)
“누구냐가 아니라 어디냐가 제대로 된 물음이죠. 그저 권세와 명망 있는 귀족 하나가 아니니까요. 두룩칼한테 뱃가죽이 긁히기 전에 본 바로는, 알킨을 호위하는 기사 중에 왕실근위대 소속이 있었어요. 로그람에서 왕실근위대를 움직일 수 있는 귀족, 다섯 손가락으로 전부 셀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두룩칼에게…… 내 배에 덧댄 철갑을 쪼갤 수 있는 몬스터 에센스를 내줄 수 있는 귀족은 하나뿐이죠.”
“그러고 보니, 뭐냐 그 철갑을 그렇게 쪼개 놓은 것은?”
예르카가 낯을 펴지 않고 물었다.
로잭은 이 물음에 바로 답하는 대신에 투란에게 눈길을 돌리며 묻고 있었다.
“어이, 투란. 너, 대강 알아보는 것 같더라? 뭔지 알겠…… 아니, 혹시 너도 품고 있는 몬스터 에센스냐?”
하던 말을 바꾸기까지 하는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지만 투란은 빙그레 웃고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활짝 펼쳐진 투란의 손이 도톰한 형상으로 변하며 부드러운 털가죽으로 바뀌었다 싶은 순간, 손가락 끝에서 다섯 가닥의 단도 같은 손톱이 불룩 튀어나왔다.
가까이 있던 예르카가 흠칫했고, 그 순간에 살결에서는 옅은 갈색이 견고한 광택을 머금고 스쳐 가기도 했다. 로잭은 침상에서 어깨부터 일으키며 ‘하! 역시!’라며 웃음 짓고 그 곁에 있던 아르안은 허리춤에 손을 얹어 반쯤 빼낸 칼날을 겨우 멈춰 세우는 중이었다. 티아라 역시 재빨리 침상에 발을 얹고 발목 언저리에서 작은 단도 하나를 뽑다 마는 중이고…….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웃음과 함께 샤벨투스의 발톱을 거둬들였다.
“샤벨투스, 다들 많이 들어 봤잖아요? 갈라진 흔적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던데? 아저씨?”
직접 짚어 묻는 말에 예르카가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듣기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몇 번 안 된다. 볼 때마다 적응 안 되는 것은 항상 똑같지. 로잭, 이런 거였냐?”
“음, 투란 쪽이 더 크고 날카롭다? 샤벨투스의 발톱을 손톱으로 끌어내는 과정도 투란이 더 분명하게 몬스터의 손을 형성했어요. 뭔가 투란이 품은 샤벨투스가 한층 더 강한 놈이었다고 생각되는군요.”
로잭이 신중하게 기억을 더듬고 자신의 상처, 빠른 치유로 흉터조차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대답했다. 예르카가 투란을 흘깃하며 로잭을 향해 물음을 이어 나간다.
“그건 다행이군. 이쪽이 더 강한 편이 좋지. 한데 놈은 대체 샤벨투스를 어떻게 얻은 거지? 마법사고 연금술사고, 몬스터 소재를 다루는 공방에서 쉴 새 없이 찾아도 꽤 드물어 쉽게 손에 못 넣을 텐데?”
“권세를 지닌 후원자가 있으니까요. 몇 달 전에 암시장 경매로 샤벨투스의 작은 발톱 몇 개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잖아요. 우린 그냥 듣고 넘겼지만, 부적을 처바르고 두른 두룩칼은 귀를 기울였던 모양이에요.”
“귀를 기울였다 해도, 감당할 수 있어 보였나?”
예르카가 조금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며 묻고 있었다.
어딘가 두리뭉실한 그 물음에 투란이 갸웃하는데, 로잭은 명확하게 답을 한다.
“약간 미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자제력을 잃을 일은 없어 보였죠. 그냥…… 살육과 혈육에 조금 취해 보인다? 그 정도예요.”
이를 듣고 나서 투란은 예르카의 물음이 무슨 뜻이었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로잭이 한 말도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부적을 처바르고도 미친 것처럼 보이는 상태라고?”
