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5)
환한 햇살이 창턱을 넘어오고 널찍한 실내의 창구 앞에서는 이리저리 자리 잡고 널브러진 듯한 헌터 팀들이 난잡하게 섞여 있었다. 아직은 이른 오전임에도 볼일이 잔뜩 넘쳐나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그 틈새로 로잭이 앞장섰고, 투란은 잰걸음으로 뒤따랐다.
헌터 길드에서 벗어나는 동안 로잭은 말을 아꼈고, 투란은 환한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구경하듯이 입을 다물었다.
둘은 나름대로 고요한 듯했지만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이 잔뜩 몰려드는 중이었다.
―야, 길바닥에 마갑이나 마검은 없어 보인다만? 저기 돌멩이도 그냥 돌멩이야. 마석이 아니네? 어이쿠, 아쉽구먼. 어, 저쪽 수레 모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이런 마갑이 아니고 그냥 헝겊 옷이구먼!
뭔가 다이얀에 들어서면서 떠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겨 준다는 듯, 야유하고 핀잔하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가를 즐긴다는 듯한 낌새로 떠들고 있었다.
이는 거리를 얼마 동안 스쳐 지나고 티아라가 문짝을 여닫는 광경이 눈에 비친 다음에야 멈춰졌다.
투란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다 고친 거야? 재주가 좋아졌네?”
티아라가 곧바로 두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만하라고! 이 문은…… 너처럼 실종된 적이 없는 내 남편이 남긴 마법으로 수선된 거야. 내 남편은 너랑 엮였기 때문에…… 아니, 너도 엮인 일에 나 때문에 엮여서…….”
“티아라, 그만.”
로잭이 손을 들어 입을 막을 듯한 시늉을 하면서 티아라의 말을 잘랐다.
티아라도 곧 숨을 고르는 듯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투란에게 다시 말문을 연다.
“가는 길에 아침 끼니는 때운 거야? 아냐? 그냥 쳐들어갔다가 볼일만 보고 왔어? 하긴 로잭이랑 다니면 그 꼴이지. 들어가, 영감도 아직 먹기 전이니까. 빨리 가면 함께 먹을 수 있을 거야.”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로잭은 발걸음을 빨리하며 앞장섰다.
예르카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다가 둘을 맞이했다.
“벌써 끝내고 온 거냐? 아니면…….”
“아, 끝내고 온 거예요. 투란이…… 생각보다 대단했어요. 우리가 예상도 못 한 결과를 단번에 얻어내 오더라고요. 음? 아, 난 밖에 빠져 있는 동안에 투란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대체 누가 아침 준비를 했어?”
로잭이 탁자 앞에 의자를 당기고 앉으며 대답하다가 준비된 요리를 보고 화들짝 놀란 소리로 말을 맺고 말았다.
예르카는 점잖게 다른 쪽에 앉은 채로 덤덤하니 이에 대꾸해 주었다.
“엄마 어린 시절을 꼭 닮은 딸이 해 준 요리이지 않겠냐? 너 돌아온 김에 좀 먹이고 싶다나? 뭘 먹이고 싶은 기분이었나는 차마 못 물었다만, 닥치고 먹어라. 투란, 이 정도는 기꺼이 먹을 수 있지?”
슬쩍 노려보는 듯한 노인의 눈길에 투란은 조금 굼뜬 대답과 함께 의문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날고기도 뜯어먹을 줄 아는데요, 뭐. 그런데 정말 이거 어떻게 조리한 거래요? 구웠나? 삶았나? 그냥 흙 발라서 그을렸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된대요?”
“닥쳐.”
예르카도, 로잭도 아닌 아르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투란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노인의 연륜이 담긴 체념 섞인 목소리가 이어진다.
“먹어라, 할 일이 많이 기다리잖냐.”
로잭은 얌전히 접시를 당겼고, 투란은 티아라의 어린 시절에서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인 아르안을 흘깃하며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고기…… 간신히 날고기는 아닌 듯한데, 날고기가 더 맛있을 것이라고 단정 짓게 하는 괴상한 요리를 자기 앞으로 당겼다.
달그락거림으로 이어진 침묵의 식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로잭이 두어 점 먹고 나서 바로 입술을 닦아 내며 예르카를 향해 힘차게 말문을 열었다.
“예르카, 두 녀석은 잘 처리하셨죠?”
노인 또한 입술을 닦으면서 억세게 답한다.
“게르민이 준비해 둔 것을 잘 써먹었지. 다릴 녀석은 특별한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현혹이 미숙한 만큼 대처를 못 하더군. 어쨌든 둘 다 기억이 뒤틀린 채로 나갔으니, 다음 일은 염려할 필요 없어.”
둘의 짤막한 듯하면서도 길쭉한 문답에 투란이 냉큼 요리에서 손을 떼며 묻고 끼어든다.
“무슨 마법을 쓴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밤에 함께 왔던 패거리도 뭐라 할 텐데?”
