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0)
“두룩칼과 그 후원자란 놈에게 갚아 줄 뿐이다. 로그람 왕궁의 일이라든가, 재상이란 작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따위 알 바 아니지. 그리고 알킨에게서 투란의 보석을 되찾는다, 그렇지 투란?”
“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붕 위에 홀로 앉아서, 얼마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 부탁하고 앉은 채였지만 역시 예르카의 날카로운 방침은 투란의 뇌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다른 생각 따위는 일단 치워 두고 그 방침대로 하는 편이 좋다고 가슴 한구석이 울리는 느낌이기도 했다.
―뭘 고민하는 척하냐?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어? 야, 척이라니! 고민하는 중이거든! 진지하다고!’
―왜?
반발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전혀 까닭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아니, 왜라니…….’
한숨을 쉬다가 투란은 머리를 휘저었다.
막상 말로 설명하려니 투란 자신도 정리를 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갈피를 못 잡는 꼴이니 드라고니아가 ‘대체 무슨 생각이냐?’라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지경이었다.
‘에, 그러니까…… 내가 오래 살고 이쪽에서 짧게 살았다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그거냐? 쓸모없는 넋두리를 되풀이하는 것뿐이잖아? 내가 간단하게 정리해 줄까?
살짝 으르렁거리는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싹둑 자르고 있었다. 어쩐지 꾸지람도 가득한 듯한 핀잔은 투란을 한숨짓게 했지만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다.
‘어쩌면 그게 낫겠다, 정리 좀 해 줘 봐.’
―이 망할 녀석이! 하아, 알았다. 해 주지!
어처구니없어하다가 드라고니아가 한숨 섞인 말투와 함께 잠깐 여유를 두고 말을 이어 나간다.
―지금 상황에서 선택지는 둘 중 하나지. 그건 알고…… 아니, 느끼고 있겠지? 저 일행과 함께하든가, 아니면 갈라져서 너 나름대로 상황을 다시 검토해 보든가. 참고로 말해 둔다만, 저들은 너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아. 어쩌면 저들이 파악한 정보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라면 자신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일 거야. 즉, 저들은 최대한 너에게 진실을,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새겨둬라. 그러니까 저들의 정보에 따라 움직인다면, 너는 일단 네가 모르는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조력자를 얻는 셈이다. 너 모르는 사이에 너를 두고 벌어진 일에 대해서 저들을 통해 더 많이 알아낼 수도 있겠지. 네 입장에서 새로 검토할 일도 확실하게 발견해 낼 수 있을 테고…… 이게 첫 번째 선택이고 두 번째는 전부 의심하는 입장에서 따로 알아보는 거야. 그럴 경우에 저들의 행적도 되짚어 보고, 저들이 알려 준 일도 따로 알아보고 교차 검증을 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그러려면 첫 번째보다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리는 일이 된다. 무엇보다 게르민이란 자가 걸어 뒀다는 마법, 운명의 인도에 대해서 검증하는 일은 엄청나게 까다롭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몰라. 어쩌면 저들의 일이 원래 너랑 상관없는데 너를 끼워 넣어 버린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 이 두 번째 선택은 치밀하고 한층 더 까다로운 일이 될 거야. 그러므로…….
‘야, 잠깐. 날 끼워 넣는다니? 그러니까 두룩칼이 알킨이나 나랑 상관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그건 꽤나 드문 가능성이다만,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 두룩칼이 정말 너를 키워 주고 죽이려 했다는 양부인가는 만나 보기 전에는 모르잖아? 로잭이라고 했나? 로잭은 확신하고 있는 듯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가능성이랑 다른 자로 위장할 가능성은 거의 비슷하니까. 극단적으로 네 양부의 얼굴을 뜯어내서 붙이고 다니는 자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좀…… 극단적이네.’
어이없는 듯하다가 투란은 얼굴을 구기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죽을 벗겨서 다른 사람 흉내 내는 경우가 투란의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은 네 일이다. 거기에 저들의 도움을 받든 저들을 의심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든, 지금 넌 외면할 생각이 없으니 선택을 해야지. 내 의견을 말하자면, 협력하는 쪽이 좋다고 본다. 너에게 몇 년이지만 저들에게는 몇십 년이었던 시간, 그 시간이 거짓이 아닐 테니까.
‘음…… 그렇긴 하겠지.’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냐?
‘어? 아니, 뭐…… 그냥 로잭이…… 다시 로잭을 만나면 얼굴에 흉터 좀 그어질 수는 있어도, 팔다리 하나 없어졌을 수는 있어도 살아서 만난다면 두어 살 더 먹은 몰골이려니 했거든. 그런데…… 어우, 고무쇠 아저씨보다 두어 살 어리다고 해도 그냥 믿을 지경이잖냐. 하아…….’
