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
‘모자라…….’
핏빛 고리가 가슴에서 튀어나오지 못했다.
살짝 긁어낸 정도로는 저 살점 속에 담긴 정수, 드레이크의 에센스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듯했다.
—너, 지금 뭘 하려는 거냐고! 그만둬! 랄-데미-드라콘은 네가 건드릴 것이 아니야!
익숙해지려나 했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골을 울리는 외침이었다.
그 속에 담긴 한마디는 아주 낯설기도 했다.
‘랄…… 뭐?’
되물으면서도 투란은 멈추지 않았다.
열린 듯이 갈라진 드레이크의 비늘 가죽 틈새, 게으른 고르고니아가 여유롭게 먹기 위해 갈라놓은, 대체 어떻게 가죽만 산뜻하게 갈라놨는지 의아한 틈새로 머리를 들이밀고, 어깨와 등으로 껍질을 밀면서 파인 속살 안에 가슴을 들이대는 투란이었다.
그렇게 가슴이 드레이크의 속살과 닿는 순간,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세차게 울렸다.
—리틀 드래곤! 드레이크 말이닷!
‘에? 그걸 랄…… 어쩌고 그랬어?’
의아함을 던지면서도 투란은 가슴의 문장에 집중했다.
살짝 긁어냈던 작은 살점과 다른, 거의 그의 윗몸과 비슷한 드레이크의 비늘 가죽 속살이 문장과 닿자 핏빛 고리가 검은 톱니바퀴를 배경처럼 두른 채로 바로 튀어나왔다.
꽉 달라붙은 투란의 가슴과 드레이크의 속살이 맞닿은 곳에서 핏빛 고리는 맴돌기 시작했다.
쿠쿵, 쿠쿠…….
갑작스러운 자극에 반응하듯, 드레이크의 속살이 기괴한 맥동을 일으켰다.
‘심장?’
투란은 이 크고 단단한 덩어리가, 자신이 파고들어 가슴을 댄 드레이크의 속살덩이가 심장이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강하면서 부드럽게,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드레이크의 심장이 맥동하며 핏빛 고리에 의해 깨어나는 것인가?
‘얼레?’
등에 닿은 비늘 껍질이 투란을 누르는 듯한 압력이 생겨났다.
다시 시작된 심장의 맥동과 함께, 갈라졌던 살갗의 틈새를 메우려는 듯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듯했다.
허리 아래는 틈새 밖에, 허리 위는 거기 물린 듯한 꼴이 된 투란으로서는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리와 엮여 있는 덩굴줄기 무더기였다. 바닥에 좀 더 강하게 뿌리처럼 스며들고, 투란의 발목과 허리를 감으면서 덩굴줄기는 맞물리려 하는 드레이크의 가죽 틈새에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그 속에서 줄기차게 전해지는 양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조금 더 문장의 핏빛 고리에 집중하며 염원했다.
‘좋아, 삼키자!’
집중된 투란의 정신은 다른 일에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은 채, 오로지 드레이크에게만 집중되어 갔다.
콰아아! 콰아아아아!
입에서 토해져 나오는 울부짖음은 거대하고 웅장했다.
‘어?’
희미하지만 이상한 기분이 투란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드레이크의 큰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면 몰라도, 왜 자신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까? 방금 산산이 흩어지며 사라진, 투명한 거품이 돼 버린 드레이크의 형상을 분명히 봤다.
‘전부 삼켰……는데…….’
드레이크를 삼켰다.
확실하게 투란은 기억해 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뭘까?
의혹에 답하듯, 흐릿한 기억이 마음속으로 번져 왔다.
작고 귀여운, 뿔도 겨우 흔적이 나타나고 날개는 겨우 몸을 버틸 수 있는 정도로 자라난, 이빨도 발톱도 모두 둥글둥글한 작은 것…… 이제 겨우 날갯짓을 하며 나무 위를 뛰어다니고, 세상 모든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아기…….
‘새끼?’
투란은 흐릿한 기억의 한쪽에 그 작은 것이 처박힌 채로 숨이 끊어진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투란이 작은 섬 한쪽에서 봤던 광경과 겹쳐졌다. 다른 것들처럼 완연하게 썩고 있지는 않았지만, 작고 여린 탓인지 큰 놈이랑 다르게 어느 정도 삭아 뭉개져 가던 그 작은 것…….
크르르르르르.
분노가 목젖을 울리며 토해져 나갔다.
투란은 이 분노와 함께 분명한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저것, 저 작은 새끼를 저렇게 만든 것이 무엇이든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갈망……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세상 어떤 것이든 파괴하겠다는 지독한 광기와 욕망!
가로막으려 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각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있는 무엇인가?
희미한 기억, 그 깊게 덮인 장막을 가르며 또렷한 형체가 나타났다.
