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4)
“들은 적 있지? 트루세이어가 뭔 일을 저지르면 눈 깜박할 새라는 말, 이렇게 나불나불할 여유 따위는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
투란이 아직 마커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짓이냐고 따지는 로잭의 눈길을 마주 보며 말했다. 로잭도 금방 기억해 낸 듯, 눈가를 찌푸리며 마커스의 상태를 다시 살피다가 묻는다.
“계약의 증표에 걸린 징벌이라 이렇게 느린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럼, 뭐라고 생각한 거냐? 왜 때린 거야?”
“다릴인지 핸슨인지, 이 아저씨 정신 차렸거든. 이쪽에 물어야 할 일이야, 로잭.”
투란이 곁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로그메이지의 옆구리를 한 움큼 떼어 낼 듯이 크게 쥐어 꼬집고 비틀면서 답했다.
“끄으, 끅!”
참으려 했는데 너무 아파서 못 참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로잭이 그 꼴을 보고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마커스를 놓고 옆으로 옮겨 섰다.
“이야, 그새 정신을 차리다니! 나도 꽤 둔해졌는데? 그럼, 이름부터 정리하자고. 다릴이냐, 핸슨이냐? 어느 쪽이 진짜 이름이지?”
“다릴 핸슨, 내 풀 네임이다.”
빠득, 이를 갈며 입을 다무는 시늉을 잠깐 했지만 투란의 손아귀에 살짝 다시 힘이 들어갈 낌새를 느끼자마자 로그메이지는 대답하고 있었다.
로잭이 그 꼴을 보며 새는 웃음과 함께 로그메이지 다릴 핸슨의 턱을 손으로 잡아 올리며 다시 묻는다.
“그냥 다릴이라고 부를게. 그쪽이 마법사 대접을 원하는 이름이잖아? 자, 그러면 마법사 다릴 씨, 로그메이지로 경매장에 채용된 모양인데 왜 내 일이 끼어들었지? 현상금이 어쩌고 한 이야기부터 자세히 좀 들려줄 수 있을까?”
로그메이지 다릴은 눈가를 구기면서 눈알을 굴렸다.
로잭이 냉큼 그 턱을 당기며 ‘일단 한 대 맞을래?’라고 눈알을 부라리는데, 점잖은 노인의 목소리가 실내를 울린다.
“투란, 옆에 놈 때린 것처럼 마법사도 한 대 쳐줘라. 어설프게 몬스터 로드 앞에서 장난치면 어떤 꼴을 겪는가 몸으로 느껴 봐야 할 모양이니까.”
로잭은 갸웃하며 예르카를 돌아봤다.
노인의 말을 존중한다는 듯, 투란이 바로 로잭의 손을 다릴의 턱에서 떼어 내고 가볍게 그 이마를 손가락 마디로 쿡쿡 찔렀다. 곧바로 다릴의 턱이 툭 떨궈지며 입에서 새된 비명이 아주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으아! 크륵, 커억! 하, 하지 마! 내 마력을…… 마력을 건드리지 마! 날 망가뜨리려 하지 마!”
로잭이 그 꼴을 보며 납득했다는 듯이 웃었다.
“아하, 투란 너도 할 수 있었구나! 아하핫. 어이, 다릴? 정신 줄 놓지 마라. 정신 줄 놓으면 멈춰 줄 수가 없잖아? 투란, 잠깐만 멈춰 봐. 어디, 얘기 좀 할 수 있지?”
투란이 슬쩍 손을 떼고 물러섰고, 예르카가 다가오며 살짝 끼어드는 말투로 몇 마디 흘려 낸다.
“주문이 아니라 마력을 단련해 의지를 부여했지? 제법 대단하다고 특성화니 뭐니 치켜세우는 모양이다만, 그건 그저 몸을 마도구로 제작해 낸 것이나 마찬가지란다. 네 몸이 마도구가 되었으니 몬스터 로드에게 무슨 꼴을 당할 수 있는가, 방금 전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을 게다. 그러니 허튼소리로 시간 낭비할 궁리 하지 말고, 순순히 대답해라. 목숨 잃을 염려 따윈 하지 말고 말이야.”
로잭은 간단하지 않은 이 몇 마디에 조그맣게 한숨부터 흘리며, 마침 로잭의 심정에 동감한다는 듯이 예리카의 늙은 얼굴을 바라보는 다릴에게 속삭였다.
“죽을 때까지 괴롭혀 줄 거야, 저 영감님 그거 한 가지는 확실히 할 줄 알거든. 그러니까 다릴, 도대체 어떤 놈에게 내 얘기를 들었기에 죽었다고 확신한 거야? 설마 마커스가 바보 같다고 그냥 속였다고 할 참은 아니겠지? 자, 말해 봐.”
다릴은 이를 악물고 갈았다.
