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1)
Chapter 225. 과거를 더듬어
“개 짖는 시늉 그만하고, 기한 다 된 잔금 이야기나 제대로 해 봐. 내 펜던트는 거의 다 밝혀진 것 같은데?”
품을 헤치며 가슴 아래쪽에 깊이 걸려 있던 목걸이를 꺼내며 하는 말이었다. 자신감이 넘쳐나고 상대를 단숨에 목을 썰어 죽일 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누가 듣더라도 확실하게 상대방의 급소를 푹푹 찔러 넣는 듯한 낌새까지도 담긴…….
‘와, 이제야 로잭 같네!’
투란은 히죽 웃으며 소년이었던 로잭이 험악한 몬스터 헌터 팀들 사이를 오가며 샤오콴 마을의 작은 장사꾼 노릇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리다고, 작다고 얕보던 이들은 샤오콴 마을 안에서 로잭을 죽이지도 때리지도 못한 채로 그 거래에 휘둘리고는 했다. 한계에 다다르면 하는 짓이라고는 마을 밖으로 나서면 죽여 버리겠다는 위협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고 마을 밖으로 나가던 이들은 로잭이 꾸민 함정에 빠져 버리고는 했다.
―야, 어린 시절이라며? 함정에 빠뜨린 다음에 죽여 버렸다는 거냐?
이어지는 투란의 상념에 드라고니아가 흠칫해서 묻고 있었다.
‘응? 아니, 죽은 사람은 몇 안 되는데…….’
―뭔 인간이 어린 시절에 죽인 사람이 몇이 안 된다는 거냐?
‘뭐, 거기가 원래 좀 그랬다니까. 로잭은 그중에서도 좀 사나운 편이었고.’
―너는?
‘난 안 죽였는데?’
키득거리는 듯한 대꾸를 하며 투란은 로잭이 꺼낸 목걸이, 둥근 모양에 가지런히 반짝이는 돌이 둘레를 따라 여럿 박혀 있는 형태를 관찰했다. 지붕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이미 드라고니아가 뿌려 둔 프로브 덕분에 투란은 반짝이는 돌이 둘레에 열둘이고 중심이 하나, 모두 섬세한 마력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뭐냐, 저건?’
흡사 홀시딘의 태엽 시계를 닮은 듯한데, 시간을 가리키는 바늘이 없는 형태라고 할 수도 있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계가 맞다. 지정된 기한이 되면 마력이 채워지지. 그 기한 내에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중심에 있는 마법이 해방될 거야. 보통 저주이긴 하다만.
‘어디서 듣던 마도구인데?’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은 살짝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잘 다루지 않으려는 마도구지만, 나름대로 유명하니까. 계약의 증표라고 어디서라도 한두 번은 들어 봤을걸. 실제로 저것까지 동원해서 계약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만, 계약의 징벌이 내리는 일이 너무 유명하니까.
미묘하게 놀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덧붙였다.
‘로잭, 대체 왜 저런 걸…… 어? 아!’
투란은 의아해하다가 금방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로잭의 목소리가 담장 안을 채우듯이 마당을 누비듯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입 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라. 헛소리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잔금은 어떻게 되었지?”
먼저 한 말에 대해서 주춤거리며 뭐라 입술을 달싹이는 광경을 보자마자 쏘아붙인 말이었고, 이는 확실하게 도둑년을 외치며 들어온 이를 압박하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는 채로 뒷걸음치며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었으니!
‘음? 너무 심하게 겁먹는데?’
투란이 먼저 갸웃했고, 쳐들어온 쪽의 몇몇도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들의 중심에 선 이를 흘깃거리면서 낯을 찌푸리고 있었다. 티아라가 띄워 놓은 마법의 불이 너울거리며 마당을 밝히다가 그쪽으로 붙는 탓에 그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 잘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그중 한 명이 뭐라 따지기까지 했다.
“마커스, 왜 그러셔? 잔금 줄 일이 있는 거셔? 나중에 준다고 하면 되잖아? 지금은 경매품부터 찾아야잖아? 왜 그러냐니까?”
삐딱하니 캐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도둑년을 외치던 태도조차 잊은 채로 마커스가 더 심하게 뒷걸음치는 모습이었다.
로잭이 그 꼴을 보며 피식 웃음과 함께 차갑게 다시 말한다.
“약속한 기한 안에 잔금이 지급되지 않았을 경우, 물품은 바로 회수하는 데 찬성했지? 내가 어디에 가서 뭘 하든, 잔금은 길드의 계정으로 언제든지 지급할 수 있기도 했지? 그런데 어째서 이 펜던트는 여전히 마커스가 잔금을 치러 약속을 이행했다는 표식 대신에 벌 받을 준비가 끝났다고 반짝이지? 마커스, 마지막으로 묻겠어. 왜 아직 잔금을 지불하지 않았지? 왜 회수된 물품을 가져온 아이를 도둑으로 몰면서 쳐들어왔지? 점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
찰칵, 줄줄이 읊조리던 로잭의 손목이 탁자를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두드릴 때랑 다른 손놀림은 손목에 걸린 굵은 끈처럼 보이는 팔찌를 탁자에 두드리는 꼴이었고, 단숨에 로잭의 손에 장전된 석궁이 쥐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음?”
