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3)
“무슨 징벌을 계약해 둔 거냐? 로잭, 네가 뭘 안 해도 저절로 저리될 수 있는 거였냐?”
노인의 묻는 말에 로잭이 고개부터 젓고 답했다.
“내가 뭘 한 것이 아닐걸요. 저 녀석…… 마법사의 암시? 현혹이려나? 그런 짓거리로 트루세이어가 중재한 계약을 비틀 수 있다고 착각한 모양인데요. 아니면 그 암시인가 현혹을 걸어 준 이 녀석 실력이 변변찮아서 이렇게 되고 나니 벌받을 일이 겁나서 망가졌을 수도 있겠죠.”
심드렁한 말투였고 가볍게 내뱉는 태도였다.
예르카가 혀를 차며 로잭을 흘깃하고 마커스를 턱짓하며 다시 말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경매장의 관리자에 속하는 놈이잖아. 저리 끌고 온 모양을 봐라. 제대로 상황을 전해 주지 않으면 시비 걸었다고 다른 경매장 패거리들까지 똘똘 뭉쳐서 몰려올 수도 있어, 어쩔 거냐?”
이에 로잭은 신중하게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한데 문득 로잭의 눈길이 투란을 스치나 싶더니, 곧바로 픽 새는 웃음과 함께 로잭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샤오콴처럼?”
이는 예르카를 찌푸리게 했고,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뭔 소리야?”
샤오콴 마을에서 이런 계약과 얽힌 문제를 어찌 해결했던가?
로잭은 투란이 어리둥절해하는 꼴을 보며 한층 더 해맑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면서 대답한다.
“마을 밖에는 숲이 있었지. 문제가 생겨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면 다들 거기 가서 해결하고 왔잖아?”
“둘이 가면 한 명만 돌아오는 숲이었잖아.”
투란은 어이없어 되뇌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숲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냥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 악명이 자자한 마수와 괴물이 와글거리는 놀이터나 마찬가지인 흉악한 곳이었다. 거기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사생결단(死生決斷)을 내고 살아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얘기일 뿐이었다.
샤오덴 할배가 시끄럽다고 내쫓고, 시비 걸린 이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서로 간의 문제를 해결했다.
예르카도 조금 늦게 기억이 떠오른 듯.
“여기가 샤오콴이 아니고, 이 주변에는 그런 숲 같은 곳 없어. 좀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살짝 으르렁거림을 담아 말을 하고 있었다.
로잭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진지한 말투로 느릿하게 다시 말했다.
“그냥 옛날 생각 잠깐 났을 뿐이라고요. 뭐, 어쨌든…… 이봐, 마커스의 동료들. 여태 쫑긋쫑긋 들었으니 대강 사정은 짐작할 수 있지? 아직 잘 모른다면, 친절하게 몇 마디 더하도록 하지. 간단히 말하자면 나랑 마커스는 트루세이어의 중재를 받아 계약을 했어. 마커스는 로그메이지의 마법을 이용해서 그 계약을 회피하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저 모양이고, 마커스를 도운 로그메이지가 이놈이지. 다릴인지 핸슨인지, 그 정체조차 애매한 작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이 둘이랑 나는 아직 볼일이 있거든. 어떻게 내가 죽었다고 확신까지 하고 있었나, 날 죽이려 한 놈들이랑 한패인가 정도는 나도 알 권리가 있잖겠어? 그러니 부탁하지, 경매장에 돌아가서 이 일에 대해 보고 들은 대로 이야기해 줘. 괜찮지? 혹시 동료인 마커스를 두고 가는 것이 걱정돼? 마커스가 앞으로 겪을 일을 동료로서 함께 겪고 싶어? 희망한다면 그렇게 해 줄 수 있기는 한데 말이야…….”
로그메이지의 목덜미를 잡아 흔들며, 언제라도 목을 부러뜨릴 수 있다고 과시하면서 마커스 역시 별다른 대우는 없다는 점을 험악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확인해 주면서 구슬리는 말투로 꺼낸 이야기였다.
마커스 주변에 무릎 꿇고 앉은 이들이 슬그머니 무릎걸음으로 멀어지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모습을 보인 것은 금방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슬쩍 묻기도 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응, 가도 돼. 이야기 잘해 달라고.”
로잭은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밝은 웃음을 담은 표정으로 아주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가라도 보채는 모습이었다.
곧 마커스와 동반했던 일행이 마커스만 남겨 놓고 떠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눈가 한구석으로는 로잭을 흘깃하면서 투란은 어린 시절부터 사냥꾼을 꿈꿨던 소년이 그 꿈을 꽤 깊이 실현해 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설득하는 거랑 사냥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특화 마법을 쓰는 로그메이지를 추적한 일이라면 모를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기묘한 감상에 대해 핀잔했다.
투란으로서는 티 나는 한숨을 참을 수밖에 없는 시비였고 소리 없이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잭이 꿈꾸던 사냥꾼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사람이든 짐승이든 괴물이든…… 뭐든 자기 원하는 대로 몰아넣고 사냥할 수 있기를 바랐거든. 야심만만한 어린애였지. 아, 역시 저렇게 늙은 아저씨 꼬라지는 낯설긴 하네.’