하지만 예르카가 코웃음을 쳤고, 투란이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꼴을 곁눈질한 다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다릴의 눈동자에 담긴 의지와 입에 달린 의지가 다르다는 듯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마커스를 속이지 않았다. 너의 위치에 대해서만 알면 너를 확실히 죽일 수 있다는 놈이 너에 대한 이야기에 보상을 한다고 해서 알려 줬을 뿐이야. 길드를 통해서 말이다…… 헌터 길드가 아니고 도적 길드야. 세상에 길드가 헌터 길드만 있는 것은 아닌 줄 알잖나! 헌터 길드를 통해 현상금을 넣고 수배하는 일에는 금전 말고도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만 도적 길드에는 금전만으로 모든 수배가 가능하지, 알고 있지? 그래서…… 나처럼 방랑하는 마법사는 헌터 길드보다는 도적 길드를 통해 더 많은 금전을 쥘 수 있으니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 것뿐이야! 마커스는…… 원래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듣기 싫은 얘기는 모르는 척하는 놈이잖아. 거기에 미숙한 현혹이라도 거는 시늉을 해 주면 바로 남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지. 난 그저 조금 거들어 준 것뿐이야! 누구냐니? 도적 길드를 통해 얘기를 주고받았다니까! 상대방의 정체 따위 알 게 뭐냐고! 궁금하면 도적 길드에 가서 물어보면…… 끄아아악? 왜? 왜 이래, 이 미친 영감이!”
줄줄 늘어놓는 다릴의 귓가를 예르카가 찰싹 쳤고, 그 여린 손찌검에 다릴은 괴성을 지르며 욕설을 토해 내고 있었다.
로잭은 웃었고 투란은 슬쩍 오싹해졌다는 듯이 예르카를 바라봤다.
―자기가 할 줄 아니까 네게 시켜 본 것이었군. 확실히 상급 몬스터 로드의 솜씨야, 어쩌면 너의 수준을 평가해 보려고 시킨 것일 수도 있겠는걸?
‘너무 익숙하잖아! 난 살짝 건드렸는데, 방금 온몸의 마력을 비틀고 아프게 한 거잖아? 그러면서도 마력의 틀이 깨지지 않게 말이야. 얼마나 해 봤길래 저렇게 익숙한 건지…….’
기억 속의 고무쇠 아저씨가 예상보다 훨씬 흉악한 늙은이가 되었다고 투란이 툴툴거리는 동안, 로잭이 웃음을 흐리며 말하고 있었다.
“영감님이 왜 그러는지 알면서 뭘 묻나? 도적 길드의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가를 쏙 빼놓고 있잖아. 길가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가르쳐 주는 길드가 아닌데 말이야. 아니면 우리가 너처럼 도적이랑 친해 보이냐? 까불지 말고 말하라고.”
다릴이 다시 이를 갈았다.
사나운 눈빛도 번들거렸지만 다릴의 입은 역시 빠른 대답을 토해 낸다.
“경매장을 맴도는 장물아비가 있다. 그 정도는 알아서 찾아야 해! 도적 길드의 현상금 일에 끼어들려면 자신만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해 줄 말이 없는 부분이란 말이다! 젠장, 사실대로 말하고 있잖아!”
쓰윽 내밀어지는 예르카의 손을 보며 다릴이 급한 외침과 고갯짓을 하며 필사적으로 피하는 시늉도 하는 중이었다. 그런 몰골을 보며 예르카는 손을 멈췄고, 나직하게 로잭에게 말한다.
“내 보기에는 사실인 듯하다만?”
“사실일 거예요. 위키드랜드에서 얼굴 익힌 도적 녀석도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도적 길드는 도적을 받아들이니까 먼저 도적이 되라고…… 도적질을 해서 장물(贓物)을 지니게 되면, 길드에서 적당히 때를 봐서 찾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로잭의 대답에 예르카가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봤다.
투란도 곁에서 호기심 돋는다는 듯이 로잭을 바라봤다.
마커스가 정신을 못 차린 채로 꿈틀거린 탓에 매달은 끈이 흔들거렸다.
다릴은 겨우 자신에게 생긴 여유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숨을 고르며 마력을 안정화하려는 듯이 훅훅거렸다.
로잭은 조금 미묘한 분위기를 휑하니 둘러보고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도적 길드랑 접점 없어요. 위키드랜드 쪽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 없어서…… 얼굴 익힌 녀석이랑도 서로 가짜 이름만 대고 헤어졌거든요.”
예르카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그다음에 나오는 말에는 전혀 아쉬움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아깝구나, 어쩔 수 없이 헌터 길드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이 근방의 도적, 장물아비 같은 녀석이라면 헌터 길드에서 확실히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입이 가벼운 놈 한둘 알려 달라 해야겠군.”
로잭이 흠칫 놀라 예르카를, 노인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며 묻는다.
“길드에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어요?”
“응? 아니, 난 그런 힘 없지.”
당당한 노인의 대답, 로잭은 어이없어 힘이 빠진다는 표정을 짓는데 노인은 한층 더 당당하게 투란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잇고 있었다.
“얘가 좀 잘 살았나 봐. 그 정도 이야기는 거뜬히 긁어낼 수 있는 인맥이 있다고 했어.”
로잭이 ‘오?’ 하며 투란을 봤고, 투란은 ‘엥?’ 하다가 ‘아!’ 하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는 채로 말해야 했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소한 일이니까 잘되려나?”