가만히 내려다보던 투란이 흠칫했고, 저편에서 마커스를 둘러싼 채로 이 상황이 꽤 희한하다고 어리둥절하던 일행도 움찔했다.
빈손이었다가 갑자기 단단히 장전된 석궁을 한 손에 쥔다, 틀림없는 마법이었다. 그 마법으로 꺼낸 석궁이 한손잡이 쓰임으로 만들어진 듯 작았지만 굵직한 것이 엄지 정도 되는 쇠뇌살의 심상찮은 꼴은 스산하고 위압적이었다.
로잭은 그 석궁을 보는 눈길에 답하듯 말을 잇고 있었다.
“기사처럼 오러 가드를 올릴 수 없다면 피하는 것이 좋을 거야. 사람 서넛은 겹쳐진 채로 꿸 수 있거든.”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가 한번 체험해 보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한데 마커스 주변의 한 명이 눈을 부릅뜨며 갑작스럽게 외쳤다.
“저런 썩을! 오우거 슬로터잖아!”
마커스는 물론이고 그 일행 모두가 화들짝 놀라 몇 마디씩 쏟아 낸다.
“뭐? 진짜?”
“철갑 오우거를 뚫었다는 그거라고?”
“야, 세상에 스무 자루밖에 없는 거잖아!”
“저게 진짜 그 석궁이라고? 한손잡이인데?”
“이런 젠장, 한손잡이 석궁 맞아!”
“오우거 슬로터라고? 이름이 로잭이면……?”
“설마?”
분분히 떠들던 이들이 이미 뒷걸음치던 마커스보다 더 뒤로 물러섰다.
마커스는 갑자기 자신이 로잭을 마주 보는 맨 앞줄인 것에 화들짝 놀라는데, 함께 온 일행은 마커스의 등과 어깨를 떠밀며 절대로 앞으로 나서지 않을 것을 몸짓으로 선언하고 있었다!
“이, 이봐! 너넨 날 지켜야…….”
이렇게 당황한 마커스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다른 말들이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겹쳐서도 꿰뚫리는 거였지?”
“나란히 서,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
“좁아!”
부서진 큰 문턱에 끼인 것 같은 꼴도 잠시였고 곧 마커스의 뒤로 날개를 펼친 것처럼 일행이 늘어서고 있었다.
로잭은 그 소란을 잠시 지긋이 바라보다가 툴툴거리는 말투로 목소리를 높인다.
“장난 그만하고! 마커스, 대답해라. 너, 어째서 잔금도 치르지 않고 회수된 물품을 빼앗으러 왔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거냐? 어째서? 내가 어딜 가서 뭘 하는지…… 마커스, 너 설마?”
“아, 아니…… 쿨럭!”
급하게 손을 저으며 로잭에게 대꾸하려던 마커스가 갑작스럽게 입으로 피를 토하며 휘청였다. 일행이 화들짝 놀라며 마커스를 바라보다가 로잭을 보며 이 상황이 뭔가 가늠하려 했다.
“뭐냐, 저놈은? 경매장의 마커스? 왜 날도 새기 전에 와서 저러고 피를 토하지?”
느릿하니 무겁게 예르카의 목소리가 새로이 마당에 깔리고 있었다.
로잭이 흘깃 예르카 쪽을 보고 바로 눈길을 돌려 마커스에게 꽂아 넣는 표정을 짓는 채로 말한다.
“아무래도 저 녀석, 내가 어디 가서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던 것 같거든요. 대체 어째서일까? 내가 어디에 뭘 하러 돌아다니는지 알 리가 없는 녀석이 어떻게 죽었다는 확신을 하고 저렇게 쳐들어왔을까요?”
마커스는 피를 게워 내며 비틀거리느라 대꾸를 못 했다.
마커스의 일행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몰라 당황한 채로 마커스에게서 두어 걸음씩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독이라도 끼얹었거나 괴상한 마법이라도 쏘인 것이라면 결코 그 곁에 있고 싶지 않다고 몸짓으로 외치는 셈이었다.
예르카는 느릿하게 졸린 낌새를 가득 피워 내는 채로 로잭이 앉은 곁으로 의자 하나를 당겨다 놓고 앉으면서 마커스의 몰골을 살피고는 말한다.
“저 꼬라지, 그 펜던트랑 관계있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저 녀석한테 너에 대해서 안부 묻는 누군가가 네 행적을 추적했다는 말이겠지. 음, 그런 경우라면 너 배가 찢어진 채로 돌아온 것도 어쩌면 관계있겠는데? 몰래 움직였는데 들켰다며?”
“……그랬죠.”
로잭이 살짝 침울하게 대꾸했다.
마커스가 연신 입가를 닦아 내다가 막 침과 피를 섞어 뱉고서는 갈라진 목소리로 외친다.