―티아라는 네가 기억하던 모습이 전혀 남겨져 있지 않았는데? 그 딸조차도 네가 기억하던 티아라보다 나이 들었다면서? 그쪽은 전혀 상관없는 거냐?
‘응? 티아라는…… 뭐랄까, 그냥 그러려니?’
투란은 갸웃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되짚어 보니, 그냥 포동포동하고 둥글둥글해진 아줌마가 ‘내가 티아라!’라고 우기니까 ‘네, 그러세요!’라고 훌렁 넘긴 듯하잖나. 나이를 먹었든, 딸을 낳았든, 남편이 죽었든…… 어째서인가 티아라라고 한다면 뭐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 듯했다.
―뭐냐, 그게…….
어이없다는 듯 드라고니아도 살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고무쇠 아저씨도 그냥 그러려니 넘긴 셈인가?’
어째서인가 가슴 속에서 키득거리고 싶은 듯한 간지러움이 치솟으며 투란은 로잭 말고는 다들 ‘오, 나이 먹고 변했어!’라고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데 로잭만은 그럴 수가 없다니…….
―로잭만이 너와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냐?
‘어? 아…….’
불쑥 짚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문득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헌터가 된 로잭, 어린 시절에 그토록 되고 싶다는 몬스터 헌터가 된 그 모습은 투란이 예상했던 대로이기는 했다. 하지만 예상했기에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상처 입고 세월을 아로새긴 그런 로잭을 금방 상상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굳이 그런 모습이 되려 하냐고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로잭은 투란의 그런 핀잔에 자신은 아주 능력 있고 멋진 몬스터 헌터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었다. 몸에 흉터가 생긴다면 자신에 대한 전설이 음유시인 입에서 노래가 되어 흘러 다닐 것이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흉터 하나에 전설 하나…….’
어린 시절의 로잭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쓴웃음과 한숨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로 읊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브로큰 킹덤까지 닿지 않는 노래는 많잖냐?
슬쩍 찔러보듯, 어쩌면 놀리는 것인지도 모를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점잖게 말했다. 오는 길에 에테온이나 바로크의 여러 마을, 도시에서 낯선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짚는 듯했기에 투란은 ‘그럴 수도 있나?’라고 살짝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로잭이 그런 전설 한둘쯤 이뤄 냈다면…….
‘엄청 자랑했을 것 같은데? 안 했으니까 없을걸?’
끄덕임을 바로 떨쳐 내듯 고개를 저으면서 투란은 소리 없는 웅얼거림으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를 로잭에게 짚어 주며 놀리려 한다면 두룩칼과 엮인 일 때문이라고 투란을 윽박지르려 할까?
―마음을 정한 모양이구나?
이런저런 상념 속에서 투란이 ‘그딴 변명을 들어 줄까!’라고 생각한 순간에 드라고니아가 느닷없이 짚고 있었다.
‘어? 음, 그런 모양이네?’
자신의 마음이었지만 투란은 어정쩡하게, 스스로에게 쓴웃음을 지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할까를 이리저리 내던지다 보니 슬그머니 마음이 정해진 듯하니까.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음 짓는 듯이 말한다.
―결국 저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잖냐?
‘가짜면 그냥 안 둘 생각이니까.’
슬그머니 부정하는 시늉으로 투란은 대답했다.
―그래? 뭐, 그래야겠지.
‘그래, 그래야지. 그러면…… 해 뜨고 나서……? 저건 뭐냐?’
홀가분하게 아침까지 잠이나 자고 고무쇠 아저씨, 로잭 등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할까 하던 투란은 담장 너머를 흘깃하며 갸웃해야 했다.
―무장했군, 열다섯? 넷? 셋? 한둘이 따로 움직이는데 일행인가 아닌가 알 수가 없는걸? 움직이는 방향도 미묘하게 다르군.
‘포위? 아니, 그냥 멀리서 지켜보려는 셈인가?’
갈라진 두엇, 혹은 서넛의 움직임에 투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머지 열둘 혹은 열셋 정도의 무장한 자들은 곧바로 쳐들어올 듯이 보였다.
그렇다고 담장을 부수거나 뛰어넘지는 않는데, 문가로 빙 돌아와서는 닫힌 대문을 부숴 버릴 듯이 두들기고 밀치는 짓은 사양하지 않았다.
쿵, 쾅, 쿵, 쿵.
두꺼운 벽을 치는 소리가 문짝에서 울려 퍼졌다.
“나와! 이 도둑년! 오늘 아주 끝장을 내주겠어!”
덩달아 터져 나오는 고함은 굳이 무슨 사연인가 몰라도 좋은 의도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말투로서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경매장 가드라고 왔던 자들이 있군. 타우루스를 품은 몬스터 로드는 안 왔는데? 아직 회복이 덜 되었을 리는 없을 텐데, 흐음.