몬스터 로드인 두룩칼이 꽤 기괴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는 듯한 낌새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는 이야기였다. 투란으로서는 확인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로잭이 미묘한 울화가 담긴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대답한다.
“그래, 수십 종의 몬스터를 문장에 담고 수십 가지의 부적, 마도구를 몸에 두른 채로 버티고 있지. 망할 작자가 인간을 포기했나 싶을 정도로 얼빠진 몰골인데, 빌어먹을 몬스터 엠블럼은 그래도 멀쩡한가 봐. 아무튼 돈으로 처바를 수 있는 것은 모두 처바르고 구해 갖고 있다고 봐야 할걸. 덕분에 나처럼 숙련된 몬스터 헌터라도 방심한 순간, 이런 꼴이 되는 거지.”
슬쩍 로잭의 손가락이 벗겨 나간 강철망 셔츠의 베이고 뚫린 흔적을 더듬고 있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해서는 멍 좀 들고 말 텐데 끝내 뱃가죽이 갈라진 것이 굉장히 짜증 난다는 듯한 손짓이었다.
그런 로잭의 심정을 옆으로 치우듯이 투란이 다시 묻는다.
“그런 몬스터 로드를 후원해 준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가 권세를 지니고 그런 짓을 하지?”
예르카 또한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같은 의문을 품어 왔기에 한층 더 깊은 울화를 담은 표정으로 보태 묻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당한 거냐?”
“얘기가 옆으로 새서 말 못 하고 있잖아요. 일단 듣고 나서 궁금한 것 나중에 물어봐요. 투란도…… 아르안, 티아라 너네도!”
로잭이 다시 머리를 침상에 누이면서 힘들다는 듯, 목소리를 적당히 낮추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두어 번 더 깊은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내장이 강한 약물에 절여지며 아무는 것을 확인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 진짜! 로잭! 아저씨 흉내 그만 내고 말을 하라고요!”
아르안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나온 첫마디에 바로 으르렁거렸다.
“왜 말을 막고 성질을 부려!”
짜악, 소리 나게 딸의 등짝을 후려치며 티아라가 외쳤다.
모녀의 모습은 꽤 닮아 있었고, 예르카는 한숨을 쉬었다.
투란이 갑작스러운 풍경에 맹하니 로잭을 보니, 로잭은 살짝 찔끔한 낌새였다가 숨을 깊이 쉬었다 세게 내뱉으며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문을 연다. 마치 방금 전에 모녀가 저지른 꼴은 본 적이 없다는 것처럼!
“어흠! 오랫동안 궁금했잖아? 겨우 알아낸 일을 돌이켜 보면…… 왜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나 어이가 없다고! 알고 나니 어이가 없어서 지난날이 자꾸 떠오른단 말이야! 예르카, 아저씨도 기억하죠? 로그람에서 이십 몇 년 전에 있었던 일, 하도 큰일이라서 로그람 왕국이 떠들썩했던 사건 말이에요.”
“왕국이 떠들썩했던?”
예르카는 갸웃했다.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일 따위는 아무리 떠들썩해도 기억하기 어렵다는 듯한 노인의 태도였다. 어렴풋이 나랑 관계없는 일 따위 기억날 리가 있냐는 듯한 낌새도 무럭무럭 배어 나오는 채였다.
투란은 ‘로그람에 무슨 일이?’라며 어리둥절할 뿐인데, 티아라가 잠깐 눈살을 찌푸리다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 왕자님이 돌아왔네 어쩌네 했던 그 일? 샤오콴 마을에까지 그 소문이 들려왔는데…… 마침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게르민이 오기도 했지. 그리고 우리 가족도 샤오콴을 떠날 계획을 짜게 시작했는데…… 아무튼 로잭 그 소문 말하고 싶은 거야?”