“나는 몰라! 난 그저 다릴이 한 말을 들었을 뿐이야! 네가 잘나가는 몬스터 로드에게 시비 걸러 갔다고, 그러니까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다릴이 그랬어!”
“다릴?”
로잭이 낯을 찌푸린 채 이름을 되뇌였다.
예르카는 ‘어, 그 녀석?’이라고 얼핏 아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티아라가 한구석에서 음울하게 흘려 내는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경매장의 마법사야, 로그메이지일 거야. 본명을 감추고 떠돌다가 경매장에 고용되었다고 들었어. 다릴이 아마 경매장에서 새로 꾸민 이름일걸. 가끔 우리 집 근처를 구경하고는 했지.”
“흐음, 게르민의 유품에 관심이 많았겠군. 마커스, 그놈에게 게르민의 완드를 넘기려 했나?”
로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앞뒤가 맞았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마커스는 당황해서 머뭇거리다가 로잭이 한 손으로 가슴팍에서 만지작거리는 목걸이를 흘깃하고는 서둘러 입을 연다.
“사겠다고 했어. 대금은 경매장의 일을 해서 갚겠다면서…… 돈을 모을 수가 없다고, 최근에 와서야 살 수 없다고 했어. 그래서 경매에 내놓을 준비를 해 놨는데…… 로잭, 네가 죽었을 거라고 잔금 기한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자신에게 완드를 맡겨 달라고 했어. 완드가 있으면 거금을 금방 마련할 수 있다고…….”
흐릿해지는 말끝을 확인하며 로잭이 어이없다는 다시 입을 연다.
“웃으라고 하는 소리냐?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이 펜던트를 만들어 준 트루세이어에게 나만 들었냐? 마커스, 너 그렇게 멍청한 놈이 아닐 텐데? 트루세이어가 중재를 해 줬는데 무시하고 나 죽었다는 말만 믿고 잔금을 치르지 않고 완드는 경매로 내놓지도 않았다가 경매장에 빌붙은 로그메이지에게 넘기려 했다고?”
어이없어서 나오던 말이 점차 길어질 듯할 때, 예르카가 불쑥 끼어든다.
“마법이로군.”
“……아저씨?”
로잭이 낯을 찌푸리며 뭔 소리냐고 예르카를 바라봤다.
예르카가 몇 마디 더 하려는 찰나, 마커스의 일행 중 누군가 버럭 소리친다.
“마커스! 너 마법에 걸렸냐? 경매품으로 일찌감치 내놓을 물품을 여태 끼고돌면서 다릴에게 만지작거리게 해 놓고 벌써 내 줬어야 할 돈도 안 내놨다고? 미친 거 아니면 너 마법에 홀린 거잖아!”
예르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한 마커스의 일행을 둘러보는 채로 말을 보탠다.
“내 하고 싶은 말이로군. 뭐, 돈 없는 로그메이지가 뭔가 만지작거리고 싶어 할 때 자주 하는 짓이 사람 홀리는 마법이라고는 하지. 한데…… 그렇게 돈 없는 로그메이지에게 그렇게 쉽게 홀리기도 어려울 텐데? 경매장에서 한몫하는 녀석이 어찌 된 일이냐, 마커스?”
가만히 짚어 묻는 말에 마커스는 답하지 못했다.
스스로 혼란스러워서 당황한 표정만이 마커스의 얼굴에 가득할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커스를 중심으로 당혹스러움이 번져 가는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내려다보던 투란은 갸웃하면서 마커스를 조금 집중해서 바라봤다.
‘트루세이어의 저주란 말이지, 피를 토한 것은?’
―일단 그래 보인다. 트루세이어가 만든 계약의 증표라니, 징벌이 보통이 아닐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받아들였나 모르겠군.
‘으흠, 거기서부터 로그메이지란 작자가 끼어들었을 수도 있지. 뭐, 크고 넓게 이 상황을 해석하자면…… 결국은 죽었다는 티아라의 남편이 저질러 놓은 거대한 마법에 휩쓸린 꼴이겠지만.’
―음? 아, 그렇군. 완드가 돌아온다고 했지. 이것 참, 묘하군.
드라고니아가 조금 씁쓸하다는 듯, 납득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에 공감한다는 듯이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투란은 갑자기 불쑥 치민 생각에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응? 뭘 찾냐?
‘일이 이 지경이 되고 있는데, 갖고 싶은 것을 아르안에게 빼앗긴 로그메이지는 어디에 있는 거지?’
―어? 아!
드라고니아가 흠칫할 때, 맹렬한 폭음이 집 안에서 터져 나왔다.
로잭이 바로 의자를 튕겨 내듯 일어났고, 돌아서서 집 안으로 뛰어들어 가며 외친다.
“예르카, 여긴 아저씨에게 맡길게요!”
“아르안!”
문가에 기대고 있던 티아라가 놀라서 먼저 집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모락모락, 검은 연기와 불꽃의 자취가 집 안에서 너울거린 것은 금방이었다.
‘야, 저놈 대체 어디로 숨어든 거야? 왜 몰랐어?’
드라고니아에게 투덜거린 투란은 지붕에서 바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