예르카가 자리에서 쓰윽 일어서면서 대답한다.
“그 패거리가 증언할 거야. 둘의 기억이 제대로라고 말이지. 게르민이 만든 기억장애 마법은 특별한 시점을 전후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기억시킬 것이랑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 것을 선택해서 심어 주게 하지. 둘은 우리가 도적 길드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는 것을 아는 채로 나갔다, 이렇게 일찍 단서가 아닌 답을 구해 움직인다는 것은 모르는 거야. 두 녀석을 통해 흘러나갈 정황은 우리가 움직이는 것보다 몇 단계 처지는 셈이지. 그러니까 로잭, 서둘러서 치고 나가야 해. 투란, 식사 끝났지? 바로 움직여야 한다!”
“넵! 가죠!”
바로 탁자를 미는 시늉까지 하며 투란도 로잭에게 맞춰 일어섰다.
예르카를 선두로 둘이 냉큼 식탁에서 물러나 나가 버리는 꼴을 보다가 아르안은 고개를 돌렸다. 식탁 위의 요리는 겨우 한 입, 두 입만 먹은 흔적을 간직한 채로 처음이랑 똑같은 자태를 과시하는 중이었다.
아르안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성난 표정을 지었지만, 입을 꽉 다물며 씩씩거리는 채로 앞치마만 내팽개칠 뿐이었다. 엇갈린 듯이 들어서던 티아라가 이 꼴을 봤고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말았다.
그리고 요리에서 도망친 셋은…….
“싱싱한 육포부터 사야죠. 곧장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로잭이 이리 말했다.
“마실 물도 챙겨라. 기왕이면 물 대신에 씹을 수 있는 과일이 좋겠다만.”
예르카는 아예 멀리 떠날 낌새로 이리 대꾸하고 있었다.
둘이 그러는 꼴을 보며 투란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르안의 요리가 꽤 흉악하기는 했지만 투란이 보기에는 그래도 죽은 몬스터보다는 멀쩡한 식량이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티아라, 지금은 어느 정도 요리 잘하지 않아요?”
예르카가 풋 하고 웃었고 로잭도 비슷한 웃음을 흘리며 답해 준다.
“아줌마랑 같아, 티아라 어머니 말이야. 잘할 때는 아주 잘하고, 아닐 때는 완전히 숯덩이를 만들지. 아르안은…… 아까 그런 걸 일관되게 내놓는데, 아빠가 늘 맛있게 먹어 준 탓에 계속 그 모양이지. 뭐, 게르민이야 딸이 뭘 해도 좋았겠지. 야, 그렇게 황당한 표정 짓지 마라. 티아라도 제법 요리를 하게 되었잖아. 아르안도 언젠가 좋아하는 남자 만나면 고칠 거야.”
투란의 괴상한 표정을 타박하며 로잭이 말을 맺었다.
한데 그 말을 들은 예르카가 고개를 흘깃하며 로잭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혀를 차고 걸음을 서두른다?
투란은 금방 그 묘한 낌새를 깨닫고 냉큼 예르카 곁으로 붙어가며 나직하게 묻는 소리를 냈다.
“가망 없어요? 도둑질은 해도 요리는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모르겠고, 좋아하는 남자 만나도 안 고쳐질 거란 점은 확실하다. 아르안은 어릴 때부터 줄곧 로잭에게 시집간다고 칭얼거렸는데, 그 모양이거든.”
“허얼?”
투란이 화들짝 놀라 로잭을 흘깃했다.
몇 걸음 사이였기에 다 들은 로잭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부터 짓고 투덜거린다.
“거참, 아저씨는 그러니까 그냥 영감님인 거예요! 아르안이 나한테 하는 대로 자기 남자한테 하겠어요? 고쳐질 거예요.”
“어림도 없을걸?”
아옹다옹, 로잭이 소년 시절이었던 것처럼 예르카가 반박했다.
그사이에 셋은 티아라의 여관에서 벗어나 경매장 풍경 몇을 지나쳤고, 눈에 띄는 커다란 저택의 담장 아래에 도달했다. 거기서 바로 로잭과 예르카가 담장을 넘을 낌새였기에 투란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육포는? 물은? 과일은……!”
“야, 넘어와!”
이미 담장에 반쯤 몸을 걸친 로잭이 하는 말이었다.
예르카는 발목을 튕기는 것만으로 이미 담장 너머에 가 있었다.
하던 말이랑 하는 행동이 이런 차이를 내다니, 하고 툴툴거리면서 투란도 이미터가 조금 넘는 담장을 따라 넘으려는데…….
―알람 걸린 담장이다. 예르카가 로잭 넘는 동안 장애를 일으켰다만, 너를 위해서는 안 해 줄 것 같은걸?
‘아, 그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산뜻하게 담장을 꽉꽉 눌러 잡으며 벅벅 긁는 시늉과 함께 타고 올라가 내렸다.