“그래, 그 소문. 결국 왕궁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냥 뜬소문이 아니었나 했던 그 일. 로그람 사람들은 십 몇 년 만에 다시 왕가의 혈통이 돌아왔나 하면서 잔뜩 기대도 하고 들떴지만 우리처럼 춤추는 산맥을 오가는 몬스터 헌터나, 산맥 깊은 곳에서 살다나온 이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전혀 너무 관심 두지 않았던 그 일 말이야. 그 소문이 바로 알킨에 대한 이야기였어. 그 소문이 돌고 나서부터 얼마 뒤부터 샤오콴을 기억하고 투란을 기억하는 이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했지. 그래, 우린 닥쳐온 위험조차 제대로 파악 못 했던 시기였고 그런 소문이랑 연관 짓는 것은 며칠 전까지 상상도 하지 않았어. 한데 관련이 있었던 거야.”
로잭이 말을 하면서 되새겨진 기억에 분한 낯빛을 띠며 천장을 노려봤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예르카가 복잡한 표정 위로 한층 주름진 낯이 되어 말을 멈춘 틈새를 노렸다는 듯이 불쑥 묻는다.
“로잭, 네 말은…… 알킨이 그 돌아온 왕자님이었다는 이야기냐? 그러니까…… 투란이 로그람의 왕자님, 최소한 왕가의 혈통을 잇는 자손이라고?”
“네? 아저씨, 그게 무슨…….”
로잭이 뭐라 하기 전에 투란이 먼저 놀라고 황당해서 입을 열고 말았다.
티아라도 ‘엥?’ 하는 소리부터 냈고 입술을 달싹이며 너무 어처구니없어 아무 소리도 더 못 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르안은 눈매를 좁히고 눈가를 찌푸리면서 투란을 훑어 내래는 눈길과 함께 ‘뭔 저런 왕자님?’이라고 웅얼거렸다.
그리고 투란은 로잭의 말보다 먼저 드라고니아의 말부터 들었다.
―그냥 들어 봐라.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일단 듣고 검토할 일이다.
잠깐 뇌리에 떠올랐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티끌이 되어 저 멀리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라 말문이 저절로 닫히고 말았다.
두어 번 숨을 고른 로잭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면서도 무겁게 겨우 예르카의 물음에 답한다.
“두룩칼이 새로 얻은 샤벨투스의 발톱을 구매한 자를 추적했어요. 로그람의 재상이 나오더군요. 로그람의 사대 귀족이거나 그 사대 귀족보다 위에 있다는 대공작인 재상이거나, 왕실근위대 기사가 주변을 맴돌 지경이라면 그 범위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중에서 몬스터 로드에게 필요한 것, 몬스터 에센스가 담겨 있는 잔재를 여러 번 경매장에서 구해 간 것은 재상의 가문뿐이었죠. 그래도 설마했는데, 샤벨투스의 발톱으로 두룩칼이 내 배를 후벼 대는 꼴을 보니 부정할 수가 없게 된 셈이죠. 네, 아까 말한 대로 경매장의 매물을 추적했고, 제대로 확인했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까지 맞춰질 일이 없던 조각들, 이야기들이 하나로 꿰이더군요. 그 소문, 이십 몇 년 전 그 소문이 뜬소문으로 맴돌다가 흐릿하게 지워진 까닭을 들어 본 적 있나요? 왕궁에서 그 혈통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귀족이 모였기에 소문이 났지만, 결국 확인하지 못해서 없던 일로 흐지부지하니 끝나 버렸다는 이야기였죠. 왕가의 혈통에 대해서 뭘 좀 아는 이들이 열심히 나불거리고 요즘도 주점에서 할배들이 모이면 몇 마디씩 떠드는 일이 그 혈통이 어쩌고 하는 얘기니까 스쳐 들은 적은 있겠죠? 예르카, 그 이야기가 바로 알킨에 대한 것이었고 알킨이 가짜이기 때문에 자꾸 흘러나오는 소문이 이십여 년 동안 뒤틀린 채로 되풀이되는 거였어요. 요즘도 로그람의 주점가를 돌면 가끔 듣는 얘기, 로그람에 왕족이 있다 없다 하는 그거 맞아요. 재상은…… 대공작가의 주인은 왕가의 혈통을 보호하는 중인데 뭔가 잘못되어서 왕궁의 마법이 제대로 인증을 못 한다고 하고, 그 아래라는 사대 귀족 쪽에서는 왕궁의 마법이 인증하지 못하는 혈통은 의미가 없다 하고…… 그래서 로그람의 귀족들이 두 패로 갈려 있다는 말이 있었죠? 그 이야기, 그냥 귀족끼리 권력 다툼하는 소문이 아니라 진짜 그랬던 거예요. 그 와중에 알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하는…… 어린 시절 알킨을 알고 있다고 뭐라 떠드는 이들이 제거당하고 있던 거죠. 예, 우리가 제거당하는 중이었던 거예요. 티아라네 가족, 나처럼 독립해 나온 녀석들, 샤오콴을 스쳐 가다가 알킨이나 투란을 보고 지나간 자들…… 재상의 후원을 받아 두룩칼이 앞에 나서서 제거하고 있던 거예요.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이름도 두룩칼로 바꿔 버린 채로 말이죠. 왜 그랬을까, 아저씨 답은 하나만 남아요.”