금빛 모피를 휘날리며, 너풀거리는 금박이 씌워진 듯한 뿔 둘을 까닥대며, 작은 섬 위를 어슬렁거리는 것!
‘에…… 고르고니아?’
순간, 투란은 분노의 한쪽에서 정신을 차렸다.
이 기억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 분노도 그에게는…….
—정신 차려! 휘말리지 마! 놈의 정서에 공명하지 마! 녀석과 정신을 공유하지 말란 말이닷! 넌 몬스터 로드, 투란이다!
다시 한 번, 골을 흔들 듯한 외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흔들려야 할 골수 대신에, 정신이 오싹해졌다.
‘어…… 어랏!’
투란은 방금 자신이 느꼈던 분노, 그렇게 분노하는 자신이 뭔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날개를 지닌 채 입으로 거센 포효를 터뜨리고 네발로 바닥을 찧는, 드레이크였다.
‘난 사람인데!’
새삼스럽고 새로운 자각이 투란의 정신 속에서 피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 투란은 입에서 흘러나온 보다 광폭한 포효가 온몸에 넘쳐 나며, 새롭게 정신을 물들여 가는 것도 알아차려야 했다.
새끼를 잃은 드레이크, 드라고니아가 랄…… 어쩌고 하는 녀석의 분노가 가득한 기억이 투란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 가며 섞여 들고 있었다!
—투라아아안!
다시 한 번 정신을 오싹하게 만드는 강렬한 외침이 분노 속으로 섞여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투란은 겨우 한 가지 물음을 내던질 수가 있었다.
‘이건…… 무슨 능력이야!’
어째서 자신이 드레이크의 기억에 물들어 그 분노를 느끼는가?
분명히 완전하게 드레이크의 정수를 삼켰고 그 과정에서 드레이크가 형성되지 않도록 아주 주의했는데, 이 정신을 갉고 스며드는 이 기분은 대체 뭔가?
갑작스러운 차갑고 오싹한 대답이 바로 투란의 마음속에 얕으면서도 또렷하게 울린다.
—심패시 사이콘(Sympathy Psychon)! 정서 공명을 통한 정신 공유 능력이다! 젠장, 못 알아듣냐? 집중해서 들어! 녀석은 자신의 감정을 네 감성 위에 덧씌우고, 그렇게 해서 서로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만든 다음에 너와 자신의 정신을 하나로 엮어 버린다! 그러니까 놈은 몬스터 로드인 투란 너의 정신을 이용할 수 있다고! 거기에 동조해 버린 탓에 놈의 기분에 휩쓸려서 놈을 그대로 다시 형성하는 중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감정을 억누르든가, 떼어 버려! 그러지 않으면…….
‘잠깐, 드레이크를 그대로 형성해? 내 몸으로, 저 큰 놈을?’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이 반문했다.
그와 함께, 투란은 분노에 휩쓸리는 정신과 무관하게 아주 차갑게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 한쪽을 깨달았다. 자연스러웠고, 언제나 거기 있는 듯한 이 마음은 머리가 혼란스럽더라도 언제나 감정을 싹둑 잘라 낸 채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투란!’
자신을 부르면서, 투란은 퍼뜩 깨달았다.
머리를 세게 맞거나 그냥 통째로 부서진 사람은 의식을 잃고 더 움직이지 못하는 꼴이 되어 쓰러진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인 투란은 아니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더라도 심장으로, 악마의 심장에 자신이라는 자각을 담아 의식을 유지한 채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다!
다음 순간, 악마의 심장이 차갑고 시원하게, 한편으로는 어떤 분노라든가 절망, 갈망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지각 능력을 드러냈다. 지금 대체 그의 몸에서, 그가 있던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어머나! 이게 뭐야!’
—정신이 들었…… 이건 또 뭐야!
투란이 놀란 만큼 드라고니아도 놀라 외침을 터뜨렸다.
작은 섬이 소란에 휘말려 있었다.
사방을 가득 메운 덩굴줄기가 요란하게 한 곳을 향해 넝쿨답지 않은 빠른 움직임으로, 날렵하고 빠른 뱀처럼 모여들고 있는 탓이었다. 그 흐름에 휩쓸려 작은 섬의 땅거죽이 파이기도 했고, 이끼 가득한 흙덩이가 튀어 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썩어 가던 잔해들도 한바탕 뒹굴고 보이지 않던 구석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여든 덩굴줄기는 한 무더기로 뭉쳐 갔다.
엉거주춤하니, 묘한 자세로 선 사람의 형상을 향해 뭉치고 그 형상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사람의 형상은 부풀어 오르고 커져, 그 머리 부분이 이미 사람과 무관하게 변한 것처럼 팔다리, 몸의 곳곳이 사람의 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변이하고 있었다.