‘한 대 맞고 뒈질 뻔해서 빠진 모양이지. 함께 왔던 둘은 뒤로 빼고 있잖아.’
투란은 문 너머의 풍경을 둘러보다가 드라고니아의 말에 몇 마디 보탰다.
먼저 왔던 이들, 전부는 아니고 둘 정도가 길 안내처럼 붙어 왔는데 뒤로 빼는 꼴이 딱 길 안내만 맡았다는 태도였다. 나머지 일은 앞장선 이들 중에 고함치고 문짝을 두드리는 자가 알아서 한다는 듯, 그 곁에서 문을 부술 듯이 세게 치면서도 적당히 소리만 크게 내는 이들이 할 일이라는 듯했다.
집 안에서 부스스하니 움직이는 낌새를 느낀 투란은 지붕 위에 앉은 채로 멀뚱거리며 그냥 구경하기로 했다.
―음? 로잭이 나오는구나?
‘티아라도 깼네…… 아르안은 그냥 자고 있잖아?’
―예르카는 아예 잠들지 않았는데, 일어나진 않는군?
‘그 아저씨, 원래 게을러. 최대한 버티다가 나서는 성격이야.’
이쪽의 움직임을 평가하며 투란은 문짝이 충격에 서서히 부서져 가는 광경을 확인했다. 부술 생각은 없는 듯했지만 이쪽에서 대답이 없으면 그냥 부숴 버리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엿보이는 셈이었다.
그리고 문이 부서지는 꼴은 막겠다는 듯, 티아라가 대충 포대기를 걸친 듯한 몰골로 나와서 버럭 소리쳐 대꾸하는데…….
“이 썩은 물에 튀겨 죽일 것들이! 한밤중에 뭔 미친 수작이야! 뒈지고 싶다고 여기서 소원을 비는 거냐? 배때기를 확 뒤집어서 가위질해 줄까!”
험악한 말투가 저쪽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투란은 그 말투가 낯익었고, 기억 깊은 곳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또 다른 아줌마의 모습을 바로 티아라에게 겹쳐 볼 수가 있었다.
‘과연, 티아라 맞군. 티아라네 엄마가 저런 말투였어.’
―그런 부분은 부모랑 닮지 않아도 될 듯하다만.
키득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쓴웃음 짓듯이 말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에게 동조하듯, 한편으로는 투란처럼 지난 기억을 떠올린 듯한 로잭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마당을 채우며 뻗어 나갔다.
“티아라, 험한 말 쓰지 말라니까. 게르민이 깜짝깜짝 놀라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너도 고치기로 해 놓고는…… 그런데 누가 온 거야? 어째 내가 아는 목소리 같은데?”
느릿한 말투와 함께 로잭이 마당에 나와 가까운 탁자 곁의 의자를 당겨 앉는 채로 부서질 듯한 문짝을 바라보며 티아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티아라가 손짓했고, 부서질 듯했던 문짝이 열렸다.
―흐음? 마법의 지휘를 맡았나?
드라고니아가 마력의 흐름을 뒤늦게 읽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남편이 남긴 거라 했잖아. 이 숙소, 여관 건물 전체의 마법은 말이야.’
투란은 몇 마디를 되새기며 말하다가 열린 문 너머의 풍경을 보고 살짝 갸웃했다.
조금 전까지 사납던 이들, 실컷 위협적인 외침을 터뜨린 이들이 머뭇거리며 발을 뒤로 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눈길이 로잭에게 고정된 듯한 낌새가 역력한 듯하니, 저 태도는 로잭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이뤄진 듯하다?
이 추측을 증명하듯 목소리 높였던 이가 일행 중심에서 주춤거리며 몇 마디 더듬는 말투로 낮춘 목소리를 흘려 내고 있었다.
“로, 로잭? 어, 어째서…… 어떻…… 어, 없다고 들었는데? 멀리 갔다며?”
“뭔 헛소리야? 뭐, 됐고. 그래 잔금 치르러 온 거지?”
로잭이 통통 팔꿈치를 기댄 탁자를 손마디로 두드리며 되물었다.
실로 뜬금없고 괴상한 물음이었는데, 상대방은 화들짝 놀라면서…… 반쯤 시늉이었지만 반쯤은 진심으로 놀라 달아날 구멍을 찾듯이 눈알을 굴리는 채로 바로 되묻는 말을 한다.
“뭐? 무, 무슨 잔금? 우, 우린 경매품을…… 도, 도난당한 경매품을 찾으러 온 거라고! 너, 넌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는 로잭에게서 투란이 아는 반응을 끌어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