―뭔가 사냥의 의미를 엄청나게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만.
‘뭐, 그랬다고. 그냥 넘어가라, 좀!’
결국 입꼬리에 울컥한 낌새를 흐릿하니 담으며 투란은 로잭과 예르카, 티아라와 아르안이 이제부터 어찌할 것인가를 묻는 표정을 꾸며 둘러봤다. 굳이 그렇게 눈길을 돌리지 않아도 로잭은 티아라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티아라, 지하실 좀 열어 줘.”
“지하실? 식량 창고?”
“아니, 게르민의 실험실 말이야.”
“어? 거긴…….”
두툼한 티아라의 볼살이 살짝 떨리며 머뭇거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곁에 있던 아르안이 바로 티아라에게 팔짱을 끼고 들러붙는 자세로 말한다.
“엄마, 아빠가 남긴 곳이야. 꽉 닫아걸고 쓰지 않으면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아?”
티아라는 떨떠름하니 바싹 붙은 딸의 얼굴을 노려보는 채로 한숨을 섞어 대꾸했다.
“로잭이 무슨 마법사냐? 대체 어쩌려고?”
뒷말은 로잭에게 묻는 소리였다.
로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로그메이지를 쓰윽 가슴팍까지 들어 올리면서 답한다.
“게르민과 자주 하던 짓. 관측차폐라고 했던가? 그 안에서 하는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이 없으니까. 열어 줘.”
“아르안, 네가 열어 주렴. 완드도 있으니 별문제 없을 거야.”
티아라가 슬쩍 딸을 떼어 내며 말했다.
아르안이 움찔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앞장서는 아르안을 보며 로잭은 홀로 남은 마커스까지 다른 손으로 덜미를 잡아채 올리며 뒤따랐다. 사람 둘을 한 손에 하나씩 쥐고 질질 끌며 걷는데도 로잭의 걸음걸이는 별로 힘들이지 않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투란이 슬쩍 그 뒤를 쫓으려 하는데, 예르카가 불쑥 말한다.
“저 문짝 부서진 것은 어쩌냐? 바로 복구되지 않을 듯한데? 안쪽이야 그렇다 쳐도 저건 대충 고쳐 놓는 편이 좋을 텐데?”
티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다.
“정문이니까 그래야죠. 내게 맡겨요. 일단 나무판으로 덧대는 정도로 충분할 테니…… 내일이면 문도 다 고쳐질 거예요.”
걸음을 늦추고 듣고 있던 투란은 문득 기억의 밑바탕에서 치솟는 한 가지 일을 되새겼고, 바로 입으로 옮겨 뱉고 말았다.
“티아라, 문은 열고 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제는 잘 알지?”
“뭐?”
티아라는 물론, 예르카도 어리둥절했다.
한데 이미 안채로 들어서던 로잭이 이를 듣고 바로 웃음을 터뜨리잖는가.
“푸핫, 푸흐흐핫! 야, 투란! 그게 언제 적 일이냐! 푸하핫.”
예르카는 계속 어리둥절해서 ‘얘들이 뭐라는 거야?’ 하는데, 티아라는 뒤늦게 알아차린 듯 투란을 흘겨보며 버럭 외친다.
“그딴 쓸데없는 일은 기억하지 마! 아, 정말! 까불지 말고 얼른 들어가! 로잭, 처웃지 말고 빨리 할 일이나 하라고!”
이미 안채 깊이 들어갔던 아르안이 갑작스러운 웃음과 외침에 놀란 듯이 다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왜? 뭔데?’라고 눈을 깜박이는 사이, 로잭이 재빨리 몸을 사리듯이 움직였고 투란도 날쌘 걸음질로 그 뒤를 쫓았다.
예르카가 한번 더 갸웃하다가 느릿하니 몸을 일으키며 티아라에게 묻는다.
“뭔 사고 친 적 있냐?”
“부서진 문에 판자를 덧대고 그냥 벽에 못을 박은 적이 있어요. 투란에게는 그다지 오래된 일도 아니겠지만, 하아…… 대체 몇십 년 만에 들춰 내냐고! 아르안보다 어릴 때 저지른 실수인데!”
투덜투덜하면서 티아라는 곧 망치와 못, 판자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예르카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무래도 예르카 자신이 샤오콴에 머물 적이 아니라 떠난 다음에 일어난 일이 모양이었다. 예르카가 샤오콴에 머물 적의 티아라는 아직 망치나 판자를 들고 휘두를 정도로 큰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적당히 하고…… 일 생기면 바로 소리쳐라.”
노인의 염려를 남기고 예르카도 바로 로잭이 향한 실험실로 향했다.
―재밌군. 마법인 척해 놨는데, 굳이 마법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아도 방음(防音)과 방진(防振)이 가능해. 완드랑 호응하는 꼴을 보니, 기본적으로는 마력을 축적해 두다가 완드를 대신할 목적도 있는 모양이다. 흥미로워…….
‘그만해! 여기 감상하러 온 거 아니잖아!’