콰드득!
서서히 흐르면서 부풀던 듯한 변이가 느닷없이 등이 터지며 뿜어져 나온 날개와 함께 격렬하게 가속되었다.
파득, 파아앙!
날개가 허공을 후려쳤고, 허공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거센 음향이 터졌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사람의 목에서 나왔지만 사람의 것과 다르던 포효가, 굵고 길어진 목에서 보다 선명하고 보다 섬뜩한 힘을 머금은 채로 터져 나온다.
콰아아아아아!
공중을 움켜쥘 듯이 허우적거리던 두 팔이 금빛 비늘 가죽으로 물들어 가며, 세차게 땅을 짚었다. 쿵쾅거리는 기묘한 손짓은 곧 앞발을 사납게 휘두르는 발 구름이 되어 갔다. 그 힘을 이용하기라도 하는 듯, 사람의 몸에 달려 있기에는 너무나 큰 앞발과 등에서 솟구친 날개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듯, 몸도 변해 갔다.
길어진 허리, 굳게 디딘 사람의 다리가 뒷발이 되고 활짝 펼쳐진 채로 다시 펄럭거리는 날개의 중심을 따라 길고 굵은 꼬리가 튀어나와 뻗었다.
크르르르르르.
낮은 목 울림이 긴 목을 통해 흘러 나갔고, 뿔이 솟구치는 머리가 완연하게 드레이크의 형상으로 변했다. 머리가 하늘을 향하고, 세찬 포효가 다시 한 번 넓게 울려 퍼져 간다.
어느새, 작은 섬에는 드레이크의 형상이 분명하게 날갯짓을 하고, 발을 구르며 선 광경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지 생겨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드레이크의 형상은 계속 부풀어 올랐다.
이는 작은 섬을 둘러싼 늪을 부유하던 덩굴줄기가 몰려들었고, 섬을 기어올라 드레이크의 형상 속으로 계속 스며들며 모자란 살집을 더욱 부풀려 주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부정하게 15, 6미터의 크기를 보였던 드레이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30미터에 가깝게 머리와 꼬리를 힘껏 펼친 드레이크가 작은 섬 위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여전히 그 뒷발은 엉덩이와 허리를 휘감는 길고 굵은 덩굴줄기에 휩싸인 채였지만, 드레이크의 눈은 새파란 빛을 띤 눈알을 번뜩이면서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 이런! 저것들이 다시 몰려와!’
드레이크의 정신 속에서 작고 여린 사람의 비명이 터졌다.
다시금 드레이크의 파란 빛이 맥동하는 눈동자가 주변을 휩쓸고, 순식간에 작은 섬 주변의 수백 미터를 시야에 담았다. 가느다란 벌레의 솜털마저도 그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할 정도의 섬세한 시야는 곧장 비명이 터진 원인을 발견하고 집중했다.
수백 송이의 눈깔꽃이 바글거리며 작은 섬 주변을 넓게 완전히 장악하듯이 깔린 광경을 확인했다. 이제껏 섬 주변을 휘감았던 덩굴줄기, 악마의 심장의 영역이 섬 안으로 몰려가며 줄어들자, 그 빈자리로 몰려드는 광경이었다. 마치 이제 억지로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했던 포악한 침입자가 물러섰으니, 다시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듯이 몰려드는 눈깔꽃들.
드레이크의 정신 속에 그 목적과 함께,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가 회상과 함께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모여든 저 눈깔꽃 무리는 이전보다 수십 배는 될 듯한 수를 자랑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파악되었다.
크르르르.
가벼운 냉소 같은 울림이 드레이크의 이빨 사이에서 새 나왔다.
날갯짓 한 번이면 이따위 작은 섬은 까마득한 점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상공으로 치솟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의 날갯짓을 보태면 눈깔꽃이 뿜어내는 눈빛 따위는 닿지 못할 곳을 날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기묘한 생각이 분명하게 드레이크의 정신을 울렸다.
‘작은 섬이랑 거기 실린 거만 날려 먹는 거네?’
드레이크의 몸이 바르르 떨리고, 이 작은 섬의 풍경 한쪽을 향해 파란 빛이 머금어진 눈길이 돌아갔다.
덩굴줄기의 소란 속에 덮어쓰고 있던 흙먼지와 이끼, 풀잎 무더기를 옆으로 굴리며 드러난 작은 것.
그것 역시 섬과 함께 박살 날 것이다. 그것은 이제 움직이지 못하며, 어떤 일에도 저항할 수 없을 것…….
콰아아아아아아!
드레이크의 입에서 분노 가득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 목 깊은 곳, 사람이라면 목젖이 보일 곳에서 새파란 보석 덩어리가 빛을 뿜으며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