담장이 부르르 떨었고, 조금 먼 저택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시끄러운 분위기가 저택 안을 채웠고 로잭이 흘깃 투란을 돌아보며 예르카에게 묻는다.
“아저씨?”
“저 알아서 할 줄 알았지!”
투란은 그런 둘을 향해 태연하게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로잭과 예르카가 투란을 동시에 노려봤고, 한숨을 함께 내쉬면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냐!”
그사이에 드라고니아가 황당함을 담아 투란에게 묻는다.
―대체 무슨 심술이냐? 둘이 하는 짓을 보고 얼핏 눈치챘잖아? 내가 친절하게 말도 해 줬잖아!
‘난 도적이 아니거든. 여긴 도적이랑 친한, 어쩌면 도적인 작자의 집이고. 에헴!’
투란은 안팎으로 뻔뻔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어, 저기 누가 마중 나오는 거 아닌가?”
로잭과 예르카가 그쪽을 봤다.
황소도 물어 죽일 듯한 큰 개 몇 마리랑 곰도 꿰뚫어 죽일 듯이 장전된 석궁을 든 저택의 호위들이 한가득 몰려나오고 있었다.
투란이 그 모습을 확인하며 감탄을 덧붙여 말을 잇는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은 집이네! 아니, 저런 덩치 개들을 저리 많이 어디다 키운대? 와아, 석궁 봐라! 어디서 저런 커다란 석궁을 샀을까나? 그냥 자체 제작이라도 한 건가? 아, 자체 제작이겠네!”
주절주절 떠드는 소리에 로잭과 예르카가 헛웃음을 지었고, 몰려나오던 호위들은 어리둥절해서 멈춘 채로 침입자를 노려봐야 했다. 담장 아래에서 목소리 낮출 생각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이 떠드는 모습이 악의를 품은 침입자로 추정하기에는 너무나도 곤란한 모습…… 그야말로 문을 못 찾다가, 혹은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담장 아래에 서게 되어 떠드는 꼴인 셈 아닌가.
그렇게 이뤄진 대치는 짧았다.
호위 사이를 가르며, 개들을 옆으로 밀면서 저택 안에서 나온 이가 크게 외쳐 묻는 탓이었다.
“누구냐? 왜 담을 넘었지?”
투란은 실실 웃는 채로 로잭에게 바로 물음을 잇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게, 여기서 우리가 볼일이 뭐였어?”
“저택 주인을 만날 일이 있었지. 어, 약속은 안 잡았다. 하지만 저택 주인이라면 우리랑 대화를 해 줄 거야. 킬리만드로스에 대해 깊은 의논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아, 무슨 말인지 몰라? 그러면 가서 물어보라고, 킬리만드로스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어 하는 손님이 왔다고 말이야. 우리 온 것을 널리 알려 주려고 일부러 담장을 넘어서 알람으로 문을 두드린 거니까, 가서 말이나 전해.”
로잭의 말은 당당하고 우렁찼다.
숨어들거나 음모의 냄새 따위는 전혀 없었다.
호위들은 한층 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셋을 노려보며 어찌해야 하는가 우두머리의 눈치를 보았다.
“부수지 않고 들어온 것을 고맙게 여겨라.”
콰앙!
말과 함께 예르카가 발을 굴렀다.
예르카의 발치에서 단숨에 이삼 미터가 뒤집히며 구덩이가 생겨났다.
실로 강력한 한 걸음은 개들이 꼬리를 말게 했고, 석궁이 겨냥을 하며 치켜 올라가게 했다.
“기다려! 누가 가서 주인님께…….”
그러나 호위의 우두머리가 손을 저어 자신의 일행을 만류하고 말했다.
“안으로 들이시랍니다!”
저택 안에서 허겁지겁 튀어나온 하인이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호위 우두머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동시에 예르카를 선두 삼아 로잭과 투란이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걷게도 했다.
안에서 나온 하인은 예르카가 발 구르기 전부터 저택 안에서 뛰어나온 모습이었으니, 더 가로막는 호위는 없었다. 다만 다들 ‘킬리만드로스?’라고 갸웃하고 있었는데…….
“당신들, 누구지?”
집무실 문이 닫히고 잠기며 바로 물음이 튀어나왔다.
투란은 그 문이 얼마나 튼튼한가를 재듯이 통통 두드렸고, 예르카는 냉랭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로 섰다. 로잭이 둘보다 앞으로 나서면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노려보는 눈길에 거침이 없는 저택 주인에게 되묻는다.
“정말 몰라서 묻나?”
저택 주인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로잭은 그가 뭐라 하기 전에 다시 빠르게 단서를 붙여 묻는다.
“도적 길드의 현상금, 그 정보를 다루고 있잖아? 그럼 내가 누군지 알 텐데?”
저택 주인의 눈이 깜박였다.
그사이에 눈알이 굴러가며 예르카를 보았고, 다시 로잭을 훑다가 투란을 거쳐 예르카에게, 그러다가 로잭에게 고정되었다.