예르카는 혀를 차며 바로 윽박지르는 소리를 한다.
“잘되게 해라, 좀!”
“음, 뭐…… 이 근처 어디에 헌터 길드가 있나요?”
투란이 키득거리며 물었다.
* * *
“희한한 일에 휘말린 거냐? 아니면 희한한 일을 해결하려는 거냐? 어느 쪽이든 상황이 묘하게 되었구나, 투란. 어렵지 않아. 그 정도는 금방 처리해 줄 수 있어. 그나저나 알드바인에는 언제 돌아갈 거냐? 바로크 왕국에서 헤어지고 나서 벌써 세 달 정도 지났지 않았나?”
툴로쉬가 흐릿한 수정구 안에서 말하고 있었다.
어둑한 방 안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광원(光源)인 듯이 놓인 수정구였고, 그 안에 비치는 툴로쉬의 주변은 이 방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투란은 수정구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조금 그 안의 풍경을 살피는 시늉을 하며 툴로쉬에게 대꾸한다.
“두 달? 아니, 그 조금 모자란 정도? 그건 나중에 잘 세 보시고……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데요, 도적 길드에서 걸어 놓은 현상금을 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도적이 아니면 아예 손도 못 대는 현상금은 아닌 것 같던데.”
수정구 안에서 툴로쉬는 투란을 가늘게 보는 눈길부터 흘리다가 피식 웃음과 함께 대답해 준다.
“녀석들은 중개인이야. 도적 길드의 중개를 받으려면, 도적의 신뢰를 얻어야지. 간단히 말해서, 급한 사정으로 인해 금전이 엄청나게 필요한데 능력이 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헌터 길드의 창구 앞을 왔다 갔다 하면 된다고나 할까? 물론 금전을 얻기 위해서는 기꺼이 사람도 죽이고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급하다는 시늉이어야 해. 그 정도는 되어야 현상금만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상관 않을 테니까. 아, 이건 좀 된 상황이고…… 요즘은 위키드랜드 쪽에 도적을 위한 도박장이 있어. 그 도박장 내부에 창구와 게시판이 있고, 거기서 헌터 길드를 모방한 형태로 현상금을 내걸고 있다더라고. 물론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 도둑질이라든가 청부 살해, 납치 같은 일이 대부분이고 말이야. 한번 그쪽에 엮인 자는 그걸 약점 삼아서 끝까지 이용하려 한다는 정도는 금방 알겠지?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엮이지 않도록 하라고.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라도 기꺼이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이용하려 들 테니까. 아, 준비된 모양이네. 투란, 그쪽 수정구 아래에 두루마리 준비되어 있지? 거기에 네가 원한 정보가 기록될 거야. 자, 그러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중에 따로 연락해 줘. 나도 그 두룩칼과 로잭에 대해서 따로 알아보다가 알릴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줄게. 몸조심하라고, 투란.”
서걱서걱, 스르륵.
툴로쉬의 말이 끝나면서 수정구는 혼탁하게 변하다가 다시 맑게 비워진 수정의 성질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두루마리가 저절로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데, 부드럽게 이런저런 문자와 초상화가 새겨지고 있었다.
―거참, 이것도 그 가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마도구인가?
드라고니아가 하나씩 전부 말해 주는 대신에 온갖 잡담을 떠들다가 사라지고 정작 듣겠다는 이야기는 두루마리에 새겨 주고 사라진 툴로쉬가 어이엇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아무렴 어때.’
투란은 그냥 그러려니 훌쩍 넘기겠다는 듯, 그냥 두루마리를 당기고 집어 들었다.
두루마리의 초상화 곁에는 친절하게 이름과 사는 곳 등이 써 있었고, 초상화가 여럿이라 누구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는 듯이 금을 그어 잘 표시해 두기까지 했다.
그 두루마리를 든 채로 투란은 어둑한 방을 나서며 두리번거렸다.
길드 지부의 지하였기에 어두운 통로였고, 벽에 조명을 위한 등잔이 걸려 있었다.
그 한구석을 보며 투란이 부른다.
“로잭, 이 정도면 충분하지?”
방 밖의 조금 긴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로잭이 재빨리 투란에게 다가오며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바로 두루마리를 등잔 아래로 가져간 로잭은 조금 거센 숨결을 토해 내며 투란에게 속삭인다.
“너…… 대단하잖아! 길드에서 이런 정보를 이렇게 간단히 내주다니! 이 녀석들, 다이얀의 장물아비 중에 거물이 분명하다고!”
“그냥 상인이라고 써 있는데, 어떻게 거물이라고 바로 알아?”
맹한 말투로 투란이 중얼거렸다.
로잭은 그런 투란의 어깨를 한 손으로 꽉 잡고 두루마리를 다른 손으로 휙 말아 쥐면서 대꾸한다.
“왜냐하면 이 안의 낯짝이 새겨진 녀석들은 모두 다이얀의 거물들이거든.”
“여기 도적의 도시였어?”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로 투란이 놀란 시늉을 했다.
로잭은 킬킬거렸다.
“일단 나가자.”
헌터 길드의 은밀한 지하구역에서, 투란이 아니었다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듯한 비밀스러운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