말이 멈췄고 로잭의 눈길은 투란을 거쳐 예르카에게 꽂혔다.
예르카는 숨을 고르는 듯하다가 그 눈길에 느릿하고 무겁게 답하는 말을 한다.
“투란이 왕궁의 마법이 인정해 줄 진짜 왕자이니까. 투란에 대해서 아는 이들을 치워 버리고 알킨을 왕자로…… 재상까지 나섰다면 로그람의 왕으로 만들 작정까지 한 셈인가? 왜지? 그 재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왕궁의 마법이 이미 거부했는데 어째서 알킨을, 두룩칼을 후원하고 지지해 주려는 거지?”
“몰라요. 무슨 사정인지 알 바 아니잖아요? 무슨 속셈인지, 왜 우리가 쫓겨야 했는지를 밝혀냈으니까 이제 반격할 때예요. 투란까지 우리 앞에 와 있잖아요? 어떻게든 갚아 줘야죠.”
로잭이 깊은 의문에 빠지려는 듯한 예르카를 향해 거칠게, 낮은 만큼이나 독이 배어 있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이런 로잭에게 동감하듯 티아라도 고개를 끄덕였고 아르안 역시 ‘당연하지!’라고 낮게 웅얼거렸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이마를 꾹꾹 손끝으로 짚다가 예르카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예르카는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며 잠깐 꾹 다물었던 입을 열어 말한다.
“여기까지, 무슨 이야기인가 알아들었냐?”
“정신 나간 소리만 잔뜩 들은 것 같습니다만?”
한 박자 늦은 투란의 대답은 매우 정중한 말투로 꾸며져 있었다.
로잭이 바로 상체를 반쯤 일으키며 으르렁거린다. 투란의 이런 반응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야! 삼십 년 다 되어서 나타난 놈이 몇 년 지났을 뿐이라고 해롱거리는 몰골인데, 그보다는 훨씬 상식적인 이야기잖아! 마법, 암투, 귀족! 흔한 이야기잖아! 뭐가 정신 나간 소리냐고!”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아저씨가 진짜 로잭이라면 왜 정신 나갔나 금방 짚을 수 있을…… 있잖습니까? 나랑 마찬가지로 샤오콴에서 자란 고아였던 로잭이라면 바로 짚을 일이 있잖아요, 고무쇠 아저씨라고 주장하는 예르카 영감님?”
여전히 딱딱하고 정주한 말투로 꾸민 투란의 말이었다.
예르카는 금방 투란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알아차린 듯, 아예 일어나서 날뛸 듯한 로잭의 가슴을 짚어 다시 침상에 누이면서 말한다.
“왕가의 혈통은 귀하다, 그 귀한 혈통이 사라졌는데…… 신분을 증명하는 보석까지 매단 채로 사라졌는데 왜 못 찾았지? 샤오콴이 깊다 해도 로그람 국경에서 그렇게 먼 곳도 아니잖아? 왜지?”
“수상한 점이긴 하군요.”
로잭이 맥이 풀린다는 듯, 힘이 빠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예르카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티아라를 흘깃하며 말을 잇는다.
“로잭, 네가 알아 온 일이 전부 엉터리란 말은 아니야. 마법이 얽혀서 복잡한 사정이 꼬여 있을 수는 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일은…….”
스산하게 노인의 눈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