떠드는 드라고니아에게 지친 듯이 윽박지르면서 투란은 로잭이 하는 짓을 열심히 지켜보는 척하며 눈에 힘을 줘야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다 보니 자꾸 주변을 둘러보고 살피고 싶어지니까.
로잭은 아르안이 문가를 지키듯이 선 다음부터 바로 로그메이지와 마커스를 내려놓았고, 천장 들보에 걸린 밧줄을 당겨 길이를 가늠한 다음에 곧장 둘을 묶어 매달고 있었다.
대롱거리며 고기 말리듯이 매단 둘을 가만히 보다가 로잭이 투란에게 불쑥 묻는다.
“어느 쪽부터 깨울까?”
“음? 내가 골라? 그러면, 손이 굽고 털 나는 마커스부터.”
투란이 갸웃하는 척하다가 냉큼 대답했다.
아르안은 문가에서 ‘엥? 뭔 소리야?’라며 기웃거렸다.
로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마커스의 머리를 잡아 들며, 그 코끝에 뭔가 문질러 주다가 팔딱대며 눈을 부릅뜨는 마커스랑 눈길을 마주했다. 차갑게,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혹독한 말투로 로잭이 마커스에게 말한다.
“지금 몸 상태를 느낄 수 있지? 뭔지 알겠냐?”
“나, 나는…… 음믓, 나는 거래를, 거래를 깨, 깨지 않았…… 음믓!”
대답하던 마커스는 자신의 목울림이 기형(畸形)으로 뒤틀리는 것을 깨닫고 덜덜 떨고 있었다. 앞으로 인간으로서 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밖에 없는 변화, 마커스가 울부짖는 소리를 쏟아 낸 것은 그 변화가 무엇인가 확신한 다음 순간이었다.
“안 돼애애, 메에에엣! 로, 로잭! 난, 난 속이지 않았, 메엣! 사, 살려 줘어!”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로잭이 마커스의 목을 쥐어 소리 나지 않게 조르며 차분하게, 한층 더 냉혹하게 말한다.
“그런 말은, 여기 와서 아르안을 도둑년이라고 부른 다음에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 계약을 기억했다면 경매를 취소하고 물품이 반환되었다고 선언했어야지. 그런데 넌 내가 죽었다는 확신을 갖고 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해 봐, 여기 로그메이지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 거냐? 적당히 얼버무린 말은 이미 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자세히 말해. 네가 계약이 끝났다고 판단한 근거, 그 이야기를 하라고. 마커스, 난 아직 계약의 징벌을 발동하지 않았어. 지금 네 몸의 변화는 순전히 네 양심의 판단에 따르는 중이야. 그러니, 잘 말해 봐. 중재하던 트루세이어의 말, 기억하지? 어서, 더 늦기 전에 진실을 이야기해.”
로잭이 조르던 손아귀에서 힘을 풀자마자 마커스는 콧물과 눈물, 피가 섞인 침을 튀기면서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로잭, 네가…… 음멧! 커흑, 크윽! 사냥당할 거라고…… 길드를 통해 현상금이 걸린 채라고…… 너에 대해서…… 널 사냥하는 자가 알게 되었다고…… 쿨럭, 메엣, 카악, 난 인간이야, 난 인간! 며칠 전에, 쿨럭, 네가 함정에 빠졌다고…… 소식이 없다고…… 다릴이 그랬…… 쿨럭! 난, 난 진심으로 믿었다고! 그래서 네가 죽었다고 생각…… 커흑!”
말을 하는 와중에 마커스의 몸이 굽어졌고 드러난 목덜미, 손목 언저리에 꼬불꼬불 복슬복슬한 털이 뭉텅뭉텅 돋아나고 있었다. 머리카락조차도 그 색이 허옇게 바래면서 구불거리는 상태로 돌변하는 중이었으니, 어떻게 봐도 저주에 의해 변신(變身)이 이뤄진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광경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그런데 듣던 것보다 변화 속도가 느린데? 흐음, 아직 완전히 거짓에 물든 것은 아니란 뜻인가?
‘뭐?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빨리 말해 봐!’
갑작스러운 드라고니아의 의문에 투란이 흠칫해서 빠르게 물었다.
―트루세이어의 저주, 그렇게 알려진 신벌(神罰)은 신속(神速)하다. 고개를 돌렸다 보거나 눈만 깜박여도 변화가 끝났어야 한다는 말이지. 뭐, 그래도 이 상황이면 충분히 관측해 냈겠지만…… 야, 말하고 있잖아! 아무튼 이 마커스란 녀석은 거짓에 현혹되기는 했지만, 그 거짓을 꽤나 편리하게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게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신벌이 속도를 늦추고 본연의 의지를 찾을 기회를 주고 있다는 말이지. 음? 더 쉽게 말하면 현혹 마법 따위에 당해서 휘둘린 채로 거짓에 홀린 상태라고. 그 마법을 깨뜨리면…….
빠악!
“투란?”
투란이 느닷없이 마커스의 머리통을 갈겼고, 로잭은 정신을 잃어버린 마커스의 멱살을 잡고 살짝 놀라고 어리둥절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